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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34화 (234/628)

제234화

주변이 술렁였다. 지크의 도발적인 행동과 직접 확인해보라는 말의 뜻은 한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 여자랑 한 번 붙어 봐라, 그런 소리냐?”

사내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그러나 결투를 무서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엔 가소로움마저 느껴졌다.

“너는 내 친우가 드웨인 양을 가르칠 수준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물론이다. 아무리 마법이 재능의 학문이라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저 정도 나이의 마법사가 남을 가르치겠다고? 웃기는 일이지.”

“그러니까 직접 확인을 해보란 거야.”

뒤에서 지크와 사내의 말싸움을 쳐다보던 라일라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저 녀석은….”

기가 찬 모습이 역력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괜찮아.”

시비는 그들이 걸린 것이지 건 것이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렇지? 적어도 지금은 그렇잖아? 그저 드웨인 양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고 있을 뿐이니까.’

엘레나를 속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계획 때문에 쿡쿡 아파오는 양심을 그녀는 억지로 내리눌렀다.

“그래도 제 탓이니 중재를 해야….”

“내가 괜찮다고 했지?”

나서려는 엘레나를 라일라가 잡았다.

“걱정 마. 지크는 저래 봬도 사건 해결은 확실히 하는 녀석이니까.”

그 와중에 제 마음대로 일을 키우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해결은 해결이니까.’

라일라는 다시 한번 소리치는 자신의 양심에서 고개를 돌렸다.

“할 거야, 말 거야. 말 거면 지금부터 우리한테는 신경을 꺼라. 네 그 잘난 마법 공부나 열심히 하고. 응?”

지크가 마치 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사내의 어깨를 토닥였다.

탁!

사내가 차갑게 지크의 팔을 쳐냈다.

“좋아.”

그가 이를 드러냈다.

“마침 잘 됐어. 나도 방에 처박혀서 마법 공부만 하는 게 지긋지긋했는데, 한 판 붙는 것도 나쁘지 않지. 겸사겸사 감히 교육자를 자칭하는 머리 나쁜 사기꾼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켜주는 것도 좋겠어.”

“어, 어이. 진짜로 할 거야?”

사내의 동료로 보이는 자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하지. 오히려 잘됐어. 다른 녀석들과의 결투는 학파의 사이가 어떠니 하면서 거의 허락해 주지 않잖아. 그런 면에서 이 녀석들과의 결투는 괜찮을 거야. 누가 봐도 떠돌이잖아.”

“하지만 스승님이나 마탑의 높으신 분들이 곱게 보지 않으실 텐데.”

“잔소리 좀 듣고 말지. 시비가 걸렸는데 물러서는 것도 우리 학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잖아.”

“얘기 중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누가 봐도 시비는 네가 걸었어. 은근슬쩍 책임을 이쪽으로 미루지 말아주겠어?”

빙긋이 웃으며 지크가 끼어들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마. 난 그런 쓰레기 같은 행태 정말로 좋아해. 역시나 이 세상에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널려있구나, 그런 놈들에 비하면 난 얼마나 선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인생이 정말 보람차게 느껴지거든. 한데 내 친우와 친우의 제자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런 천박한 행태를 보는 걸 꺼려할 거야.”

“…쓰레기?”

사내의 눈이 험악해졌다. 지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크고 과장되게.

“설마 본인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 거야? 이야, 나도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나를 넘어선 무언가네. 무양심의 근본이라고 할까? 아니 아니. 이건 인식의 문제일까? 본인이 쓰레기라는 걸 인식할 수 없는 뭐 그런 건가?”

“이 자식이!”

사내가 지크의 멱살을 잡았다. 지크는 반항하지 않았다.

“천박한 언행이 마법사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쇳덩이 들고 설치는 무식한 놈들이겠지! 그런 놈이 감히 내게 그딴 모욕을 해?”

“싫은 소리 좀 들었다고 바로 폭력을 쓰다니. 천박이라는 단어는 어느 쪽에 어울릴까? 품위 있게 대화로 해결하려는 나? 아니면 지금처럼 폭력을 사용한 너? 오거에게 먹히기 직전인 고블린에게 물어도 정답을 틀릴 것 같진 않군. 아, 그러고 보니 너는 정답을 모르지? 실례했어. 아무리 고블린보다 모자란 놈이라도 사람의 정면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무례한 일이지. 응응.”

엘레나는 가볍게 입을 벌렸다. 사내가 화를 내고 지크는 빙글빙글 웃으며 조곤조곤 말한다. 하지만 그 조곤조곤한 말의 내용은 절대 어조와 어울리지 않았다.

“놀랐니?”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저분은…. 그….”

엘레나가 지크를 보며 말을 더듬는다. 그녀가 본 지크는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예를 갖추고 그녀의 마법 공부에도 간간이 참여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다툼을 일으키고 있는 사내는 아무리 봐도 그녀가 갖고 있던 지크의 이미지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원래 저런 녀석이야. 인간성 나쁘고 제멋대로에 자기를 쓰레기라 부르는 걸 개의치 않아. 그리고 적에게는 특히 더 잔인하지.”

“…나쁜 사람인가요?

“글쎄?”

라일라는 지크를 쳐다봤다.

“인간성은 절대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녀석이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일까? 적어도 일반인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고 심술부리는 것도 나쁜 놈에게만 해. 친절한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말이야.”

엘레나는 자신을 격려해주던 지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음, 지금 저 녀석을 표현하자면….”

라일라가 손가락 하나를 들고 말했다.

“성격 나쁜 좋은 사람 정도는 될걸?”

“…뭔가 복잡한 성격의 사람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나도 골치 아프단다.”

“좋아!”

두 사람의 말은 터져 나온 큰 소리에 끊겼다.

“지금 당장 결투다! 일단 저 여자에게 마법의 어려움을 보여주마! 교육 운운한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똑똑히 보여주겠어!”

사내가 흥분해 소리쳤다. 아직 지크의 멱살은 잡고 있는 채였다.

“그리고 다음은 너다.”

살기가 번들거린다.

“도망칠 생각은 마라! 마법사와 검사의 1대1이다. 1대1이면 검사가 유리한 건 알겠지? 이 내가 핸디캡을 지어주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네 놈도 나랑 결투다! 알겠냐!”

지크가 피식 웃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짜증나고 열불 날 정도로 극도로 재수 없게.

“좋아. 얼마든지 해줄게. 하지만 그전에 넘어야 될 태산이 있다는 건 알지?”

“오냐! 당장이라도 거꾸러뜨려 주마!”

“그럼 그렇게 하자고.”

지크가 사내의 멱살을 쳐냈다. 그리고 라일라를 쳐다봤다.

“들었지?”

“아주 잘 들었어.”

라일라가 새침한 얼굴로 지크의 옆까지 걸어 나왔다.

“당신과 결투를 하면 되는 거죠?”

“그래!”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지금 당장!”

* * *

지크 일행은 마탑의 지하로 내려 왔다. 아무래도 마탑의 지하에는 마법사들 간의 결투를 위한 결투장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려온 건 결투의 당사자들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소문이 난 건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결투장을 감싸고 있었다. 대부분이 마법사들이었다.

상당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 소리를 들어보면 내기까지 성립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나 많은 이의 시선이 모인다면 상당히 긴장을 하는 법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덤덤했다. 오히려 시큰둥하다고 표현해야 될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 상대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아무래도 라일라의 상대는 엘레나도 알고 있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단다.”

“그, 그래도…!”

“괜찮아, 아가씨.”

결투장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작은 담장에 등을 기대 앉으며 지크가 엘레나를 만류했다.

“굳이 상대의 정보 같은 걸 들을 필요는 없어. 라일라는 정말로 끝내주게 강한 마법사거든.”

“훗!”

라일라가 작게 웃었다. 이번 결투의 승리를 완전히 자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다? 그냥 한숨 쉬며 밀린 빨래 처리하듯 담담하게 끝낼 줄 알았는데. 너도 은근히 내켜하고 있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라일라는 결투장 건너편의 사내를 쳐다봤다. 그는 친우인 듯한 몇몇과 같이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다.

라일라의 표정이 변했다. 눈에 작게 살기가 어리고 입에 불길한 미소가 어린다.

“저 녀석, 태도가 드웨인 양을 엄청나게 깔보고 있었지?”

“그렇지. 저렇게 태도로만 자기 기분을 내비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 아닐까? 저런 녀석들이 많아진다면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말이란 게 없어도 될 거야.”

“태도로 보나 주변의 반응으로 보나 그 나이 대에서는 손에 꼽히는 마법사가 분명하긴 할 테지만, 그래봤자 그 나이 대의 마법사잖아?”

라일라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런 어쭙잖은 자식이 감히 내 제자를 무시해?”

‘이건 화났군.’

지크는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라일라와 맞붙게 될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는 이미 결투장 위로 올라가 있었다. 비싼 지팡이를 여봐란 듯 땅에 툭툭 두드린다.

하지만 지크에게 그 지팡이는 반 쯤 썩은 허약한 나뭇가지보다도 못 하게 보였다.

“갔다 올게.”

라일라가 저벅저벅 결투장 위로 올라간다.

옆을 보니 엘레나가 상당히 불안한 눈으로 결투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봐, 아가씨.”

그녀가 지크를 쳐다본다.

“아가씨를 가르치겠다고 나선 마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 * *

우웅!

결투장 주변으로 마력이 흘렀다. 결투장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담장 위로 옅은 반짝임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계네.’

과연 마탑의 결투장. 아무래도 검사나 전사 같은 부류의 결투보다는 마법사들간의 결투가 주변에 피해를 끼칠 확률이 크니만큼 이런 결계를 만든 모양이다.

대부분의 인원들 즉, 구경꾼들은 담장의 바깥에 있었다. 안에 있는 것은 지크와 엘레나 그리고 사내의 지인들인 듯한 몇 명뿐이다.

물론 라일라에게 대단한 결계는 아니다. 콧방귀를 뀌며 찢어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선 저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리고 라일라도 대단한 마법을 구사할 생각은 없었다.

“시작 신호는 이게 떨어지면 시작한다. 불만 없지?”

사내가 동전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상관없어.”

“승부는 누군가 한 명이 전투불능이 되거나 항복 선언을 할 때다.”

“좋아.”

사내가 동전을 튕겼다. 높이 솟아오른 동전은 빙글빙글 돌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사내와 라일라의 시선이 동전을 쫓았다.

탕!

동전이 바닥에 닿아 튕겼다.

“윌! 웨인! 콘! 미스윈!”

사내가 지팡이를 들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팡이에서 강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자들 속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온다. 엘레나도 작게 탄성을 지르는 걸 보니 그녀도 사내의 실력에 감탄한 모양이었다.

“대단한 건가?”

지크가 그녀에게 물었다.

“네. 영창의 속도나 발음도 좋고 마력의 운용도 좋아요. 역시 마탑의 기대주답네요.”

“그래?”

“선생님 수준의 마법사랑 있으면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아닌가요?”

“아니, 라일라가 수준 있는 마법사는 맞는데….”

“아, 그런데 선생님은 왜…!”

사내에 비해 라일라는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 순간, 사내의 마법이 완성돼 라일라에게 쏘아졌다. 그 때까지도 라일라는 지팡이를 늘어뜨린 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소용돌이를 치는 화염의 궤적에 라일라의 몸이 그대로 노출되려는 순간이었다.

딱!

라일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퍼엉!

거세게 질주하던 화염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라일라는 자신의 옷에 묻은 불똥을 탁 털었다. 그리고 얼빠지게 자신을 보고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거만하고 오만하게

“저 녀석은 그냥 수준 있는 마법사 정도가 아니라서.”

지크의 말은 엘레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엘레나의 눈이 이보다 더 빛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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