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툭! 투툭!
산산히 찢긴 살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들은 잠시 꿈틀거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고문을 받다 겨우 영면에 든 불쌍한 피해자의 최후처럼 보였다.
본체가 있던 곳은 고깃덩이가 완전히 박살나고 유적의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다른 곳에 있는 신체부위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었다.
‘다리’가 의미 없는 발버둥을 멈췄고 ‘팔’도 축 늘어졌다. ‘눈’도 하나둘 씩 감기고 ‘입’도 닫혔다.
그렇게 고깃덩이는 서서히 동작을 멈춰 갔다.
그러나 조용히 멈춘 건 아니었다.
<<죽어.>>
목소리는 작고 힘도 없다. 그러나 전투가 수습되는 이 분위기에서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너 때문이야.>>
<<너도 우리처럼….>>
<<증오해.>>
<<저주해.>>
라일라의 근처에 있던 ‘눈’이 끝까지 그녀를 노려보고 입은 저주를 토한다.
그 모습을 라일라는 굳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 * *
고깃덩이는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죽은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을 과연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싶긴 했지만 어쨌든 전투는 끝났다.
지크는 일행을 살폈다. 자잘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 마법의 폭풍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정도의 결과다. 전부 자신의 훈련 덕이라며 지크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는 공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방에 있는 고깃덩이들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본체가 소멸해서 그런지 고깃덩이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척이나 쉽게 떨어져 나갔다.
한스와 스녹, 레오나도 지크를 도왔다.
한스는 에스텔레이드를 사용했고 스녹은 날카로운 미스릴 조각들로 천장의 것들을 중점적으로 잘랐다.
레오나도 작은 칼을 꺼내 인상을 쓰면서도 고깃덩이를 떼어냈다.
단, 라일라는 본체가 있던 곳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도 없었다. 지크조차 그녀가 마치 없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따돌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공간은 넓었지만 지크 일행의 작업속도가 무척이나 빨라 공간의 본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방 한켠에 가득 쌓인 고깃덩이가 무척 징그러웠다.
그 누구도 자신이 갖고 있는 마법 상자에 고깃덩이를 넣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방을 치우는 데 가장 간편한데도 불구하고.
공간은 전체적으로 휑했다. 고깃덩이에 짓눌려서 부서지고 세월에 사그라졌는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방이었던 건지 간단한 가구 같은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수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깨어져 내린 수정과 곳곳에 퍼져 있는 금속 잔해. 그리고 아직도 그 빛이 바래지 않은, 바닥을 뒤덮고 있는 마법진까지.
지크는 금속 잔해를 들었다.
‘처음 보는 금속이군.’
“아마 합금일 거야.”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크는 뒤를 돌아봤다. 라일라가 지크가 들고 있는 금속덩이를 보고 있었다.
안색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그녀는 일단은 평소와 같아 보였다.
“어떤 합금인지는 알겠어?”
“나도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적어도 미스릴과 오리할콘이 포함된 건 확실해.”
“이 유적의 주인은 정말로 부자였군.”
이제는 미스릴을 넘어 오리할콘이라니. 그 재력에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혹시 이 유적이 세워졌을 때라 추측되는 고대 제국 시대에는 이런 희귀 금속들이 발에 치이는 돌멩이처럼 굴러다닌 게 아니었을까.
지크가 그런 헛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라일라가 바닥의 진을 들여다봤다.
“마법진이야. 아마도 마력을 전달하는 데 사용한 마법진 같은데.”
라일라가 마법진을 구성하는 선을 따라 움직였다. 지크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선을 따라가니 괴물의 본체가 있던 곳에 다다랐다.
“여기가 진의 중심일 거야.”
본체가 있던 곳이니 라일라의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지크는 바닥의 표면을 살폈다.
‘생긴 건 다른 곳과 그다지 다를 게 없는데.’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대봤다. 질감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 감각을 날카롭게 돋았다.
웅!
걸리는 게 있었다. 바닥 아래서 미세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지크는 몸을 일으키고는 주변 바닥을 자세히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반달형의 구멍이 움푹 파여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손잡이처럼 보이는 구멍이었다. 지크는 그 곳에 손을 넣고 힘을 줬다.
그그그긍!
둔중한 소리가 울리며 바닥판이 들렸다. 지크는 바닥을 떼어내 옆으로 옮겼다.
네모난 구멍이 바닥에 생겼다. 판은 하나가 아니었다.
지크가 들어낸 바닥판 옆으로도 몇 개의 움직이는 바닥판이 있었다. 지크는 그 모든 걸 들어냈다.
바닥판을 받치고 있던 격자 모양의 틀 사이로 지하실이 보였다. 그리고 지하실에 특이해 보이는 금속 장치 하나가 있었다.
“마력로야.”
라일라가 말했다.
“마력로라고? 저게?”
지크는 마력로라고 불린 장치를 가만히 바라봤다.
서민들이 거주하는 집 중에서도 꽤 커다란 것 한 채 정도는 될 듯한 크기다. 척 봐도 비싸고 희귀한 게 분명한 금속이 표면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밀봉하듯 내부를 감싸고 있는 건 아닌지라 금속 사이사이로 내부에 있는 커다란 보석 같은 것이 비쳤다.
척 봐도 범상치는 않아 보이는 장치. 그러나 저게 라일라의 말처럼 마력로가 맞다면 저건 범상치 않은 걸 넘어 경악스러운 물건이었다.
마력로. 말 그대로 마력을 뿜어내는 장치다. 지크도 회귀 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많이 본 적은 없었다. 몇몇 강대한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척이나 희귀한 장치인 것이다.
그리고 지크가 본 것들도 고작해야 사람 머리 정도의 크기가 다였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마력로로도 뿜어내는 마력은 상당했다. 그런데 눈앞의 마력로는 그것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했다.
“마력로가 맞아. 나도 솔직히 놀랐어. 하지만 저 정도의 마력로라면 그 괴물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뎌왔는지, 긴 시간을 견뎌왔음에도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을 남겼는지 이해가 가.”
“잊혀진 고대 제국의 기술이란 건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구멍을 기웃거리며 조용히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한스, 스녹, 레오나가 눈을 반짝였다.
잊혀진 고대 제국의 기술이란 말이 그들의 흥미를 잡아 끈 것이다. 그들은 구멍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마력로를 쳐다봤다.
지크와 일행이 마력로에 흥미를 보이는 사이 라일라는 주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까 느꼈던, 머리를 헤집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은 사라졌다.
유적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무언가에 연결된 느낌도 그랬다. 하지만 편안해졌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 머릿속이 복잡해져 그녀의 기분은 하염없이 우울해져 있었다.
* * *
유적에서 더 이상 얻을 건 없었다. 오늘의 전투 때문에 피곤하기도 해 일행은 오늘은 조금 일찍 취침하기로 했다.
단, 취침을 하는 장소는 유적 1층이었다. 그 누구도 고깃덩어리가 득실거리는 유적 중하층에서 잠을 청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라일라는 유적을 거닐었다. 스녹이 잔해를 전부 치워둔 덕에 유적은 거의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뭐 기억나는 건 있어?”
“깜짝이야!”
라일라가 놀라 뒤를 돌았다. 어느 샌가 그녀의 뒤에 지크가 서 있었다. 그는 놀란 그녀를 보고 낄낄거렸다.
지팡이를 꺼내서 한 대 후려칠까. 엄습하는 욕망을 그녀는 간신히 억눌렀다.
“무슨 일이야?”
“자!”
지크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술이었다.
기억에 있는 장면이다. 오래되지도 않았다. 유적 입구에서 폭포를 바라볼 때도 지크가 그녀에게 술을 권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지크의 손엔 독한 럼주가 병 째로 들려 있었다.
“필요할 것 같아서.”
“…….”
라일라는 술을 빼앗아 들었다. 마개를 따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 터프한 모습에 지크가 휘파람을 불었다.
한 번에 독한 럼주 반 이상이 사라졌다. 그녀가 병 주둥이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 소리쳤다.
“대체 그건 뭐야!”
목소리에 울분이 가득 차있다. 그녀가 일컫는 건 아마도 아까 싸운 괴물일 것이다.
“나야 모르지.”
“좋다 이거야! 고대 제국의 정체 모를 괴물이라고 치자고! 몇 천 년 전에 이미 저런 마력로를 가진 고도의 문명인데 저런 괴물 한 마리 다루지 못할 것도 없지!”
아직 고대 제국의 유적이라고 확정된 건 아니지만 지크는 괜히 대꾸해 욕만 먹는 상황을 원하지 않아 그저 자신 몫의 럼주만 들이켰다.
“그런데 왜 하필 저딴 게 나랑 연관되어 있는 건데!”
그게 라일라의 기분을 끔찍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지크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도 모르는 그녀 자신의 상태를 지크가 알 리 없다. 그리고 그건 라일라도 알고 있을 터.
그저 목소리를 높여 자기감정을 표출하고 싶을 뿐이다.
한참을 씩씩대던 라일라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리고 우울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거 참 감정 변화 한번 심하네.’
그만큼 충격이 심한 것이리라.
라일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구조를 대충 봤을 때, 이 유적 최하층은 어떤 연구소였을 거야. 흔적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마법사의 연구실과 비슷한 점이 있었어. 마력로라든가, 바닥의 마법진이라든가. 아마 공간 곳곳에 있는 정체불명의 장치 또한 실험 도구겠지.”
지크는 공간 안에 있던, 희귀 금속의 합금들로 이루어진 장치 몇 개를 떠올렸다.
“그럼 그 안에서 연구하던 건 뭘까?”
이번 건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다. 지크는 순순히 대답했다.
“상황을 보면 그 괴물 아니겠어?”
“맞아. 그 괴물이지. 그럼 그 괴물은 어떤 괴물일까?”
질문이 계속해서 날아오지만 지크는 이번에도 착실하게 반응했다.
그것의 형상이 떠오른다. 그 특이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뭉쳐있는 고깃덩이. 그 안에 묻혀 있던 인간 신체의 일부.
지크는 상황을 정리했다. 연구실, 실험 대상인 것 같은 괴물, 봉인 그리고 전투의 흔적.
“실험체가 탈출한 건가?”
“역시 눈치가 빠르네.”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냥 탈출한 건 아닐 거야. 아마 실험 중에 어떤 사고가 일어나 실험체가 폭주하지 않았을까 싶어.”
지크도 그 괴물의 형태를 생각해보면 그 편이 더 옳겠다 싶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실험체 같은 녀석이 나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거지.”
라일라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와 괴물이 관계가 있다는 건, 그녀가 괴물을 느끼거나 괴물이 그녀를 알아본 걸 생각하면 거의 확정적이라고 봐도 됐다.
‘충격을 받았겠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라일라인 만큼 더 충격으로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아래의 저 괴물 같은 존재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크로서는 이해는 해도 공감은 가지 않는 고민이다.
이미 스스로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확립한 지크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과거가 어떤지는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솔직히 지크에게 지금 그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고 자신의 정체가 인간 형태의 괴물이라고 해봐야 지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떤 형태와 존재든 그는 그인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남들도 자신과 똑같은 감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때문에 라일라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나도 실험체 중 하나일까?”
“몰라.”
“…무슨 조언이라도 좀 해 봐.”
“필요해?”
“필요해. 지금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지크는 럼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예전에 말했었지? 과거의 나조차 지금의 나를 속박할 수 없다고. 그래서 내게는 네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알 바 아니야. 내가 아는 너는 라일라라는, 이름을 물으니까 갑자기 옆에 피어 있던 꽃의 이름을 붙인 얼빵한 녀석일 뿐이니까.”
라일라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눈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섬뜩하게도 보이는 모습이지만 그녀의 처지가 처지인지라 오히려 안쓰럽게 보였다.
“…난 너처럼 딱 끊어서 생각할 순 없어.”
“그러냐.”
“하지만 조언은 고마워. 사고방식을 어떻게든 그쪽으로 가져가볼게.”
지크의 조언을 바로 자신에게 적용할 순 없다. 하지만 그나마 어둠 속에서 목적지까지의 방향성 정도는 보인 것도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