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지크와 라일라가 갇힌 곳은 조금 외진 곳에 있는 저택이었다. 드웨인 저택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곳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좋은 저택이었다.
지크와 라일라는 서로 다른 방에 갇혔다. 나름 가구들이 충실하게 갖춰있는 방이었기에 무료함을 빼면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간간이 받는 심문은 조금 짜증이 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거길 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떡 벌어진 어깨와 볼을 길게 가로질러 턱까지 이어진 흉터. 야생 멧돼지의 털같이 거친 머리카락과 굵은 송충이 같은 눈썹까지.
아이는 물론이고 담이 제법 큰 성인이라도 기가 죽어 움츠러들 것 같은 사내가 지크를 윽박질렀다.
척 봐도 험상궂은 외모로 상대의 기를 죽여 원하는 정보를 빼내려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겐 아니, 어느 정도 담이나 배짱이 있는 자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만한 그 방법이 지크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산책.”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지크는 지금껏 계속 반복했던 대답을 다시 한번 내놨다. 사내의 눈썹이 씰룩였다.
“…지금 장난해?”
“장난이라니. 굉장히 유감인 판단인 걸? 나는 한 치의 사심도 없이 협력을 해주고 있는데 말이야.”
“산책을 갑자기 도시 밖의 인적 드문 숲속으로 간다고? 그 말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거 참 머리 굳은 놈일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성격을 갖고 있어.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향적인 사람이 있고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골에서의 평범한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그러니까 너희들은 인적 드문 숲 속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냐?”
사내가 이죽이자 지크는 웃어주며 말했다.
“아니. 그냥 그 때 기분이 그랬어.”
콰앙!
사내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테이블이 흔들리며 큰 소리가 났다. 표면에 작은 금이 갈 정도였다. 지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워라. 나중에 테이블을 칠 때는 뭔가 신호를 줘. 먼저 귀를 막고 싶으니까.”
“…아주 자신감이 썩어 넘치는구나.”
“그럼! 나한테 자신감을 빼면 내 존재 의의에 대부분이 사라지지!”
와락!
사내가 지크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의외로 지크는 선선히 그에게 끌려갔다.
“어이, 빌어먹을 놈. 똑똑히 쳐 들어.”
사내의 입 냄새가 그대로 나 지크는 코를 쥐어막았다. 사내의 표정이 더욱 험상굳게 변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폭력은 없었다. 그저 으르렁거리듯 내뱉을 뿐.
“드웨인가의 아가씨를 믿고 이렇게 뻗대고 있다면 꿈 깨. 지금 너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일방적인 피해자인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것 참, 마탑 녀석들은 썩어빠졌군그래.”
지크의 야유에도 사내의 태도는 변함 없었다.
“그걸 대체 누가 믿지? 상대는 마탑의 명문가야. 그것도 후계자가 폐인 상태에 이르러 눈이 뒤집혀 있는 상태지. 그에 반해 너희는 그저 떠돌이일 뿐. 실력은 있는 것 같지만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해.”
“그래서 우리를 희생양 삼을 거라고?”
사내가 히죽 웃었다.
“사건의 시작을 누가 했든 상관없어. 정말로 너희 주장대로 재위크가의 도련님이 너희를 습격했다 해도 너희가 처벌 받는 건 확실해. 그러니까 고문을 하긴 왜 해. 그것만 아니었으면 조금 더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마탑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가?”
“모르지. 재위크가처럼 너희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너희에게 동정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 한 가지 중요한 건, 너희 같은 떠돌이를 구하기 위해 눈 돌아간 재위크가와 맞붙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맹수는 상대가 누구든 자기가 얼마나 상처를 입든 일단 물고 볼 테니까.”
“그럼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어? 그냥 고문이든 조작이든 해서 사형대로 옮기면 그만 아닌가?”
사내의 인상이 조금 일그러졌다. 누가 봐도 마음 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다. 지크가 피식 웃었다.
“어이구, 그래도 선생과 그 친우라고 엘레나양이 노력해주고 있는 모양이군. 아니, 그 아버지가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사내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곤란해 하지도 않았다.
“시간 문제일 뿐이야. 언제까지 그들이 너희를 보호할 순 없어. 게다가 너희를 보호하는 건 딱 올랜드 드웨인 한 명뿐이다. 마탑주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을 거야.”
“그래서 뭘 요구하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처형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서로 편하자는 거지.”
사내가 비열하게 웃었다.
“어차피 이대로 버텨봤자 너희를 기다리는 건 끔찍한 고문뿐이야. 그럴 바엔 차라리 고통 없이 가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군. 나름 일리 있는 말이야.”
지크가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사내의 얼굴이 언뜻 밝아졌다. 그러나 지크의 다음 말에 사내의 밝아졌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정직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거짓말을 하면 혓바닥에 가시가 돋아.”
지크가 낼름 혀를 내밀어 과장되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정말로 본의 아니게 네 제안은 받아들이지 못 할 것 같아. 하지만 너의 그 친절한 마음은 꼭 마음에 쟁여둘게.”
으득!
사내가 이를 갈더니 지크를 밀쳤다. 중심을 잃은 듯 뒤로 넘어지던 지크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아까 전처럼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강단이 있는 녀석이로군. 하긴, 그러니 정보를 캐낸다며 마윈 재위크를 고문했겠지.”
“솔직히 반성하고 있어. 얼마나 찌질했는지 묻지도 않은 걸 나불대지 뭐야. 그런 녀석이 거물인 척 잘난 체 하고 다니다니. 마탑이란 곳도 장래가 참 걱정이야.”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마탑의 장래가 어떻게 되든 넌 절대로 보지 못할 테니까.”
사내가 등을 돌려 문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끝이야? 생각 외로 별 것 없었네. 다음에도 놀러 와. 너랑 노는 거 의외로 재미있었으니까.”
“다음에 올 때는….”
손잡이에 손을 걸친 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섬뜩한 눈빛이 지크를 노려봤다.
“아마 너를 비호하는 세력이 없어진 뒤일 거다. 그때가 기다려지는군.”
쿵!
방문이 닫혔다. 잠금쇠가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쿵쿵거리는 사내의 발소리가 저 멀리 사라져갔다.
“아, 잘 놀았다!”
지크는 뒷머리에 깍지를 끼고 다시 등받이에 기대 늘어졌다.
‘갇혀 있을 때는 간수나 심문관 놀리는 것만큼 쏠쏠한 게 없단 말이야.’
뭔가 무게를 잔뜩 잡고 지크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얻으려 노력을 한 사내에게는 환장하게도, 지금의 심문은 지크가 무료함을 풀기 위한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필요한 일이긴 하다면 지루한 게 조금 흠이란 말이야.’
지크는 입을 쩌억 벌려 하품을 했다.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팔을 축 늘어뜨렸다. 누가 봐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한량이었다.
‘라일라는 뭘 하고 있으려나.’
지크는 귀에 마력을 둘렀다. 벽 너머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크와 라일라가 갇힌 방은 떨어져 있었지만 지크에게 장애가 되지 못했다.
‘저긴 아직 심문이 안 끝난 모양이네.’
하지만 지크와 마찬가지로 심문이 잘 이뤄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심문관이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상황이 파악된 지크는 킬킬댔다.
‘개무시를 하고 있군.’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잠시 심문관이 조금 더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집안이 조금 울렸다. 뭔가가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지크는 빵 터졌다.
‘라일라 이 녀석! 한 건 했네!’
라일라의 태도에 화가 난 심문관이 라일라에게 달려들고 라일라가 그대로 심문관을 바닥에 메다꽂은 게 분명했다. 더러운 비명 소리가 심문관의 고통이 보통이 아님을 알렸다.
방문이 열리고 기척 하나가 허둥지둥 나간다. 지크는 한참을 웃었다.
‘이야, 재미있는 거 하나 구경했네.’
이걸 구경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즐거웠으니 세세한 건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즐길 거리는 그게 끝이었다.
자신을 심문하던 심문관도 나갔고 라일라를 심문하던 심문관도 도망갔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지크는 의자의 다리 중 하나만을 바닥에 딛고 요령 좋게 균형을 잡은 후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도 당분간은 다시 무료하게 지내야겠군.’
하지만 지크의 추측이 맞다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자, 얼른 움직여보라고. 드웨인가와 재위크가의 갈등을 더 깊게 해야지, 친구들.’
얼마 안 있어 흑막이 움직일 것을 강하게 확신하며 지크는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 일어났다.
* * *
지크와 라일라가 잡혀간 후, 엘레나의 기분은 무척이나 우울했다. 자신 때문에 그들이 잡혀갔다고 여긴 것이다.
게다가 힘을 써줄 거라고 믿고 있던 할아버지조차 이 일에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녀의 마음은 더욱 타들어갔다.
스녹의 발걸음도 끊어졌다. 최근 그의 계약 환수인 노웸이 엘레나의 마법 공부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이런 판국에 계속 드웨인 저택에 드나드는 것도 웃겼다.
설령 그가 저택에 찾아온다 하더라도 엘레나는 죄책감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괜찮을 거야.’
그런 실낱 같은 희망에 잠겨 그녀는 쭉 저택에 머물렀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로 집안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안 그래도 넓은 저택이 마치 텅 비어 유령 저택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간간이 들르는 그녀의 아버지가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될 뿐이었다.
오늘도 식욕이 없어 식기만 몇 번 달그락거리다 일어난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라일라가 사준 마법서를 몇 번 뒤적이다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평소에 그렇게 즐거웠던 마법서의 글자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 밖을 바라보자 밤 하늘에 뜬 달이 보였다.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마법서를 덮었다.
침대에 걸터 앉아 밤하늘을 쳐다봤다.
‘그 때는 재미있었는데.’
얼마 전, 마법 공부가 조금 늦게 끝났을 때가 있었다.
하늘에 검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을 때, 그녀는 라일라, 지크, 스녹, 노웸과 함께 밤하늘을 쳐다봤었다.
라일라는 언제나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마법과 별자리에 관련된 신화를 들려줬고 지크는 간간이 끼어들며 언제나의 웃음소리를 흘렸다.
스녹은 엘레나와 같이 라일라의 얘기를 들었고 노웸은 엘레나의 무릎에 늘어져 잠에 빠졌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거기 있을 것 같은, 즐거웠던 기억. 하지만 지금 그 기억은 마치 먼 옛날에나 보았던 환상 같았다.
그래. 자신의 할아버지도, 아빠도, 엄마도 있던, 자신의 마력이 곧 해방될 거라 믿었던 어릴 적의 바로 그때처럼.
살짝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엘레나가 침대에 누우려 할 때였다.
‘…어?’
그녀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