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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80화 (180/628)

제180화

라일라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석상을 향해 무영창으로 마법 몇 개를 쐈다.

당연히 심혈을 기울여 사용한 마법조차 튕겨내는 석상들이 그런 작은 마법들에 타격을 입을 리 없었다.

그러나 라일라도 석상들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마법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확실해! 저 녀석들은 마법이 통하지 않아!”

아마 표면에 마법을 무효화하는 특수한 역장을 두르고 있을 것이라고 라일라는 덧붙였다.

지크도 동감이었다. 라일라의 실력이 좀 더 향상된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라일라와 석상은 궁합이 너무도 나빴다.

“한스!”

“네!”

“네가 앞장서라!”

지크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스가 무리의 맨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에게 ‘그림자’들이 덤벼들었다.

칼, 창, 도끼, 철퇴 등 온갖 무기로 변한 ‘그림자’들의 팔이 한스를 향했다.

하지만 한스는 놀라운 몸놀림으로 그것들을 쳐내고 피하며 반격하고는 끝끝내 무리의 맨 앞에 도착했다.

“라일라는 한스의 뒤에 붙어! 대규모 마법은 필요 없으니까 무영창으로 철저하게 앞의 녀석들만 날려.”

“알았어!”

라일라의 두 손에 각각 다른 마법이 펼쳐졌다.

“스녹! 넌 후위다! 갑옷을 두르고 쫓아오는 놈들을 조져!”

“넵!”

주변을 맴돌고 있던 미스릴 덩어리가 스녹의 몸에 갑옷처럼 들러붙었다.

곧 석상에 비교할 바는 안 되지만 그래도 사람보다는 큰 덩치의 갑옷 거인이 만들어졌다.

“레오나는 라일라의 뒤에서 위험하다 싶은 녀석들을 도와!”

“응!”

레오나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나는 석상들의 공격을 막는다! 입구까지 뛰어!”

일행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스는 빠르게 전면의 ‘그림자’들을 베어냈다.

뒤에서 마법과 화살이 날아와 지원을 해줬기에 한스는 오로지 앞만을 보고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물량과 치명적인 공격력으로 무장한 ‘그림자’들을 뚫고 나가는 건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지크에게 끌려다니며 온갖 고생과 경험을 쌓은 한스에게 이 정도는 평소보다 조금 더 험한 일에 속할 뿐이었다.

정작 소름끼치게 하는 일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검이었다.

후우웅!

검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그 소리가 먼저 귓가를 울렸다. 온몸에 닭살이 오돌토돌 솟았다.

성검을 손에 넣고 많은 경험을 쌓으며 짧은 시간 안에 상당히 강해졌다고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자신감이 슥 빠져나갈 정도로 석상의 검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 검이 일행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다.

콰아아앙!

석상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작은 몸, 석상이 들고 있는 검에 비하면 나무막대기로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검.

하지만 지크는 그럼에도 석상의 검을 후려쳐 튕겨냈다.

쿠우웅!

이번에도 석상의 검은 일행의 옆으로 떨어졌다. 휘말린 ‘그림자’들이 뭉텅이로 터져나갔다.

“위는 쳐다보지 마! 주변만 살피고 무조건 전진해!”

한스를 포함해 일행 전원이 이를 악물었다.

“위를 보지 마. 위를 보지 마.”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녹의 목소리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타박하지 않았다. 심정은 모두가 같았다.

콰앙! 콰앙!

지크의 신형이 일행의 위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석상의 검을 쳐낸다. 그때마다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쯧!”

지크가 혀를 찼다. 검이 계속 튕겨나가자 약이 올랐는지 한 석상이 발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지크는 주변 ‘그림자’들을 뚫고 그 석상의 땅을 딛고 있는 다리 쪽으로 뛰었다.

후웅!

지크가 몸을 돌려 회전했다. 검에 속도가 붙고 마력이 솟아올랐다.

콰아앙!

윈두르가 석상의 발목을 후려쳤다. 강력한 반탄력에 손이 짜르르 울렸다.

역시 엄청난 방어력이었다. 발목을 베기는커녕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라일라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 지크의 목적은 발목을 자르는 게 아니었다.

석상이 기우뚱한다. 한쪽 다리를 올린 상태로 다른 다리가 충격을 받자 균형이 일그러졌다.

급히 자세를 잡으려 손과 발을 휘젓지만 균형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마법처럼 물리 공격을 아예 지워 없애는 게 아니라 다행이군.’

단단하긴 하지만 분명 물리 공격은 통했다.

쿵!

넘어지던 석상이 다른 석상과 충돌한다.

아쉽게도 도미노처럼 다른 석상들이 연속적으로 넘어가거나 그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 석상들이 서로 얽혀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 틈을 타 일행은 석상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쳤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몇 석상들이 더 있었고 다른 석상들도 빠르게 다가왔다.

균형을 잃었던 석상들도 곧 중심을 잡고 추격을 개시했다. 게다가 바퀴벌레처럼 득시글거리는 ‘그림자’들까지.

위험과 고난은 계속되었다.

일행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었다. 앞서가는 한스는 더욱 심해, 온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를 이뤄 뚝뚝 떨어졌다.

지크의 상태도 그닥 좋지 못했다. 팔은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아렸고 손바닥이 터져 윈두르의 검자루를 타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다른 일행의 다급하고 얼핏 비장하게까지 보이는 표정과 달리, 지크의 표정은 편안했다. 오히려 아련함까지 엿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위기도 오랜만이네.’

회귀 후, 조금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지금과 비교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상황에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마왕이라 불리기 전에는 이런 위기가 일상이었는데.’

그리고 그걸 모조리 뚫어버린 게 지크란 인간이었다.

온몸의 피가 끓고 근육이 맥동하며 마력이 거세게 흐른다. 지크는 윈두르를 잡은 손에 힘을 더 넣었다.

‘오랜만의 위기의 냄새다. 즐겨보자고.’

우우우웅!

윈두르가 떨렸다. 이번엔 공명이 아닌, 지크의 막강한 마력에 의한 진동이었다.

콰아앙!

다시 한번 석상의 검과 지크의 검이 충돌했다. 어느새 지크는 사나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적인 전투를 반복한 결과, 그들은 가까스로 계단에 도착할 수 있었고 석상의 추격을 뿌리친 채 입구의 통로로 도망칠 수 있었다.

* * *

그렌은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만 잔뜩 일어나는 시간선에서 오랜만에 원하던 걸 얻었다.

정말로 원하던 에스텔레이드는 아직 빼앗긴 채이지만 그래도 차선인 토르니움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벗어난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정말 괜찮아?”

브라우닝이 물어왔다. 그녀는 미심쩍은 얼굴로 그렌의 허리에 걸려 있는 토르니움을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 검신이 불길해 보여서 그녀는 처음 봤을 때부터 토르니움을 꺼리고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봐봐요, 저한테 뭔가 이상이 있어 보여요?”

그렌은 팔을 활짝 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어필해 보였다.

“그럼 다행이지만. 생긴 걸 보면 꼭 마검 같이 생겼는걸.”

“하하, 검신이 검다고 해서 전부 마검인 건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뭐, 이건 마검이 맞는 것 같지만요.”

브라우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걱정 말아요. 사람을 조종하고 타락시키는 그런 류의 마검은 아니니까요. 아마도 강대한 힘을 다루지 못하면 주인을 해치는 그런 마검인 것 같아요.”

“…정말이야?”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제가 좀 관심이 많잖아요.”

브라우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렌은 이런저런 지식이 많았다.

“그 자신감을 보면 넌 다룰 수 있다는 거지?”

“물론이죠.”

그렌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브라우닝은 납득했다.

아직 그녀보다 실력은 낮지만, 그의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놈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브라우닝이 투덜거렸다.

그들은 지크 일행을 찾는 중이었다. 아니, 적어도 진심으로 찾는 것은 브라우닝뿐이었고 그렌은 찾는 척만 하고 있었다.

지크 일행을 찾겠다는 건 토르니움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일단 찾는 척은 해야 했다.

‘만나서 어디 묵고 있는지 알아내면 더 좋고.’

그러면 감시를 더 수월하게 붙일 수 있다.

하지만 만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유적은 넓다. 그들과 마주친 것도 우연일 뿐이다.

“길은 기억하고 있지, 제너드?”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얼마나 들락날락했는지는 그렌 자신도 모른다. 세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당연히 어디에 어떤 통로가 있는지는 머릿속에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었다.

물론 브라우닝에게는 자신은 유적의 길을 잘 기억할 수 있다고 변명했다.

“음, 역시 이 숨겨진 유적에는 없는 건가? 이곳을 알고 찾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유적 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던 브라우닝이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겠네요.”

브라우닝이 그렌을 쳐다봤다. 그리고 살짝 미소 지었다.

“아까보다 침착해진 것 같아 다행이군. 아까는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너답지 않았는데 말이야.”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같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것 때문에 규칙을 어긴 사람을 그냥 보냈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에요.”

“지금은 괜찮아?”

“딱 적당한 기분 전환용이었어요. 이걸 발견한 덕분에 아까의 괜히 다급했던 기분이 날아갔거든요.”

그렌이 토르니움의 손잡이를 탁탁 두드렸다.

“좋아. 괜찮아졌다면 다행이야. 그럼 얼른 그 규칙 위반자들을 찾아내자고.”

“그러죠. 하지만 아까처럼 필사적으로 찾을 필요는 없어요.”

“알았어.”

둘은 다시 유적을 이곳저곳 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웅!

그렌과 브라우닝의 걸음이 멈췄다. 그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시선이 땅을 향했다.

“그렌!”

“느꼈어요.”

마치 어디선가 폭발한 마력이 유적 전체를 쓸고 지나간 느낌이다.

‘이건 뭐지?’

수많은 경험 중에서도 유적에서 이런 현상을 겪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기억을 되짚을 여유는 얼마 되지 않았다.

스으윽!

주변에서 그림자가 솟아났다. 그것들은 곧 지크 일행에게 덤벼들었던 괴물의 형태를 취했다.

브라우닝이 급히 검과 방패를 뽑아들었다. 그렌도 토르니움을 뽑았다. 그의 눈이 팽팽 움직이며 상황을 확인했다.

‘이 유적에 이런 기능이 있었나?’

아니면 유적과는 전혀 다른 힘이 개입을 한 것일까.

‘조사를 해봐야겠어.’

여기를 나가 이 유적을 철저하게 뜯어봐야 할 듯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편은 아닐 것 같은 ‘그림자’들을 퇴치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직 그의 힘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가 목표로 정한 힘에 비하면 정말로 초라한 수준. 하지만 그는 적어도 자신이 여기서 목숨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표가 한참 남았다고 해도 지금의 나도 강해!’

무엇보다 그의 손에는 마검도 있었다.

그렌은 천천히 토르니움에 마력을 주입했다. 토르니움이 그의 마력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더니 자신의 힘과 섞어 밖으로 토해냈다.

‘크윽!’

인상을 찡그릴 뻔했다. 몸 안이 진탕되는 느낌이었다.

‘역시 아직 이 녀석을 다루기에는 무리인가.’

하지만 괜찮았다. 자신은 이 녀석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웅!

그가 차고 있는 팔찌가 작게 진동을 했다.

속이 편해졌다. 적은 물론이고 약한 주인조차 물어뜯으려 이빨을 드러내던 토르니움이 잠잠해졌다.

남은 건 토르니움의 막대한 힘뿐.

‘좋아!’

그렌은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그림자’들을 상대로 토르니움을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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