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지크가 습격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걷던 인적 없는 곳은 스누위크 바깥에 있는 한적한 숲이었다.
도시 근처 평야에 생성된 그 숲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도시 아이들이 놀다가 길을 잃는 일이 왕왕 있을 정도로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사람의 인적은 드물었다.
지크로서는 무척 좋은 환경이다. 습격자들을 보기 좋게 두들겨도 꽥꽥 될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니까.
‘저놈들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고.’
습격자들은 하나같이 로브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개성이라곤 한 올만큼도 없는 모습.
‘로브 놈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조금 떠버리 놈이면 좋겠는데.’
고문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니 계속 말을 시켜 녀석들을 떠봐야 한다.
때문에 아무래도 대화가 이어지는 놈들이길 바랐다. 말이 많으면 더욱 좋다.
하지만 지크는 곧 자신을 둘러싸는 놈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브 놈들이… 아닌가?’
로브 놈들은 철저하게 절제된 움직임을 한다. 척 봐도 단체로 특수한 훈련을 받았다는 느낌이 움직임에서부터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지크의 앞에 나타난 무리는 지금껏 보아온 로브 놈들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움직임에서 그 어떤 단련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습격에 일반인을 데려오진 않았을 터.
‘마법사로군.’
그들이라면 움직임에 단련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라고 추정되는 자들 몇몇을 제외한 자들은 모두 단련의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많이 거친 면이 있었다.
‘용병인가?’
적어도 체계적인 수련을 쌓은 모습은 아니었다.
‘마법사에 용병이라. 일단 마법사들이 용병을 고용해 습격했다는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지크는 일단 말을 걸었다.
“너희 뭐냐? 어디 사는 거적때기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외진 곳까지 산보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오붓한 데이트를 방해한 걸 보니 눈치 없는 놈들이란 건 확실한 것 같다만.”
“데이트는 무슨.”
라일라가 콧방귀를 뀌었다.
로브를 쓴 자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포위망을 조일 뿐이었다.
챙! 챙!
가까이 다가온 자들이 품에서 칼을 꺼낸다. 뒤쪽에 머무르고 있던 로브를 쓴 자들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일단 묻겠는데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덤비는 거지? 스누위크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인데 말이야.”
몰락한 천재 엘레나 드웨인을 가르치는 자가 마탑의 수재 마윈 재위크를 간단히 이겼다는 사실은 이미 마탑 내에선 유명했고 스누위크에도 많이 퍼져 있었다.
로브를 쓴 자들 뒤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잔뜩 비틀린, 조롱조의 웃음소리. 지크가 그 사람을 쳐다봤다.
“역시 우릴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말이야. 혹시 가능하다면 그 더러운 거적때기 좀 벗어주지 않겠어? 아, 네 얼굴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오크 같은 면상이라면 내가 이해해줄 테니까 더 쓰고 있어도 돼. 아니, 만약 그렇다면 제발 쓰고 있어줘. 내 마음은 무척이나 섬세해서 그런 악몽 같은 인간을 봐버리면 타격을 받거든.”
들려오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뒤이어 분에 차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의 웃음소리가 그 분에 찬 목소리를 슬쩍 가렸다.
“협동력도 개판이군. 아무리 상대가 오크조차 두 눈을 감고 도망갈 외모의 소유자라고 해도 동료라면 감싸주는 행동을 보여야지 그걸 또 비웃고 있냐? 똑같이 로브를 눌러쓰고 있는 걸 보니 얼굴도 제대로 생겨 먹지 않은 게 분명할 텐데 말이야.”
새로 나타났던 웃음소리도 끊겼다. 숲 안은 스산한 침묵과 불쾌한 살기가 뒤덮었다.
“…듣던 대로 주둥이가 험하구나.”
지크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로브를 쓴 자가 말했다. 굵고 거친 것이 듣기 좋은 음성은 아니었다. 목소리만으로 사람의 심리를 압박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크는 태연자약했다.
“이거 미안하군. 보다시피 나와 내 친우는, 소위 미남 미녀로 호칭되는 사람들이라서 말이야. 너희의 그 안타깝고 불우한 외모를 이해하지 못해 그런 말을 해버렸어. 내 사과하지.”
지크가 과장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걱정 마. 너희 같은 끔찍한 외모의 인간들도 분명 자신의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안타깝게도 같은 인간 중에선 불가능하겠지만. 아, 거기에 아마 오크나 트롤 같은 녀석들도 거부하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아. 그보다 아래에 있는 몬스터들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이지만! 너희를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거야.”
마치 자애의 신이라도 되는 양 지크가 두 팔을 쭉 펼쳤다.
“세상에 사랑의 형태는 여러 가지지. 그러니까 난 너희들의 그런 사랑도 이해해. 암, 이해하고말고!”
지크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라일라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사랑 넘치는 말을 할 수 있을 줄이야! 어쩌면 난 착한 일하는 쓰레기가 아니라 정말로 착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역시 카르위먼이 사람은 잘 보…!”
“헛소리는 그만하면 됐어.”
지크의 아무래도 좋을 쓸모없는 말을 라일라는 단호하게 끊었다. 지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계속 헛소리를 이어가진 않았다.
“…정했다.”
지크에게 주둥이가 험하다고 빈정거렸던 자가 다시 말했다.
“네 놈의 그 잘생긴 얼굴에 줄무늬 몇 개를 그어주마. 아니, 아예 얼굴 가죽을 벗겨버리겠어. 그러고도 어디 똑같은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마.”
들고 있는 날카로운 검을 살기 있게 움직이며 그가 으르렁거렸다.
“가능하다면 해 봐. 나도 슬슬 이 깔끔한 얼굴에 칼자국 하나 남겨서 관록을 붙일까 생각했거든.”
지크가 보란 듯 자신의 볼에 손가락을 대 스윽 긋는다.
“하지만 너희들 실력으로 과연 그게 될까 의문이야.”
“마윈 재위크를 이긴 것 하나로 그리 유세를 떠는 거냐.”
“아니. 나름 마탑의 수재니 뭐니 하지만 우리한텐 별로 신경 쓰이는 녀석은 아니었어. 우리가 마탑과 스누위크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분명 그 녀석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그 녀석 하나 쓰러뜨렸다고 유세를 떨기엔 녀석이 너무 약하지. 안 그래, 라일라?”
“…지크.”
“응?”
“마윈 재위크가 누구야?”
“…….”
여기서는 지크도 잠깐 입을 다물었다. 농담인가 생각했지만 라일라의 표정을 보니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그새 까먹은 거야? 너와 마탑에서 결투를 한 녀석 있잖아.”
“아, 아아. 걔?”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라일라가 손뼉을 쳤다.
“걔 이름이 마윈 재위크였어?”
“…이야, 이건 나도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얼마 전에 결투를 한 상대인데 조금 정도는 기억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어쩔 수 없는걸. 그다지 인상에 남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실력도 없었고.”
“그 녀석이 여기 있었으면 아마 이를 북북 갈 거다.”
지크가 그렇게 말하며 어이없어할 때였다.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원한이 골수에 치밀어 이가 남김없이 갈아 없어진다 해도 감수할 있다고 느낄 정도의 소리. 지크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시선이 닿은 곳은 로브를 쓴 자들의 후방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저 녀석은 뭔 놈의 이빨을 저렇게 갈….”
지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눈을 가늘게 떴다.
“…너 혹시 마윈 재위크냐?”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침묵은 무엇보다도 강한 긍정이 된다.
“맞구나, 이 자식!”
지크가 손뼉을 짝 쳤다.
“설마 이 습격을 주도한 게 너야? 설마 라일라한테 얻어터진 걸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니지? 마탑의 수재라는 게 마음은 개미 콧구멍만하네!”
“나, 난 마윈 재위크가 아니다!”
그가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그게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크는 그를 손가락질하고 있었고 그의 동료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유명인사라고 했을 때 비웃은 것도 너였지? 설마 그때의 승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거냐?”
“당연하지!”
이미 들킨 것 막 나가기로 했는지 마윈 재위크가 크게 외쳤다.
“속임수를 써서 비겁하게 이긴 걸 내가 받아들일 것 같으냐!”
“속임수?”
지크가 어처구니없어했다.
자기들을 속임수를 쓴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여서가 아니다. 지크는 자기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속임수를 쓸 수 있는 인간이다.
지금 그가 어이없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네깟 놈을 상대로 왜?”
마윈 재위크 같은 놈이 한 수레가 몰려온다 하더라도 지크나 라일라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그런데 자신들이 속임수를 왜 쓴단 말인가.
“그냥 오냐오냐 곱게 자라난 싸가지없는 좋은 집 도련님인 줄만 알았는데 망상도 그 정도면 병이야. 집안도 잘 사는데 좋은 의사나 소개받아서 전력으로 요양을 하는 걸 추천하마.”
“믿을 만한 곳에서부터 들은 정보다, 이 쓰레기 자식!”
마윈 재위크가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지크의 눈이 순식간에 깊어졌다.
“그래? 너에게 그런 정보를 준 자가 있단 말이지?”
분위기가 변했다. 마윈 재위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그의 부하들이 긴장했다.
“일단 하나 확인하고 가자, 마윈 재위크. 지금 이 사건은 네가 속임수를 쓴 우리를 상대로 하는 보복이 맞지?”
“그래! 이제야 인정을 하는 것이냐!”
아직 지크가 껄끄럽긴 하지만 그가 속임수를 인정하는 것 같아 마윈 재위크는 긍정했다.
“우리가 속임수를 쓴다고 알려준 사람이 있고.”
“그렇다!”
“습격자들은 아마도 네 학파의 마법사들과 고용한 용병들이지?”
“떠돌이라 눈치는 좀 있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같잖은 속임수를 써서 마탑의 명문가인 재위크가의 후계자, 이 나에게 굴욕을 준 죄! 여기서 갚아라!”
지크가 한숨을 쉬었다.
“멍청아. 속임수라고 생각했으면 다시 한번 도전하면 됐을 거 아냐.”
“네, 네놈들에게 분수를 가르치는데 무슨 방법을 따진단 말이냐!”
‘아, 그건 싫었군.’
지크는 마윈 재위크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속임수라고 해도 자기를 일방적으로 쓰러뜨린 라일라에게 또다시 도전하는 건 껄끄러웠겠지.’
겁쟁이. 지크는 마윈 재위크의 평가에 한 가지지 부정적인 단어를 더 붙였다.
지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원하는 그림은 아니다만.’
로브 놈들이나 윌위스 드웨인, 올랜드 드웨인과 관련이 있는 놈들을 원했지만 막상 낚고 보니 웬 엉뚱한 고기가 낚여 올라왔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기엔 일렀다.
‘그래도 일단 저놈을 부추긴 놈이 있는 것 같으니 그쪽에 기대를 걸어보자고.’
“생각은 끝났어?”
라일라가 묻자 지크가 끄덕였다.
“잘 참았어. 이제 날려버려도 돼.”
“그거 잘됐네.”
라일라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싸늘한 눈빛이 좌중을 휩쓸었다.
“저놈들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끈적이며 자신을 훑는 눈빛이 안 그래도 거슬리던 참이다.
“위력 조절은?”
마법을 준비하며 라일라가 물었다.
고문을 해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선 상대가 살아 있어야 하기에 위력은 약하게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지크는 친구가 하고 싶은 일에 그다지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
“좋을 대로 해. 필요한 놈은 내가 알아서 빼낼 테니까.”
“그거 알아 지크?”
우우우우웅!
라일라의 지팡이에서 마력이 휘몰아쳤다.
“네 그런 점은 참 마음에 들어.”
쿠우우웅!
마법이 발동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