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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84화 (184/628)

제184화

“당신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지크와 그렌의 관계는 그저 안면이 있는 사이일 뿐이다. 그것도 유적에서의 일 때문에 나쁜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그런 사이.

“그것도 이런 아침부터 말입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사죄드리겠습니다. 급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실은 어제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습니까.”

지크 일행이 도시에 초대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도 그렇죠. 그럼 용건이 뭡니까?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란 직함까지 내세우면서 날 만나고 싶어 한 이유 말입니다.”

도시를 구한 영웅인 지크 일행을 함부로 만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렌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직함을 이용해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어제 우리가 들어갔던 고대 유적의 비밀 구역 말입니다. 혹시 도시에 알리셨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그 유적의 존재에 대해 숨겼으면 합니다.”

“어려운 건 아니군요. 그런데 왜 그래야 하죠? 위험한 곳이지 않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렌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에스텔레이드를 꺼낸 후, 알리려면 바로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그러지 않았다.

그 생각은 지크가 이 도시의 용사라는 걸 알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도시와 밀접하게 접촉한 만큼 알리는 건 더 쉬웠을 테니까.

‘아마도 에스텔레이드 때문이겠지.’

그렌은 이유를 그렇게 봤다. 에스텔레이드를 찾은 건 그들이겠지만 꽂혀있던 건 유적이다. 그러니 유적의 소유권은 비올루윈에 있다.

따라서 비올루윈이 소유권을 주장해 버린다면 트러블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야 했다.

“도시를 위해서죠. 그런 위험한 유적이 도시 아래에 있다고 소문이 난다면 관광으로 먹고 사는 이 도시에 얼마나 큰 피해가 나겠습니까.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전부입니다.”

그렌은 당당했다. 그도 이유가 빈약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차피 지크가 유적에 대해 알릴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어떤 핑계를 대도 상관이 없었다.

지크는 그렌의 진의를 살피듯 잠시 그를 관찰했다.

지크로서는 그곳에 대해 말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어차피 황제의 무덤은 윈두르를 갖고 있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그 외의 구역은 볼일이 없다.

‘에스텔레이드고 토르니움이고 전부 없어졌는데, 뭘.’

하지만 그렌이 댄 이유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도시의 사람들을 위해 유적을 숨기자라.’

미래의 용사인 그렌이 도시 사람들을 걱정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 유적을 숨기는 것이 정말로 도시 사람들을 위하는 길일까.

그리고 그렌 제너드는 정말로 도시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알 바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지크 씨도 역시 이 도시를 사랑하시는군요.”

그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용건은 그게 끝입니까?”

지크가 물어온다.

원래 그렌의 용건은 그게 끝이었다. 브라우닝을 설득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으니, 충분히 성공적인 방문이었다.

그러나 그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유적에서 나왔을 때, 정확히 말하면 인파에 휩쓸려 사람들의 찬사와 환호를 받던 지크 일행을 본 그 순간에 용건 하나가 더 생겼다.

아니, 어느새 이 용건이 이 방문의 목적이 됐는지도 몰랐다.

“지크 씨 일행이 이 도시에서 찬양하는 용사라고 하셨죠.”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어있더군요.”

지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일행의 앞이 아니라 대놓게 불쾌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생리적으로 혐오하는 칭호를 듣고 좋아하는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그놈들은 용사의 카리스마 어쩌구 했지만.’

콩깍지가 씌어 지크의 표정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도시의 시민들에게는 천하의 지크도 머리가 아파왔다.

“대단하십니다.”

그렌이 웃었다.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당신이 ‘힘의 용사’죠?”

“그렇게 붙였더군요.”

“같이 계시던 여성분이 ‘마도의 용사’, 두더지 비슷한 동물을 데리고 다니던 분이 ‘대지의 용사’, 그리고.”

한순간 그렌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하얀 검을 들고 계시던 분이 ‘태양의 용사’.”

“한스라고 합니다. 제 종이죠.”

지크와 그렌의 시선이 마주쳤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충분히 용사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여러 일을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도시 하나를 구한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죠.”

거기에 비올루윈의 사심이 끼어들어 만들어진 칭호지만, 어쨌든 용사라는 호칭은 그게 무척 느리다고는 해도 순조로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대가를 바라고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건 압니다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군요. 네, 정말로 부럽습니다.”

“당신도 분명 사람들이 알아봐 줄 겁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움직이는 건 안 되겠죠. 역시 저도 아직 모자라는가 봅니다. 그래도 호기심이 생겨서 말입니다.”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혹시 그 한스라는 분을 뵐 수 있을까요.”

그렌은 웃고 있었다. 무척이나 부드럽고 서글서글하게.

* * *

브라우닝은 숙소 1층에 앉아있었다. 지크를 혼자서 만나보고 싶다는 그렌의 의견에 따라 그녀는 1층에 남은 것이다.

대우는 좋았다. 로비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제공된 차는 귀족의 딸인 그녀의 입맛을 맞추기 충분한 맛과 향을 갖고 있었고 같이 제공된 다과는 그녀의 혀를 즐겁게 해줬다.

차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그림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쉬며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녀의 눈빛이 계단을 향했다. 그렌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올라간 그곳이다.

‘…역시 난 믿음직하지 못한가.’

그렌은 종종 이런 식으로 그녀를 빼고 움직이는 경우가 있었다.

고민에 빠질 일은 아니다. 그렌이 혼자서 처리해야 좋은 일일 테니까.

그러나 요새 그녀를 괴롭히는 고민과 합쳐져 그렌의 그 미묘한 무관심은 그녀에게 커다란 압박감을 주었다.

‘내가 검을 고집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방패를 위주로 사용하라는 그렌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그녀는 혹시 그렌이 자신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검을 들고 있으면 내가 그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 나를 떼어두려고 거리를 두는 건지도 모르고.’

그럴 리 없다고 되뇌어보지만 한 번 든 걱정이 그리 빨리 사라질 리 없다.

식어가는 차를 보며 그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산책이나 할까.’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녀는 로비에서 일어섰다.

관광 도시 최고의 숙소라는 명칭이 폼은 아닌 듯 숙소에는 아주 좋은 뒤뜰이 만들어져 있었다.

조그만 분수까지 있는 그곳에 그녀가 발을 내딛었을 때였다.

“흡!”

강하게 힘을 주며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깔끔하게 포장된 광장에 있는 분수대 옆으로 사람 한 명이 보였다.

‘저 사람은….’

본 적 있는 사람이다. 분명 어제 인파에 휩싸여 용사님이라고 떠받들려진 사람 중 한 명.

한스였다.

그는 편한 옷을 입은 자세를 바로하고 에스텔레이드를 곧추세웠다. 천천히 검을 들었다가 힘차게 내려친다.

“흡!”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내려치기. 검술의 기본 동작으로 검을 쥐었을 때부터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하는 동작이다.

아니, 본격적으로 검의 길을 가는 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휘두른다.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러나 기본 동작이라고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그 한 동작만으로도 그 사람이 얼마나 숙련된 검사인지 알 수 있으니까.

브라우닝이 보기에 한스는 정말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흡!”

다시 한번 검을 내려친다. 그걸 꾸준히 반복한다.

한스의 몸에 땀이 뻘뻘 흘렀다. 고작 그 정도로 힘들어 할 정도로 한스의 수준이 낮은 건 아니다.

지크의 고된 훈련은 한스의 육체도 마력도 단련하여, 일반적인 내려치기 정도는 몇 만 번을 반복해도 땀 하나 흘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었다.

그가 땀을 흘리는 이유는 지크가 가르쳐준 특별한 수련법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마력을 이용해 몸에 강대한 부하를 건다. 그리고 그 부하 아래서 육체와 마력을 움직이며 단련하는 것이다.

정말로 힘든 수련법이지만 효과는 발군이었다.

“후우!”

한스가 몸에 힘을 풀었다. 커다랗게 숨을 내쉬고 에스텔레이드를 수습했다.

“응?”

오로지 훈련에 집중하느라 무뎌졌던 감각이 깨어나며 무언가를 감지했다.

한스의 시선이 브라우닝을 포착했다.

“아!”

넋놓고 한스의 수련을 보고 있던 브라우닝이 화들짝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넋놓고 남의 수련 장면을 훔쳐봤으니 실례도 그런 실례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대단한 훈련을 한 것도 아니고요.”

한스가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여기는 저희 일행이 통째로 빌리고 있을 텐데요. 숙소의 직원으로 보이지도 않으시고요.”

“아, 일행이 잠시 이곳에 있는 어떤 사람과 용건이 있다고 하기에 따라왔습니다.”

“그러셨군요.”

고개를 끄덕이다 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만나셨던 그분이군요.”

브라우닝은 조금 부끄러웠다. 분명 그녀가 그의 일행과 한 다툼 때문에 기억을 하는 것일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었지만 침착해야 했다고 그녀는 후회했다.

그러나 한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브라우닝이 예상했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수준 높은 검술을 사용하시던 분이셨죠.”

“네?”

브라우닝이 저도 모르게 대꾸했다.

“어제 그 유적에서 저희와 함께 싸우셨던 분 아닙니까? 검은 검을 든 남자분과 같이 있던, 검과 방패를 동시에 사용하시던 분이요.”

“아, 네. 맞습니다.”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검은 처음이었거든요.”

검 하나를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자신이나 스승인 지크와는 다른 그녀의 전투 방식이 한스는 꽤 인상적이었다.

“아니, 그런 당신….”

“한스입니다.”

뭐라 불러야 할지 우물쭈물 거리는 브라우닝에게 한스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다.

“라라 브라우닝이에요. 한스 씨의 실력도 대단하시던데요. 실력은 저보다 훨씬 높아보이셨고요.”

그 전투 때 브라우닝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역시 지크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한번 보면 절대 잊어버리지 못할 것 같은 검을 들고 ‘그림자’들을 말 그대로 찢어버리며 움직이던 그의 모습은 정말로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자가 바로 한스였다. 새하얀 검을 휘두르며 ‘그림자’들을 도륙하는 그 모습은 절로 경탄이 나올 정도였다.

검을 사용하는 그녀였기에 아무래도 똑같이 검을 사용하는 그 둘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실력은 브라우닝 씨보다 낮을 겁니다. 그저 검이 좋아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하긴, 범상치 않은 검으로 보이긴 해.’

브라우닝은 에스텔레이드를 힐끔 바라봤다.

하지만 한스의 실력이 무척이나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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