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지크와 라일라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부터 엘레나에 대한 강습을 할 예정이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마탑이었다.
원래는 성 밖 들판에서 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마법이란 것이 주변에 피해를 많이 끼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도시 안에서는 제대로 시연을 하기도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레나가 난색을 표했다.
아무래도 높으신 분의 손녀인 그녀가 허락도 없이 도시 바깥으로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도시 안에서 미완성 아티팩트를 파는 것도 아버지의 비호가 있기 때문. 그 아버지도 그녀가 도시를 나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마탑이었다.
마법사들을 위해 지어진 마탑은 돈을 받고 일정 기간 마탑의 공간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자체 연구실을 가지지 못한 마법사들과 스누위크의 명성을 보고 찾아온 떠돌이 마법사들에게 해주는 지원이기도 했다.
물론 마탑이 얻는 금전적 요소도 매력적이었다.
“그래도 용케 마탑의 공간을 빌렸네. 돈이 없어서 미완성 아티팩트를 가져다 파는 처지 아니었나?”
지크의 중얼거림에 라일라가 답했다.
“그래도 부잣집 아가씨라고 어느 정도 돈은 있었던 모양이야. 그게 마법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한참 모자랐을 뿐이지.”
“어이구. 그렇게 많이 필요한 돈을 미완성 아티팩트를 팔고 모으려 했다고?”
“그만큼 다급했단 거지.”
아무래도 엘레나의 마법에 대한 의욕이 마법사인 라일라에게는 무척이나 기특했는지 라일라는 엘레나에 대해서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여기예요!”
둘이 마탑 앞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해 있던 엘레나가 크게 팔을 휘저었다. 주변의 시선이 쏠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라일라에게 뛰어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녕, 드웨인.”
일단 선생과 제자로서 관계를 맺고 마법을 가르치기로 했지만 이렇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아직 어색함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상대가 저렇게 존경과 경이를 듬뿍 담아온다면 더더욱.
하지만 한편으로는 엘레나가 안쓰럽기도 했다.
얼마나 마법을 배우고 싶었으면 마법을 가르쳐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낯선 사람을 이렇게 친근하게 대할까.
‘정말로 이 아이의 문제는 잘 해결해줘야겠어.’
엘레나 드웨인과의 만남은 철저하게 계획 하에 이루어졌지만 적어도 엘레나의 소망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라일라는 바랐다.
“그런데 이 분은….”
라일라의 곁에 도착한 엘레나가 지크를 쳐다봤다.
지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또 보는군, 드웨인 양.”
“네, 안녕하세요. 지크 씨라고 하셨었죠?”
“맞아.”
마주 인사를 하면서도 엘레나는 힐끔힐끔 라일라를 쳐다봤다.
왜 지크가 같이 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는 것 같았다.
라일라가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도우미야. 마법의 예시를 보여주려면 표적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
“표, 표적이요?”
엘레나가 경악했다.
설마 살아있는 인간을 마법의 표적으로 사용한단 말인가.
하지만 정작 표적이라고 불린 사람은 놀란 기색이 없다.
오히려 피식 웃으면서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게 엘레나에게 말했다. 물론 라일라에게도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였다.
“보시다시피 저 녀석은 성질이 여간 더러운 게 아니야. 살아있는 사람을 마법 표적으로 삼으려 할 정도로 잔혹한 놈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긴장 풀지 말고 있다가 내가 도망치라고 하면 무조건 뛰어….”
“헛소리도 정도껏 해.”
라일라가 지크의 목덜미를 잡고 쭈욱 당겼다.
그 보라며 지크가 엘레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보다시피 이런 사이야. 이 녀석을 데려 온 건 네 마법에 뭔가 도움이 될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데려온 거고. 실력은 확실한 놈이거든.”
“그분도 마법사인가요?”
“아니. 칼질하는 놈이야. 하지만 걱정 마. 칼질하는 놈이라도 마력 제어 같은 건 나와 필적하는 놈이니 분명 도움 될 때가 있을 거야.”
엘레나는 놀랐다. 칼질 하는 놈이라고 칭할 정도면 분명 기사나 전사 같은 사람일 터.
한데 그런 사람의 마력 제어가 마법사, 그것도 라일라 같은 대단한 마법사와 동급이라니.
마력을 깨우치지도 못한 엘레나로서는 지크 또한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여기서 계속 서 있는 것도 그러니 안내를 부탁할게, 드웨인 양.”
“아, 그럴게요!”
지크의 말에 엘레나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는 둘을 마탑 안으로 안내했다.
셋이 마탑 안으로 들어가자 주위에 시선이 쏟아졌다.
“주변의 관심이 엄청나네. 그런데 이번엔 너 때문이 아닌 것 같다, 라일라.”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외모 덕에 라일라가 나다닐 때는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지금의 시선은 평소에 받던 시선이 아니었다.
“…아마 저 때문일 거예요.”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역시 아가씨의 드웨인이란 성은 마탑주와 연관이 있나?”
“할아버지세요.”
“흐음, 어찌 된 일인지 대충 예상은 가는군.”
지크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게 끝. 더 이상 질문 같은 건 없었다.
“…더 안 물어보시나요?”
“굳이 그래야 할 필요 있나? 시선의 의도를 알았으니 됐어.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게 조금 기분이 더럽지만.”
“그게….”
“됐어, 아가씨. 예상은 가지만 그 이유를 우리가 알 필요는 없어. 우리는 아가씨에게 마법을 가르칠 뿐이니까. 그러니까 허리 펴라고, 아가씨.”
지크가 라일라의 어깨를 잡고 위로 들어 올리듯 힘을 줬다.
“적어도 우리에게 죄책감 같은 건 갖지 말라고. 남의 시선 따위는 길가에 뒹구는 돌멩이보다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우리거든.”
“그건 너뿐이야.”
라일라가 지크를 타박했다. 하지만 엘레나에게는 자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저 녀석의 말이 맞아. 내가 네게 마법을 가르치려 한 건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남의 시선은 상관없어. 그러니까 너도 떳떳하게 굴렴. 알았지?”
“…네!”
엘레나는 지크의 말처럼 허리를 곧게 폈다. 보폭을 조금 더 넓게 하고 팔도 자신감 있게 흔들었다.
애초에 자존감과 자신감이 넘치던 게 엘레나 드웨인이란 소녀였다. 막다른 길목에 몰린 것과 마찬가지인 지금의 환경 때문에 옛 모습을 많이 잃고 있었지만, 어떤 계기만 있다면 바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방 예약했어요.”
카운터에 고개를 쭉 내밀고 엘레나가 그렇게 말한다.
그 안에 있는 사람도 엘레나를 알아 본 모양이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직무에 투철했다.
“예약자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엘레나 드웨인이요.”
앞에 있는 서류 몇 개를 뒤져보던 직원이 그중 하나를 쑥 뺐다.
“사인 부탁드릴게요.”
엘레나는 펜을 잡고 잉크를 찍은 뒤 자신의 사인을 휘갈겼다. 그 사이 직원은 서랍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엘레나가 사인한 문서를 직원 쪽으로 내밀었다. 직원은 그 문서를 받은 후 열쇠를 건넸다.
엘레나가 열쇠를 챙길 때 직원이 빌려줄 방에 대한 설명과 대여 기간 그리고 대략적인 주의사항을 말했다.
“가죠!”
엘레나가 앞장서자 지크와 라일라가 그녀를 뒤따랐다. 그들의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호기심을 띄고 꽂혔다.
지크 일행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3층을 지나 진짜 마탑이라고 할 수 있는 4층에 진입했다.
아무래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높은 층수를 배정하는 마탑의 특성상 대여용 방은 낮은 층에 배치되고 있었다.
엘레나가 배정받은 방은 4층이었다.
“저기네요.”
좁은 복도를 지나 엘레나는 목적지인 방을 찾았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그마한 방이 보였다.
“죄송해요. 제 수준에서 빌릴 수 있는 방이 이게 최고라….”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라일라가 엘레나를 격려하며 먼저 방에 들어섰다. 지크도 그녀들의 뒤를 이어 들어갔다.
철컥!
문을 닫고 방을 살폈다.
돌로 만들어진 벽과 천장.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방은 무척이나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역시 마탑은 마탑이라고 해야 할까. 결코 평범한 방은 아니었다.
지크는 가장 가까운 벽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마력이 돌고 있군.”
벽 너머로 도도하게 흐르는 마력이 확연히 느껴졌다.
“마탑을 설계할 때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요. 방의 바닥, 벽, 천장에 흐르는 마력 덕분에 저급 마법은 이곳에 상처를 입힐 수 없어요.”
엘레나의 설명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방이었지만 책상과 의자 몇 개는 있었다. 셋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일단 네가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는 엘레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곧잘 대답했지만 몇몇 개의 질문에는 헷갈려 하거나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했다.
“대부분 화염 계통을 공부했네?”
“네.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몸을 담고 계신 학파가 그쪽이 강하다보니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에 상대했던 엘레나 드웨인도 화염 마법이 특기였었다.
“마법진 수준은 네가 만든 미완성 아티팩트로 넘칠 정도로 봤고, 이번엔 한 번 영창을 해볼래?”
“네!”
엘레나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이 들썩거리며 뜻 모를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아닌 지크로서는 도무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를 음성이다.
그러나 말을 하는 엘레나도 듣는 라일라도 모두 그 말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모양이었다.
“잘하네. 발음도 뚜렷하고 버벅이는 것도 없고.”
라일라의 칭찬에 엘레나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그 뒤로도 라일라는 엘레나에게 여러 가지를 시켜봤다. 엘레나는 그것들을 곧잘 따라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은 무척이나 잘 다져져 있고 응용력도 좋아. 정말로 대단한데?”
“감사합니다!”
엘레나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소모해온 시간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라일라가 인정해준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라일라의 말에는 또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마력만이 문제였구나.”
“…네.”
“혹시 네 마력을 탐색해 봐도 되겠니?”
“네. 하지만 소용없을 거예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몇 번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셨거든요.”
아무리 적은 마력이라도 저 두 사람은 충분히 탐색해낼 능력이 있다.
하지만 둘 모두 그 어떤 마력의 흔적도 느끼지 못했다.
마력이 해방되지 않았다는 완벽한 증거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엘레나는 라일라에게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헛된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라일라가 엘레나의 몸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력을 흘려넣어 탐색을 시작한다. 하지만 라일라의 마력은 그 어떤 장애도 받지 않고 유유히 엘레나의 몸을 흘렀다.
엘레나의 몸에 마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어때요?”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발견하지 못하겠구나.”
엘레나가 고개를 떨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