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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28화 (228/628)

제228화

그극!

엘레나가 쥔 나이프가 접시를 긁으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윌위스가 입술을 달싹인다. 이대로 계속 말을 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야하는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엘레나는 할아버지의 입이 다시 열리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네 꿈은 안다. 네 재능도 알고. 네가 마법진 조합하는 솜씨나 영창은 이 할아비도 감탄할 정도지.”

마탑주이자 스누위크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말한다.

“하지만 엘레나야. 마법은 결국 마력이 있어야 발동한단다.”

엘레나가 어렸을 때부터 보인 재능은 주변사람들의 기대를 높이 받았다. 재미있었고 재능도 있었으며 어른들의 칭찬도 가득 들을 수 있는 마법에 그녀가 빠져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녀의 마법에 대한 이해는 높아져갔다. 마법사로서 그녀의 환경은 축복받았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빨리 직접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때문에 마력을 하루라도 빨리 해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또래들이 하나둘 마력을 해방할 즈음에도 그녀의 마력은 해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쉽게 깨어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타고난 마력이 거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법적 재능과 거대한 마력이 합쳐진다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가 나올지 사람들은 떠들었다.

다음 대는 몰라도 적어도 다다음 대 혹 다다다음 대 마탑주는 이미 정해졌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엘레나는 마력을 깨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처럼 거대한 마력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마력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고 엘레나의 마력은 깨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기대는 부스러져갔다. 그리고 그곳엔 실망과 한탄이 대신 채워졌다.

결국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에게는 마력이 없다. 마법사를 꿈꾸는 아이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는 사실.

모든 기대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관심을 껐다.

그리고 그 때부터였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인 할아버지에게서 더 이상 마법 공부를 그만두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게.

“마력이 없으면 마법은 발동하지 못 해. 아무리 효율 좋고 튼튼한 물레방아가 있더라도 흐르는 물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지.”

꾸짖는 것도 닦달하는 것도 달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실이 그러하다는 담담한 음성.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엘레나에게는 더욱 잔혹했다.

“내가 네 용돈을 금지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 더 이상 마법서나 마법 재료 같은 것들을 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윌위스는 한숨을 쉬었다.

“한데 네가 만든, 아티팩트도 아닌 것들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니.”

“…사기를 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봐봐요, 할아버지! 돈도 벌었어요!”

그녀가 자신이 오늘 번 돈을 내놨다. 윌위스가 식탁 위에 놓인 동전 몇 개를 바라본다. 도저히 좋은 시선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 걸로….”

“뭐 어떻습니까, 아버지.”

순간 누군가 식탁에 들어와 윌위스의 말을 막았다. 엘레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빠!”

“왔느냐.”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엘레나도 잘 있었니?”

사내가 윌위스에게 고개를 숙인 후 엘레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사내의 이름은 올랜드 드웨인. 윌위스의 아들이자 엘레나의 아버지인 사람이었다.

상당히 전도유망한 마법사로서 다음 대 마탑주의 후보로서 거론되는 자이기도 했다.

“밥은 먹었느냐?”

“네, 먹고 왔습니다.”

그는 윌위스의 옆, 엘레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웃으며 엘레나를 쳐다봤다.

“오늘 재미있는 일을 했다더구나.”

“벌써 소문이 난 게냐?”

“엘레나는 여러모로 유명인이잖습니까.”

몰락한 천재. 대중들이 무척이나 즐겁게 씹어댈 수 있는 존재다. 게다가 그 천재가 명문가의 일원이라면 더더욱.

엘레나가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럴 필요 없다, 딸아. 너를 조롱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이 아빠는 네 편이다.”

“크흠!”

윌위스가 불쾌하게 소리를 냈다.

“네가 자꾸 그러니까 엘레나가 미련을 못 놓는 게 아니더냐.”

“그럼 어떻습니까.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마력이 있다면 내 네 의견에 찬성하겠다만 엘레나는 마력이 없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희망고문에 아이를 던져 넣자는 말이냐.”

“저도 마법사로서는 무척이나 늦게 개화하지 않았습니까. 엘레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너는 그래도 마력은 다룰 수 있지 않았느냐. 저 아이는 마력이 없어.”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저 나이까지 마력을 각성하지 못 했다면 그 마력은 과장 좀 보태서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아이의 마력이 그럴 거라고?”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법도 없죠. 게다가 아이가 원하는 걸 응원해주는 게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아이의 미래가 걸렸는데 그런 무책임한…!”

결국 목소리가 커지던 윌위스가 말을 끊었다. 윌위스의 말을 계속 반박하던 올랜드가 엘레나의 눈치를 봤다.

“…저 다 먹었으니 일어날 게요.”

엘레나가 일어섰다. 아직 그녀의 식기에는 음식이 반 이상 남아있었다. 그러나 윌위스도 올랜드도 그녀를 잡지 못 했다.

그녀가 떠나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부자는 눈을 맞추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지크 일행은 속소를 나와 마탑을 향해 걸었다.

보통 도시 같은 곳에서는 한스, 스녹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지크라 같이 행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번에는 둘 다 지크와 라일라를 따라왔다.

그들도 그 유명한 마탑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그들은 어제 미완성 아티팩트를 산 엘레나의 점포에도 들러봤다. 하지만 그녀가 점포를 냈었던 곳은 텅 비어 있었다. 오늘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거 봐 노웸! 저게 마탑이래!”

쿠우!

마탑앞에 서자 스녹과 노웸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마탑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옆에 있는 한스도 마탑과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을 쳐다 봤다.

“들어가자.”

지크가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고 마탑으로 들어갔다.

마탑 안은 넓었다. 1층은 방을 나누는 벽이 없어 탁 트여있었다. 세워진 기둥들이 탑을 지탱하고 있었다.

안으로 마법사인 듯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의외로 일반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아마도 지크 일행처럼 마탑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 같았다. 정보수집이 목적인 지크 일행과는 달리 그들의 목적은 관광일 터였다.

“마탑은 정확히 어떤 곳입니까?”

한스가 지크에게 물었다.

“여러 가지 면이 있긴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마법발전을 위해 마법사들의 모인 곳이라는 것이다.”

“마법발전을 위해서 말입니까?”

“쪽수는 힘이잖냐. 그건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야. 각자 알고 있는 것, 잘하는 것이 다르니 그것들을 교환하고 서로 도우면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 더 수준이 높아지지.”

지크가 손가락을 펴 천장 즉, 마탑의 위쪽을 가리켰다.

“마탑의 대부분은 마법사들의 연구실이야. 위로 가면 갈수록 더 실력 있는 마법사가 배정받지. 당연히 꼭대기 층은 마탑주의 것이고.”

한스와 스녹이 새삼스럽게 위를 바라봤다.

“올라 다닐 때 힘들 것 같네요.”

쿠.

스녹이 감상을 얘기했다. 지크가 피식 웃었다.

“저층, 중층의 마법사들은 모르겠지만 고층 마법사들은 비행 마법쯤은 당연히 쓸 수 있을 거다.”

“아, 그렇군요.”

지크와 일행은 마탑 1층을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상점 같은 게 많군요.”

“연구를 할 때는 밖으로 나가기 귀찮으니까. 이렇게 마탑 안에 상점이 있으면 좋지.”

한스의 이번 질문에 대한 대답은 라일라가 해줬다. 아무래도 같은 마법사이니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의 심리를 잘 알았다.

곧 그들 앞에 계단 하나가 나타났다. 지크가 층수 위에 쓰여 있는 설명문을 읽었다.

“3층까지는 개방되어 있군. 관광객들을 위한 걸 거다.”

“저희가 생각하던 마탑과는 조금 다르네요.”

스녹이 말하자 지크와 라일라가 살짝 웃었다.

“마법사들도 결국 사람이다. 돈이 필요하지. 아니,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해.”

지크 일행은 2층과 3층을 두루 둘러봤다. 3층에는 바깥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나름 고급 식당도 있었다.

지크 일행은 거기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가격대는 상당히 높았다.

끼니를 떼운 후 일행은 가게에서 나왔다.

“그럼 슬슬 본격적으로 정보를 모아볼까?”

그렇게 말하며 지크는 마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탑 소속의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은 4층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 해 일행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1, 2, 3층뿐이었다. 지크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물건을 상당히 사서 가게 주인에게 호감을 산 후 질문을 던졌다.

“여기 마탑주는 어떤 사람입니까?”

“혹시 뭐 재미 있는 이야기라도 없습니까?”

“유명한 마법사 분들은 누가 있을까요?”

“마탑주의 아드님이 무척 뛰어나다고 들었는데요.”

물론 그런 것들만 물은 건 아니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탑과 스누위크에 대한, 아무래도 상관없는 질문들도 끼워 넣었다.

딱 마탑과 스누위크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넓다고 해도 고작 3층에 있는 상점들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없다.

모든 상점들에 들어가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수상했다.

‘굳이 의심받을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지크는 마탑을 어느 정도 구경한 후, 밖으로 나갔다.

마탑 주변에도 상점은 많았다. 아무리 연구를 할 때는 마탑 바깥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마법사들이라도 마탑에만 처박혀 있진 않는다.

그런 마법사들과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게 마탑 주변의 상점이었다.

지크는 그 상점들에도 방문해 질문을 하고 다녔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인적이 서서히 사라질 즈음 지크는 질문공세를 멈췄다.

“끝났어?”

라일라가 지크에게 물었다.

“대충은.”

“얻을 만한 건 얻었어?”

“적어도 소문으로 얻을 만한 건 얻었지.”

“그럼 돌아가자.”

“왜 지루했어?”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었어.”

그건 한스와 스녹도 마찬가지였다.

지크는 질문을 던질 때만 관광객인 척을 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마탑 관광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정보를 모으기 위한 일정인지 아니면 정말로 관광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럼 됐어.”

그들은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레나 드웨인에 대한 취급에는 놀랐어.”

라일라도 옆에서 같이 정보를 들었기에 엘레나에 대한 취급을 알 수 있었다. 지크도 동의했다.

“생각보다도 더 취급이 안 좋더군. 명문가에서 나온 몰락한 천재라.”

지크는 슬쩍 마탑을 돌아봤다.

“당하는 사람 환장하는 위치이긴 하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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