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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47화 (247/628)

제247화

엘레나는 몸에 힘을 줬다.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다리를 바둥거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몸을 묶은 밧줄은 그녀의 힘으로 풀 수 있을 만큼 약하지 않았고 정체불명의 인간도 엘레나의 버둥거림에 그녀를 놓칠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으읍! 으으으읍!”

비명을 질러봤다. 하지만 입을 꽉 누르고 있는 재갈이 그녀의 목소리를 저지했다.

그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다. 엘레나를 절망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 자신에게도 마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붙들고 계속해서 마법 공부를 할 정도로 그녀의 인내와 끈기는 대단하다.

지치지도 않고 그녀는 반항했다. 밧줄에 긁힌 팔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엘레나의 반항이 통한 것일까. 그녀를 들쳐 메고 건물 위를 껑충껑충 달리던 납치범이 몸을 세웠다.

“으으으으읍!”

혹시라도 신음을 들을 사람이 있을까 미약한 희망을 담아 엘레나는 목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폈다.

야심한 시각이라 시야가 밝지는 않다. 하지만 달빛에 의해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엘레나의 절망이 조금 더 깊어졌다. 아무리 봐도 인적이 없다. 주변 건물도 아주 허름한 것이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말로 혹시라도 사람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계속 신음을 흘렸다. 몸을 버둥거렸다.

그 때였다. 어둠 저 편에서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그건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다.

엘레나의 안색이 환해졌다. 버둥거림이 심해지고 신음소리가 계속 됐다.

하지만 엘레나의 희망은 너무 빨랐다.

“왔나. 물건은?”

어둠 속에서 나온, 자신을 납치한 자와 똑같은 로브를 입고 있는 자를 본 엘레나가 다시 한 번 절망했다.

“여기 있다.”

납치범이 엘레나를 가리켰다. 동료 로브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등을 돌렸다.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방금 등장한 동료 로브가 앞장을 섰다. 하지만 합류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들의 주변을 똑같은 로브를 쓴 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리 끈기 있는 엘레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힘을 쥐어짤 순 없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벌벌 떨며 눈을 감았다.

로브 무리는 미리 준비해놓은 듯 조금 열려 있는 성문을 통해 도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도시에서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이제는 정말로 조금 남아있는 희망조차 사라진 것 같다고 엘레나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큭!”

갑자기 엘레나를 둘러메고 있던 자가 휘청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엘레나를 잡고 있는 팔의 힘은 풀지 않았다. 무척이나 끈덕진 자.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콰득!

“크악!”

고통 소리와 함께 엘레나를 옥죄던 압력이 사라졌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떨어졌다.

“읍!”

몸이 묶인 터라 제대로 방어 자세를 취하지도 못한다. 그대로 있다가는 지면에 얼굴이 부딪쳐 큰 부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엘레나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을 때였다.

사락!

부드러운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받아드는 게 느껴졌다.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모래?’

무척이나 고운 입자의 모래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번쩍!

빛이 솟았다. 엘레나가 다시 눈을 감았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갑작스러운 섬광에 노출된 터라 일순간 시야가 막힌 탓이다.

“크악!”

“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녀가 어떻게든 시각을 회복하려고 눈을 깜박일 때였다.

“당분간은 눈을 감고 있는 게 좋아.”

입에서 답답함이 사라지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겨우 해방된 입으로 엘레나는 목소리의 주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스녹?”

안면을 자주 익히며 자연스레 말을 놓았기에 경칭 없이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디 심각하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네. 다행이야.”

쿠!

손에 닿는 꼬물거리는 부드러운 촉감이 익숙하다. 같이 들린 귀여운 울음소리는 분명 노웸의 것이었다.

“정말로 스녹이야?”

“맞아.”

“대체 어떻….”

“대화는 나중에 하자.”

스녹이 엘레나를 안아 올리더니 높이 뛰었다.

퍼억!

그가 있던 곳에 시린 단검이 꽂혀들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엘레나도 슬슬 시각이 회복됐다. 눈물이 잔뜩 들어찬 눈을 깜박이며 상황을 살폈다.

눈앞에서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마도 잠시간 엘레나의 시각을 빼앗은 빛은 저것임이 분명하다.

그녀를 납치하던 자들이 빛에 휩싸여 마치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한스 씨?’

번쩍번쩍 터지는 빛이 로브를 쓰러뜨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비쳤다.

엘레나도 한스를 몇 번 정도 본 적이 있어 그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빛은 한스가 쥐고 있는 검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새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오르는 빛은 로브 무리를 말 그대로 유린했다.

“앗!”

엘레나가 소리를 질렀다. 그물처럼 주변을 막아선 빛을 뚫고 로브 몇몇이 엘레나와 스녹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목표는 엘레나가 분명했다. 하지만 한스는 그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면의 적에게만 계속 빛의 폭격을 날려댔다.

당장이라도 바로 앞까지 달려온 적들이 손을 뻗을 것 같았다.

툭!

엘레나를 옆으로 내려놓은 스녹이 발로 땅을 두드렸다.

콰아아앙!

전면의 지면이 폭발했다. 비산하는 모래와 자갈들이 돌진하는 자들을 두들겼다. 온몸에 바람구멍이 난 그들이 풀썩 쓰러졌다.

엘레나가 놀라 스녹을 쳐다봤다.

‘설마 이걸 스녹이 했어?’

환수의 계약자라고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의 위력의 기술을 그토록 쉽게 사용하다니.

그런 와중에도 한스는 확실하게 로브들의 목을 날렸다.

-크아아아아아!

갑자기 괴성이 들렸다. 로브들 중 한 명의 상태가 이상했다. 펑퍼짐하던 로브가 갑자기 바짝 조여졌다.

몸이 커지며 로브가 뜯어진다. 얼굴을 가리던 후드까지 벗겨지고 얼굴이 드러났다.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오려는 걸 엘레나는 꿀꺽 삼켰다. 그건 그만큼 끔찍한 모습이었다.

몸도 인간보다 훨씬 커진 그것은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것이 한스에게 달려든다.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엘레나가 스녹에게 고개를 돌렸다.

엘레나는 놀랐다. 그녀의 걱정이 일순 무안해질 정도로 스녹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여간 저놈들은 하는 짓이 다 똑같다니까.”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어?’

콰앙!

거센 충돌음에 엘레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한스의 빛나는 검이 괴물의 공격을 막아서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것이 조금 힘들어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밀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쾅! 쾅! 쾅!

한스와 괴물의 충돌이 계속됐다. 그 엄청난 싸움에 엘레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고위 마법사의 마법 시연을 본 적이 있고, 마법 결투도 종종 봤지만 이런 목숨 걸고 하는 수준 높은 전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노웸.”

쿠우!

스녹의 부름과 노웸의 화답. 그 뒤 주변 대지가 일어섰다.

콰아아아!

괴물과 협력하여 한스를 공격하던 로브들의 보폭이 어지러워지거나 부상을 입었다. 심한 자는 솟아오른 대지에 몸이 꿰뚫려 즉사하는 자도 있었다.

엘레나는 침을 삼켰다. 지크와 라일라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한스와 스녹까지 이럴 줄이야.

“어이구. 도망가려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로브들이 슬슬 물러나려는 낌새가 보였다. 물론 한스와 스녹은 그들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스녹이 손을 움직였다.

그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땅이 일어섰다. 사람 키의 세네 배까지 솟아오른 그것들은 튼튼한 벽을 만들었다.

로브들이 당황했다. 넘을 수 없는 높이는 아니었지만 벽을 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짧은 틈이 생사를 갈랐다.

콰득!

-커어억!

괴물의 가슴에 에스텔레이드가 꽂혀들었다. 흘러나오는 피를 빛으로 태우며 에스텔레이드가 괴물을 난도질했다.

최고 전력이었던 괴물이 쓰러지자 다른 로브들이 한스와 스녹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지막에는 일부가 결사대를 만들어 다른 이들을 탈출시키려 했지만 한스와 스녹, 그리고 노웸까지 합세한 능숙한 포위에 결국 단 한 명도 스녹이 만든 벽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혹시나 살아있는 놈이 있나 확인사살까지 끝낸 후, 한스와 스녹은 엘레나에게 다가왔다. 엘레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괜찮아?”

스녹이 물었다. 어깨에서 노웸이 킁킁댔다.

“아, 어, 괜찮아.”

“충격이 심하신가보군요.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드웨인 양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움직여야겠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하긴, 납치범들의 동료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저희 저택으로 가요. 이래봬도 마탑주의 손녀니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안 됩니다.”

한스의 강한 거절에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 저택으로 가는 길에 납치범들이 숨어있을 수 있겠군요. 그리고 제가 납치당한 것도 집이었으니. 할아버지가 없는 저택은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마탑이나 아버지의 저택으로….”

“그쪽도 안 됩니다.”

“아니면 제가 아는 할아버지의 지인 분이 있어요. 그분께 가면 분명 도움이….”

한스가 고개를 젓는 걸 보고 엘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잔 거죠?”

“저희가 마련해 놓은 거처가 있습니다. 그 곳으로 가시죠.”

“…실례일지 모르지만 그 곳이 제가 언급한 곳보다 안전한 곳이라곤 믿을 수가 없어요.”

“죄송하지만 드웨인 양이 언급한 곳이 얼마나 안전한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묘하다. 엘레나가 스녹을 쳐다봤다. 그는 짐짓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노웸도 그녀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어, 여러분들은 절 구해주러 온 거 아니에…요?”

한스는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말했다.

“저희는 드웨인 양을 납치하러 왔습니다.”

한스가 쥔 에스텔레이드가 반짝 빛난 것처럼 보였다.

* * *

지크가 심문관에게 한껏 이죽댄 후, 더 이상의 심문은 없었다. 정말로 조금 더 강한 심문을 할 권한을 얻은 후 본격적으로 움직일 셈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에 대해 지크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당면한 가장 큰 적은 무료함이었다.

마력을 해방하고 간단한 신체단련을 하며 어떻게든 무료함이란 적과 필사의 투쟁을 벌이던 지크가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두꺼운 창살로 막혀있는 창문 너머로 약간의 소란과 어수선함이 느껴졌다.

‘됐군.’

지크는 빙긋 웃었다. 한스와 스녹이 자신이 내린 명령을 충실히 실행한 게 틀림없었다.

‘여기서도 슬슬 나가야지.’

편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직접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편이 더 좋았다.

지크는 귀를 열었다. 그리고 주변에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거 들었어? 마탑주의 손녀가 사라졌대.

마침 지크의 문 밖에 있는 감시병들의 대화다. 지크는 문을 두드렸다.

“뭐냐!”

문 너머로 감시병 중 한 명이 물었다.

“방금 얘기를 언뜻 들어서 말이요. 엘레나 드웨인이 사라졌다고?”

지크는 심각한 목소리로, 하지만 얼굴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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