제249화
노웸의 눈이 엘레나가 들고 있는 포크로 향했다. 생물에 해를 끼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는 아니다.
하지만 뾰족하게 튀어나온 몇 갈래의 날들은 피부를 찢고 근육을 파고들 수 있기에 충분했다. 엘레나의 손이 움직여 포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노웸이 스녹을 쳐다봤다. 그리고 소리쳤다.
쿠우우우우!
스녹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시작은 식사 시간이었다. 일단은 납치당한 엘레나에게 식사를 준비시킬 순 없으니 식사는 같이 있는 한스나 스녹이 준비했었다.
대부분의 식사 준비는 이 비밀 장소에 머무르는 일이 많은 스녹의 차지였다.
납치할 때까지만 해도 적잖이 반항을 했던 엘레나지만 일단 가두는데 성공하자 의외로 선선히 협력을 했다. 그 때문에 잠깐 방심했던 모양이다.
식탁에 올라가 자신 몫의 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대에 차 킁킁거리고 있던 노웸.
그때 슬며시 엘레나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납치가 됐다고 해도 그녀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됐을 뿐, 안에서는 자유로이 나돌아다닐 수 있었다.
스녹도 노웸도 그녀가 그저 식사를 하기 위해 테이블에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대로 엘레나가 테이블에 앉으려는 듯 의자를 뒤로 뺐다.
그러나 다음 행동은 예상을 벗어났다.
기분 좋게 쿠! 쿠! 거리며 앞발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고 있는 노웸을 엘레나가 그대로 낚아챘다. 다른 손으로는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던 포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온 상황이 이 상황이다.
스녹은 엘레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이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모,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나도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진짜 찌를 수 있어!”
쿠우우우우!
포크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자 노웸이 더 크게 비명질렀다. 스녹이 한숨 쉬며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날 내보내줘!”
‘역시군.’
솔직히 멍청한 질문이었다. 강제로 납치된 사람이 원하는 게 그것 말고 또 있을까. 하지만 그건 받아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안 돼.”
“윽!”
스녹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엘레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포크가 조금 더 노웸에게 다가갔다.
“지, 진짜 찌를 거야!”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포크를 든 엘레나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스녹의 겁박에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살생이 쉬운 일은 아니지.’
그게 설령 인간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끝장낸다는 의식은 분명 꺼림칙함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노웸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높은 지능을 가진 환수다. 게다가 엘레나에게 마력을 제공함으로써 정까지 쌓았다.
“그만 둬. 그렇게 해서 네가 얻을 이득은 없어.”
“여기에 갇혀 있다는 손해는 없앨 수 있겠지!”
“네가 정말 노웸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엘레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너도 알다시피 노웸은 대지의 환수야. 그 힘은 웬만한 기사나 마법사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지. 너도 대지의 환수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잖아?”
그녀는 노웸이 대지의 환수인 걸 한눈에 알아봤을 정도로 대지의 환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마법도 못 쓰는 자신이 포크 하나를 든다고 이길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엘레나의 포크에 벌벌 떨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웸이 엘레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에 가능한, 어찌 보면 엄살이나 다름없다.
노웸이 엘레나를 적으로 인식했다면 그녀는 바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레나도 순순히 물러날 순 없었다.
“…너희가 날 이용해서 뭘 할지 모르잖아. 혹시 할아버지나 아빠에게 무슨 폐를 끼치려 한다면….”
엘레나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스녹은 속으로 혀를 찼다.
‘원래 한 성격 한다고 했었지.’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같았다.
“…솔직히 나도 정확한 계획은 몰라.”
스녹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적어도 너한테 손해는 아닐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
“내가 아니라 라일라 님이라면 믿겠어?”
엘레나의 몸이 덜컥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선생님도 관련되어 있어?”
예상한 일이긴 했다. 스녹은 지크와 라일라의 소개로 만났었다. 그런 스녹이 납치사건을 일으켰다면 당연히 그 둘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가능성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그저 한스와 스녹 둘이서만 일을 벌였기를 빌었다.
라일라가 배신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녹의 말은 그녀의 희망을 깨부쉈다.
“일단 말해두는데, 라일라 님은 널 배신한 게 아냐. 너도 알잖아? 그 분이 널 얼마나 아끼시는지.”
“그럼 왜 이런 짓을 하는 건데!”
엘레나가 소리를 질렀다. 분노와 배신감이 그녀의 목소리에 절절하게 섞여들었다.
스녹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널 보호하기 위해서.”
예상치 못한 소리에 엘레나가 굳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정확한 건 몰라. 하지만 지금 이 도시에 너와 관련된 어떤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건 알아. 지금 지크 님이 그걸 파내려 하고 있고.”
“그 말을 믿으란 거야?”
“널 납치하려는 세력이 있었잖아.”
엘레나는 자신을 저택에서 납치한 로브를 입은 자들을 떠올렸다.
“지크 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는 계속 너희 저택을 감시하고 있었어. 누군가 너를 납치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너희와 짜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잖아.”
“그런 인간들을 전부 죽여버릴까?”
“…….”
스녹의 설득이 먹힌 것인지 노웸을 잡고 있던 엘레나의 손길이 조금 약해졌다. 노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틈이 생겼지만 억지로 엘레나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워하면 지크 님이 이걸 보여주랬어.”
스녹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엘레나에게 던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엘레나가 어버버거렸다.
그녀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지만 스녹이 던진 것을 받기엔 무리가 있었다.
쿠!
그때 엘레나의 팔에서 몸을 뺀 노웸이 공중을 날았다. 노웸은 멋지게 스녹이 던진 것을 입으로 문 뒤 엘레나의 어깨에 착지했다.
쿠! 쿠!
받으라며 노웸이 그것을 엘레나의 어깨에 꾹꾹 누른다.
방금 전까지 인질로 잡고 있던 환수의 친절에 엘레나가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여 일단 물건을 받았다.
“이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를 뜻하는 브로치야.”
엘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명예 성기사?”
엘레나도 명예 성기사는 알고 있다. 그녀는 급히 브로치를 살폈다.
“…이거 진짜야?”
“진짜야.”
“누가 명예 성기산데?”
“지크 님.”
엘레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크 씨?”
“알아. 믿기 좀 힘들 거라는 거.”
지크의 성격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고 체감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스녹이다.
지크의 성격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인정도 했다.
“하지만 진짜야. 지크 님은 분명 성격이 나쁘지만 적어도 나쁜 놈들에게만 나쁜 짓을 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는 카르위먼을 도와 밸리드를 토벌하면서 얻은 거고.”
하지만 엘레나의 의심의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녹은 무척 억울했다.
“진짜야! 성녀님께서 직접 주신 거라니까!”
“성녀님? 카르위먼의 성녀님과 만났어?”
엘레나가 호기심을 보였다. 탈출로를 찾은 사냥꾼에 추격당하는 짐승처럼 스녹은 기뻐했다. 엘레나에게 자신이 겪은 모험을 살짝 얘기해줬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 나나 선배님, 한스 씨를 말하는 거야. 우리 둘도 제법 강하긴 하지만 지크 님과 라일라 님은 정말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하시거든.”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여행자였지.’
납치를 당해 정체 모를 곳에 감금당한 상황이었지만 호기심이 올라오는 건 멈추지 못했다. 여행 얘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일단 믿어볼까?’
물론 여행 얘기를 듣고 싶다는 철없는 욕망 하나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도저히 이곳을 탈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의 증표에 마음이 누그러진 것도 사실이었다.
“…좋아. 당장은 믿어볼게.”
엘레나가 아직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노웸을 손으로 감싸더니 조심스럽게 테이블 근처로 뻗었다.
쿠!
노웸이 테이블로 뛰어내렸다. 스녹은 안도했다.
‘어떻게 우리를 믿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다행히 잘 풀렸네.’
설마 인질극부터 시작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믿어주는 대가라고 하긴 뭐 하지만 너희들이 어떤 여행을 했는지 알려줄 수 있어?”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스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라일라 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어.”
“무슨 말씀?”
“마법 연습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노웸의 마력을 이용해서 계속 마력에 익숙해지라고 말이야.”
“…그래. 공부는 쉬면 안 되지.”
아직 지크 일행을 확정적으로 믿을 순 없다. 하지만 마법 공부를 계속 하란 말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걸 엘레나는 멈출 수 없었다.
“알았어. 당분간은 마법 공부에 전념하도록 할게.”
“그럼 납득은 끝난 거지?”
“일단은.”
“좋아.”
스녹은 잠시 테이블을 떠나더니 준비해두었던 음식을 테이블 위에 차리며 말했다.
“그럼 밥부터 먹자.”
* * *
그렇게 스녹과 엘레나의 사이가 일단은 진정되고 있을 무렵, 스누위크의 혼란은 더해가고 있었다.
엘레나의 실종과 성 바깥에서 발견된 의문의 시체들을 둘러싸고 의문이 폭증해갔다.
소문은 일반인들에게도 퍼져 사람 두셋이 모이면 그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온갖 추측과 루머가 난무했다.
지크와 라일라는 숙소에 돌아왔다. 낮에는 엘레나를 찾는 척하며 온 도시를 뒤집고 다녔다. 당연히 엘레나가 발견될 일은 없었다.
일단 재위크가 사건의 중요 관련자란 위치는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저녁마다 자신들이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을 숙소에 파견된 사람에게 알려야했다.
감시자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숙소로 올라온 둘. 라일라가 지크의 방에 들어섰다.
“뭐 하고 있어?”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려 들어온 라일라는 지크가 무언가를 쓰고 있자 물었다.
지크가 빙긋 웃었다. 라일라는 바로 알아챘다. 지크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절대 되먹잖은 짓은 아닐 거라는 걸.
“우리가 엘레나를 납치했잖아?”
마치 자신의 작은 장난을 자랑하는 개구쟁이마냥 지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스누위크가 발칵 뒤집혔지.”
“원래 납치란 건 대부분 납치 대상보다는 납치 대상과 관계가 있는 이들을 협박하기 위해 쓰여. 인질 같은 거지. 생각해 봐, 라일라. 지금 온갖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고 있는 ‘마탑주 손녀 납치 사건’이 벌어졌어. 납치범, 납치범의 의도, 성벽 밖 시체와 연관성 등등 밝혀진 것들은 단 하나도 없지. 가족, 흑막, 관련자들 모두가 어떻게든 단서 하나라도 찾기 위해 눈이 벌게진 상태일 거야. 이때 필요한 게 뭘까?”
“뭔데?”
지크가 쓰고 있던 종이를 들고 펄럭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보람차게 말했다.
“바로 협박장이 등장할 차례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