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아티팩트가 아니라고요?”
라일라가 눈을 끔벅였다. 그녀로서도 설마 이 물건이 아티팩트가 아니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사내가 인상을 썼다. 그리고 엘레나를 쳐다봤다.
“설마 사기 치려고 했던 겁니까?”
“아니에요! 날 뭐로 보고 말하는 거예요! 말할 기회를 놓쳤을 뿐이에요! 지금 말하려고 했어요!”
마법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기색이었다. 지크가 끼어들었다.
“이 아가씨가 뭔가를 말하려 하긴 했습니다. 그때 당신이 끼어든 거죠. 상황을 보면 사실을 얘기하려 했던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건 다행이군요.”
진심으로 안도한 기색이다.
‘엘레나를 괴롭히거나 뭐 그러려고 끼어든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로 지크와 그 일행에게 조언을 해주려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엘레나를 무시하는 기색도 없진 않군.’
“하지만 아무리 싸게 판다고 해도 그런 가짜 아티팩트를 파는 건 그만둬 주실 수 없습니까.”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확실히 제게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로서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가 라일라가 들고 있는 철판을 쳐다봤다.
“저런 쓸모없는 것들을 판다는 얘기가 나돈다면 스누위크나 마탑, 나아가서는 여기 있는 모든 마법사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력만 넣으면 분명히 발동되는 거예요! 저것들은 쓸모없는 게 아니라고요!”
“철에 마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마법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효율이 극악일 텐데요.”
“…….”
마법사의 말에 엘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법사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대놓고 괴롭히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생각은 다른 마법사들도 품고 있는 생각이란 걸 알아두십시오.”
그리고 그는 지크 일행을 쳐다봤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차림새를 보아하니 여행자 같으신데, 아무쪼록 이 도시에서 무언가를 얻어 가시길 빌겠습니다. 그게 행복이든 지식이든 추억이든 말이죠.”
그리고 그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침묵이 좌중을 덮었다. 라일라가 품속에서 돈을 꺼냈다. 그리고 엘레나에게 건넸다.
침울하던 엘레나가 눈을 깜박였다.
“이, 이게 뭔가요?”
“뭐긴요. 돈이죠. 당신이 이 가격이라고 했잖아요?”
“…정말로 사시게요?”
“팔려고 점포 차린 거 아닌가요?”
“방금 얘기 들으셨죠?”
“물론이죠. 저도 귀는 잘 달려 있답니다.”
라일라가 옆머리를 살짝 넘겨 귀를 보여줬다.
하지만 엘레나는 여전히 우물쭈물거렸다.
“뭘 그렇게 고민을 합니까?”
지크가 말했다.
“방금 그 사람과 당신 사이에 아니, 당신이 이 도시에서 지금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우리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저 당신이 물건을 판다고 했고, 그에 대한 값을 매겼으며, 우리가 그 돈을 치르고 산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크와 라일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 * *
쇼핑을 마친 후 지크 일행은 숙소를 잡았다. 각자 방을 잡자 스녹은 마치 라일라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듯 노웸을 끌어안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지크가 방에 짐을 푸는 걸 끝내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라일라였다. 지크는 그녀와 마주 앉았다.
“엘레나 드웨인 때문에 온 거지?”
지금 그녀가 찾아올 이유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맞아.”
라일라가 조금 의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 사람 정말로 엘레나 드웨인이 맞아?”
“생긴 건 맞잖냐. 너도 동의한 일일 텐데?”
“그렇지. 내 기억 속에도 분명 그 사람은 엘레나 드웨인이야.”
하지만 라일라가 순간 자신이 기억을 잃은 것뿐만이 아니라 간신히 갖고 있는 기억조차 혹 왜곡되어 있는지 의심했을 정도로 직접 본 엘레나 드웨인은 기억하던 것과 달랐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엘레나 드웨인 같지는 않았잖아.”
“그렇지.”
지크는 회귀 전 마지막으로 본 엘레나 드웨인을 생각해봤다.
루벨라의 곁에서 로브를 펄럭이며 지팡이를 높게 든 갈색 머리의 마도사.
그 지팡이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정말로 지옥에서 소환한 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뜨거운 불덩이가 떨어졌었다.
당시 그렌 제너드의 파티 중에서도 단일 공격력만큼은 최강이었던 자. 게다가 마력도 어찌나 많은지 그 무지막지한 마법을 정말로 쉬지도 않고 퍼부어댔었다.
‘그런 녀석이 마법사도 아니고 마법도 못 쓴다고?’
지크도 한가득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 드웨인의 과거에 대해서 알아?”
“아니, 잘 몰라. 내가 그 녀석에 대해 알게 됐을 때는 이미 그렌 제너드의 파티에 들어간 상태였으니까. 터무니없는 마법사가 되어서 말이야.”
“그럼 혹시 제대로 된 스승 같은 게 없는 걸까? 집안 사정이라든가 때문에 말이야.”
하지만 라일라는 고개를 저어 스스로의 의견을 부정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미래에 용사 파티에 소속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면 교육을 시켜줄 마법사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녀석의 가문은 마법을 가르쳐주지 못할 가정이 아냐. 오히려 반대지.”
“반대?”
라일라에게 그 정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마왕이었을 때, 마탑주의 이름이 올랜드 드웨인이었다.”
“…드웨인?”
엘레나와 성이 같다. 그게 뜻하는 바는 하나다.
“가족이야?”
“아버지지.”
라일라가 입을 벌렸다.
“꽤 유명했어. 마탑주의 딸이 유명한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고 말이야.”
‘그러고 보면 그렌 그 녀석의 동료들은 신분도 엄청났군.’
카르위먼의 성녀인 루벨라, 엘프 일족의 공주인 레오나, 마탑주의 딸인 엘레나 드웨인까지.
‘그 라라 브라우닝인가도 꽤 지체 높은 귀족의 따님이었지?’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높은 신분의 동료들이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집안 사정 때문에 마법을 못 배운 건 아니겠네. 오히려 더더욱 마법에 친근해야지.”
“아까 숙소 주인에게 이 도시에 관한 것들 몇 가지를 물어봤었다. 지금의 마탑주 이름이 윌위스 드웨인이라고 하더군.”
또 드웨인이다.
“엘레나 드웨인과의 관계는?”
“현 마탑주 윌위스 드웨인에게 아들이 한 명 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올랜드 드웨인이라고 한다.”
“그럼 엘레나 드웨인은 현 마탑주의 손녀이자 미래 마탑주의 딸이라는 소리지?”
“아마도.”
그 정도면 그냥 좋은 집안이 아니다. 마법계에서는 귀족을 넘어 왕족과 다를 바 없는 권위를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집안 사정 때문에 마법을 못 배운 건 절대 아니네. 그럼 개인적 자질 문젠가?”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지.”
그건 엘레나 드웨인을 상대해본 자로서 확신해줄 수 있었다.
“혹서 너처럼 마력이 너무 거대해서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이미 라일라는 지크의 마력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엘레나가 그것과 같은 케이스가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나 그 의견도 지크는 부정했다.
“내가 타고난 마력은 드래곤에 비유될 정도야. 역사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지. 그런 나도 스무 살 즈음에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어. 아무리 마력이 많은 엘레나라도 내 마력량에 비교할 수는 없어. 노력만 했다면 이미 마력을 깨우치고도 남았을 거야.”
“…….”
“뭘 그렇게 봐?”
“아니, 아무것도 아냐.”
새삼 지크의 괴물 같음을 느꼈다.
얼마 전에 불의 거인과 충돌하던 지크가 떠올랐다. 말 그대로 호수를 뒤엎고 산을 깎아내며 땅에 흉터를 만드는 엄청난 능력.
‘괜히 마왕이라 불린 게 아니지.’
라일라는 남 몰래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크를 마왕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한층 더 단단해졌다.
라일라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지크가 눈에 힘을 뺐다.
“그래도 집안이 뭔가 복잡할 것 같긴 해.”
“엘레나 드웨인이? 대대로 마탑주를 할 정도로 집안이 빵빵하다며?”
“생각을 바꿔 봐. 그런 녀석이 남한테 무시를 당하면서 인적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잖아.”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내일부터 한 번 본격적으로 알아봐야겠어.”
“신경 안 쓴다고 하지 않았어?”
“생각이 바뀌었어.”
지크가 입술을 핥았다. 라일라는 움찔했다. 지금 지크의 모습은 사냥감을 찾는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그렌 제너드가 정말로 위선자고 로브 쓴 놈들과 관련이 있다면, 엘레나 드웨인에 관해서도 뭔가 수작을 부려놨을 가능성이 있거든. 그리고 지금 엘레나 드웨인은 정상적인 상황에 있는 것 같지 않지.”
“그건 그렇네.”
일리 있는 의견이다.
“좋아, 나도 도울게.”
“정말이냐?”
“뭘 그렇게 놀라? 내가 말했잖아. 네 취미생활을 돕겠다고. 어차피 로브 쓴 놈들이 관련 있다고 하면 네 취향을 듬뿍 담아서 취미 생활을 즐길 거잖아?”
“그건 그렇지.”
지크는 얄밉게 낄낄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라일라는 일순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해보자고. 나도 한다면 하는 여자니까. 뭐부터 할 거야?”
“오오, 의욕이 넘치는군.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맞춰줘야지.”
지크는 손을 비비며 몸을 바로 했다.
“당장은 정보 수집을 해야겠지. 그래서 말인데 라일라. 내일은 마탑에 한번 가보자고.”
둘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 * *
엘레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고급주거지에 있는 그녀의 집은 근처에 있는 집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했다.
도무지 길가의 노점을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귀가를 환영하는 사용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품 안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벌어본 돈이 들어 있었다. 얼마 안 되지만 그녀의 꿈을 향한 돈이다. 한 발 전진한 것 같아 그녀는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얼마 가지 않았다.
“엘레나 왔느냐.”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봤다. 2층에서 한 명의 노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 할아버지. 일찍 오셨네요.”
“이런 날도 있어야 인생 사는 맛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하여간 사람들이 마탑주라고 너무 부려먹으려 든단 말이야. 노인에 대한 배려라는 게 없어.”
그가 바로 엘레나의 할아버지이자 마탑의 최고 권력자. 그리고 이 도시에서는 왕과 같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인물인 윌위스 드웨인이었다.
투덜거리는 할아버지를 보고 엘레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하기 어려운 스누위크 마탑의 최고 마법사일지 몰라도 엘레나에게 그는 무척이나 너그러운 할아버지였다.
“밥은 먹었느냐.”
“아뇨, 아직이요.”
“그럼 오랜만에 같이 먹자꾸나.”
“…네.”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둘은 식당에 모였다. 식탁에는 호화로운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둘은 조용히 포크와 나이프를 놀렸다.
“오늘은 어딜 갔다 왔니.”
엘레나가 움찔했다. 순간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윌워스가 조사한다면 자신의 행적을 모를 수가 없다.
엘레나는 조용히 자신의 일을 말했다.
“…….”
윌위스는 말이 없었다. 혹시 그냥 넘어간 것일까.
하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던 윌위스의 식기가 멈춰 있었다.
엘레나도 그걸 눈치채고 힐끔힐끔 그의 눈치를 봤다.
“…엘레나야.”
윌위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그만두지 않겠니.”
또 그 말이 올 것이다.
엘레나는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고 할아버지의 걱정 어린 말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너는 재능이 없단다. 이제 그만 다른 길을 찾거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