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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30화 (230/628)
  • 제230화

    “아, 안녕하세요.”

    일단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어쩐 일로….”

    그녀가 우물쭈물 물었다. 혹시 자신이 판 물건에 항의를 하러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그녀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당신의 물건에 흥미가 있어서 말입니다.”

    지크가 말했다. 엘레나가 눈을 깜박였다. 그녀는 정말로, 진심으로 저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때문에 제대로 된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지크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엘레나가 판 미완성 아티팩트였다.

    “그게 왜…!”

    엘레나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허겁지겁 일어서 지크가 들고 있는 미완성 아티팩트를 빼앗듯 가져갔다.

    무례한 반응이었고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지크는 순순히 그것을 그녀에게 넘겨줬다.

    엘레나가 그 미완성 아티팩트를 쓸어봤다. 모습은 예전과 같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재능 없음을 찌르듯 자극하는 것 같던 철의 냉랭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온기를 뿜는 것 같았다.

    “…마력이 들어 있어.”

    ‘감각은 멀쩡하군.’

    냉정하게 엘레나의 상태를 보던 지크가 생각했다.

    홀린 듯 미완성 아니, 이제는 ‘미완성’이라는 수식어를 떼야 할 아티팩트의 변화를 엘레나는 바로 알아챘다. 아티팩트에 흐르는 마력을 느낀 것이다.

    ‘아니, 오히려 뛰어난 편인데?’

    마법을 담기 힘든 철인 만큼 아무리 아티팩트로 완성시킨다 해도 그 안에 담긴 마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엘레나는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철 안에 담긴 마력을 바로 눈치챘다.

    지크가 아는 엘레나 정도의 재능이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마력 감각이 멀쩡하다면 그 봉인이란 걸 발견하는 게 더 힘들 수도 있겠어.’

    뛰어난 마력 감각을 가진 그녀 자신조차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만큼 교묘한 봉인이란 소리다.

    ‘봉인은 발견했지만 풀지 못했다는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천하의 마탑주씩이나 돼서 손녀에게 마법을 관두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수를 총동원해서 봉인을 풀려 했겠지.’

    엘레나가 눈을 감고 아티팩트를 들어봤다.

    아티팩트가 살짝 떨렸다. 마력이 움직이며 은은한 열기가 퍼졌다.

    퍼엉!

    위로 불꽃이 솟았다. 마치 붉은 꽃봉우리가 허공에 녹아들며 마지막 호흡을 내뱉는 것 같은, 몽환적인 불꽃.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대단하군.’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지크는 감탄했다.

    엘레나가 판 아티팩트는 별거 아니었다.

    짧은 사정거리의 불길을 발사하는 아티팩트. 그러나 철이라는 재료를 생각하면 그 정도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철로 쓸모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마법사는 라일라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엘레나의 그건 충분히 훌륭했다. 철판 양면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이 서로 호응하며 불꽃을 효율적으로 조종한다.

    지크는 마법의 대단함을 알아보는 건 확실히 마법사보다는 떨어진다. 그러나 철판에서 뻗어나간 불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적을 타격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쓸모없이 주변으로 흩어지는 불꽃이 별로 없어. 약한 위력도 최대한 화력의 집중을 해 보완했고.’

    더 놀라운 점은 엘레나는 저 마법진을 단 한 번도 시험해보지 못했단 것이다. 오직 이론만 계산해서 저 결과를 도출해냈다는 것.

    ‘마법진이나 아티팩트에 한해서만은 또래에서 따라올 자가 없겠군.’

    아니, 어쩌면 마탑에서도 최고일 수도 있었다.

    엘레나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자신의 아티팩트가 잘 작동하고 있단 걸, 자신이 새긴 마법진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

    눈앞에 있는 지크 일행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저질 재료로 만든 아티팩트가 대부분 그렇듯 그녀가 철로 만든 아티팩트 또한 횟수가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손님의 아티팩트 중 한 번의 횟수를 날려버린 것이다.

    “죄, 죄송해요!”

    그녀가 급히 고개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였다.

    “다, 다른 걸로 보상해 드릴게요! 아니면 환불을…!”

    “아뇨, 괜찮습니다.”

    지크는 아티팩트를 다시 건네받으며 선량하게 미소지었다. 그의 미소를 목격한 동료들의 표정이 일순 굳었지만 엘레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그렇지만 솔직히 대단한 아티팩트는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상대의 말은 사실이었고 자기가 잘못한 것도 있기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계속된 무시와 실패 때문에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진 엘레나는 예전처럼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내밀 수 없었다.

    “하지만 아티팩트에 마력을 불어넣지 못할 뿐, 당신의 아티팩트 제작 솜씨에는 조금 관심이 생겨서 말이죠.”

    “그, 그런가요?”

    자신의 장점을 알아주는 사람. 엘레나의 마음이 부풀었다.

    “그래서 당신과 제 일행이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잠시 시간이 될까요?”

    지크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라일라가 앞으로 나섰다.

    “라일라라고 해요.”

    앞으로 내밀어진 손과 라일라의 얼굴을 엘레나가 번갈아 쳐다봤다.

    자신의 솜씨를 인정해준 사람이라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녀는 높은 집안의 사람이기도 하다. 갑자기 다가오는 수상한 사람이 경계되는 것은 당연했다.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상하게 보이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전 정말로 당신과 대화를 한번 나눠보고 싶어요. 그냥 여기서 몇 마디 나누는 게 다이니 허락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그럼 뭐….”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라일라의 손을 잡았다.

    “엘레나 드웨인이에요.”

    * * *

    지크 일행은 라일라를 두고 점포로부터 벗어났다. 라일라는 엘레나의 옆에 앉았다.

    자그마한 점포는 두 사람이 들어서자 꽉 들어찬 것 같았다.

    “어… 무슨 대화를 하고 싶으신가요?”

    엘레나가 무척 어색하게 말했다. 낯선 사람과 갑자기 얘기를 하려니 혀가 굳었다. 라일라는 웃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요. 드웨인 씨가 만든 아티팩트를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라일라가 진열되어 있는 아티팩트를 하나 가리켰다.

    “잠깐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라일라는 아티팩트를 들어 올렸다. 그것도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판에 새겨진 마법진도 특색 있는 것이었다.

    네모난 철판의 꼭짓점에 작은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 복잡한 선들이 그 마법진들을 잇고 있다.

    “네 개의 마법진을 조합한 진이라. 아이디어가 좋네요.”

    “아, 아시겠어요?”

    머뭇거리던 엘레나가 반색했다.

    “하지만 네 개의 마법진이 따로 구동되는 건 아니네요. 각각의 마법진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따와서 하나의 마법진으로 만들었군요?”

    “네! 그러는 편이 효율이 좋으니까요.”

    “발동해 봐도 괜찮을까요?”

    “네?”

    엘레나가 눈을 깜박였다.

    “저, 아시다시피 제 아티팩트는 전부 미완성이라….”

    “허락만 해주신다면 마력은 제가 넣을게요.”

    엘레나는 다시 한번 말을 잃었다. 철로 만든 아티팩트에 마력을 불어넣는 건 무척이나 섬세하고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이런 인적 드문 길가에서 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눈앞의 미인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아, 역시 상품에 손을 대는 건 좀 그런가요? 그렇다면 이것도 제가 사….”

    “아, 아뇨! 하셔도 돼요!”

    엘레나가 말했다. 그러나 눈에 스며든 의심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마탑 안에서도 철 안에 마법력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는데.’

    그러나 얼마 후, 엘레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눈앞의 일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우웅!

    라일라가 손에 든 철판에서 가볍게 진동이 일었다. 그녀의 손에서 스멀스멀 스며 나오는 마력이 철판을 두드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엘레나는 라일라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지도, 인상을 쓰지도 않았다. 어려운 일을 할 때의 땀 또한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저 평온했다.

    그리고 엘레나가 알기로, 아티팩트에 마법력을 불어넣을 때 저렇게 태연한 안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길가에서 철에 마법력을 부여하는 게 아닌가.

    그저 철에 마력을 그냥 때려 붓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도 들었다.

    당연히 그럴 때 아티팩트는 작동하지 않는다. 철에 마력을 들이붓는 거야 기사들도 가능하다. 그들의 전투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것 아니던가.

    아티팩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티팩트가 구현하는 마법에 대한 완벽하기까지 한 이해도와 아티팩트에 새겨진 마법진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을 토대로, 마력을 마법진을 따라 그린다는 느낌으로 부여해야 한다.

    그 때문에 아티팩트의 제조가 어려운 것이다. 다른 마법사들은 그래서 보조 장치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라일라의 행동에 엘레나가 의심스러워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엘레나의 의심은 점점 경악과 충격, 그리고 경의로 변해갔다. 그녀의 민감한 감각이 느낀 것이다. 아티팩트가 충실하게 완성되고 있다는 것을.

    “됐네요.”

    그리 어려운 일을 했다는 느낌도 없다. 마치 마당 좀 쓸고 왔다는 것처럼 라일라는 아티팩트를 내려놨다.

    엘레나는 아티팩트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잠시만 만져 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인세에 다시없을 보물을 받는 것처럼 엘레나는 아티팩트를 받았다. 그리고 표면을 쓸어봤다.

    아까와 같았다. 어느새 철판은 차가운 냉기 대신 은은한 온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한번 사용해 봐도 괜찮을까요?”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레나가 급히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화륵!

    아티팩트 위에 호두만한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먹잇감을 찾는 포식자처럼 거칠게 회전하고 있었다.

    엘레나가 라일라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에 존경의 빛이 가득 들어찼다.

    라일라는 그 시선에도 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은은하게 웃어줬다. 하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순진한 애를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아.’

    물론 엘레나와의 대화는 그녀도 즐거울 것 같았다. 오로지 아티팩트와 마법진만 파서 그런지 그녀가 내놓은 미완성 아티팩트들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했다.

    엘레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색다른 경험이 될 거고, 그건 라일라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녀가 껄끄러운 건 하나였다.

    ‘이것도 작전이니까.’

    엘레나와 얘기를 나누라고 해놓고 음흉하게 웃는 지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상처받은 꼬마 녀석의 곁에 너 같은,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향 같은 사람이 턱 나타나면 어떤 감정이 들겠냐. 당연히 엄청난 존경의 감정이 솟아오르면서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겠지. 그때 네가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열렬하게 빠져들걸. 그러면 끝이지. 나머지는 녀석을 어떻게 요리하냐만 남은 거야.’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라일라는 존경의 눈빛을 듬뿍 보내는 엘레나에게 어색하게 웃어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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