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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19화 (219/628)

제219화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분노, 증오, 굴욕, 수치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르누가 비명을 질러댔다.

[주, 주,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

다시 한번 재생한 팔이 휘둘러진다. 팔을 이루는 불꽃이 더욱 강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콰아앙!

이번엔 팔이 사라지지 않았다. 순조롭게 목표한 곳에 꽂히기까지 했다. 르누의 입이 헤 벌어졌다.

[주, 주, 죽였…!]

“응, 아니야.”

증오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처럼 먼 곳에서 들린 소리를 뛰어난 청각으로 포착한 게 아니다. 바로 옆에서 들렸다.

[우…!]

르누가 놀라 옆을 쳐다보니 어느새 거인의 머리 부분까지 훌쩍 뛰어오른 지크가 보였다.

“일단은.”

지크가 윈두르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조금 뒤로 가자!”

전력으로 휘둘렀다.

콰앙!

불의 거인의 머리가 크게 꺾였다.

[끄에에에에!]

르누가 비명을 지르며 불의 거인의 몸체가 휘청였다.

쿵! 쿵!

중심을 잡기 위해 뒷걸음질을 했지만 상체가 기우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결국 불의 거인이 뒤로 자빠졌다.

[우…아…으…!]

불의 거인이 몸을 일으키려 팔을 버둥댄다. 그 옆으로 지크가 내려앉았다.

‘아직 멀쩡하군.’

꽤나 힘을 줘서 베었는데 르누의 거인의 머리도 소멸시키지 못했다.

‘나름 방어도 할 줄 안다는 건가.’

윈두르가 불의 거인의 머리를 직접 때리기 직전, 그것의 머리 주변으로 새빨간 불의 벽이 생겨난 걸 지크는 놓치지 않았다.

그 불의 벽은 윈두르를 완전히 막아내는 건 실패했지만 위력을 성공적으로 줄일 수는 있었다.

그 결과 불의 거인은 머리가 박살난다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다.

‘그게 녀석의 최악의 사태인지는 모르겠다만.’

혹시 아는가. 팔을 순식간에 재생시킨 것처럼 녀석은 머리조차 재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르누가 없어진다고 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팔로 대지를 짚고 상체를 일으키던 르누가 옆에 있는 지크를 알아차렸다.

[으…아…아아…!]

후웅!

손바닥으로 벌레를 잡듯 녀석의 손바닥이 지크를 덮쳐 왔다. 녀석의 팔을 이루고 있는 불꽃이 더욱 맹렬해진 것 같았다.

콰앙!

이번에도 불의 거인의 팔은 윈두르와 부딪쳐 날아갔다. 그러나 지크는 아까와는 명확한 차이를 눈치챘다.

‘이번엔 상완까지로군.’

어깨까지 날려버렸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날려버린 부위가 줄었다. 손에 느낀 압력도 분명 아까보다 거셌다.

‘강해지고 있나?’

공격도 제대로 겨냥하지 못한 조금 전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힘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으아…아아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짜증을 내는 아이처럼 르누가 소리쳤다. 불의 거인이 벌떡 일어나 지크를 공격했다.

지크는 공격을 막고 피하며 불의 거인의 몸체를 향해 윈두르를 휘둘렀다.

휘청!

이번에도 불의 거인이 균형을 잃었다. 그러나 크게 뒷걸음질을 쳤을 뿐, 아까처럼 넘어지진 않았다.

지크가 다시 한번 공격을 퍼부었다.

다시 불의 거인이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다시 공격.

지크의 공격은 무척이나 매서웠다. 불의 거인이 감히 반격할 여유를 가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불의 거인의 뒷걸음질 속도는 느려졌다.

첨벙!

멘티스를 넘어 호수까지 밀린 불의 거인이 호수에 발을 담갔다. 그 즉시 다리 근처의 호수가 끓어오르며 수증기를 뿜어냈다.

불의 거인은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호숫물이 거인의 정강이 근처에 어른거릴 때 즈음.

불의 거인의 뒷걸음질이 멈췄다.

지크가 또다시 윈두르를 휘둘렀다. 불의 거인도 마주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다시 한번 울리는 굉음. 하지만 불의 거인은 이번엔 뒷걸음질치지 않았다. 윈두르와 부딪친 팔도 멀쩡했다.

[…흐…흐흐…!]

르누가 재수없는 웃음을 흘린다. 불의 거인이 공중에 떠 있는 지크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지크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쿠웅!

호숫가에 지크가 내리꽂히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충돌음이 강했기에 지크가 큰 부상을 입은 게 아닌가 생각됐다.

그러나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타난 지크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아 보였다.

호숫가에 생긴 작은 크레이터 안에서 지크는 옷에 내려앉은 흙먼지를 툭툭 털었다.

[이…이젠 내…가…더 강…!]

“아, 그래.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더 이상 르누의 말에 관심을 갖지 않고 지크는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연합군이 철수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히 떨어졌나?’

거리도 있고 한 명 한 명이 강한 엘프들이니만큼 앞으로 조금 강렬한 전투를 한다 해도 말려들진 않을 것이다.

“이봐, 르누 언 트 드라스.”

지크가 호수로 걸어가며 말을 걸었다.

“내가 왜 네 자해를 막지 않았는지 알아?”

첨벙!

지크의 발이 호수에 잠겼다. 그는 신발과 바짓자락이 잔뜩 젖는 걸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였다면 난 널 막았을 거야. 마지막 희망까지 짓밟으려고 꿍꿍이를 일부러 내버려두는 나라도 솔직히 그 불의 나무의 마력은 위협적이었거든.”

르누의 마지막 카드가 어떻게든 그 불의 나무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상 깔끔하게 르누의 목을 날리는 게 나았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랑 달라서 말이야.”

지크는 윈두르를 내려다봤다.

성의 지하에 있는 문을 열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이 녀석은 정말로 고대 제국과 확실히 연관이 있는 녀석 같았다.

지크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사용한 마력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마력이 몸 안에서 용솟음쳤다.

‘예전에는 그다지 맛을 보지 못했지.’

비올루윈에서 한 번 모든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적이 있지만, 그때는 상당히 억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펼쳐지는 시가전이니 자칫 잘못하다간 도시를 괴멸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방해할 게 없어.’

있는 곳은 인가와 멀리 떨어진 숲속. 멘티스는 빈 도시이고 연합군도 거리가 떨어져 자기들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어느 정도 조절은 해야겠지만.’

심하게 날뛰면 멘티스 안에 있는 도서관을 날릴 위험도 존재하고 연합군이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게다가 자신의 육체가 버티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야.’

지크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우….]

르누가 움찔했다. 불의 거인이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르누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엄청난 힘을 얻었고 이제는 완벽히 통제까지 가능하다. 다른 이의 힘 따위는 자신의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한데, 고작해야 인간 한 명의 눈빛 때문에 물러서다니. 공포를 느끼다니.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르누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르누는 그 해답을 곧 얻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끔찍한 악몽으로.

“그럼 놀아보자고, 르누 언 트 드라스.”

탓!

지크가 뛰어 올랐다. 그의 손에 윈두르가 꽉 쥐여 있었다.

불의 거인도 움직였다. 두 손을 깍지 껴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손에서 맹렬한 화염이 타올랐다.

후웅!

그대로 지크를 향해 내려쳤다. 둘이 부딪쳤다.

콰아아앙!

불꽃의 압력이 사라지고 가혹한 열기가 흩어진다. 그 사이로 맹렬한 참격이 쏟아졌다.

* * *

라일라는 한스, 스녹을 이끌고 로만느와 함께 멘티스의 끝부분에 도달해 있었다.

간간이 뒤를 돌아 지크와 불의 거인의 전투를 확인하면서도 지크의 말처럼 섬을 떠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 도와줘요!”

로만느가 급히 호수의 눈물을 들어 올렸다. 라일라가 그녀의 옆에 붙어 같이 호수의 눈물에 손을 댔다.

우웅!

호수의 눈물이 가볍게 진동하며 물의 마력이 확 퍼졌다.

이번의 마력은 널리 흩어지지 않고 일정한 경계선을 그리며 밀도 있게 모여들었다. 주변으로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와요!”

“모두 경계해요!”

로만느와 라일라가 크게 외쳤다. 한스와 스녹 그리고 다른 엘프들도 급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콰아아!

마치 거센 급류를 역으로 걸어 나가면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주변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듯 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이 그들을 강타했다.

간간이 뜨거운 열기와 섬뜩한 검기의 잔재까지 그들을 때려댔다. 다행히 호수의 눈물 덕에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존재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기쁨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저 멀리 마치 신화에나 나올 법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의 거인은 대단했다. 거대한 덩치와 압도적인 열량으로 사방을 불태우고 짓이긴다.

연합군이 전부 모여도 저 불의 거인을 쓰러뜨리는 건 극히 어렵거나 심지어는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됐다.

한데 그 불의 거인이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자신처럼 신화 속에서나 튀어나올 것 같은 존재가 아닌,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쿠쿠쿠쿠쿵!

저 멀리 호수 기슭에 커다란 참격의 흔적이 새겨진다. 깊고 넓은 호수는 연신 떨어지는 마력의 폭풍에 마치 태풍이라도 직격당한 마냥 높은 파도를 출렁인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호수 근처에 있던 커다란 절벽이 마력의 칼날에 맞고 붕괴되는 모습이었다.

콰르르르르!

마치 케이크를 자르듯 비스듬하게 뚝 잘린 절벽의 모습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수의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자들은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라일라 씨? 저 지크란 사람 말이에요.”

로만느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몇 번 말을 하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닫는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꺼려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지 그녀는 결국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인간인가요?”

“일단은요.”

하지만 라일라는 로만느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체 저기서 주변 환경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며 불의 거인을 몰아붙이고 있는 자를 누가 인간이라고 생각할까.

라일라는 새삼 지크라는 존재가 얼마나 굉장하고 엄청난, 그리고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힘의 마왕 지크 모어는 괜히 탄생한 게 아닌 것이다.

“그래도 저 모습은 일시적일 거예요. 예전에도 저런 적이 있었는데 금방 돌아왔거든요.”

“아, 그런가요? 뭔가 잠깐 힘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요.”

로만느는 뭔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지크의 위험도나 그런 걸 떠나서 자신의 상식이 그나마 지켜졌을 때의 반응이었다.

때문에 라일라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시간만 지나면, 그것도 상당히 짧은 시간 내에 지크가 저런 힘을 아무런 제한 없이 휘두를 거란 것은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전쟁은 이걸로 끝날 것 같군요.”

사람들의 눈에 온 몸이 난도질당한 불의 거인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 * *

[으…으아…아아아…!]

르누가 신음을 흘린다. 불의 거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선명한 적색을 띄고 있던 불꽃은 무척이나 어두워져 있다. 주변 호수도 수증기를 내뿜고는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격렬한 끓어오름은 없었다.

턱!

지크는 르누의 옆, 거인의 얼굴 부위에 내려앉았다. 기세가 죽었다 해도 타오르는 불꽃 위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신비하게 보였다.

“이 정도로 때렸을 때 죽나.”

지크는 만신창이가 된 불의 거인을 훑어봤다.

[너…너…너어어…!]

푸욱!

뭔가 저주를 토하려는 것 같은 르누의 머리에 윈두르가 꽂혔다.

“충분히 놀았다. 이제 그만 자라.”

콰직!

꽂힌 윈두르를 비틀어 르누의 얼굴을 헤집는다.

르누의 얼굴에서 피인지 불꽃인지 헷갈리는 무언가가 새어나왔다.

퍼엉!

불의 거인이 불꽃을 흩뿌리며 사라졌다. 한 명과 한 구가 호수로 떨어졌다.

그렇게 아드로원 대수림의 모든 엘프들을 말려들게 한 거대한 전쟁이 끝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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