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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92화 (192/628)
  • 제192화

    드니엘은 상당히 수준 높은 검사였다. 애초에 검이란 무기는 엘프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다.

    활과 화살을 들고 숲을 누비며 치고 빠지는 전법에 능한 그들에게 검은 아무리 잘해도 부무장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당연히 검 실력은 상당히 떨어졌다.

    그러나 드니엘이 속했던 왕실 호위대는 다르다. 엘프인만큼 빼어난 활 실력을 가진 그들은 검술 실력도 수준급을 자랑했다.

    그리고 드니엘은 공주였던 레오나의 호위까지 맡았던 인물. 왕실 호위대에서도 위에서부터 세는 게 빠른 실력자였다.

    ‘그런 드니엘이….’

    드로니안은 눈앞의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쾅! 쾅!

    마력으로 강화된 검이 연신 부딪치며 커다란 폭음이 인다.

    지크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윈두르가 드니엘의 세검을 강타했다.

    콰앙!

    다시 한번 울리는 폭음. 드니엘이 인상을 찡그리고 몇 걸음 물러섰다.

    ‘무슨 놈의 힘이…!’

    드니엘은 지크를 노려보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검을 놓칠 것 같았다.

    “흡!”

    땅을 강하게 박차 지크에게 달려간다.

    힘이 밀리는 건 확인이 끝났다. 하지만 드니엘은 아직 자신 있었다.

    인간보다 평균적으로 타고나는 마력량이 많고 육체적 능력도 우월한 엘프인 자신이 힘으로 밀렸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 세우자고 계속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세검을 쓰는 만큼 힘보다는 속도 위주의 검사였다.

    “하앗!”

    그의 검이 빠르게 찔러진다. 훈련을 쌓지 않은 인간이라면 반응조차 못 할 속도다.

    그러나 지크는 그의 검을 무척이나 가볍게 쳐냈다.

    하지만 드니엘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찌르기는 미끼에 불과했다.

    타탓!

    화려하고 재빠른 발놀림으로 지크의 옆으로 돌아나간다.

    ‘반응하지 못…!’

    콰앙!

    자신에게 날아온 윈두르를 가까스로 방어한다. 드니엘을 경악했다. 지크의 눈이 호선을 그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웅! 후웅!

    윈두르가 계속해서 휘둘러진다. 드니엘은 검으로 윈두르를 쳐냈다.

    ‘버거워!’

    힘 때문만이 아니다.

    ‘속도도 나보다 위라고?’

    별로 인간이 열등한 종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고난 육체와 마력, 긴 수명으로 인해 엘프가 인간들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크가 자신들을 고용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인간이라는 특성이 전술에 이득은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많이 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검을 부딪친 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박살났다.

    숨을 깊이 몰아쉰다. 이마로 난 땀이 또르륵 흘러 눈 옆을 스쳤다. 간지러웠지만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눈을 깜박인다면 바로 상대를 놓칠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그의 머리가 팽팽 돈다. 오로지 승리를 향하려는 집념이 온갖 방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역시 팔이나 다리를 하나 주고….’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순간 오로지 눈앞의 지크만 보이던 드니엘의 시야가 확 퍼졌다. 오로지 지크를 쓰러뜨리는 데에만 집중했던 머리에도 다른 생각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 결투였었지.’

    그것도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반 쯤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닌, 실력 확인을 위한 것.

    드니엘은 전투의 열기를 날리려는 듯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지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감탄했습니다. 무척 강하시더군요.”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활을 위주로 사용하는 엘프분이 검까지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건 드물죠.”

    지크가 그의 손을 맞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시험 결과는 어떻습니까?”

    결투에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지크는 드로니안을 향해 물었다.

    “일단 다른 분들의 실력도 봐야겠습니다만, 적어도 당신은 충분히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지크의 실력을 확인한 드로니안의 얼굴은 상당히 밝았다. 그리고 지크의 다른 일행도 쳐다봤다.

    지크가 이렇게 강하니, 다른 이들의 실력도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하앗!”

    크게 검을 휘두르는 한스의 실력은 비록 지크에게는 미치지 못 했지만 충분히 감탄할 만한 실력이었다.

    “으랴앗!”

    쿠우!

    대지를 다루는 스녹의 능력은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엘프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라일라의 무영창 마법과 그 위력을 봤을 때, 드로니안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에게 엄청난 패가 손에 들어왔다고.

    “어떠십니까?”

    “훌륭합니다! 상상 이상이로군요!”

    지금껏 지켜 온 예절과 근엄함을 잠깐 무너뜨릴 정도로 드로니안은 기뻐했다.

    “그럼 저희를 고용하실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런 전력을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용 문제가 걸리긴 하지만 레오나를 구해주고 ‘호수의 눈물’을 되찾아 준 사람들이니 어느 정도 믿을 순 있겠지.’

    그럼 이제 그들을 고용하기까지는 단 하나의 문제만이 남아 있었다.

    “그럼 이제 고용 비용을 정하는 게 남았군요.”

    용병에게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바로 돈이다. 돈과 자신의 실력, 목숨을 바꾸는 이들이 그들이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인간들의 돈은 얼마 없으니 보석 같은 걸로 지불하고 싶습니다만.”

    하지만 지크는 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들이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치를 부리며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준다는 걸 거절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크는 다른 걸 받길 원했다.

    “혹시 고대 제국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고대 제국?”

    “네. 레오나에게서 들었는데, 오래 전 강대한 인간들의 제국이 있었다더군요.”

    드로니안이 턱을 쓰다듬었다.

    “만들어지고 스러져간 인간들의 제국이야 많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평범한 제국의 설명을 원하는 건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면 하나 떠오르는 게 있긴 합니다. 우리 엘프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내려오는 인간들의 제국이 하나 있지요.”

    “혹시 그 제국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까?”

    “정보라고 해도 우리로서도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얘기들밖에 없을 겁니다.”

    “그거라도 좋습니다. 혹시 그것들을 전부 정리해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것 없죠. 나이 드신 분들은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는 걸 좋아하시니까요. 알고 계신 전설 몇 개를 적어 달라 하면 기뻐하며 해주실 겁니다. 오히려 소일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시겠죠. 원하는 건 그게 전부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남은 건 적당하게 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당하게 줄 수는 없다. 그건 ‘호수의 일족’의 체면에 관련된 일인 것이다.

    ‘적당히 보석으로 쳐줄 수도 있겠지만.’

    그때 드로니안의 머리가 번뜩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멘티스에는 우리 엘프들의 도서관이 있습니다. 칼프날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도서관이요?”

    “그렇습니다. 선조들이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책들이 보관된 곳이죠. 도서관이라고 하긴 했지만, 오히려 책들의 무덤에 가깝습니다. 책을 모았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도서관을 세우겠다는 계획 하에 세워진 곳이 아니라, 그저 선조님들이 가져온 책을 모아둔 것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그 양만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거의 아드로원 대수림의 역사와 함께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게 있었어?’

    만약 그렇다면 군침이 흐르는 존재다.

    “다만 문제가 몇 개 있는데, 하나는 어느 정도 관리는 하고 있지만 워낙에 장서 양이 많고 오래된 책들도 많아서 책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 점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엘프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정도나 수집할 생각이었는데 확실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생긴 것이니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역사가 역사인 만큼 그 곳은 우리 ‘호수의 일족’만이 아닌, 아드로원 대수림 전 일족의 보물입니다. 따라서 다른 일족의 허락도 있어야 합니다.”

    그건 좀 까다로운 문제였다. 아무리 ‘호수의 일족’이 강하게 주장하더라도 인간에게 자신들의 유산을 보여주기 꺼려하는 일족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오히려 미소 지었다.

    “이렇게 말씀드리긴 뭐 하지만 시기가 좋군요.”

    “네, 시기가 좋습니다.”

    씁쓸해하긴 했지만 드로니안도 지크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처럼 엘프의 모든 일족에게 은혜를 입힐 상황은 없으니까요.”

    전 일족의 왕들이 인질로 잡힌 상황. 하지만 그때 지크가 왕들을 구해내는데 일조를 한다면, 적어도 도서관에 출입하는 일로 반대를 하는 일족은 없을 것이다.

    “이 전쟁에서 활약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요. 아, 물론 ‘철의 일족’의 허락은 필요 없겠죠, 왕자님?”

    “물론입니다.”

    지크의 농담에 드로니안은 싸늘하고 날카로운 미소를 보였다.

    “그놈들은 적어도 수백 년 간은 이 대수림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그 놈들이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 * *

    그 이후로 드로니안과 얼마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눈 지크 일행은 자신들에게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은근슬쩍 지크 일행을 따라가려던 레오나는 프리드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눈물 젖은 눈으로 도움을 호소하는 그녀를 일행은 무시했다.

    방에 도착한 지크는 일행을 보고 상큼하게 말했다.

    “그런고로 엘프의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

    “뭐가 그런고로야.”

    일행의 의견은 일절 반영되지 않은 결정에 라일라가 항의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힘은 없었다. 이미 반 쯤 포기한 것이다. 그 때문에 결투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순순히 보여준 게 아니던가.

    “뭐야. 레오나를 돕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냐? 평소에 그렇게 레오나를 챙기더니. 은근슬쩍 잔인한 놈일세.”

    라일라가 쌍심지를 돋우자 지크는 몇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렇게 장난을 치는 것도 잠깐이었다.

    “방금 왕자와 말했듯이 나는 이번 전쟁에 참가할 거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 빠질 거냐?”

    전장이야말로 마법이 그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장소였지만 지크는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빠지면 또 레오나를 돕고 싶은 마음이 없냐 운운 하려고?”

    “의견을 존중하는 것과 사실을 말하는 건 다르니까.”

    뻔뻔한 지크의 대답에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됐어. 어차피 나도 레오나를 돕는 건 찬성이니까. 그리고 네가 받기로 한 대가에 흥미도 있고.”

    라일라는 한스와 스녹을 쳐다봤다.

    “너희는 어쩔 거야?”

    “아, 저희는….”

    “뭘 물어 봐?”

    대답하려던 한스의 말을 지크가 끊었다.

    “그놈들은 당연히 날 따라와야지. 내가 의견을 물은 건 어디까지나 라일라 너뿐이야.”

    한스가 쓴웃음을 머금었고 스녹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먼저 들어가 있어라. 앞으로 고생하게 될 테니까 푹 쉬어 둬.”

    한스와 스녹이 배정받은 자신의 방을 찾아 나갔다. 라일라도 그들을 따라 나가려 했지만 지크가 붙잡았다.

    “왜?”

    “혹시 네 기억에 이 엘프의 내전도 있어?”

    지크도 엘프의 내전에 대한 자세한 지식은 없었다.

    “잘 기억나지 않아.”

    “그러냐.”

    “하지만 아마 그렌 제너드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들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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