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화
잠시 결투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이 쏘아지듯, 구경꾼들의 반응이 일순 폭발했다.
“방금 봤냐! 방금 그거, 그거 맞지!”
“나도 똑똑히 봤어!”
사람들이 웅성대며 하나의 단어를 언급했다.
“저거 무영창이잖아!”
무영창 마법. 영창이라는 약점을 필연적으로 안아야 하는 마법사가 그 약점마저 없애버리는 고도의 기술.
물론 마법의 위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영창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마법사로서는 무척이나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기술인만큼 사용할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다. 정말로 하늘에 선택받았다고 여겨지는 극소수의 천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당연히 지금 이곳에서 구경하고 있는 마법사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지금 라일라를 상대하고 있는 자 또한 그랬다.
“끝났어?”
라일라가 한 단순한 말. 그러나 그녀가 갖고 있는 극도의 여유와 자신감을 알리기엔 그 짧고도 단순한 말로도 충분했다.
보통 그런 태도는 상대에게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고, 사내도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다.
“뭐, 뭐….”
라일라가 무영창을 쓴다는 걸 알고 사내도 잠시 얼이 빠졌다. 그러나 라일라의 태도는 그의 드높은 프라이드를 건드렸다. 그가 다시 지팡이를 번쩍 들었다.
“라! 호므엘! 인! 타울!”
이번엔 번개다. 그의 지팡이에 뇌전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라일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가 지팡이를 라일라에게 겨눴다.
“칼!”
파직!
주문이 끝나자 번개가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라일라는 손가락을 튕긴 후였다.
쿠웅!
그녀의 앞에 돌이 일어서 벽을 만든다. 뇌전은 벽에 부딪쳐 허무하게 막혔다.
벽이 사라지고 라일라의 시선에 사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사내는 꽤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충격, 경악, 질투 그리고 공포까지. 여러 가지의 감정이 다채롭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두 번 정도는 받아줬어. 이제 내가 공격해도 되지?”
라일라가 손을 든다. 여전히 그녀의 지팡이는 다른 손에 잡혀 늘어져 있었다.
퍼엉!
영창도 낌새도 없다.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바람이 사내를 덮쳤다.
“큭!”
사내가 급히 허리를 숙였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흠, 쉽사리 결투를 받아들인 이유가 있었군.”
“네?”
지크의 중얼거림에 엘레나가 반응했다.
“라일라를 상대하는 녀석 말이야. 마법 결투에 익숙한 녀석 같아서.”
“아, 네. 재위크는 마탑에서도 유명한 사람이에요. 1년에 한 번 치르는 마탑의 마법 결투 대회에서 우승한 전적도 있거든요.”
재위크. 라일라의 싸우는 상대의 이름을 지크는 지금 처음 들었다. 그것도 그만 들었을 뿐, 라일라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크와 라일라에게 재위크는 정말로 아무래도 좋은 존재였을 뿐이다.
개가 덤벼든다고 해서 그 개의 이름 같은 걸 보통 궁금해 하지는 않는다. 그저 걷어차 쫓아내려 할 뿐.
라일라의 공격을 재위크가 다시 한 번 피했다. 여유 있게 피한 건 아니다. 정말로 몸을 뒤틀어 억지로 피했다.
‘저건 피한 것도 아니지.’
몸의 균형을 유지하긴커녕 기본적인 낙법조차 펼치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그런 재위크에게 돌덩이 하나가 쏘아졌다.
“으, 으아아악!”
재위크가 팔로 지면을 크게 치고 배를 튕긴다. 마치 개구리처럼 펄쩍 뛴 뒤 데굴데굴 굴렀다. 다행히 라일라의 마법은 피할 수 있었다.
“풉!”
구경꾼 중 누군가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았다. 꼴사나운 재위크의 모습에 허파가 계속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를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구경꾼들 대다수가 그랬다.
“크흐흐흐!”
“풉! 푸풋!”
여기저기서 억눌린 웃음소리가 튀어나온다. 일부러 웃는 건 아니다. 그만큼 재위크의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웃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명백히 재위크에게 악의를 가지고 비웃음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질투일까? 아니면 좋지 않아 보이는 그의 인성이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든 것일까?
‘알 바 아니지.’
저 비웃음이 자신이나 자신의 일행을 향한 것이라면 몰라도 적을 향한 것 아닌가. 오히려 지크는 그들의 편이었다.
“푸흐흐흐흐흐흐!”
다른 구경꾼들이 그러는 것처럼 입을 막고 웃음 소리를 낸다. 하지만 숨죽여 웃는 소리라기엔 너무 크다. 그냥 대놓고 들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안 그래도 구경꾼들의 비웃음에 얼굴이 붉어진 재위크가 귀까지 붉게 물들였다.
비척비척 일어나 지크를 노려본다. 그에 지크는 오히려 웃음소리를 키웠다. 배까지 부여잡고 뒤 쪽 담장을 탕탕 쳤다.
재위크의 시선이 더욱 살벌해졌지만 계속 지크를 노려볼 시간은 없었다.
후웅!
“크윽!”
다시 한번 라일라의 마법을 피한다. 라일라의 마법이 결계에 부딪쳐 소멸했다.
그런 일방적인 구도가 계속됐다. 라일라가 쏘고 재위크가 피한다. 재위크도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하려 시도했다.
‘움직이면서도 영창을 하는군.’
저 기술도 어려운 기술이다.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마법을 몸을 움직이면서 사용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많은 마법사들이 제자리에서 아예 눈까지 감고 영창을 하곤 한다.
‘확실히 센스는 있어.’
다만 상대가 라일라인 게 문제다.
“온!”
퍼엉!
재위크가 다시 한번 마법을 썼다. 빠르게 날아오는 그걸 라일라는 단 한 걸음을 움직여 피했다. 동시에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
무형의 소용돌이가 재위크를 향해 날아갔다.
“이익!”
그가 쓰러지듯 엎드렸다. 그 위를 마법이 스쳐지나갔다.
누가 봐도 라일라가 그를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대, 대단해요.”
엘레나는 완전히 라일라의 움직임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선생이 된 사람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마법사였다.
“무영창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게다가 어색해 하는 속성도 없어!”
‘저 정도는 너도 할 수 있던 거야.’
속으로 뇌까리는 지크였지만 미래의 그녀의 활약상은 지크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이, 이, 이…!”
재위크가 모욕감에 몸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마법을 사용해 상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나 누가 봐도 실력의 차이는 확연했다. 하지만 그걸 재위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마윈 재위크가 저런 떠돌이 마법사에게 진다고? 그것도 저 패배자 엘레나 드웨인의 선생이나 하겠단 녀석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길 거야!’
재위크가 다시 영창을 외웠다. 그의 앞에 불덩이가 나타났다. 그가 불덩이를 던졌다.
따악!
이번에도 그녀는 마법을 상쇄시켰다. 하지만 재위크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머?”
눈앞으로 날아오는 지팡이에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지팡이로 쳐냈다.
그러나 그것까지가 재위크의 계산이었다.
“엇!”
“뭐야!”
구경꾼들이 술렁인다. 엘레나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마법과 지팡이로 눈을 속인 재위크가 어느 샌가 라일라에게 바짝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완력은 별거 아닐 거야! 일단 잡고 한 대 먹이면 마법을 쓸 정신도 흔들리겠지!’
마법사인 그도 완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적어도 여자에게 지진 않을 거다. 재위크가 손을 뻗었다.
덥석!
“잡았어!”
재위크가 라일라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그녀의 팔을 당기며 재위크가 주먹을 들었다.
‘한 대만 먹이면 이길 수 있어!’
후웅!
재위크가 주먹을 날렸다. 목표는 라일라의 얼굴이었다.
이제 곧 피투성이가 돼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재위크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황과 공포에 휩싸여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라일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웃고 있었다.
‘어?’
순간 라일라의 머리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연히 재위크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어디…로….’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퍼억!
“끄억!”
볼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앞이 핑 돌았다. 몸이 빙글빙글 돌며 시야가 천장과 바닥을 계속해서 비춘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라일라의 모습이 들어 왔다. 내민 주먹을 회수하며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털썩!
그대로 엎어졌다.
장내가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아까의 침묵이 수준 높은 마법을 목격한 것에 대한 침묵이었다면, 지금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일어난 침묵이었다.
짝! 짝! 짝!
그 침묵 사이로 여유로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라일라. 바로 카운터를 집어넣다니. 마법만 파는 멸치 같은 놈이 맨주먹으로 이길 상대가 아니지. 역시 내가 잘 가르쳤어.”
“크윽!”
재위크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볼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라일라의 주먹이 제대로 들어간 것이다. 그는 몸을 일으켜 볼을 부여잡았다.
그의 앞으로 라일라가 뚜벅뚜벅 걸어갔다.
“보통 마법 결투는 오로지 마법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었을 텐데. 역시 마탑의 결투는 뭔가 다르네.”
우드득!
그녀의 손가락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재위크가 움찔했다.
“조금 재밌어졌어.”
툭!
라일라가 지팡이를 옆으로 내던졌다. 지금껏 사용하지도 않은 지팡이였지만, 그녀가 지팡이를 던진 이유는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주먹으로 싸운다는 것.
“자, 잠깐…!”
재위크가 뭐라 외칠 때였다.
탓!
라일라가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주먹을 크게 들어 올렸다.
“큭!”
재위크가 양팔로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역시나 오로지 마법에만 매진해온 자. 그 폼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퍼억!
“커헉!”
훤히 드러난 배에 라일라의 주먹이 꽂힌다. 저절로 양팔이 벌려지며 재위크의 얼굴이 드러났다. 라일라의 팔이 다시 섬광처럼 움직였다.
퍼억!
“케헥!”
머리가 크게 튕겨지며 재위크가 휘청휘청 뒷걸음질을 친다. 라일라가 혀를 찼다.
“역시 지크 처럼은 안 되나. 한 방에 안 끝나네.”
“네가 나처럼 할 수 있으면 내가 억울해 해야지.”
지크가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라일라가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재위크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 방으로 안 되면 두 방, 세 방을 꽂아 넣을 수밖에.”
“자, 잠깐!”
하지만 라일라는 이번에도 재위크의 말을 무시했다. 그녀는 다시 재위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계속해서 라일라의 주먹이 재위크를 난타한다. 재위크는 막고 피하고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 무슨 놈의 마법사가…!’
난타의 폭풍우 속에 재위크는 속으로 소리쳤다.
라일라가 뭔가 대단한 무술을 배운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어엿한 정통 마법사다.
하지만 그녀의 육체적 성능은 무척이나 좋았다. 예전 지크가 감탄을 했을 정도. 게다가 어느 정도 무술의 기본은 지식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거기에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지크와 합류한 초반에는 훈련이랍시고 지크에 의해 한스, 스녹만큼이나 험악하게 구른 전력도 있다.
상대가 몸을 잘 사용하지 않는 정통 마도사, 그것도 경험이 별로 없는 마도사인 것도 있다.
그 조건들이 모이니, 라일라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쥐어 팬다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퍼억!
“크헥!”
다시 한번 재위크의 얼굴이 크게 튕겼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항복할래?”
그녀가 잠시 공격을 멈추고 말했다.
“이게 어딜 봐서 마법 결투야!”
아직 발음이 제법 뚜렷하다. 라일라가 어처구니없어 말했다.
“먼저 주먹질을 한 게 누구더라? 그래서 나는 마탑의 마법 결투는 주먹질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지?”
“크윽!”
재위크가 라일라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갑자기 뒤로 뛰어갔다. 라일라는 그 꼴을 가만히 바라봤다.
재위크가 달려간 곳은 자기 지팡이가 있는 곳이었다. 급히 자신의 지팡이를 잡고 그녀에게 향한다.
“어쩜, 끈덕지기도 해라. 좋아, 그럼. 네 생각대로 마법으로 결판을 내 줄게.”
라일라가 자신의 지팡이가 있는 곳으로 향하며 말했다.
“다만, 이번 건 조금 위험할 거야. 애송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