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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29화 (229/628)

제229화

“너랑 비슷한가?”

라일라가 묻자 옆에서 한스가 움찔하는 게 보인다.

그 ‘당하는 사람 환장하는 위치’에 있던 지크를 열렬히 괴롭힌 당사자 중 하나가 그가 아니던가.

슬쩍 지크의 눈치를 봤지만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모르지. 지금까지 얻은 정보는 떠도는 정보일 뿐이니까.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공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네가 그 아가씨 불쌍하다며 도와준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거야.”

“역시 넌 날 잘 알아.”

지크가 웃어주자 라일라가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였다.

그 반응에 지크는 더 크게 웃었다.

“소문을 들어보면 그 엘레나 드웨인이 마력을 해방하지 못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

지크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런데 너는 그 아가씨가 절대로 지금까지 해방을 못할 정도의 마력량은 아니라고 했었지?”

“그래. 그렇다고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니, 분명 뭔가 외부의 요인이 있을 거야.”

라일라가 눈을 반짝였다.

“냄새가 나네?”

“나지. 구린내가 아주 풀풀 나.”

“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나? 나는 적어도 본인도 모르게 마력을 봉인하는 방법은 모르는데?”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라일라 마저 모른다면 그 방법은 무척이나 희귀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랬기에 지크는 이번에 로브를 쓴 놈들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로브 쓴 놈들이 만든 마인들의 능력들을 생각해 봐. 하나같이 희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야. 그걸 생각하면 놈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력을 봉인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그건 그래. 녀석들은 대체 어디서 그런 것들을 가져오는 건지, 참.”

“하나 의심 가는 구석은 있잖아.”

지크와 라일라가 서로를 쳐다봤다.

“클로원.”

둘의 목소리가 겹쳤다.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체불명의 고대제국이라면 그런 괴상한 능력들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그리고 그 로브 놈들은 내가 그놈이랑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놈들이고.”

라일라가 눈을 깜박인다. 옆에 한스, 스녹이 있기에 그놈이라는 명칭을 썼지만 라일라는 그게 누굴 가리키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렌 제너드.’

“그럼 그 녀석도 클로원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아직은 그럴 수도 있다라는 것에 불과해. 하지만 조사를 할 가치는 충분하지.”

“내 기억이 온전하면 좋을 텐데.”

벌레가 파먹은 잎사귀처럼 송송 구멍 난 자신의 기억에 라일라가 한탄했다.

“없는 걸 부여잡고 답답해할 필요는 없어. 쓸데없는 일일 뿐이야.”

지크는 담백하게 말하고 이번엔 엘레나의 할아버지인 윌위스 드웨인에 대한 정보를 입에 담았다.

“윌위스 드웬인. 뭔가 굉장히 대단한 명칭과 업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거야 우리가 필요한 정보는 아니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나마 눈여겨 볼 건 엘레나 드웨인의 마법 공부를 반대하고 있다는 건가.”

마탑 안에 있던 옷 가게의 주인이 그들이 잔뜩 산 옷을 싱글벙글 포장해주면 비밀 이야기인 양 목소리를 낮춰 말했던 정보다.

“생각해보면 그만큼 대단한 가문의 사람이 점포를 내고 장사를 한다는 게 이상하긴 했어. 부잣집 딸이 취미와 호기심으로 가게를 열었다는 기색도 아니었고.”

라일라의 눈치로는 분명 그녀는 돈을 원하고 있었다. 지크도 동의했다.

“부잣집 딸이 돈을 원한다는 건, 집안의 돈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런 현상은 보통 집안의 반대가 있는 것을 하려 할 때 생기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집안과는 상관없는 돈이 필요할 테니까.”

“마법 때문이구나?”

“아마도 윌위스 드웨인은 엘레나 드웨인의 쓸모없는 마법공부를 반대하고 있고, 엘레나 드웨인은 고집을 피우며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마법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걸 거다. 그림 같은 부잣집 내의 갈등이로군.”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중 이 비슷한 이야기를 적어도 수 십 가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본인한테는 힘든 일일 거야.”

자신에게 미완성 아티팩트를 건넬 때의 엘레나는 무척이나 의기소침한 상태였던 걸 라일라는 기억했다.

다음은 윌위스 드웨인의 아들이자 엘레나 드웨인의 아버지인 올랜드 드웨인 차례였다.

“마탑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지? 다음 대 마탑주에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고 들었고.”

“미래에 마탑주가 될 자이니 지금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겠지.”

하지만 지크가 눈여겨본 건 그의 실력이 아니었다.

“엘레나 드웨인의 마법 공부를 응원하는 자라….”

“딸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두는 아버지인 걸까?”

라일라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호감이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 자신이 마법사인 만큼 아득한 시련에도 마법사를 포기하지 않는 엘레나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를 응원한다는 올랜드도 자연스럽게 좋은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수도 있고.”

“뭔가 답변이 개운치 않는데? 의심스러운 거라도 있어?”

“본인도 모르게 마력을 봉인하는 방법이란 거 말이다. 쉬운 걸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라일라는 성실하게도 지크의 말에 대응해줬다.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쉬운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그렇지. 게다가 그 대상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이 도시에서 최고 권력을 지니고 있는 마탑주의 손녀라면 그 난이도는 더더욱 올라갈 거야. 하지만 상대가 그녀와 빈번히 마주치는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난이도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지.”

“설마….”

“맞아.”

지크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난 엘레나의 가족, 윌위스 드웨인이나 올랜드 드웨인이 그 범인일 가능성도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

라일라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의 뛰어난 두뇌도 지크의 말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문득 미완성 아티팩트를 팔았을 때의 엘레나의 얼굴이 생각났다. 물건을 팔고 환한 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이 짙은 음영으로 가려지는 것 같았다.

“…네 말대로 진짜 둘 중 하나가 범인이라면 누구일 거라고 생각해?”

“그건 아직 잘 몰라.”

판단할 근거가 너무 적었다.

“엘레나 드웨인의 꿈을 막는 윌위스 드웨인이냐 아니면 그녀의 꿈을 응원하는 올랜드 드웨인이냐. 조금 더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어.”

“역시 윌위스 드웨인이 가장 수상할까? 엘레나 드웨인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잖아.”

“모르지. 윌위스 드웨인의 판단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니까. 자기 손녀가 가시밭길을 가는 걸 말리려는 것 또한 가족의 마음인 법이지. 자기편이라고 생각한 인간이 뒤통수를 치는 것도 이 세상엔 다반사고.”

너무나 많이 봐 이제 지크는 별다른 감흥조차 없는 것이 그런 배신이었다.

“하지만 올랜드 드웨인은 따로 산다고 했으니 그것도 좀 살펴봐야지.”

“윌위스 드웨인과 학파가 다르다고 했나?”

여러 마법사들이 모인 마탑인 만큼 마탑 내엔 여러 가지 집단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보통 그 집단은 마탑이라는 성질상 마법의 특성에 따라 갈렸고 알게 모르게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윌위스 드웨인과 올랜드 드웨인은 그 학파가 달랐다.

“아버지가 마탑주인데 아들은 학파가 다르다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상해.”

라일라가 말했다.

“그것들도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별 거 아닌 이유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뭘 할 거야? 정보를 계속 모을 거야?”

지크가 턱을 쓰다듬었다.

“정보 수집은 계속 해야겠지만 지금처럼 바깥에 나돌아 다니는 정보를 얻는 건 별 의미 없을 거야. 마탑의 소문이 가장 잘 흐를 마탑과 주변 상점을 싹 돌아봤으니까. 이제부터는 내부의 정보를 얻어야겠지.”

“어떻게?”

지크가 씨익 웃었다.

“당사자에게 파고들면 되지 않겠어?”

“당사자라면… 엘레나 드웨인을 말하는 거야?”

마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제자에게 하는 것처럼 지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맞아. 그녀가 어디서 뭘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고. 그녀가 뭘 원하는지도 소문으로 대충 알았어. 집안과 미래의 대한 충돌과 불안으로 주눅 들어있는 인간의 마음에 파고드는 거야 엄청 쉽지.”

“…너 지금 엄청 쓰레기 같은 악당처럼 보이는 건 알아?”

지크, 라일라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걷고 있던 한스와 스녹도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역시 지크는 지크.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뭘 새삼스럽게. 착한 일을 한다 해도 난 내가 쓰레기인 걸 단 하루도 잊어버린 적이 없어.”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라일라와 한스와 스녹은 입을 열지 않았다. 본인이 저렇게 인정을 해버리는데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아, 그리고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지크가 라일라와 어깨동무를 했다.

“계약을 잊은 건 아니지? 이건 내 취미 생활과 관련이 깊어질 수도 있는 행동이라 당연히 너도 협력을 해야 돼.”

일그러지는 라일라의 얼굴을 보며 지크가 환하게 웃었다.

“어서 와라. 쓰레기의 친구여. 네 앞길도 나와 같은 쓰레기일 뿐이다.”

퍽!

라일라의 팔꿈치가 지크의 배에 박혔다.

* * *

엘레나는 점포에 나왔다. 자신의 계획 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툼을 벌였다.

무척이나 가슴이 아픈 일이었지만 그녀는 도저히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미완성 아티팩트를 가지고 다시 점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점포를 꾸리는 동안 주변에 있던 다른 마법사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절대 곱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선.

그러나 엘레나는 오히려 더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지금이야 워낙에 주눅드는 일이 많아서 이렇게 변했다고 해도 엘레나의 원래 성격은 무척이나 강했다.

자신의 고집을 이렇게나 밀고 나갈 수 있던 것도 그녀의 원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처럼 물품들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그동안 그녀는 두꺼운 마법서를 펼쳐 시간을 때웠다.

종종 손님들이 들렀다. 그녀가 만든, 심플하지만 그렇기에 더 고풍스러운 물건들을 보고 관심을 표하는 자들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티팩트가 아니라고 하는 순간 그들은 등을 돌렸다.

인상 한번 쓰고 몸을 돌리는 사람은 그나마 나았고 뭐 이딴 걸 파냐며 욕지기를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주변 마법사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꿋꿋이 버텼다. 오로지 자신의 꿈을 위해서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버텼다.

하지만 그녀의 굳은 마음가짐도 상품을 팔게 만들 수는 없었다. 오늘도 그녀의 상품은 팔리지 않았다.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을, 그녀는 막을 수 없었다.

‘역시 안 되나.’

생각해보면 자신이라도 이런 상품을 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껏 팔린 것도 고작 하나뿐이지 않는가.

문득 그녀는 자신의 상품을 사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의 사내와 그녀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웠던 여성.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을 찬 사내와 대지의 환수를 데리고 있던 사람까지. 모두가 비웃는 그녀의 상품을 유일하게 사간 사람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나와 계시네요.”

문득 엘레나는 자신의 앞에 새로운 손님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놀랐다.

얼마 전, 그녀의 상품을 사갔던 사람들이 앞에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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