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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31화 (231/628)

제231화

라일라와 엘레나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미 엘레나는 처음 만난 사이의 어색함을 완전히 던져버렸다.

마력 하나만 빼면 무척이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엘레나는 알아챘던 것이다.

‘이 사람, 진짜로 엄청난 마법사야!’

마치 마탑주이자 스누위크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고 칭송되는 그녀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물론 오래 전 이야기였다. 그녀에게 마법적 재능이 없다는 게 확실시 된 이후로 윌위스는 엘레나와 마법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종종 아버지인 올랜드와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아쉽게도 올랜드와의 대화는 그녀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엘레나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당연히 아까의 경계심은 뜨거운 물에 얼음 조각을 떨어뜨린 것처럼 무척이나 쉽게 녹아내렸다.

생각을 해보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마법에 목말라하는 좋은 집안의 아가씨 앞에 그녀의 소망을 이루어줄 대단한 마법사가 나타난 것이다. 공교로워도 너무 공교로웠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대화에 빠져 있었다.

라일라가 미완성 아티팩트 하나를 또 집어 들었다.

“이건 철저하게 정통 방식으로 만들었네요.”

“변화는 기본 뒤. 일단 뿌리부터 튼튼해야 하니까요. 여러 변칙적인 것을 만들 때에도 꼭 하나는 정통적인 것을 만들고 있어요.”

“좋은 생각이에요.”

라일라의 칭찬에 엘레나의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곧 이어진 말 때문에 기분은 바로 역으로 곤두박질쳤다.

“좋은 분에게서 배웠나보군요.”

“…그렇죠.”

엘레나의 어조가 눈에 띄게 낮아진다. 지금까지 신나게 떠들던 그녀답지 않은 모습.

엘레나가 마법을 배운 건 그녀의 할아버지인 윌위스 드웬인에게서다. 당연히 그녀를 가르친 사람에 대한 주제가 나온다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의 양심이 욱신댔다. 그녀의 양심은 지크처럼 오리할콘으로 도배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엘레나와의 대화는 그녀에게도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말도 잘 통하고. 재능도 있어.’

과연 아무리 무리를 짓고 있었다 하더라도 마왕이 된 지크를 죽인 자들 중 한 명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런 만큼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좋은 쪽으로 향할 것이다. 일단은.

‘마음을 다잡고!’

“왜 갑자기 기운이 없어졌나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엘레나가 급히 얼버무렸다. 라일라가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그, 그게….”

엘레나가 라일라의 눈치를 힐끔힐끔 본다.

‘말해도 될까.’

아무리 눈앞의 여자와 가까워졌다고 해도 갑자기 민감한 가정 사정까지 말하는 것에는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소라면 고민도 하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엘레나는 라일라라는 이야기 통하는 사람과 어색한 분위기가 되기 싫었다.

결론은 타협. 자세한 사정은 뭉뚱그리면서도 어느 정도는 설명을 하기로 했다.

“더 이상 그분에게 마법을 배우지 못하게 됐거든요.”

“어머, 미안해요. 조심성 없는 말을 해버렸네요.”

“괜찮아요.”

“그래도 곧 다른 좋은 스승 분을 찾으실 거예요. 당신 정도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눈여겨 볼 사람은 많으니까요.”

엘레나가 고개를 숙였다.

“뭐, 뭔가 제가 또 잘못 말한 게 있을까요?”

“…누구도 절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전 재능이 없으니까요.”

“‘재능이 없다’라는 건 예전에 옆 점포의 마법사 분이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나요?”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재능이 있으면 뭘 하나요. 아티팩트의 마법진을 잘 만들어내고 영창을 틀리지 않고 외우더라도 마력이 없으면 전혀 쓸모없는 기술인데요.”

절망스러운 내용이지만 엘레나의 말은 차분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녀의 절망감을 잘 드러냈다.

대체 이렇게 차분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울고 얼마나 좌절했을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마법을 사랑했을까.

라일라는 엘레나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이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포기한 건 아니죠?”

엘레나가 라일라를 올려다본다. 엘레나의 눈 밑이 퀭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마법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라일라의 시선이 엘레나가 항상 들고 다니는 마법서에 꽂혔다.

“…그렇죠.”

“지금 이 장사도 마법을 배울 돈을 벌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맞나요?”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드웨인 씨? 제게 마법을 배워보는 건.”

“네?”

엘레나가 멍청하게 대답했다.

“제게서 마법을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요. 아, 떠돌이 마법사라 신뢰가 안 가….”

“아, 아뇨! 그건 아니에요!”

엘레나가 급히 부정했다.

“그러면 정해졌네요!”

라일라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전 마력이….”

“아직 마력이 없다고 정해진 건 아니에요.”

“그래도 지금까지 마력을 해방시키지 못했다면 마력이 없거나 드래곤급의 마력일 거라고 할아… 제게 마법을 가르쳐주신 분이 말씀해 주셨는걸요. 그리고 후자는 현실성이 없죠.”

“그건 맞아요. 하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 해방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요. 게다가 정말로 희귀한 일이겠지만 혹시 당신이 정말로 드래곤급 마력을 가지고 있을지 누가 아나요?”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서 희망찬 말을 듣는다.

그러나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로 극렬하게 낮은 가능성이에요.”

엘레나의 어깨가 늘어졌다.

“하지만 알고 계셨잖아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신 거죠? 그럼 거기에 손 하나 정도는 얹어 드릴게요. 아, 물론 오래는 못 해드려요. 저는 떠돌이 마법사거든요. 어떤가요?”

엘레나는 갈등했다. 그러나 그리 길진 않았다. 자신의 길을 응원하는 자는 아버지뿐. 하지만 계파가 갈린데다가 상당히 바쁜 몸인 아버지에게 배우기는 마땅찮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마법을 배울 길 하나가 생겨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엘레나는 크게 고개를 숙였다.

* * *

임시 선생과 제자로 관계를 고치고 다시 얘기를 나누던 라일라와 엘레나. 그들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얘기는 잘 나눠봤어?”

지크였다.

“벌써 왔어?”

“벌써라니. 하늘 좀 봐. 조금만 있으면 해가 완전히 떨어질 거야.”

그의 말처럼 하늘에는 짙은 노을이 깔려 있었다.

“그렇게 시간관념이 무너질 정도로 얘기에 열중했다면 대화는 잘 통했나 봐?”

“아, 그렇지. 말해줄 게 있어.”

라일라가 옆에 엘레나를 세운다.

“잠시 이 아이의 임시 선생님을 해주기로 했어.”

“에, 엘레나 드웨인입니다!”

그녀가 지크에게 고개를 숙인다. 지크가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짓고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름은 아까 들었습니다만 뭐, 한 번 더 듣는 것도 나쁘진 않죠. 지크입니다. 성은 없고 그냥 지크라고만 불러주세요.”

“선생님의 친우분이시면 말씀을 놓아주세요.”

“그럴까? 그럼 그렇게 할게. 내가 조금 더 연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지크는 라일라를 쳐다봤다.

“좀 놀랐어. 얘기를 한다고 가더니만 갑자기 제자를 받다니.”

“임시야.”

“그래도 제자는 제자잖냐.”

지크가 엘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의 제자라니 아마 고생 좀 하겠지만 실력과 가르치는 건 확실한 녀석이니 배워서 나쁠 건 없을 거야. 그러니 열심히 배우라고. 그리고 뭔가 이상한 걸 가르친다 싶으면 나한테 와서 이르고.”

“그런 거 없거든!”

그 격의 없는 행동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본 지 얼마 안 된 엘레나도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을 진 하늘 아래로 새로운 사제가 조용히 탄생했다.

* * *

지크와 라일라는 엘레나와 헤어졌다. 날이 저물었으니 다음 날 만나기로 한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와중, 지크는 두 팔을 쭉 펴며 말했다.

“쉽다 쉬워! 인생 이렇게만 돌아가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거기서 재미없다 라고 말하는 게 확실히 너답네.”

라일라가 투덜거렸다.

“뭐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너랑 다르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거야. 너랑은 다르게 내 양심은 멀쩡하니까.”

“역시 불편하기 짝이 없지? 그딴 양심은 빨리 버려.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려지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노력을 하라고. 양심을 버리려는 노력을. 내가 하루 이틀 노력 없이 이런 쓰레기가 됐는 줄 알아?”

“쓰레기가 되려는 노력을 대체 누가 한다는 거야!”

“이 자식 보게? 이 세상 널리 퍼져 있는 쓰레기들을 무시하냐? 그것보다 내 노력을 부정하다니! 타고 날 때부터 쓰레기로 태어난 놈들을 따라 잡으려고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따지자면 내가 마왕으로 불릴 정도의 힘을 얻으려 노력한 것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다고!”

“아, 시끄러! 닥쳐! 너랑 말을 하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니까 좀 다물어!”

지크가 물러났다. 하지만 낄낄 거리며 웃는 폼이 오히려 더 열이 뻗쳤다.

“그래도 수고했다, 라일라. 멋지게 녀석의 선생 위치를 잡았어. 이제 녀석에게 마법을 가르친다는 명분 하에 녀석의 몸을 찬찬히 조사할 수 있겠지.”

그러면 왜 그녀가 마력을 못 사용하는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소문도 날 거야. 도시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아가씨니까 웬 정체불명의 여자를 따라다닌다는 이야기는 금방 퍼지겠지. 그러면 윌위스 드웨인이나 올랜드 드웨인과 접촉할 가능성도 있어.”

그러면 의심스러운 두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속인다고만 생각하지 마. 이건 분명 엘레나 드웨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그나마 그게 구원이야.”

라일라가 한숨 쉬었다.

“그래도 너 재능있던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이놈이 또 무슨 헛소리를 할까. 라일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크를 바라봤다.

“주변 정보를 모으면서 네가 잘 하고 있나 중간 중간 정찰하러 갔었거든. 이야, 나도 감탄했어. 아무리 경계심이 허물어진 상대라고 해도 그렇게 잘 속여먹다니.”

그리고 지크는 지금껏 웃는 낯을 싹 지우고 라일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재능이 있어. 사기를 치는 재능이. 순진한 애를 그렇게 얽어매는 폼이 아주 그냥 프로 사기꾼이던데.”

“전부 너한테 배운 거 아냐!”

“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딱히 널 가르친 게 아니야. 어깨 너머로 네가 배우고 실전에 써먹은 거지. 그런데 이렇게나 잘 통했어. 어쩌면 네 사기의 재능은 네 마법 재능과 비견될 정도로 굉장…!”

“시끄러!”

퍼억!

누군가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천박하고 큰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슬슬 남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두 사람은 그렇게 왁자지껄하며 거리를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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