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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96화 (196/628)

제196화

건물 안에서는 상당한 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이 인질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직접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높아 보이는군.’

건물 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1층 문 앞이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침입자를 경계하는 것일 터. 그리고 혹시나 숨어든 침입자를 찾아내려는 듯 집안 곳곳에도 소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크의 이목을 끄는 것은 2층에 느껴지는, 움직이지 않는 기척들이었다.

‘세 명씩 모여 있군.’

정확히는 셋 중에서도 둘은 가까이 붙어있었고 한 명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방에 갇힌 한 명과 보초를 서는 두 명으로 보이는군.’

방 하나에 인질 한 명을 가둔 모양이었다.

원래는 인질마다 아예 건물을 분리시켜 놓는 게 좋지만, 아무래도 병력 문제 때문에 한 건물에 몰아둔 것 같았다.

느껴지는 기척은 세 명씩 한 무리고 세었을 때 총 여덟 무리였다.

‘엘프의 일족은 다섯. 그중 하나가 ‘철의 일족’이니 인질로 잡힌 일족은 총 넷. 왕과 왕비가 분리되어 있다면 여덟이 맞아.’

하지만 지크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무녀는?’

‘호수의 일족’의 왕의 어머니이자 레오나의 할머니. 그리고 지크가 이 아드로원 대수림에 온 목적.

드로니안의 말에 따르면 무녀까지 잡혀 있는 건 ‘호수의 일족’뿐이라고 했다.

다른 일족이 잡혀 있는 건 왕과 왕비뿐. 애초에 무녀란 존재는 ‘호수의 눈물’을 갖고 있는 ‘호수의 일족’만 있는 존재라고 했다.

‘그러면 아홉 그룹이 있어야 하는데.’

확인을 해야 했다.

‘한 명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인질들이 아닌 건지.’

지크는 조심스럽게 창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이번에 라일라가 새로 만들어 준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이 녀석은 진짜로 천재라니까.’

서서히 투명해지는 몸과 크게 숨을 쉬어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낮아진 기척에 지크는 혀를 내둘렀다.

기능은 예전에 라일라가 한번 만들어줬던 것과 같이 투명화와 기척차단이다. 하지만 예전에 임시로 만들었다던 아티팩트와는 성능 자체가 달랐다.

‘이런 걸 제대로 된 마법 공방이나 연구 시설도 없이 여행 중에 뚝딱 만들어내는 게 말이 되나?’

줄 때의 상황도 무척이나 어처구니없었다.

‘‘예전 생각 나 틈틈이 만들어 둔 거야. 잘 써.’라니.’

그러며 아티팩트인 팔찌를 휙 던져 줬을 때 천하의 지크도 잠시 벙 쪘었다.

‘만약 내가 평범한 남자였다면 바로 반해버렸을걸.’

지크는 잠시 낄낄 웃고는 창을 바라봤다.

‘창으로 침입은 안 되겠군.’

창에는 두터운 창살이 박혀있었다.

지크는 창살을 만져봤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손에 달라붙는다. 힘껏 잡아봤다.

‘일반적인 철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강도를 높이기 위해 귀한 금속을 섞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도둑 하나 막겠다고 이런 돈 처바르는 짓을 하진 않았겠지.’

해도 이런 평범한 건물에 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있을 확률이 높아졌어.’

지크는 점프했다. 2층 창틀에 매달려 벽에 붙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다가오는 놈은 없나.’

아무리 소리를 죽이려 노력해도 창틀에 매달릴 때 일정 소리 이상은 날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상대는 귀가 더럽게 밝은 엘프다.

하지만 다행히 밖에서 들리는 소란과 저 멀리서 벌어진 싸움 때문에 정신이 팔린 건지 눈치챈 엘프는 없었다.

지크는 팔에 힘을 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창을 통해 방 안을 들여다봤다.

‘…찾은 것 같군.’

방에는 한 엘프가 침상에 앉아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호수의 일족’의 왕이나 왕비, 무녀는 아니다.

그들의 모습은 ‘멘티스’에 오기 전 드로니안이 한 번 보여줬기에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척한 얼굴과 꾀죄죄한 몰골을 보니 인질이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이 그의 신분을 알렸다.

‘‘산의 일족’의 왕인가.’

그가 입고 있는 옷의 가슴 어림에 웅장한 산의 모습이 수놓아져 있는 걸 보면 틀림없어 보였다.

지크는 마치 원숭이처럼 창문을 넘나들며 2층에 있는 모든 방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방에는 모두 창문이 붙어 있어 전부 안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크가 다섯 번째 쯤 이동했을 때였다.

‘찾았다!’

드로니안이 보여준 초상화와 똑같이 생긴 남성 한 명이 보였다.

‘저 사람이 ‘호수의 일족’의 왕인가.’

그리고 레오나의 아버지일 터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 초췌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건강에 뚜렷이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혈색도 괜찮고 눈빛도 살아 있었다.

지크는 나머지 방들도 모두 돌아 봤다.

‘왕과 왕비는 모두 여기 있는 것 같아.’

하지만 한 명. ‘호수의 일족’의 무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을 찾아볼까. 아니면 물어볼까.’

인질들은 뭔가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나를 ‘철의 일족’에게 팔아넘기지는 않겠지만, 나라는 존재를 만난 걸 능숙하게 숨길 수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지.’

물론 한 나라의 왕과 왕비씩이나 되어서 자신의 속을 남에게 쉽게 내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크가 그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지크의 정체를 ‘철의 일족’에게 들킨다는 작은 위험조차 없앨 수 있다.

적어도 지크는 당장 인질들을 구출할 생각이 없었다.

‘당장 신변에 문제는 없어 보이니 하려면 무녀까지 한 번에 구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지크는 일단 오늘은 물러나기로 했다.

‘인질들이 모를 수도 있고. 다른 의심 가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지크는 섬 중앙에 있는 성을 쳐다봤다.

* * *

지크가 성에 도착할 무렵 소동은 가라앉아 있었다. 애초에 길게 갈 소동이 아니었다.

‘철의 일족’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그들의 정체가 빈껍데기밖에 없는 갑옷이라는 걸 들키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오래 버텨 줬어.’

기대 이상으로 작전을 성공시킨 한스와 스녹에게 지크는 속으로 가볍게 칭찬했다.

작전이 성공했다는 걸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분에 못 이긴 고함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지크는 히죽 웃었다.

‘그놈이군.’

‘철의 일족’을 이끌던, 아마도 장군이라고 추축되던 자. 그자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전투 때 보니 아주 표정 변화가 끝내주던데.’

눈앞에서 못 보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그는 곧 아쉬움을 털어버렸다.

‘이번만 기회가 아니니까.’

양동이 사라졌지만 지크는 바로 철수하지 않았다. 아마도 사라진 갑옷들을 찾겠답시고 멘티스를 사정없이 뒤질 테니 아직 여유도 있었다.

‘그리고 저걸 오래 쓰기도 힘들고.’

아무리 연극을 잘 한다 하더라도 저것들이 빈 갑옷이란 사실을 계속 숨기는 건 힘들었다. 그 사이에 최대한 볼일을 끝내야 했다.

지크는 조용히 성 근처로 내려앉았다. 남아 있는 투명화와 기척 차단 마법의 남은 시간을 헤아려 봤다.

‘충분하겠어.’

지크는 천천히 성 안으로 잠입했다.

반듯한 돌들을 깔아 만들어진 성은 뻗어오는 달빛을 음습하게 반사해 무척이나 차가운 이미지를 풍겼다.

‘역시 엘프의 것 같지 않은 곳이야.’

지크는 두리번두리번 성을 살피며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성의 엘프답지 않은 디자인을 생각하며 학문적 호기심을 일으킬 때가 아니었다.

‘무녀가 잡혀있다면 어디 가둬놨을까.’

당장 생각나는 건 둘이다. 높은 첨탑, 아니면 지하 감옥.

‘그리고 왜 굳이 무녀만 따로 왜 빼놨을까?’

인질들을 가둬 놓은 건물에 방이 더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시답지 않은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굳이 한 명만 따로 빼놓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무언가 놈들의 계획에 써먹을 필요가 있다거나.’

하지만 그것도 일단 무녀를 찾고 나서 생각할 일. 지크는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감각을 올렸다.

‘…어라?’

지크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눈을 감고 더욱 집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것 봐라?’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지크의 감각을 흩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눈에 안대를 씌워놓은 것 같은 갑갑함은 느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바로 비올루윈의 유적에서.

‘설마 이 성….’

지크가 눈을 크게 뜨고 성의 천장을 올려다봤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천장이 어둠을 품고 지크를 오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대 유적의 잔재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다. 이 ‘멘티스’가 어째서 엘프들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는지를.

‘애초에 엘프들의 것이 아니었던 거야.’

지크는 저도 모르게 품속에 있는 윈두르를 쓰다듬었다.

이번엔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한 듯, 윈두르는 조그만 단검 형태로 변해 지크의 품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지크는 미소 지었다. 당장이라도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고대 제국의 일부를 발견할 줄이야. 레오나를 따라온 것은 무척이나 잘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곧 생각을 억눌렀다.

‘아니, 진정하자.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저 우연히 고대 제국의 유적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옛날 엘프들은 숲보다는 도시에 석재 주택을 지어놓고 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 하나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었다.

‘엘프들에게는 아주 빚을 듬뿍 지워놔야겠어.’

가능하면 자신이 이 ‘멘티스’를 탈탈 털어 조사하더라도 이해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지크는 다시 이동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아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웠다.

‘만약 여기가 ‘고대 제국의 유적’과 동등한 힘을 가졌다면 들켰을 때 쉽게 빠져나갈 수 없어.’

라일라의 공간 이동도 스녹의 대지를 다루는 힘도 잘라먹어버리는 곳이 고대 제국의 유적이다.

여기서 포위된다면 철저하게 지크 혼자만의 힘으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그냥 나갈 생각도 없었다.

‘일단 지하부터 가볼까.’

누군가를 가둔다는 이미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미지는 감옥이고, 보통 감옥은 지하에 있다.

‘공주님이라면 첨탑에 있겠지만 이번엔 무녀님이니까.’

혼자 하는 농담에 스스로 킬킬대면서 지크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계단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치 바닥의 돌 몇 개를 들어낸 듯 뚫린 구멍 아래로 계단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경계가 무척이나 삼엄했다. 무장한 엘프 여덟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것이 있는 게 확실하다. 지크는 조심스럽게 계단에 접근했다.

라일라의 아티팩트 덕분에 경계병들은 지크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완벽한 투명화는 불가능한데다, 아무리 지크의 실력과 아티팩트가 환상의 시너지를 일으켜 기척을 거의 없다시피 죽였다 해도 엘프들의 감도 보통이 아니다.

지크는 계속해서 살금살금 움직였다. 그리고 다행히 별 탈 없이 계단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지크는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도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흔하디흔한 광경이다.

지하는 대부분 빛이 잘 들지 않고, 때문에 횃불로 광원을 확보하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크는 횃불에 관심을 뒀다.

‘너무 많은데?’

지하는 그렇게 많이 쓰이는 공간은 아니다. 대부분 창고 같은 걸로 쓰인다.

그 때문에 아무리 빛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다지 많은 횃불을 두지 않는다. 감옥으로 쓴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 지하에는 수많은 횃불이 주변을 아주 밝게 밝히고 있었다.

‘역시 뭔가 있어.’

지크는 계속 지하를 내려갔다. 보통 건물은 지상 1층 바로 아래 지하층을 만든다. 하지만 성의 지하 계단은 끝도 없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의 끝에 이르자 무척이나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지크는 무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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