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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43화 (243/628)

제243화

마윈 재위크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명문가의 후계자이자 마탑의 수재로서 완벽하고 탄탄한 길만을 달려왔다.

또래들이 하나 둘 마법의 험난함에 막혀 미끄러질 때도 그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동년배들을 멀찌감치 따돌린 그의 실력은 어느덧 먼저 마도의 길을 걷던 이들마저 따라잡는 데에 성공했다.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싹텄다.

거기서 멈췄으면 괜찮았을 것을.

그의 성격은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에 이르렀다.

보통은 그 오만함이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윈 재위크의 뛰어난 재능과 그의 가문은 사람들의 힐난마저 무시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분명 그를 싫어하고 백안시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에게 아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전부 자신을 질투하는 머저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때문에 마윈 재위크는 오만한 성정을 쭉 유지해 왔다.

얼마 전까지는.

엘레나 드웨인을 가르치나는 마법사가 있다는 소리가 마탑에 돌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로 밝혀졌다.

그걸 아는 순간 마윈 재위크는 비집어져 나오는 비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엘레나 드웨인.

자신보다 더 대단한 가문에 자신보다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천재.

하지만 마법사에게는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마력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제는 그 대단한 마탑주에게 마법 공부마저 금지당한 녀석.

어렸을 때 그녀를 질투했었던 마윈에게 있어 그녀의 몰락은 무척이나 즐거운 사건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녀를 보게 될 때가 있었다.

물론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그녀와 자신은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그저 멀리서 봤을 뿐이다.

그녀는 패배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것도 한두 번이다. 그의 뇌리에서 엘레나의 존재는 슬슬 흐려졌다.

엘레나의 선생에 대해 들은 건 그때였다.

마탑주의 손녀가 떠돌이를 선생으로 들이다니. 처음엔 비웃음밖에 나지 않았지만 점점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마력도 없는 주제에 아직도 마법사가 되겠다는 헛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래서 시비를 걸었다. 엘레나 드웨인은 물론, 감히 젊은 나이에 선생이라고 주장하는, 주제 파악 못 하는 떠돌이 마법사에게도 한소리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그날, 완전히 박살났다.

감히 자신에게 도전장을 던진 두 인간.

엘레나를 가르친다는, 주제 파악 못 하는 떠돌이 마법사와 그 마법사의 친우인, 자신을 모욕한 머리 쓰는 법조차 모르는 칼질하는 놈.

철저하게 마법이라는 학문의 고귀함과 어려움을 가르쳐 줄 셈이었다.

하지만 결투에서 진 것은 그였다. 그것도 철저하게 농락당한 끝에.

목숨을 잃진 않았지만 그 결투에서 그는 어쩌면 목숨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는지도 몰랐다.

지금껏 마탑에서 한껏 뽐냈던 마법은 라일라의 마법들에 철저하게 터져나갔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 주먹을 쥐고 덤벼봤지만 오히려 두들겨 맞았다.

게다가 무식한 칼질하는 놈에게 목숨까지 구원받았다.

그 이후 그에게는 경멸과 비웃음이 쏟아졌다.

대놓고 비웃는 인간들은 그리 없었지만, 자신에게 보내지는 시선을 마윈이 모를 리 없었다.

그가 항상 자신보다 밑에 있는 패배자들에게 보내던 시선이었으니까.

게다가 몇몇은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기도 했다. 가문과 재능이 그와 엇비슷한 자들이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순탄하게 마도의 길을 걸어 장래에는 마탑주가 될 자신을 감히 욕보이다니. 그것도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음습한 원한을 원료로 삼아 그는 복수의 칼을 갈았다.

하지만 쉽게 복수를 할 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었지만 라일라를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가 절절이 원한을 곱씹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정보를 줬다.

그때의 결투는 상대가 속임수를 쓴 것이었다고.

마윈은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속임수 같은 게 없다면 자기 또래로 보이는 여자에게 질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왜 처음부터 속임수를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상대가 속임수를 썼다는 걸 알았으니 당연히 복수를 해야 했다. 당장이라도 결투장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머리로는 열심히 생각을 하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과 라일라가 마지막에 보였던 마법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속임수에 당했으니 또 다른 속임수가 없을까 걱정하는 건 당연해.’

그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대한 변명을 그렇게 했다.

결투로 복수하는 건 그만뒀다. 하지만 복수를 포기하진 않았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한 끝에 그는 하나의 생각에 다다랐다.

그건 무척이나 간단한 방법이었다.

‘습격하자.’

감히 신성한 결투에서 속임수를 쓴 자들이다. 굳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무리 엘레나 드웨인에게 찰싹 붙어 가르친다 해도 백날 천날 붙어 있진 않을 거야. 녀석들이 쉬는 날 빈틈을 노리면 돼.’

그는 천천히 준비를 시작했다.

결투에서 상대방이 속임수를 썼다고 알려준 자에게 부탁해 사람을 모았다. 아버지를 따르는 학파의 인간 중에서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몇몇을 포섭했다.

준비가 갖춰지자 남은 건 습격 시점을 정하는 것이었다.

대체 사기꾼 주제에 뭘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인지, 사기꾼은 엘레나 드웨인에게 찰싹 붙어서 기회가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끈기는 결국 승리했다. 사기꾼들이 드디어 교육을 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무슨 생각인지 도시를 떠나 근방에 있는 숲에 들어갔다.

움직인 것도 자신에게 모욕을 준 딱 두 사람뿐.

말 그대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또 이런 완벽한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는 부랴부랴 자신이 준비해둔 병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둘을 포위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겼다!’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남은 건 저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 뿐이다.

깔끔하게 죽여도 좋고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도 좋으며 살려두고 수치와 굴욕을 주는 것도 좋다. 그는 기분 좋은 상상에 잠겨들었다.

물론 중간에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예상외의 사태가 나긴 했지만 어차피 로브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입고 있었던 것뿐이니 별 상관없었다.

그저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자신을 모욕하는 놈을 무릎 꿇리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분명 사기꾼이 분명한, 분명해야 할 여자가 저런 압도적인 마력을 뿜어내는 이유는.

“저 녀석들을 죽여!”

마윈이 급하게 소리쳤다. 고용한 용병들이 달려들고 데리고 온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웠다.

그들도 라일라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걸 깨달았는지 장난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필사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미 라일라의 마법은 완성되어 있었다.

무영창이나 영창 단축도 아닌데 엄청나게 빨랐다.

“윌라! 필!”

라일라의 머리 위로 물방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물덩이를 만든다. 소용돌이치던 물덩이가 사방으로 물방울을 내뱉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퍽! 퍽! 퍽! 퍽!

“커헉!”

“크악!”

“아악!”

고작해야 손톱만 한 크기의 물방울이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검으로 무른 진흙을 헤집는 것처럼 인체를 꿰뚫었다.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조차 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퍼엉! 퍼엉!

수박이 깨지듯 머리에 물방울을 맞은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그들은 단말마조차 내지 못했다.

용병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물방울을 요격해 공격을 막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무 뒤에 숨는 자도 있었다. 오히려 칼을 던져 라일라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퍼퍼퍼퍽!

“쿨럭!”

요격을 택한 용병은 끊임없이 날아오는 물방울의 숫자에 밀려온 몸에 바람구멍이 났다.

퍼억!

“끄륵!”

나무 뒤에 숨은 자는 나무를 통째로 꿰뚫은 물방울에 복부가 꿰뚫렸다.

퍼퍼퍽!

“커흑!”

칼을 던진 자는 다른 자들과 같이 몸뚱이가 벌집이 됐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던진 칼이 라일라의 몸에 꽂히는 걸 봐야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그의 필사의 각오는 고작해야 라일라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는 것으로 박살 났다.

챙!

무영창과 이중영창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바람의 칼날이 라일라에게 날아오던 칼날을 너무도 손쉽게 요격했다.

“…젠…!”

욕설을 끝까지 내뱉지도 못하고 그의 숨이 끊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사정거리도 길었다.

지크와 라일라를 포위한 습격자들을 전부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었다. 당연히 후방에 있는 마법사들에게도 공격이 닿았다.

“크악!”

“어억!”

후방에 있어 직접적인 전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영창을 하고 있던 그들이 마법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뛰어난 육체적인 능력도 없고 라일라처럼 무영창으로 마법을 구사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몸은 눈 깜짝할 새에 걸레짝처럼 변했다.

하지만 살아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헉! 헉!”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물방울들을 요격하던 한 용병의 앞에 갑자기 지크가 나타났다.

용병이 놀라 눈을 부릅떴지만 지크는 그의 상황은 알 바가 아니었다.

“넌 뭔가를 좀 알고 있을 것 같네.”

퍼억!

지크의 손이 그 용병의 머리를 후려쳤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는 눈을 까뒤집어 기절했다. 넘어지는 그의 육체를 둘러멘 지크가 이동했다.

“너도 쓸모 있을 것 같네.”

퍼억!

다른 용병을 후려쳐 먼저 업은 용병 놈의 위에 싣는다.

그 와중에도 물방울은 계속 쏟아졌다.

“엇차!”

지크가 손을 휘저었다. 마력이 그의 주변으로 몰아쳤다.

퍼엉!

용병과 마술사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있는 물방울들이 너무도 쉽게 터져나갔다.

이제는 평범한 물이 된 그것들이 쏟아져 내린다. 잠시 안전 공간이 된 그곳을 지나 지크는 라일라가 있는 곳으로 갔다.

빈틈없이 사거리 안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던 라일라의 마법도 역시 시전자인 라일라가 있는 곳에는 물방울을 흩뿌리지 않고 있었다.

지크는 라일라의 발 언저리에 대충 용병들을 던져 놓았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있는 마법사들을 몇 구해왔다.

아까처럼 라일라의 발치에 던져놓은 후 또 움직인다.

그렇게 몇 번 왔다 갔다 했을까.

‘이 정도면 되겠지?’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지고 올 놈을 향해 움직였다.

“여!”

공포와 절망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마윈의 앞에 지크가 나타났다. 마윈과는 전혀 다르게 태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잘 자라.”

퍼억!

이번에도 똑같이 뒤통수에 한 대. 마윈이 눈을 까뒤집었다. 지크는 그를 들쳐 메고 라일라의 곁으로 돌아왔다.

지크의 움직임은 그걸로 끝이었다. 마윈마저 땅에 내려놓은 후 그는 팔짱을 끼고 전장을 살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었고 나머지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지크는 이번엔 위를 올려다봤다.

물덩이의 크기가 상당히 줄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분 정도는 충분히 물방울을 토해낼 것이다.

“곧 끝나겠군.”

그는 무료하게 하품을 하며 팔짱을 끼었다.

지크의 말처럼 얼마 안 있어 허공의 물덩이가 사리지며 마법이 끝났다.

남은 건 끔찍한 고깃덩이들과 물과 뒤섞여 주변 땅에 질척하게 스며드는 피. 그리고 완전히 초토화된 숲의 모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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