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엘레나의 첫 마법이 성공한 날, 엘레나는 노웸의 마력을 사용해 마법을 몇 번 더 썼다.
정말로 보잘 것 없는 마법이었지만 엘레나는 마법 한 번 한 번에 무척 행복해했다.
“좋니?”
“네!”
때문에 라일라의 질문에도 힘차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마력을 움직이는 경험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차이가 있어. 마력을 해방시키는 데도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 확실한 건, 자신에게 마력이 있다면 그걸 해방하는 데 이 경험은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네? 조금만 더 하면 안 될까요?”
마법을 쓰는 감각을 조금 더 느껴 보고 싶다. 하지만 라일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 얼굴을 보고 말하렴.”
엘레나는 얼굴을 쓰다듬어봤다. 얼굴을 비칠 건 없지만 손의 감각만으로도 얼추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땀으로 가득 찬 얼굴. 피부도 은근히 거칠어진 것 같았다.
“처음 마력을, 그것도 자기 게 아닌 마력을 다뤘으니 당연하지. 기분이 좋아서 지금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정신적 피로감도 굉장할 거야.”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인식을 한 탓일까.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온몸이 물먹은 것처럼 축축 늘어졌다. 눈꺼풀이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무거워 당장이라도 잠을 청하고 싶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더 한다면 쓰러질 것 같아요.”
“오늘만 날이 아니야. 한동안 계속 도와줄 테니까 오늘은 푹 쉬렴.”
“그럴게요.”
진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엘레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사이에 무척이나 익숙해졌는지 마치 지정석처럼 자신의 어깨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노웸을 바라봤다.
“노웸이라고 했지?
쿠우.
“오늘은 고마워. 앞으로도 종종 부탁해도 될까?”
쿠!
노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노웸의 앞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댄다. 노웸이 껑충 뛰어내렸다.
“스녹 씨라고 했죠?”
“맞아요.”
엘레나가 노웸을 든 손을 스녹에게 내밀었다.
“노웸을 빌려줘서 고마워요.”
“노웸이 선택한 일이에요. 제가 한 건 없어요. 그리고 빌려드린 게 아닙니다. 노웸은 물건이 아니에요.”
“아, 죄송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엘레나가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다음부터 주의해주시면 됩니다.”
“꼭 그럴게요!”
스녹이 손을 내밀자 엘레나의 손에 있던 노웸이 스녹의 손으로 껑충 뛰었다. 엘레나가 힐끔힐끔 스녹의 눈치를 봤다.
“앞으로도 종종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까 노웸의 허락을 받았죠? 그럼 저도 반대하지 않아요.”
“고마워요.”
엘레나가 환하게 웃으며 스녹에게 인사했다.
그렇게 엘레나가 처음 마법을 사용한 의미 있는 날이 저물었다.
* * *
지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는 마차를 타고 있었다. 드웨인 저택의 마차로 윌위스가 지크 일행을 위해 내준 것이었다.
과연 마탑주 가문의 전용 마차라 그런지 탑승감이 무척 좋았다.
지크와 스녹이 나란히 앉아있었고 라일라는 그 맞은편에 있었다. 노웸은 스녹의 무릎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노웸.”
쿠?
노웸이 고개를 들었다. 지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엘레나에게 마력을 빌려줬을 때 말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건 없었나?”
“이상한 거요?”
스녹이 눈을 깜박였다. 그는 오늘의 일이 그저 엘레나의 마법 공부를 도우러 온 것일 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크의 말을 들어보니 뭔가 다른 이유도 있는 모양이었다.
의문에 잠겨 앞을 바라보자 라일라도 진지한 얼굴로 노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스녹도 노웸을 바라봤다.
쿠우?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노웸이 당황했다.
“당황할 것 없다. 네가 뭘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생각도 없고. 그냥 네 생각을 말해주면 돼.”
쿠….
지크의 말에 노웸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쿠!
“응? 뭔가 있었어?”
노웸의 반응에 스녹이 물었다.
쿠! 쿠!
노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연히 지크와 라일라가 관심을 보였다.
“뭘 느꼈지?”
쿠! 쿠! 쿠쿠! 쿠우우! 쿠!
뒷다리로 벌떡 일어선 노웸이 앞 다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낸다.
스녹의 무릎 위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표현하는 노웸. 하지만 그걸 지크와 라일라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둘은 스녹을 쳐다봤다. 통역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 잠시만요.”
스녹은 노웸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노웸의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환수의 계약자다. 의미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 그 사람에게 마력을 흘려 넣을 때 조금의 이물감 같은 걸 느꼈다고?”
쿠!
“마력 중 일부가 살짝 소실되는 걸 느꼈는데 착각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다고?”
쿠!
“그렇다고 하네요.”
스녹의 통역(?)을 알아들은 지크와 라일라가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마력 일부가 소실이라. 역시 엘레나의 몸에 뭔가 이상한 조치가 취해져 있는 건가?”
“노웸도 확신을 하지 못하는 걸 보니 착각일 수도 있어. 그래도 수상한 건 확실하지만.”
“알아볼 필요성은 있다는 거지?”
“그래.”
지크가 노웸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도 얼마간은 엘레나의 마법 공부에 너와 스녹을 대동할 거다. 그때 오늘 느낀 이상한 점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봐.”
그리고 마법 상자 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노웸에게 쥐어줬다.
쿠우!
자기 몸의 1/3만한 사과를 껴안고 기쁘게 울부짖은 노웸이 사과를 아삭 깨물었다.
노웸이 사과를 우물거리는 모습에 라일라가 살짝 웃으며 노웸의 코를 튕겼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노웸은 사과 한 입을 더 깨물었다.
쿠우우~!
환수 한 마리의 즐거운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는 길가를 느긋이 움직였다.
* * *
노웸의 마력을 사용한 엘레나의 훈련은 계속됐다. 빌린 마력이라 해도 마법을 사용해 본 엘레나는 노웸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렸다.
비록 남의 마력을 빌려 구사하는 마법이라 몇 번 사용하지 않아 몸이 피로해졌지만 직접 마법을 사용한다는 매력은 그녀가 피로를 잊기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틈을 타 노웸은 엘레나의 몸 속에 들어간 자신의 마력을 탐색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드웨인 씨의 몸에 들어간 마력이 미세하긴 하지만 확실하게 소실된다고 합니다.”
스녹의 말에 지크와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레나의 몸에 뭔가 문제가 있었군.”
“어떻게 할 거야?”
라일라의 물음에 지크가 팔짱을 끼었다.
“솔직히 엘레나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별 성과가 없어. 예상했던 일 중 하나였잖아?”
“…그건 그렇지.”
엘레나 드웨인인 미래에 압도적인 화력을 구사하는 뛰어난 마법사가 되는 걸 지크와 라일라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그녀가 마력을 해방시키지 못 하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도.
“게다가 그걸 알았다고 해도 우리가 엘레나의 마력을 직접적으로 깨울 방법은 없어. 하지만 예측만이 아닌, 노웸이 직접적인 무언가를 찾았다는 건 분명 성과야.”
쿠?
오늘도 지크가 준 사과를 씹어 먹고 있던 노웸이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지크가 계속 먹으라고 손짓을 하자 다시 사과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알려야지.”
지크가 웃었다.
“엘레나의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고, 그것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엘레나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야.”
“누구한테?”
“당연히 엘레나의 가족이지.”
누가 들으면 엘레나와 그 가족을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스녹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크가 엘레나의 가족인 윌위스와 올랜드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라일라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용의자들의 행동을 끌어낼 생각이구나.’
둘 중에 엘레나에게 무언가 처치를 한 인간이 있다면, 지크 일행이 그 사실을 알아낸 걸 알았을 때 뭔가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드웨인 씨의 부모님이 마탑에서도 대단하신 분들이라죠? 그럼 드웨인 씨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아지겠네요.”
노웸이 엘레나에게 마력을 빌려줄 때 계속 같이 있었던 터라 스녹도 엘레나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그래도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에 스녹은 제법 기뻐했다.
“물론. 그렇지.”
지크가 대꾸했다. 자신의 발언에 동의를 해준 것이지만 스녹은 입을 다물었다.
지크에게 많이 익숙해진 스녹은 지크의 저 발언에 무슨 뜻이 숨어 있는지를 대략 눈치를 챈 것이다.
‘누군진 모르지만 지크 님에게 찍혔군.’
그 불쌍한 놈이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스녹은 살짝 그 작자의 명복을 빌어줬다. 지크가 찍은 걸 보면 악인이 분명할 테니, 어디까지나 살짝만.
쿠….
노웸도 지크의 의미심장한 말을 깨달았는지 반 쯤 갉아 먹은 사과 뒤편으로 몸을 구겨 숨었다.
* * *
라일라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엘레나를 가르쳤다. 하지만 아무리 라일라가 가르치는 걸 즐기고 엘레나가 가르침 받는 걸 즐긴다 하더라도 피로가 쌓이는 걸 막을 수는 없다.
특히 안 그래도 복잡한 학문인 마법을 계속 주입 받는 엘레나의 피로도는 하루 만에 회복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때문에 라일라는 며칠 정도 엘레나의 교습을 중단하기로 했다. 엘레나가 자기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라일라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얌전히 집에서 회복에 전념하기로 했다. 얌전히 쉬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마법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라일라의 엄포가 효과적으로 통한 덕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라일라는 지크를 이끌고 스누위크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곳곳을 누벼가며 자신의 취미를 즐겼다.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도 오랜만이구나!”
라일라가 두 손을 쭉 펴며 말했다. 지크가 물었다.
“수업이 힘들었냐?”
“아니, 재미있었어. 엘레나도 귀엽고 재능 있는 제자였고.”
그 생각에 거짓은 없다. 그녀는 분명 엘레나를 가르치는데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너무 수업만 고집한 느낌이야.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스누위크에 오기 전만 해도 여러 가지 마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기대에 들떠 있었다.
게다가 고대제국 클로원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야 했고 아드로원 대수림에서 챙겨온, 클로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책들도 해독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들을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 엘레나를 가르치는 것도 계획이라 별말 안 하고 있었다만, 확실히 네가 그쪽에 너무 빠진 것 같긴 했어.”
“네 말이 맞아. 지금부터는 쉬는 날을 잡아야겠어. 그게 교육의 효율도 좋아질 테니까.”
“그건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걸 먼저 해결해야겠지.”
지크의 눈동자가 스르르 옆쪽으로 움직였다.
“눈치 챘지?”
“저렇게 대놓고 움직이는데 눈치 못 챌 리가.”
라일라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땅을 툭툭 두들겼다.
“아무래도 내가 원한 인간들이 드디어 방문한 모양이야.”
“다행이네. 그 때문에 일부러 이런 인적 드문 곳을 돌아다닌 거잖아?”
“계획이 성과를 내면 언제나 기분이 좋지.”
지크가 등에 메고 있던 윈두르를 끌러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보고 말했다.
“이미 들켰으니까 조용히 나와. 얼굴이나 좀 보자고.”
지크와 라일라의 주위로 그림자들이 슥 모여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