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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79화 (179/628)

제179화

나무의 아랫부분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지크는 다시 시선을 나무의 바깥으로 나온 부분으로 돌렸다.

‘몸체가 아니라 뿌리처럼 보인다인가.’

애초에 누가 봐도 단단한 돌을 쌓아 만든 피라미드 위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나무이긴 했다.

위쪽이 넓고 평평한 형태의 피라미드라 커다란 나무가 자랄 공간은 있었지만 식물이 돌덩이에 뿌리를 내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니, 뿌리를 내린다는 표현도 틀렸을지도 몰라.’

“레오나.”

“응?”

나무에 가까이 접근해 뒷짐을 지고 상체를 숙여 나무를 살피던 레오나가 뒤를 돌아봤다.

“이 나무가 보통 나무의 몸체보다는 뿌리 같다고 했지?”

“응.”

“이게 정말 뿌리라면 짐작 가는 나무가 있어?”

“…응?”

레오나가 지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극히 이상하게 들리지만, 허공에 뿌리를 치고 땅 속으로 자라는 나무가 있냐고 묻는 거야.”

“……!”

레오나가 고개를 팩 돌려 나무를 돌아봤다.

“어, 어, 그러니까!”

당황한 그녀의 감정이 횡설수설하는 말과 허우적대는 몸놀림으로 그대로 나타났다. 하지만 당황과는 별개로 진한 호기심도 그대로 발산되고 있었다.

“이게 ‘뿌리처럼 생긴 몸체’가 아니라 진짜 이 나무의 뿌리일 수도 있단 거지?”

밖으로 나온 나무를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친 레오나가 이번엔 나무의 아래, 피라미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무는 아래쪽으로 자라고 있는 거고!”

“그래.”

물론 가능성 중 하나다. 땅속으로 자라는 나무는 회귀 전의 지크도 듣지 못했다.

그저 땅에서 솟아있는 부분이 나무뿌리 같다고 해서 말해본 것뿐.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예전에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응. 어렸을 때 할머니가 들려줬던 이야기 중에 있었던 기억이 들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레오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미안. 그 이상은 생각이 나지 않아.”

“조사할 만한 대상이 발견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야.”

“그래도 굉장히 대단한 나무였던 걸로 기억해. 전설에 나오는 그런 나무 말이야.”

“그건 대단하군.”

평범한 곳에 있는 나무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오히려 윈두르나 에스텔레이드, 토르니움이 있던 유적에 존재하는 나무인 만큼 전설에 나오는 나무라는 편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 얘기를 해주셨다는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지?”

“고향에 계셔. 그러고 보니 보고 싶다. 내가 사고 쳤을 때도 굉장히 보듬어주셨는데.”

사고라는 것이 ‘호수의 눈물’ 관련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지금 굳이 알 필요 없는 이야기. 일단 그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중에 레오나의 고향에 한번 들러야겠군.’

그 희귀한 나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지크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댔다.

‘굉장한 마력이야.’

지크는 적잖이 놀랐다.

나무에서는 맥동하는 생명력과 함께 측정하는 것조차 꺼려질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마력들은 유적 곳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는 이게 마력로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양이군.’

레오나가 말한, 대단한 나무라는 말의 설득력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때였다.

우웅!

지크의 등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윈두르가….’

지크는 윈두르를 꺼냈다. 가볍긴 하지만 확실히 윈두르가 진동을 내고 있었다.

‘이 녀석 또 왜 이래?’

지크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쿠쿵!

피라미드가 떨렸다. 지진이 난 것일까. 하지만 다른 곳을 살펴보니 피라미드를 제외한 부분은 괜찮은 것 같았다.

“지크!”

레오나가 그를 불렀다.

“나무가 떨리고 있어!”

뿌리인지 가지인지 모를 나무의 위 쪽 부분이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피라미드의 진동 때문에 같이 떨리는 건가? 아니, 오히려 이 진동의 근원이 나무 같아.’

은은하게 떨리는 피라미드와는 달리 나무의 진동은 꽤 커 보였다.

돌과 나무라는 특성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크는 나무가 진동의 진원지라고 보았다.

우우우웅!

그와 함께 윈두르의 진동도 한층 더 강해졌다.

지크는 윈두르를 앞으로 내세우고 한 걸음 걸었다. 나무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윈두르의 진동이 더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명이군.’

아무래도 윈두르와 이 특이한 나무는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무슨 일이야?”

뒤에서 라일라가 날아 왔다. 한스와 스녹도 계단을 급히 뛰어 올라왔다. 셋 다 이상을 눈치 채고 바로 피라미드 위로 온 것이다.

“나도 모르겠어.”

“…윈두르가 뭔 사고 쳤어?”

상황을 본 라일라가 물었다.

검이 사고를 친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그 주체가 윈두르라고 하니 우습게도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다.

“사고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뭔가 치고 있긴 한 모양이야.”

순간 피라미드 안으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닥으로 향했다.

다른 이들은 그저 피라미드 안에서 광폭한 마력이 몰아치고 있다는 것밖에 몰랐지만 지크와 라일라는 그게 회오리처럼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챘다.

퍼엉!

직접적인 소리가 난 건 아니다. 하지만 회전하던 마력이 마치 폭발하듯 사방으로 뿌려진 걸 일행은 느낄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마력인데.’

지크조차 위협을 느낄 정도의 강대한 마력이다. 규칙성 없이 뿌려진 마력의 결과가 나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바닥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스며 나온다. 형태를 가지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그것이 위로 쭈욱 늘어났다.

팔 같은 것이 양 옆으로 생기고 아래로는 다리 같은 것이 생겨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같은 것이 돋아났다.

하지만 인간과는 확연하게 다른 형태였다.

말하자면 기괴한 이족 보행 괴물의 그림자.

단, 땅이나 벽에 붙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기 다리로 지면을 걷고 있다는 게 달랐다.

획!

그것들이 고개를 돌렸다. 눈도 코도 입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가 얼굴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크 일행은 ‘그림자’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지크는 그것들을 한번 훑어보고 윈두르를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사고군.”

“…사고네.”

라일라도 동의했다. 다른 이들도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이었다.

그림자들이 지크 일행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친근함이니 반가움을 표하는 움직임은 아니다.

지크 일행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었다.

콰아아앙!

가장 앞으로 나섰던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거친 굉음이 울렸다.

‘형태를 바꿨군.’

뭉툭한 막대기 형태의 그림자의 팔이 어느 순간 날카로운 칼날 형태로 바뀌어 윈두르와 맞서고 있었다.

후웅!

그림자의 또 다른 팔이 날아온다. 이번 형태는 도끼였다.

카앙!

지크는 그림자의 칼을 밀어내고 도끼를 흘려냈다. 그리고 그림자를 베었다.

퍼엉!

대각선으로 길게 베인 그림자가 폭발하듯 사라졌다.

‘베이는 감각은 없다시피 하군.’

마치 허공을 베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쁜 건 아니다. 그만큼 상대의 방어력이 없다는 뜻이니까.

‘문제가 되는 건 공격이 제법 강하다는 것과….’

지크는 피라미드 아래를 내려다봤다.

‘숫자군.’

개미떼가 연상된다. 피라미드 아래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그림자가 꾸물대고 있었다.

마치 검은 파도 같이 보이는 그것들은 누가 봐도 피라미드, 정확히 말해 지크 일행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어.’

빈 공간 안으로 새로운 그림자가 일어나는 걸 지크는 놓치지 않았다.

퍼엉! 퍼엉!

그림자 두 개를 베어낸 지크는 일행을 살폈다.

그들은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번 탐험은 여기까지인가.’

“라일라!”

지크가 라일라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라일라의 지팡이에서 어느 샌가 거대한 마력이 꿈틀대고 있었다.

퍼엉!

거대한 바람이 쏘아졌다. 전면의 그림자들을 갈기갈기 찢으며 바람은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바람이 사라진 후 그것이 지나간 자리로 깨끗하게 길이 났다.

“간다!”

지크가 앞장섰다. 그 뒤를 라일라가 지팡이를 꼭 잡고 따랐다.

스녹이 중간에 서 연신 미스릴 덩어리들을 휘둘렀고, 그 뒤로 레오나가 가까이 오는 그림자들을 쏘아 맞혔다.

한스는 맨 후미에서 덤벼드는 그림자들을 에스텔레이드로 베어냈다.

계단에 도착한 후 그들은 빠르게 피라미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형 따위는 그것들에 별 장애가 아닌지 그림자들은 계단 옆의 경사면에서 평지처럼 움직이며 덤벼들었다.

지크는 자신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그림자’들이 공동의 벽면을 기어오르는 걸 목격하고 혀를 찼다. 녀석들의 의도가 빤히 보였다.

‘천장에서 떨어지며 공격하려는 거겠지.’

여러 의미에서 성가신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지크 일행은 꽤 빠르게 피라미드를 내려왔다. 이제 동상들의 사이를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무덤은 지크 일행을 쉽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그긍!

돌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한 석상의 머리 부분에서 들린 것이었다.

‘설마.’

지크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보통 불길한 추측은 잘 들어맞는 법이다.

그가 석상을 올려다봤다. 석상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 전면을 향하고 있던 석상의 눈이, 어느 샌가 지크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상이 움직였다.

쿠웅!

받침대에서 내려오는 행위만으로 공동에 굉음이 울린다. 작은 지진은 덤이었다.

더욱 문제는 움직이는 석상이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공동에 널리 퍼져 있는 석상들이 모두 받침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칫!”

라일라가 주문을 외운다. 영창이 긴 것이 상당히 고위의 마법인 모양이었다.

화르르륵!

그녀의 앞에 불덩이가 나타났다. 크기는 주먹만 하다. 하지만 뿜어내는 빛은 하얀색이었다.

퍼엉!

그녀의 손에서 불덩이가 떠났다. 그것은 정확히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석상의 가슴 부위에 직격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불꽃이 석상의 상체부분을 완전히 휘감았다.

엄청난 위력. 열기가 순식간에 지크 일행이 있는 곳까지 덮쳤다.

저 정도면 충분히 석상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후웅!

거세게 춤을 추는 불꽃을 뚫고 커다란 검이 일행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앙!

“…큭!”

지면 째 일행을 날려버릴 것 같던 석상의 일격은, 놀랍게도 가장 앞에 서 있던 지크에게 막혔다.

석상에 비하면 한낱 벌레와 다름없어 보이는 지크가 그 거대한 검과 맞서고 있는 모습은 마치 신화의 싸움을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흐아아아아앗!”

커다란 기합을 내지르며 지크가 윈두르를 옆으로 밀어냈다. 석상의 검이 튕겨나갔다. 석상이 비틀거렸다.

쿠웅!

석상의 검은 지크 일행의 옆으로 떨어졌다.

“뛰어!”

지크가 그림자들을 베어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 뒤를 일행들이 허둥지둥 따랐다.

사방으로 그림자들과 석상들이 닥쳐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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