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심문관이란 것들이 전부 험악한 말들만 쏟아내고 간지라 모를 수도 있겠지만 지크와 라일라를 가두고 있는 곳에 전부 그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혹시라도 있을 재위크가의 폭주를 대비하기 위해 마탑주가 사람을 심어둔 것이다.
지크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마탑주에게 알릴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윌위스는 그 짧은 기간 동안 훨씬 더 늙은 것 같았다. 몸은 늙었을지언정 총기로 반짝이던 눈조차 바란 것 같았다.
“엘레나를 찾는 걸 도와준다 했다고 들었소.”
“그렇습니다.”
지크가 엄숙하게 말했다.
“엘레나는 제 친우의 제자로서 상당히 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종됐다는 애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친우도 마찬가지였고요.”
옆에 있던 라일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르친 기간은 짧더라도 제 제자예요. 무척 우수하고 기특한 제자라 특히 정도 빨리 들었죠. 그런 아이가 실종됐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그렇군.”
“저희의 실력은 어느 정도 알고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여행자 특유의 경험도 있죠. 적어도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지크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대들의 입장을 알고 있소?”
“재위크가 때문에 그런 모양이군요.”
“그렇소.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제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마탑주님.”
지크가 윌위스와 눈을 마주쳤다.
“이번 사건, 그들이 일으켰을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엘레나를 납치한 자들이 그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오?”
윌위스의 어조가 내려갔다.
마탑의 명문가를 의심한다. 그건 결코 가볍게 꺼낼 말이 아니었다.
“말을 조심하시오. 만약 웨인 재위크가 들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발언이오.”
“웨인 재위크라. 재위크가의 수장이죠? 제가 때려눕힌 찌질이의 아버지이기도 하고요.”
“말을 조심하라 했소. 여기는 마탑이오. 여행자라 어느 정도의 자유분방함은 봐줄 수 있어도 무례한 언사를 용납할 수는 없소!”
“실례했습니다.”
윌위스가 강하게 말하자 지크는 순순히 사과를 했다.
“하지만 마탑주님. 그들은 전과가 있지 않습니까. 엘레나를 비웃고 경멸하다가 되도 않는 시비를 걸어서 여기 있는 라일라와의 결투에서 패배하니 암습을 한 작자들입니다. 자기가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이유를 엘레나에게 돌려 원한을 갖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여기서는 윌위스도 지크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반응을 보니 마탑주님도 껄끄러움 정도는 가지고 계신 모양이군요.”
“그건 인정하겠소. 아무래도 당신들의 사건이 터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소. 증거도 없고 심증적으로도 확실하게 그들이 범인이라고 결론내리기도 힘드오.”
“하지만 재위크가를 압박할 순 있죠.”
윌위스가 물끄러미 지크를 쳐다봤다.
“그걸 원했군.”
“재위크가의 도련님이 아무리 저한테 고문을 당하고 반폐인 상태가 됐다고는 해도 그는 분명 살아있습니다. 먼저 시작한 것도 그쪽이고요. 하지만 지금 엘레나 양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윌위스가 불쾌하게 신음했다. 하지만 지크는 개의치 않았다.
“저희를 감금할 수 있었던 것도 저희가 저지른 사건이 재위크가가 이성을 잃을 만한 사건이기 때문이었죠. 방해하면 그게 누구든 무조건 물어뜯으려 할 테니까요. 다른 이들은 상관하기 싫었을 겁니다. 상대인 저희가 떠돌이인 것도 요인 중 하나였겠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스럽지만 드웨인가가 이성을 잃을 만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무리 늑대가 눈이 돌아가 주변을 전부 물어뜯을 기세로 날뛴다지만 눈앞에 똑같이 눈이 돌아간, 그것도 호랑이가 나타난다면 주저할 수밖에 없죠.”
지크가 윌위스의 눈을 쳐다봤다. 마치 그의 심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려는 듯.
“이성, 남아 있으십니까?”
“…끊어지기 일보직전이오.”
눈앞에 범인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목을 꺾어버릴 것 같은 기세로 윌위스가 말했다.
“그럼 어려울 것 없겠군요.”
“하지만 난 마탑주요. 내 개인적인 감정을 토대로 일을 진행할 순 없소.”
지크는 윌위스를 살폈다.
정말로 본심인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그의 얼굴에선 엘레나를 향한 걱정과 마탑주의 의무라는 감정밖엔 읽어낼 수 없었다.
“어차피 저희의 일도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일일 텐데요. 하지만 마탑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죠. 엘레나의 아버님께서는 저희한테 상당히 호의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도 눈이 돌아가신 분 중 하나일 테죠.”
“아들놈을 방패막이로 삼으라는 것이오?”
“적어도 그분은 반드시 중립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적으니까요.”
이미 올랜드가 자신들을 비호했다는 정보를 지크는 알고 있었다. 세간에 소문이 파다했기에 정보를 얻는데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도망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믿어달란 말밖에는 해드릴 수가 없군요.”
윌위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써보겠소.”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지크는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 *
“자유다!”
오랜만에 쐬는 바깥바람에 지크는 양팔을 쭉 펴고 경쾌하게 말했다. 라일라도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상당히 기분이 좋은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한스나 스녹을 불러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지.”
지크가 종들에게 내린 명령은 한 가지가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 몇 가지를 예측해서 상황마다 다른 대응법을 알려줬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누군가 엘레나를 납치하려 한 걸 거야. 그리고 명령대로 녀석들이 낚아 챈 거지.”
“정말 그 둘이 엘레나를 보호하고 있는 게 맞겠지?”
진짜 엄한 곳에 납치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라일라는 걱정하고 있었다.
“마탑주한테 들었잖아. 집 안에 납치 흔적이 있고 성 외곽에 로브를 쓴 정체불명의 무리의 시체가 있었다고. 그리고 성벽 너머로 빛이 번쩍이는 걸 목격한 사람도 있고. 에스텔레이드의 빛이었겠지.”
“그럼 다행이지만.”
“녀석들을 믿어 봐. 분명 잘 해냈을 테니까.”
여전한 종들에 대한 신뢰감이었다.
지크가 큭큭댔다.
“엘레나를 납치하려던 이유는 아마 드웨인가와 재위크가의 갈등을 한층 더 격화시킬 생각이었을 거야. 그런데 정작 엘레나가 누군지 모를 존재에게 역으로 납치당해 버렸네?”
지크의 본성을 아는 자가 본다면 모골이 송연해질 그런 웃음.
라일라도 지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아마 흑막은 지금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을 거야. 결과는 자기 뜻대로 됐지만 정작 엘레나 드웨인이 자기 손아귀에 없거든. 거기다 자신들이 보낸 납치범들은 전멸해 버렸고. 아, 누군지 모르지만 지금 녀석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가능만 하다면 천금을 낼 용의도 있었다.
지크는 계속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라일라는 지크에게서 한 걸음 더 떨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지크는 숙소에 들어섰다. 지크와 라일라가 잡혀갔다고 해도 그들의 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한스가 계속 돈을 내며 숙소를 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돈이 들었지만 지크 일행에게 그 정도 씀씀이는 별 타격이 되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한스가 둘에게 깊이 인사를 하며 반겼다.
“오냐.”
간단하게 대답해주고 지크는 손을 내밀었다. 한스가 급히 윈두르와 지크의 소지품을 내밀었다.
지크는 윈두르를 쥐고 가볍게 휘둘렀다. 얼마 못 봤다고 이 무게감이 그립게 느껴졌다.
“이놈이 뭐 성깔 부린 거 없냐?”
에스텔레이드처럼 주인을 가리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의지를 가지고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를 제외하고는 주인인 지크의 말조차 무시하는 검이다.
일단 한스가 윈두르를 들 수 있는 건 봤지만 다른 면에서 한스를 골탕 먹였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아뇨, 제가 별달리 만지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잠시 옮기거나 손질을 할 때도 별 다른 일은 없었고요.”
“그래?”
에스텔레이드처럼 주인을 가리진 않는 것일까. 하지만 윈두르가 지금 상황을 필요한 상황이라고 인식해서 잠시간 성깔을 부리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다음에 한번 확인해야지.’
지크는 윈두르를 등에 맸다. 언제나의 무게가 등에 얹어지자 묘한 충족감이 샘솟았다.
라일라도 한스에게 자신의 소지품을 받았다. 그녀도 지팡이를 매만지는 것이 항상 갖고 다니던 것을 손에서 놓으니 어색했던 모양이다.
지크는 의자 하나를 끌어도 한스의 앞에 앉았다
“보고해 봐.”
“일단 드웨인 양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라일라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 아이 다치진 않았니?”
“몸을 묶은 밧줄에 쓸려 팔에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건강합니다. 부상은 엘레나 양을 처음 납치한 놈들 때문에 생겼습니다.”
엘레나가 다쳤다는 소리에 라일라의 표정이 조금 험악해지자 한스는 얼른 덧붙였다.
“누구였냐?”
지크가 물었다. 한스는 이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로브 놈들이었습니다.”
“역시.”
도시 밖에 시체로 발견된 놈들이 로브를 입고 있었다는 소리를 듣고 예상은 했었다.
“지크 님의 말씀에 따라 저녁에 드웨인 저택을 감시하고 있는데 드웨인 양을 납치한 녀석이 저택을 빠져나오더군요. 몰래 뒤를 밟아 성 바깥에서 스녹과 같이 전부 쓰러뜨렸습니다.”
“로브 놈들이 확실하지?”
“지금껏 만나 본 녀석들과 움직임이 비슷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놈들 중 한 명이 괴물처럼 변해 덤벼들었습니다.”
모를 리가 없다. 로브 놈들의 우두머리가 사용하던 기술(?)이 아니던가.
“놓친 놈은?”
“적어도 같이 움직이던 놈들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지크가 피식 웃었다.
“많이 컸군. 예전엔 로브 놈 하나에도 쩔쩔 매던 녀석이 말이야.”
“지크 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한스도 살짝 웃으며 대꾸한다. 그가 예전 지크의 말에 눈치 보며 움직이던, 억지로 끌고 온 하인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로 놀라운 발전이었다.
지크도 한스의 성장을 흡족해 했다. 하지만 티내지 않고 보고를 계속하라며 지크가 턱짓을 했다.
“놈들을 고문해 정보를 빼낼까도 생각을 했지만 녀석들 상대로는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했다. 녀석들은 고문으로는 입을 열지 않을 놈들이야.”
“드웨인 양은 정해둔 곳으로 옮겼습니다. 쉽게 발견되진 않을 겁니다.”
“순순히 따라갔냐?”
“상당히 많이 저항해서 데려가는데 고생 좀 했습니다.”
“그렇겠지.”
지금은 되는 일이 없어서 기가 죽어 살지만 원래는 한 성질 하는 게 엘레나 드웨인이다.
본인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처럼 아주 불꽃같은 사람으로 지크는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스녹이 같이 있습니다.”
“녀석, 고생깨나 하겠군.”
지크는 스녹을 생각하며 혀를 찼다.
* * *
그 시각.
“일단 진정해, 엘레나!”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어느 장소에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엘레나와 스녹이 대치하고 있었다.
스녹이 두 손으로 엘레나를 진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스녹이 반걸음 정도 다가오자 엘레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다가오지 마! 진짜 찌를 거야!”
그녀의 손에 들린 은빛의 포크가 반짝인다.
그 모습을 보고, 엘레나의 팔에 꽉 끼어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인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비명을 질렀다.
쿠우우우우우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