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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40화 (240/628)

제240화

‘물론 그 꿈이 개꿈이 아니란 전제하에서 말이야.’

지크는 아직 그 꿈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확신할 수 없다기보다는 희망을 버리기 싫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제발 개꿈이기를….’

마치 제가 무슨 정의의 용사인 듯 행동하는 지크 브레이브란 놈이 자신이란 걸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그 꿈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지크 자신의 회귀, 라일라와 그녀의 미래의 지식, 그리고 그렌 제너드의 음모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그 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크의 성격상 그런 걸 가만히 넘겨둘 순 없었다.

‘가끔은 이놈의 성격이 싫어진다니까. 이런 건 좀 외면하고 넘어가도 좋으련만.’

회귀 전, 자신의 생명을 몇 번이나 구해준 이 성격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원망스러웠다.

‘만약 그 개꿈이 맞다면 역시 윌위스 드웨인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겠지?’

브레이브의 동료니 적어도 나쁜 놈은 아닐 터.

브레이브의 다른 동료였던 루벨라와 레오나도 모두 선량한 인종이 아니었던가.

‘그 거한과 마법사도 믿을 수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하나.

‘올랜드 드웨인인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라일라의 목소리에 지크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해야 그 두 사람에게 누명… 아니, 용의…. 아니, 그것도 아니라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을….”

“들어가기나 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일라는 등을 돌려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그녀의 무정함을 소리 높여 야유하는 지크. 하지만 그 장난스러운 행동 속에서도 지크의 눈빛은 무척이나 깊었다.

* * *

윌위스 드웨인이라는 장벽을 넘은 엘레나는 이제 거칠 것이 없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마탑을 가지 않았다. 윌위스가 정식으로 엘레나의 공부를 허락한 이상 드웨인 저택을 피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과연 마탑주의 저택임을 입증하듯 드웨인 저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구실과 훈련장 등을 구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그저 손녀에 대한 호의로만 빌려준 것이 아니었다.

잠시 과제를 내어주고 엘레나에게서 떨어진 라일라가 지크에게 물었다.

“감시는?”

“여러 군데.”

사용인이 내어준 차를 홀짝이며 지크가 대답했다.

“역시 그냥 교육용 장소로 저택을 내어준 게 아니구나.”

“당연하지. 윌위스 드웨인이 우리를 언제 봤다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겠어. 오히려 아무런 보호 수단 없이 손녀를 우리에게 맡겼다면 그거야 말로 그 작자가 제정신인가 의심을 해야지.”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기요.”

어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크와 라일라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전 이곳에 왜 데려오셨나요?”

난처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며 우물쭈물거리는 스녹이 지크의 옆에 앉아 있었다.

쿠우….

스녹의 어깨에 배를 깔고 늘어져있던 노웸이 동의하듯 울었다.

“엘레나의 수업을 도와줬으면 해서 말이야.”

라일라가 스녹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윌위스의 허락을 받은 이후,

그녀는 엘레나의 제안을 받아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지크도 마찬가지였다.

“제가요? 전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데요?”

“알아. 걱정 마. 설마 너에게 마법을 가르치라고 하겠니? 정확히 말해서 너보다는 노웸의 힘이 필요해.”

쿠우!

늘어져있던 노웸이 벌떡 일어나 스녹의 어깨에 섰다. 라일라를 보고 엘레나를 한 번 본다.

노웸의 머리에 예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해부라든가 그런 것도 안…!-

-만약 노웸을 해부해서 조사를 해야 한다면 내가 할 거예요!-

쿠우우우우!

노웸이 비명을 지르며 스녹의 옷 안으로 숨어들었다. 스녹도 떨떠름하게 라일라를 쳐다봤다.

“왜 그래?”

라일라는 영문을 몰라 했다. 그녀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웃음기 섞인 지크의 목소리였다.

“예전에 네가 한 해부 운운 때문에 겁을 먹은 거겠지.”

“어머. 그걸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어? 설마 내가 노웸을 정말 해부하려 하겠니.”

라일라가 손사래를 치자 스녹이 조금 마음을 놓았고 노웸이 얼굴을 옷자락 너머로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네가 적이 되지만 않는다면 내가 노웸을 해부할 일은 없단다.”

‘그냥 해부란 말 자체가 농담이라고 해주길 바랐는데!’

‘쿠우우!’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소리 없는 비명이 울렸다.

“선생님! 끝냈어요!”

엘레나가 던진 나뭇가지를 물어오는 강아지처럼 후다닥 달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라일라가 내준 과제가 들려 있었다.

“잘 했네. 역시 엘레나야.”

라일라가 환하게 웃었다.

“좋아, 엘레나. 그럼 이제 진짜 마법을 한 번 사용해볼까?”

“…네?”

엘레나의 미소에 작게 균열이 갔다.

“선생님 전 마력이….”

“알고 있단다. 설마 선생님이 그걸 까먹고 있겠니. 도움을 줄 사람을 데려왔어.”

“도움을 줄 사람이요?”

라일라가 옆에 있는 스녹을 쳐다본다. 지크도 스녹을 쳐다본다. 자연스럽게 엘레나의 시선까지 스녹에게 이동했다.

“…네?”

갑작스럽게 세 쌍의 시선을 동시에 받은 스녹이 당황했다.

“네 마력은 이 아이가 담당할 거야.”

“네?”

“…네?”

바로 의문을 표한 사람은 엘레나.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눈을 껌벅이며 대답한 이는 스녹이었다.

“남의 마력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나요?”

마탑주인 윌위스의 밑에서 교육을 받았던 엘레나도 처음 들어보는 방법이다.

아니, 애초에 엘레나가 알기로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상대의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하는 건, 자신의 마력과 동조시켜 더욱 큰 마법을 생성하는 마력 동조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그 마력 동조도 여러 제한이 있고, 무엇보다 시전자가 최소한 마력을 가지고는 있어야 한다.

“정확히는 스녹의 마력이 아니라 노웸의 마법을 사용할 거야.”

“노웸이요?”

“이 녀석이 데리고 있는 대지의 환수 말이야.”

쿠?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노웸이 의문스럽게 울었다.

스녹은 엘레나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바로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라일라 님. 노웸의 마력을 사용한다면….”

스녹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려는 걸 라일라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환수의 마력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환수의 의사가 중요하고 계약자가 아니라면 그 효율은 극악으로 치닫지만, 그래도 사용할 순 있다.

하지만 노웸의 전 계약자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안다면 쉽게 사용할 것은 못 되었다.

“괜찮다. 라일라도 바보는 아니야.”

지크가 말했다.

“정말로 마력의 맛만 보여주는 거야. 직접적인 계약 상황도 아니니 노웸의 마력이 계속 침식하지는 않아.”

“그렇다면야 뭐….”

스녹은 노웸을 손으로 안았다. 그리고 눈을 맞췄다.

“그렇다고 해. 네 의사는 어때?”

하늘같은 스승의 말이지만 스녹은 노웸의 의사가 먼저였다. 혹 노웸이 싫다 그러면 절대로 시킬 생각이 없었다.

쿠!

다행히 노웸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웸은 스녹의 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흘끔거리고 있는 엘레나의 어깨에 올라갔다.

“꺅!”

작은 동물이 옷자락을 타고 올라오는 낯선 감촉에 그녀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있는 노웸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할짝!

노웸이 손가락을 핥자 그녀가 꺄르르 웃었다.

“자, 노웸과 장난은 조금 있다가 치고 지금은 수업을 하자.”

“아, 네!”

엘레나가 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노웸 너는 엘레나에게 마력을 넣어줘. 마력을 깨우지 못한 아이니까 너무 급하게 마력을 흘려넣으면 굉장히 아파할 거야. 그러니까 조금씩 천천히. 알았지?”

쿠우!

노웸이 앞다리를 번쩍 들며 외쳤다.

“그리고 엘레나.”

“네!”

“아무리 환수의 마력이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도 자신의 마력보다는 다루기 훨씬 힘들어. 웬만큼 궁합이 좋지 않은 이상은 말이야.”

라일라가 스녹을 힐끔 쳐다봤다.

“게다가 너는 마력을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으니 더 그렇겠지. 그러니까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네!”

“사용할 마법은 대지 속성의 마법이야. 알고 있는 마법은 있지?”

“불 속성은 안 되나요?”

역시 자신이 속한 학파의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모양이다.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노웸은 대지의 환수야. 당연히 그 마력은 대지의 속성을 가득 품고 있지. 그 속성을 억지로 바꾸는 건 네 수준에선 어려워. 네가 마력을 한 번 이용하게 해보려는 이번 연습에 어울리지도 않고.”

“네.”

엘레나가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생각을 달리 해봐, 엘레나 양.”

지크가 끼어들었다.

“진짜 원하는 마법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보는 게 좋지 않아? 불 속성의 마법은 아가씨가 자신의 마력을 다룰 때 해 보라고. 그게 훨씬 더 보람찰걸?”

“…듣고 보니 그렇네요.”

엘레나가 기운을 차렸다. 지크는 라일라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고 다시 뒤로 빠졌다.

“그럼 시작해.”

라일라의 신호에 노웸이 천천히 엘레나의 몸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엘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몸속을 유영하는 기운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이게 마력!’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에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엘레나! 집중해!”

라일라의 목소리에 급히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몸의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려온 기회인가. 얼마나 느끼고 싶었던 감각인가. 얼마나 자아내고 싶었던 힘인가.

‘절대 실패할 수 없어!’

엘레나의 집중력이 최대에 이르렀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몸속에 들어와 있는 노웸의 마력이 천천히 움직이 시작했다.

“웰! 윈! 우드! 드우라!”

영창을 시작했다. 몸 속 안에서 마력을 움직이며 하는 영창은 생각보다 몇 배나 어려웠다.

계속해서 혀가 꼬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영창을 내뱉었다.

마력도 마찬가지. 처음엔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계속해서 의지를 일으키자 마력은 그녀의 의지를 따라 왔다.

상상한 것처럼 제대로 되진 않았다. 마력은 그녀의 생각보다도 더욱 무디고 더디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차츰차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현실로 구현했다.

콰드득!

주변에 있던 흙무더기가 솟아 엘레나가 내민 손 앞에 뭉치기 시작했다. 그건 곧 주먹만 한 흙덩이가 됐다.

“원!”

그녀가 마지막 영창을 끝냈다.

퍼엉!

흙덩이가 쏘아졌다.

퍼석!

그 흙덩이는 나무 기둥에 부딪쳐 바스러졌다. 정말로 보잘것없는 마법이다.

“아!”

하지만 엘레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더 값진 마법이었다.

그녀가 라일라를 쳐다본다.

“…선생님.”

“해냈구나.”

라일라가 인자하게 웃었다.

엘레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녀가 라일라에게 달려들었다. 양 팔을 넓게 펼친 라일라의 품에 뛰어들어 엘레나는 울었다.

지금껏 받은 모든 설움을 날려버리려는 듯 그녀는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지크, 스녹, 노웸은 조용히 지켜봤다.

천하의 지크도 이 분위기를 망칠 생각은 없는 듯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었고 스녹은 감정이 전염된 듯 코를 비볐다.

어느새 스녹의 어깨로 옮긴 노웸도 잔잔한 눈길로 그 모습을 쳐다봤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게 있는 듯, 노웸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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