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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95화 (195/628)

제195화

스녹이 상당히 많은 갑옷들을 조종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그 많은 갑옷들을 조종한 건 아니다. 아직 그 정도의 능력까지는 없었다.

스녹이 조종한 건 어디까지나 전면에 서서 직접 전투를 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라일라가 제작한 골렘이었다.

골렘이라고 해도 그들이 상대했던 미스릴 골렘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들이다.

고작해야 명령받은 대로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전투는 기대조차 하면 안 되는 녀석들.

물론 라일라의 실력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아니, 아무리 갖고 있는 온갖 보석과 미스릴을 퍼붓고 몸체는 갖고 있는 갑옷을 썼다지만 이 짧은 시간에 일정 이상 인간의 움직임을 재현할 수 있는 골렘을 대량으로 만들었다는 자체가 오히려 그녀의 실력이 굉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이런 효율도 떨어지고 위력도 형편없는 쓰레기 골렘을 만들다니….”

물론 본인은 자신의 작품을 무척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만 그 이상의 골렘은 필요 없었다. 지금 지크 일행은 굉장한 전력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 그저 머릿수 많은 인간들이라고 착각해주면 충분했다.

무엇보다 라일라가 만족하는 골렘을 만든다면 시간이 부족할 게 뻔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충분히 써먹을 만한 골렘도 마음에 안 든다고 부술 것 같단 말이지.’

무슨 장인처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계획을 소홀히 한 건 아니었다. 갑옷 속에 일일이 짐승의 피를 넣은 작은 주머니를 넣어 화살에 맞으면 피가 흐르는 연출까지 준비해 뒀다.

남은 건 그것들을 마법 상자에 넣은 후 침투한 후 꺼내면 그만이었다.

후퇴할 때도 마찬가지. 전장의 소란 틈에서 지크는 틈틈이 갑옷들을 마법 상자에 수납했다.

그리고 건물 뒤편으로 숨어 적들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후, 나머지 갑옷들도 모조리 수납했다.

남은 건 자신의 몸을 빼는 것뿐이었고, 그건 무척 쉬운 일이었다.

“너는 그만 자라. 앞으로 계속 이런 짓을 해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피곤한 상황이었다. 스녹은 자신의 어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웸을 조심스럽게 안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지크는 한스도 방으로 들여보냈다.

한스도 갑옷을 입고 여지껏 지크를 돕고 있었다.

아무리 스녹이 갑옷을 정교하게 움직이고, 자잘한 건 라일라의 골렘들이 처리를 해준다지만 아무래도 독립적인 판단으로 움직이는 실력자가 한 명 정도는 있는 게 계획에 편했다.

게다가 지크에게 말을 걸어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있어야 했다.

한스과 스녹이 사라지자 지크는 라일라에게 말했다.

“찾았어?”

“여기. 표시해뒀어.”

라일라가 두루마리 종이 하나를 건넸다. 지크는 그걸 건네받아 쭈욱 폈다.

그건 드로니안이 준 지도였다. 인질이 잡혀 있을 확률이 높다고 표시가 되어있는 곳에 새로운 표시가 덧붙여 있었다. 라일라가 새로 그려 넣은 것이었다.

지크가 한창 ‘멘티스’에서 날뛰고 있을 당시, 라일라는 하늘에서 조용히 도시의 전경을 살폈다. 그리고 병력의 이동 사항을 상세히 파악해 지도에 적어 넣었다.

인질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이 곳과 이곳은 아닌 것 같아. 나오는 병력이 너무 적었거든.”

라일라가 표시된 두 곳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그곳에는 이미 엑스 표시가 되어있었다.

“이곳과 이곳도 마찬가지야. 이곳들은 오히려 나오는 병력이 너무 많아. 병사들의 주 숙소가 아닐까 해.”

“의심스러운 곳은?”

“여기.”

라일라가 한 곳을 탁 짚었다.

“이곳에서만 아무런 병력이 나오지 않았어.”

“비어있는 건 아니겠지?”

“불빛은 있었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몇 명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도 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어. 오히려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며 방비를 강화했지. 그럼 무슨 뜻이겠어?”

“건물에 지킬 중요한 게 있다는 거지.”

지크가 히죽 웃었다.

“적의 사령관부나 그런 것들은 아니겠지?”

“2층의 아담한 건물이야. ‘높으신 분’들이 선호할 건물은 아니지. 실제로 ‘철의 일족’의 수장은 아까 봤던 ‘성’에 있는 것 같아. 성 주변 병력의 움직임을 보면 그래.”

“보통은 그런 곳에 머물겠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묻는 라일라의 목소리에 어딘가 긴장감이 섞였다. 마치 지크의 반응을 살피듯이 그녀의 눈이 살짝살짝 지크를 살폈다.

“일단 저곳을 수색해 봐야지.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았을 뿐 거기에 정말로 인질이 있는지는 모르니까.”

지크의 대답에 그녀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다행히 전쟁을 길게 끌거나 그럴 생각은 없는 모양이야.’

‘마왕 지크 모어’라면 자신이 날뛸 기간을 어떻게든 늘리려고 했을 터. 적어도 아직은 지크가 마왕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가능하면 이 상태가 쭉 계속됐으면 좋겠는데….’

그런 라일라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크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부분을 콕 집었다.

“다음은 이쪽부터 공격해 들어가야겠어.”

“바로 인질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을 거야?”

“우리와 ‘호수의 일족’의 협력이 탄로 날 수도 있어. 우리는 어디까지나 있을지 모를 엘프의 보물을 훔치러 온 녀석들이 돼야 하니까.”

지크는 씩 웃으며 말했다.

“도적놈들처럼 천박하고 무식하게 가야지.”

“다른 곳을 목표로 삼는 척 할 거란 거지?”

“그것도 가장 크고 화려한 곳으로.”

“그럼 한 곳뿐이네.”

지크와 라일라의 시선이 한 곳으로 꽂혔다. 그곳은 ‘철의 일족’의 고위 인사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섬에서 가장 높은 성이었다.

“그럼 슬슬 우리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볼까?”

지크가 천장을 쳐다보았다.

“진짜 집만큼 안락하진 않겠지만, 지하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들이 있는 곳은 놀랍게도 ‘멘티스’의 깊은 지하에 만들어진, 상당히 규모 있는 지하공간이었다.

어제 밤에 잠입한 스녹이 ‘철의 일족’에게 들키지 않고 열심히 파낸 곳이었다.

벽, 바닥, 천장이 모두 흙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대지의 힘을 다루는 스녹이 정성을 들여 가공한 곳이기에 그 강도는 단단했다.

웬만큼 커다란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깊이도 상당해서 위에 있는 엘프들에게 들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공기가 눅눅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를 해야지.’

환기구를 뚫어 놓았지만 깊이가 깊이다 보니 아무래도 공기의 순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크 일행은 지크 덕에 온갖 노숙으로 단련된 상황. 곧 모든 일행은 하나둘 씩 잠에 빠져들었다.

* * *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인간들의 군대에 ‘철의 일족’은 당황했다.

당연히 한층 더 경계를 강화했다. 불을 더욱 크게 밝히고 경비병을 늘렸다.

특히 보통이라면 잠자리에 들었을 켄디스가 눈을 부릅뜨고 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터라 경비병들은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개자식들!’

어제의 생각만 하면 켄디스는 성질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철의 일족’의 장군으로서 일족의 무한한 부흥을 위한 계획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였다.

이번 계획만 성공한다면 ‘철의 일족’은 이 대수림의 명실상부한 주인이 되고, 어쩌면 인간 세계까지도 그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은 계획의 선봉장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리고 대대로 추앙받는 장군이 될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 역할을 끝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적어도 어제까지는 성공적이었다.

다른 일족들은 인질 때문에 쉽게 덤벼들지 못했고, 간간이 숨어든 정찰병들을 잡아 죽였다. 일이 너무 순조롭게 돌아가 김이 샐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어젯밤 일그러졌다.

인간으로 추정되는 무리. 갑자기 나타난 그놈들은 그가 지키는 ‘멘티스’를 휘저었다. 그 와중에 상당한 동족들이 죽었다.

어떻게든 전력을 아껴야 하는 그들에게는 상당히 큰 피해였다.

그것만으로도 이가 갈리는 판에 그들은 시체 하나 남기지 않고 ‘멘티스’를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빠져나간 방법은 모른다.

“빌어먹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기분이 안 좋은 상관의 눈치를 보던 병사들이 켄디스에게 조금 더 떨어졌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봉변을 당할 게 뻔했다.

켄디스는 그다지 성격이 좋은 상관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빠져나간 거야!’

병사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는 고민을 계속했다.

그때의 일 때문에 그의 군주에게 얼마나 갖은 욕설과 모욕을 당했는가. 하지만 그는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 했다.

때문에 그는 제발 그 인간들이 다시 나타나기를 빌었다.

‘이번엔 완벽하게 잡아주마!’

단 한 놈도 놓치지 않고 아주 잘글잘근 씹어 먹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적이다!”

멀리서 고함이 들렸다.

“어제의 그놈들이다! 그놈들이 다시 쳐들어 왔다!”

켄디스의 충혈된 눈이 번뜩였다.

* * *

“잡아라!”

“오늘은 절대 놓치지 마라!”

엘프들이 고함을 지르며 어디론가 향한다. 횃불과 무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살기등등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쪽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쪽에는 신경이 덜 가게 마련.

어둠을 뚫고 무서울 정도로 많은 횃불들이 한곳에 응집하는 가운데, 그와 반대되는 쪽은 고요한 어둠이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 어둠 사이로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

탓!

지크가 불 꺼진 한 건물 안으로 스며들었다. 입고 있는 로브를 깊이 눌러 쓰고 조용히 기척을 느꼈다.

‘주변에 엘프 놈들은 얼마 없군.’

지크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밝은 빛이 모인 곳이 보인다. 엘프들과 갑옷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이었다.

오늘 지크는 라일라가 수상한 곳이라 짚어준 곳에 잠입해 인질들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이었다. 지금 갑옷을 이끌고 있는 건 한스였다.

그는 그 방향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잘하겠지.’

의외로 지크는 한스를 깊이 신뢰했다.

‘내가 가르쳤는데 당연히 저 정도는 하지.’

물론 그 신뢰의 원천은 자신이었다.

이번 잠입은 엘프를 죽이면 안 되기에 평범한 잠입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습격과 더불어 인질들 근처의 엘프들이 죽어나간다면 ‘철의 일족’이 자신들과 다른 엘프 일족의 연관성을 의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포로를 잡아 불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하지만 적어도 엘프, 그것도 훈련된 엘프는 고문이 통하지 않는다. 회귀 전에도 몇 번이나 경험해봤다.

‘더럽게 말 안 통하는 놈들이었지.’

지크는 드문드문 보이는 엘프들을 피해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목표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평범한 2층의 건물. 규모는 꽤 컸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서 특별한 건물도 아니었다.

지크는 본격적으로 건물에 숨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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