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37화 (237/628)

제237화

마법사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나이도 무척 젊다고 들었습니다.”

“겉모습으로는 고작해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인다더군요.”

“허! 그 나이에 벌써 그만큼의 마법적 성취를 이루었다니. 천재도 보통 천재가 아닌 모양입니다.”

“보기보다 나이가 들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30대라도 충분히 빠릅니다.”

“그 정도면 마탑으로 스카우트를 하는 게 어떨까요?”

“한번 시도할 만하지요. 그 정도 인재라면 마탑에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라일라의 가치가 솟구친다. 하지만 그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웨인 재위크가 그랬다. 작게 푸들거리는 볼이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하지만 이야기에 심취한 마법사들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일부 눈치 챈 자들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예의는 지킨 것이다.

그러나 라일라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또 있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라면, 어쩌면 정말로 엘레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허튼소리.”

좌중이 고요해졌다. 사람들이 불쾌한 목소리의 근원을 좇았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가장 상석, 마탑주의 자리였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가 가르친다고 해도 없는 마력을 생기게 할 순 없소. 안 그래도 헛바람이 든 아이에게 더더욱 바람을 불어넣다니.”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라일라란 자가 엘레나를 가르치는 것을 마탑주는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뭐, 그건 그렇습니다.”

“솔직히 엘레나를 가르친 건 마탑주 아니십니까. 라일라란 자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마탑주를 능가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탑주조차 할 수 없던 일을 그녀가 성공할 수 있을 리가요. 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천재를 봤다고 우리가 너무 들떴던 것 같소.”

마탑주의 눈치를 본 것도 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엘레나의 교육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웨인 재위크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기보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라일라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마탑주의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말이 나왔다.

“뭐 어떻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쏠렸다.

“아이가 원하는 것 아닙니까. 그 아이는 아직 젊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걸 실컷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마력을 해방할 수 있으면 그것도 좋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더 이상 나빠질 게 있겠습니까? 차라리 그렇게 도전하고 도전하여 자신이 납득하고 접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너는 그 아이가 계속 고통 받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 올랜드!”

윌위스의 노호에 올랜드가 고개를 저었다.

“딸이 고통 받는 걸 즐기는 아비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지금 엘레나에게 마법을 포기시킨다면 훨씬 더 고통스러워할 겁니다. 그 아이의 마법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끊어야 한다는 게야! 그 아이가 언제 납득을 할 줄 알고! 아픔은 빨리 끊어버리고 시간에 묻어버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너는 부모가 되어 갖고 아이를 가시밭길에 던져 넣을 셈이냐!”

“…아이가 가는 길을 최대한 보조해주는 게 부모가 할 일입니다.”

“그 길이 중간에 끊어져 있으면 다른 길로 안내하는 것도 부모가 할 일이다!”

부자의 언행이 점점 거칠어졌다. 주변 마법사들이 당황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저도 젊었을 때는 그리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었잖습니까! 오히려 커서 빛을 본 케이스죠! 엘레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왜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너는 그래도 출발선에라도 서 있지 않았느냐! 엘레나는 그것도 아니야! 마법만 포기하면 엘레나는 다른 길에서는 충분히 대성할 수 있어! 그리고 너 같은 케이스가 흔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래요. 그 때문에 아버지는 저한테도 그러셨었죠.”

“여기서 네 얘기는 또 왜 나오는 게야!”

“혹시 그 아이를 가문의 수치라고 여기는 게 아니십니까? 그 때문에 빨리 마법을 포기….”

콰앙!

마탑주가 탁자를 강하게 내려쳤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

올랜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윌위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자신의 말을 물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자자, 그만하십시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무리 여기가 우리의 친분을 쌓기 위한 사적인 자리라고 해도 부자간의 싸움을 할 자리는 아닙니다!”

마탑주 바로 아래에 있는 두 번째 서열의 마법사가 윌위스를 말렸다. 그리고 그는 올랜드를 꾸짖었다.

“그리고 올랜드 드웨인. 아무리 화가 난다지만 아버지에게 그 무슨 막말인가!”

“…실례했습니다. 못난 꼴을 보였군요. 사죄드리겠습니다.”

올랜드가 몸을 일으켜 주변에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윌위스의 방향 쪽은 피했다. 그리고 윌위스 또한 아직 성난 눈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 사담을 계속 이어나가긴 힘들다.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흩어졌다.

그 후, 마탑의 밑바닥으로부터 한 소문이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엘레나를 둘러싼 윌위스와 올랜드의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 * *

지크는 라일라가 엘레나를 가르치는 동안 종종 마탑을 돌아다녔다. 보통 라일라의 심부름이었다.

라일라는 종종 마탑의 가게에서 뭔가를 사오라고 지크를 시켰다.

대부분은 그녀와 엘레나가 휴식시간에 가볍게 먹을 군것질거리였다.

엘레나가 미안해했지만 지크는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소문도 들을 수 있으니까.’

지크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훈제가 포장되기를 기다리며 귀를 세웠다. 마력이 귓가에 모이며 안 그래도 강한 그의 청력이 더욱 강해졌다.

‘역시 다른 층의 소리 같은 건 안 들려.’

과연 마탑은 마탑이라고 할까. 마탑을 지을 때 어떤 처치를 한 것인지 들려오는 건 어디까지나 같은 공간에 있는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크는 흥미 있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들었어? 마탑주님과 올랜드 드웨인 님이 회의 끝나고 한판 했다던데.”

“뭐 때문에? 두 분은 부자 관계잖아. 싸울 거리가 뭐…. 아! 혹시 엘레나 드웨인?”

“맞아. 이번에 엘레나 드웨인이 새로 선생을 들였잖아.”

“나는 직접 봤어. 정말로 대단하더라. 마법사가 주먹질도 잘하는데다가 마법 실력은 마탑의 최상위권에도 밀리지 않을 것 같던데? 게다가 젊고 예쁘기까지!”

“그런데 마탑주님은 그게 별로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야.”

“그분이 엘레나 드웨인의 마법 공부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는 건 꽤 유명한 사실이니까.”

“그에 비해 올랜드 드웨인 님은 엘레나 드웨인의 마법 공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말이야.”

“아, 그럼 엘레나 드웨인이 새로운 능력 있는 선생을 가진 것 때문에 그 분들의 갈등이 새삼 폭발한 건가?”

“그렇지. 회의 이후에 다른 분들이 있는 곳에서 다툼을 벌였다는 걸 보면 상당히 갈등의 골이 깊어 보여.”

지크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들은 더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더 이상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었다.

‘일단 영향은 확실히 끼치고 있군.’

마탑의 회의에서까지 둘이 싸움을 벌였다면 분명 서로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있을 것이다.

‘동시에 라일라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치겠지.’

마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젊은 천재 마법사. 그것도 그들의 딸 혹은 손녀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

그게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곧 라일라를 부를 거야.’

그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 본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지크는 그것과 커다란 음료수를 하나 더 사들고 라일라와 엘레나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크의 예상대로 며칠 후, 라일라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먼저 움직인 것은 엘레나의 아버지, 올랜드 드웨인이었다.

* * *

마차 너머로 작게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그에 따라 마차도 천천히 흔들린다.

잘 포장된 도로와 고급스러운 마차의 성능 덕에 그 흔들림은 그리 크지 않았다.

마차에는 지크와 라일라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엘레나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올랜드의 초대를 받아 그의 저택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엘레나는 조금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새로운 선생님과 아버지의 만남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조금 두려웠다.

일단 자신의 마법 공부를 지지하는 아버지니 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아버지의 의견마저 돌아선다면 그녀는 정말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마법 공부를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그녀에게 없었다.

‘괜찮겠지.’

그렇게 자신을 되뇌어보지만 긴장이 풀리진 않는다.

‘지크 씨도 걱정이야.’

자신에게는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선생님의 친우. 하지만 예전 재위크와의 결투를 생각하면 결코 친절하기만 한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다고 뭔가 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긴장돼?”

“…네, 조금요.”

지크의 질문에 엘레나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일라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 그냥 가서 선생님으로서 인사 한 번 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긴장을 하니.”

“그래. 그리고 소문을 듣자 하니 네 아버님은 네 마법 공부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하던데.”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다. 하지만 마법 공부를 찬성하는 아버지라는 소리에, 마법 공부를 반대하는 할아버지가 연이어 떠올라 조금 기가 죽었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아버님이 어떤 분인지 잠깐이라도 설명을 해 주는 게 어때? 어느 정도 정보를 알면 적당하게 맞춰 줄 수 있으니까.”

지크의 설명에 엘레나는 그게 낫겠단 생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성함은 올랜드 드웨인이세요. 마탑에서도 커다란 학파인 콘로드 학파의 우두머리시기도 하고요.”

“너나 네 할아버지와는 학파가 다르다고 들었어.”

“맞아요. 사실 콘로드 학파는 저희 어머니의 학파예요.”

엘레나의 어머니.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지크의 눈이 작게 빛났다.

“당시 아버지는 그다지 촉망받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가 마법으로 대성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다고 하고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따라 콘로드 학파로 옮기셨어요.”

“그리고 대성을 하셨구나?”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있다고 해요. 자기 적성과 학파가 맞지 않는 사람이요.”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그렇지?”

“저와 할아버지의 학파인 플루 학파는 화염 계통 마법이 특기예요.”

지크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엘레나의 특기도 화염 계통의 마법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파인 콘로드 학파는 정반대예요. 빙설 계통의 마법이 특기죠.”

“과연. 적성이 완전히 반대였다는 소리군.”

“네.”

“실례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이거 실례되는 질문을 했군.”

지크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엘레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이젠 어느 정도 떨쳐냈으니 괜찮아요.”

“그럼 네 아버님은 빙설 계통을 주로 사용하는 유망한 마법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니?”

라일라가 얼른 다음 질문을 던져 화제를 바꿨다.

“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