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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88화 (188/628)

제188화

지크 일행이 배정된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 엘프가 찾아왔다. 낮에 만났던, 엘프의 경계조를 이끌고 있던 자였다.

자신을 드니엘 미요웬이라고 소개한 엘프는 레오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일행과 통성명을 나눴다.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

“좀 드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한스의 권유를 드니엘이 딱딱하게 거절했다. 지크 일행을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드니엘의 성격이 그랬다.

“잘 지냈어, 드니엘?”

레오나가 그에게 말을 건다. 지크는 빵 한 조각을 털어 넣으며 그 광경을 살폈다.

‘역시 안면이 있는 엘프인가 보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비유하자면 엘프 국가의 끝자락에 있는 지방의 마을이다.

아무리 엘프의 공주가 인간의 공주와 그 위상이 다르다고 해도 지방 마을에 공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건 이상했다.

“그다지 잘 지내진 못했습니다. 공주님이 가출하시는 바람에요.”

“으음. 그건 미안해.”

“미안해하시기 전에 가출을 하지 마셨으면 했습니다만. 편지 한 장 남기고 사라지셔서 저나 다른 분들이나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의 돌 같던 얼굴에 조금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균열에서 느껴지는 건 실망과 분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더 컸다.

“그래도 수확이 없던 건 아냐! 이거 봐!”

레오나가 ‘호수의 눈물’을 꺼내 보였다. 드니엘의 눈이 동그래졌다.

“호수의 눈물?”

“찾아왔어!”

드니엘이 호수의 눈물과 레오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건 놀랍군요. 설마 정말로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몸 건강히만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건만, 정말로 도둑맞은 보물을 찾아오다니.

“어때! 나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엘프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사라진 보물을 찾아 진짜 찾아오리라고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에헴!”

레오나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드니엘의 말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턱이 차츰 내려왔다.

“왕비님의 보석을 몇 개 훔쳐갔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사기를 당해서 인간 세상의 돈은 얼마 못 구할 줄 알았는데요.”

“…….”

“고작 싸구려 물건 몇 개 사는데도 엄청나게 바가지를 써서 그 얼마 못 구한 돈마저도 금세 써버릴 줄 알았습니다.”

“…….”

“만약 ‘호수의 눈물’을 발견한다고 해도 인간들에게 휘둘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난리를 피우다 쫓겨나는 건 아닐까도 생각했죠.”

“…….”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게 일족의 보물을 되찾아 오실 줄이야. 이 어리석은 드니엘, 공주님께 사과를 드려야겠군요.”

“…….”

한껏 치켜 올라갔던 레오나의 턱이 어느새 땅을 뚫고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아래로 쳐졌다.

드니엘의 말이 하나하나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틀어박혔던 것이다.

드니엘도 중반부터 그녀의 반응을 알고 있었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억양에 강세까지 줘가며 레오나를 몰아붙였다.

“그럼 어디 한번 공주님의 무용담을 들어볼까요? 분명 인간 세계에 가서 멋진 활약을 펼치셨겠죠? 예전 제게 말씀하셨던 완벽하고 화려한 멋진 활약을 말이죠.”

“으으으….”

레오나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다른 일행들의 눈에 당장 쥐구멍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레오나를 난타하던 드니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반응을 보아하니 제가 말한 것들을 다 당하셨군요. 아니면 당할 뻔했던가요. 그러고 보니 ‘호수의 눈물’을 잃어버리게 된 계기가 공주님이셨죠?”

그게 마지막 일격이었다. 어깨를 늘어뜨리며 레오나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몸을 움찔거리는 것을 보니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공주님이 ‘호수의 눈물’을 찾을 리는 없어 보이고.”

드니엘은 주변 일행을 둘러봤다.

“아마도 여러분이 공주님에게 도움을 주신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까?”

“맞습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겸허의 말을 뱉겠지만, 지크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공주님이 사람 운은 좋으신 것 같군요. 하긴, 예전부터 운은 좋으신 분이셨죠.”

“으으으으으….”

엎드려 있는 레오나가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드니엘은 레오나를 쳐다봤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흘러 내려 테이블에 쏟아져 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지금껏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을 그런 미소였다.

그가 손을 뻗어 레오나의 어깨를 짚었다. 레오나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투정은 여기까지만 하죠. 정말로 잘 돌아오셨습니다, 공주님.”

“…헤헤! 나도 반가워, 드니엘!”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레오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도둑놈은 잡으셨습니까?”

그녀가 ‘호수의 눈물’을 되찾아 왔기에 혹시나 싶어 물은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살짝 엇나갔다.

“죽였어.”

“…….”

드니엘이 레오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어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그 일을 마음속에 끌어안고 계속 상처 받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힘든 결정을 하셨군요.”

“첫 상대로는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안 그래도 죽여 버리고 싶었고.”

드니엘은 지크와 다른 일행들을 쳐다봤다.

그가 알고 있기로 레오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최고 유력 용의자는 역시나 지크 일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둥지를 떠나 바깥으로 떠난 새는 어떻게든 바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엘프의 전사인 그에게 있어 레오나의 변화는 적어도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공주님이 직접 처단을 내리셨다면 더 이상 놈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래서 그렇게만 말하고 주제를 끝냈다. 무엇보다 지금 하찮은 도둑놈 하나에 언제까지 얽매일 시간도 없었다.

“그럼 지금 현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전에 정식으로 제 소개를 먼저 하죠.”

그가 자세를 바로하고 지크 일행을 쳐다봤다.

“이름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드니엘 미요웬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이 숲, 골븐의 경비대장으로 있습니다.”

“경비대장?”

레오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가 왜? 왕실 호위대는 어쩌고!”

‘그래서 레오나와 친분이 있었군.’

지크의 의문 하나가 해결됐다

어째 지방에 있는 엘프가 레오나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낸다 했더니 왕실 호위대의 인물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레오나를 호위하는 자였을 터. 하지만 지금의 지위는 왕실 호위대에 비하면 굉장히 궁색해보였다.

“좌천됐군요? 레오나의 가출 때문에.”

라일라가 원인을 추측했다.

“어?”

레오나가 놀랐다. 말을 한 라일라를 봤다가 다시 드니엘을 쳐다봤다.

“지, 진짜야, 드니엘? 나 때문에 왕실 호위대에서 잘린 거야?”

드니엘은 난처해 보였다.

지금까지 레오나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례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막 대한 그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레오나가 상처를 입지 않을 선에서 조절을 한 것이다.

지금의 사실을 긍정하면 레오나는 확실히 죄책감을 느낄 것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 그는 순순히 긍정했다.

“그것도 있고, 공주님과 그 도둑놈이 어울리는 걸 미리 제지하지 못 한 책임도 있습니다. ‘호수의 눈물’의 강탈을 막지 못한 것도 있고요.”

얘기를 들어 보면 좌천으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레오나가 울상이 됐다. 철저하게 자신 때문에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피해를 본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볼게!”

레오나가 테이블을 치며 크게 외쳤다.

“괜찮습니다. 제가 일을 제대로 못 한 건 분명하….”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드니엘의 거절을 레오나가 끊었다. 드니엘은 놀랐다. 그녀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언제나 밝고 기운찼지만 철없던 이가 레오나였다. 어린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주변이 그녀를 너무 오냐오냐 기르던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은 자신이 일으킨 피해를 책임지려고 하는 어른의 것이었다.

“물론 바로 좌천을 풀지는 못할 거야. 떼를 쓰지는 않을 거고 통하지도 않겠지. 그래도 내가 ‘호수의 눈물’을 찾아왔으니 어느 정도 감면은 될 거야. 그리고 내 죄는 내가 책임질 거니까.”

“공주님.”

“큰소리는 뻥뻥 쳤지만 그리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적어도 나를 위해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피해를 보게 만들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짧은 여행 속에서도 그녀는 상당히 많은 걸 배웠다.

인간 세상에서 나와 어리바리한 자신과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그러나 운 좋게도 지크 일행을 만나고, 그녀는 한층 더 성숙해질 기회를 맞았다.

마주치는 사건, 사고를 강한 힘과 뛰어난 지혜로 헤쳐 나가는 지크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지크가 한스와 스녹에게 내리는 가르침을 옆에서 들었다.

간간이 지크가 레오나에게 직접 조언 같은 걸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크만큼이나 강하고 지혜로운 라일라는 그녀를 알뜰하게 챙겨줬다.

그 환경에서 경험을 쌓은 레오나의 시야는 넓어졌고 생각은 깊어졌다.

정말로 다르다. 예전의 그 철없던 레오나와 지금의 레오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아무래도 공주님의 여행은 무척 성공적인 모양이야.’

드니엘은 조금, 아주 조금 레오나의 여행 계기가 된 그 도둑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죠. 별로 기대는 안 하고 말이죠.”

“그럴 때는 빈말이라도 기대한단 말을 하라고.”

레오나가 입을 삐죽였다.

드니엘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대로 공주님의 성장을 축하하며 작게 파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드니엘이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자세를 다시 바꿨다.

지크도 몸을 바로 세웠다. 지금까지는 레오나와 드니엘, 둘의 개인적인 이야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진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을 예감한 것이다.

‘마을에 흐르는 긴장감에 대해서겠지.’

“사실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순히 좌천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을 경계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경계? 무슨 경계?”

레오나가 되물었다.

“이곳은 인간들이 왕국에 침입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지나야 하는 곳이 아닙니까. 그걸 막기 위해 수도에서도 정예인 제가 파견된 것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임무를 잘 완수한다면 바로는 아니겠지만 복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일인데. 갑자기 인간들을 경계한다고? 왜? 인간들과 무슨 갈등이라도 있었어? 설마 ‘호수의 눈물’ 때문이야?”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이 종족간의 분쟁의 씨앗이 된 것이기에 레오나의 얼굴이 하얘졌다.

“아니요. 이건 그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인간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네, 인간들과는 말이죠.”

‘마치 만일을 위해 주변 경계를 단단히 하는 전쟁 직전의 상황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 지크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엘프들과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네?”

“뭐?”

일행이 놀랐다. 특히 레오나는 눈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드니엘은 짙은 경탄의 빛을 보냈다.

“굉장하시군요. 몇 마디 안 건넨 것 같은데 바로 파악하시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드니엘! 지크의 말이 정말이야?”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하죠.”

지금까지보다 더 얼굴을 굳힌 드니엘이 말했다.

“철의 일족이 ‘푸올라’를 선언. 주변 일족들의 국왕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푸올라’에 참가하시려 ‘멘티스’로 가신 전하와 왕비님, 그리고 무녀님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마도 잡혀 계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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