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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72화 (172/628)

제172화

몇몇 ‘입’들이 내는 저주는 다른 ‘입’들이 내는 영창 소리 중에서도 튀었다.

튈 수밖에 없었다. 나직이 읊조리는 영창과는 달리 저주는 입이 찢어져라 울부짖듯 외치고 있었으니까.

파도치는 고깃덩이 속에 묻힌 ‘입’에서 내뱉는 원한의 저주. 그게 누구를 향하는지는 자명했다.

모든 ‘눈’들이 라일라를 바라보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질문을 할 여유는 없었다.

하나둘 씩 마법이 완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사방에서 마법이 퍼부어졌다.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불, 물, 바람, 땅, 번개 같은 속성 마법은 물론이고 빛, 어둠의 마법이나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마법도 있었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위력을 가진 고위 마법이다.

고깃덩이가 땅의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보고 스녹이 잠시 투덜거렸지만 귀 기울이는 자는 없었다.

말 그대로 마법의 박물관. 만약 평범한 마법사가 지금의 광경을 본다면 그 다채로운 마법에 경의를 표할 것이었다.

물론, 저 마법들의 공격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한스와 스녹은 레오나를 지켜라!”

지크가 외치고는 라일라의 앞을 막아섰다. 명령대로 한스와 스녹은 레오나에게 붙었다.

콰아아앙!

마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행이 있는 곳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어떤 규칙이나 전략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펼쳐진 마법들은 서로 부딪치거나 상쇄되어 도중에 사라지는 것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숫자가 숫자다 보니 멀쩡히 날아온 것만으로도 일행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마력이 넘실거리는 검신이 날아온 마법을 깨부순다. 하지만 바로 다음 마법이 닥쳤다.

그 마법을 베면 또 다음 마법이, 다음 마법을 베면 또 그 다음 마법이 날아온다.

한스와 스녹도 다급히 움직였다. 스녹이 미스릴로 벽을 세우고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마법은 한스가 에스텔레이드로 요격했다.

<<꺄아아아아악!>>

<<끄에에에에엑!>>

지크 일행 근처에 있던 ‘입’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지크 일행을 맞추지 못한 마법들이 주변에 있는 고깃덩이들을 덮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팔’과 ‘입’들은 계속해서 마법을 쏟아냈다. 마치 얼마간의 희생을 해서라도 지크 일행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라도 품은 것 같았다.

후웅!

마법 하나를 소멸시키고 다른 마법이 도달하기까지의 그 짧은 틈 사이에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섬광처럼 날아간 검기가 한창 마법을 준비하던 ‘팔’ 몇 개를 잘라냈다. 주변 ‘입’들이 영창을 중단하고 비명을 질렀다.

“레오나! ‘팔’이나 ‘입’을 노려!”

레오나가 주변을 쓱 훑었다. 그녀의 화살이 그것들을 향해 쏘아졌다.

푹!

‘팔’ 하나가 꿰뚫렸다. ‘팔’ 주변의 ‘입’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팔’은 화살에 관통된 상태로도 계속 움직였다.

‘입’도 잠깐 비명을 질렀을 뿐, 다시 영창을 시작했다.

“칫!”

혀를 한번 차고 레오나가 다시 화살을 빼들었다. 시위에 걸고 이번엔 마력을 조금 강하게 담았다.

퍼엉!

이번 화살은 관통한 팔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입’들이 아까보다 강하게 비명을 내지른다. 다행히 바닥을 나뒹군 팔은 조용해졌다.

레오나가 사방으로 화살을 날렸다. 숨 쉴 틈 없이 닥쳐오는 마법들 사이사이를 그녀의 화살이 정말로 묘기에 가깝게 돌파하며 팔들을 날려댔다.

그에 비해 지크의 반격은 파워풀했다.

“흡!”

숨을 멈추고 근육에 힘을 준다. 폭발하는 마력이 전신과 윈두르를 휘감았다.

사방으로 덤벼오는 마법들을 향해 그가 힘을 해방했다.

콰아아아아앙!

충격파가 내달렸다. 날아오던 마법들이 싹 날아가며 주변의 고깃덩이들이 잘게 찢어진다.

목표였던 ‘팔’과 ‘입’은 물론 ‘눈’, ‘코’, ‘귀’, ‘다리’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분해됐다.

마법으로 가득 찼던 시야가 일순 뻥 뚫렸다. 그 틈을 라일라는 놓치지 않았다.

우르릉!

준비하고 있던 벼락이 그녀의 지팡이에서 번쩍인다. 또 다른 마법이 날아와 그녀의 마법에 영향을 주기 전에 그녀는 얼른 벼락을 쏟아냈다.

콰르르르릉!

어두운 지하 유적에 섬광이 나타났다.

새하얗게 공중을 날아다닌 벼락이 목표들을 직격했다. 검게 탄 ‘팔’들이 부들부들 경련하더니 축 늘어졌다.

지크 일행에게 날아오는 공격의 빈도가 낮아졌다. 일행의 움직임이 한결 쉬워졌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놓기에는 일렀다.

번쩍!

새로운 벼락이 내리꽂혔다. 라일라가 쏜 건 아니다.

지크가 벼락을 막아섰다.

“크윽!”

그가 신음을 흘렸다. 윈두르를 타고 흐르는 강력한 벼락에 지크가 인상을 썼다.

‘역시 저게 사용한 마법은 다른 것들과 다르군.’

지크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본체였다.

본체에서 쏘아진 마법은 지크조차 고생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한스와 스녹이 공격을 받는다면 적잖이 위험할 것이다.

‘다행히 녀석의 목표가 뻔히 보여서 다행이야.’

모든 마법 공격이 라일라를 향한 덕에, 한스와 스녹, 레오나는 공격에서 한 발 벗어나 있었다.

만약 본체의 마법이 그들을 직격했다면 조금 대미지를 입는 걸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지크가 더 고생을 하긴 했지만.

퍼엉! 퍼엉!

본체가 다시 마법 공격을 퍼부었다. 마구잡이로 마법을 퍼붓는 다른 ‘팔’들과는 달리 본체는 제법 마법을 조합해서 사용했다.

이번엔 물과 벼락이었다. 본체의 다른 ‘팔’에는 불과, 돌, 바람을 섞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체의 공격은 지크에게 철저하게 막혔다.

“일단 다른 ‘팔’이나 ‘입’부터 짓이겨!”

지크의 명령에 한스, 스녹, 레오나는 슬슬 이동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팔’과 ‘입’을 공격했다.

역시 고깃덩이의 목표는 라일라 하나인지 ‘팔’과 ‘입’은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만 대응을 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라일라와 그녀를 지키고 있는 지크에게 집중했다.

셋이 사방에 퍼진 ‘팔’과 ‘입’을 소탕할 때, 지크와 라일라는 본격적으로 본체와 맞섰다.

콰아아앙!

폭풍처럼 쏘아진 얼음덩어리들을 실처럼 뽑아낸 마력으로 모조리 제거한다. 그 너머로 라일라가 마법을 쏟아냈다.

본체와 라일라의 마법 대결이 섬뜩하게 벌어졌다.

라일라에게는 지크가 붙어 있지만 본체는 수많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

게다가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다른 ‘입’과 ‘팔’ 또한 그들, 정확히는 라일라를 노리는 형국.

형세는 비슷했다.

중간에서 격돌하는 마법이 굉음을 내고 주변을 파괴하며 사그라졌다.

물론 발동 수에서 밀리는지라 밀고 들어온 본체의 마법과 주변에서 쏘아진 마법은 지크가 처리했다.

‘흠.’

지크는 잠시 윈두르를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방금 마법을 막은 터라 손이 얼얼했다. 하지만 분명 아까보다는 나았다.

‘확실히 마법의 위력이 떨어졌어.’

지크는 또 하나의 마법을 베어내고 주변을 살폈다. 격렬히 움직이던 신체부위들의 활동이 조금 떨어진 것을 느꼈다.

열심히 꿈틀대던, 주변을 덮고 있는 고깃덩이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앙!

처음으로 라일라의 마법이 본체의 마법을 뚫었다.

본체가 사용한 또 다른 마법에 격퇴당하긴 했어도 괴물의 힘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로서는 충분했다.

‘여력이 다했군.’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식량 같은 것도 없이 지하에서 버티던 놈이다.

솔직히 지금껏 버틴 걸로도 모자라 이런 격렬한 전투를 할 여력이 있다는 것에 경악을 할 일이지, 이제 힘이 떨어진다고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잠시 후.

서걱!

라일라가 날린 바람의 칼날에 본체가 길게 베어졌다.

<<꺄아아아아아악!>>

본체의 고통은 고깃덩이 전부가 느끼는지 다시 모든 ‘입’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 때문에 모든 영창이 중단됐다.

‘지금!’

한스가 크게 에스텔레이드를 휘둘렀다. 스녹도 두르고 있던 미스릴을 마치 폭풍처럼 움직였다.

레오나는 화살 한 통을 다 비우고 다른 화살통을 꺼냈다.

지크와 라일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대가 약해지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그게 손쉬운 기회를 놓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지크가 본체에게 달려들었다. ‘입’이 비명을 멈추고 다시 영창을 시작한다. 그러나 지크는 무척 빨랐다.

퍼엉! 퍼엉!

‘그래, 가능하겠지.’

몇 개의 ‘팔’이 갑자기 마법을 쏘아냈지만 지크는 놀라지 않았다.

저런 대규모 마법을 펑펑 쏘아대는 괴물이 이제와 무영창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무영창 마법에 당할 정도로 지크가 약하지도 않았다.

윈두르를 몇 번 휘둘러 지크는 마법을 베어냈다. 본체가 또다시 마법을 구사한다.

탁!

달려들던 지크가 갑자기 몸을 숙였다. 그의 등 뒤로 붉은 불기둥이 지나갔다.

본체의 마법이 불기둥을 막아섰지만, 불기둥은 라일라가 막대한 마력을 쏟아 붓고 긴 영창까지 끝내 완성된 마법이다.

본체의 마법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스러졌다.

퍼어어어억!

<<끄아아아아아악!>>

다시 ‘입’들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번 비명은 조금 전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하고 섬뜩했다.

본체의 옆면이 무언가가 원형으로 도려낸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났다. 본체가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죽지 않았다. 몸에 난 커다란 구멍 때문에 중심을 잡기 힘들어 하면서도 다시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지크가 본체에 가까이 다가온 뒤였다.

서걱!

윈두르가 대각선을 그리며 위쪽으로 치솟는다.

다시 한번 울리는 비명소리. 하지만 그 비명소리도 슬슬 줄었다.

한스와 스녹, 레오나가 계속해서 ‘팔’과 ‘입’을 짓이기고 있던 것이다.

지크도 팔을 계속 움직였다.

윈두르가 움직일 때마다 살점이 조각난다.

떨어져나간 살점조차 살아날 정도로 막대한 생명력은 다행히 없는지 땅에 떨어진 살점은 평범한 고깃덩이가 되어 축 늘어졌다.

촤악!

최후의 발악인지 본체에 달려있던 털이 일제히 솟구쳤다. 쭉 늘어난 털은 지크의 사지를 묶으려 들었다.

느껴지는 기세가 날카로운 것이 단순히 포박의 용도는 아닌 것도 같았다.

그 공격을, 지크는 딱 한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피했다. 그리고 앞에서 허공을 가르는 털을 베었다.

콰드득!

상당히 질긴 모양인지 털은 베이는 게 아닌, 거의 뜯기는 모양새로 흩어졌다. 그러나 어쨌든 무력화시킨 건 같다.

지크가 다시 본체에 다가간다. 처음으로 ‘눈’이 라일라에게서 지크에게로 옮겨왔다.

[아….]

‘입’이 열린다. 지크가 검을 들어 올렸다. ‘눈’이 윈두르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아아….]

‘입’에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눈앞에 닥친 가혹한 운명에 신음만 흘리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런 소리였다.

[아아아아아….]

윈두르가 높이 들어 올려질수록 소리도 더욱 길고 아련해졌다.

우뚝!

윈두르가 허공에서 멈췄다.

[사, 살려…!]

순간, 일제히 ‘팔’들이 움직여 근처에 있는 ‘입’들을 막았다. 윈두르를 향했던 ‘눈’이 지크를 향해 움직였다.

‘눈’이 가늘게 호선을 그린다. 그건 꼭 웃는 모습 같았다.

[아, 이제야 죽….]

콰드득!

윈두르가 내려 꽂혔다. 본체를 정확히 세로로 가른다.

윈두르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아예 바닥을 뒤덮고 있는 고깃덩이에 처박혔다.

하지만 지크의 공격을 끝나지 않았다. 윈두르의 검신에 막대한 마력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한계까지 압축된 마력을, 지크는 망설임 없이 터뜨렸다.

콰아아아아앙!

막대한 폭음이 유적을 뒤흔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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