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빛깔은 오래되어 신선함이 사라진 생고기처럼 거무튀튀하다. 하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마력이 흐르는 맥박이 들릴 때마다 그것은 크게 꿈틀거렸다.
누가 봐도 유적을 뒤덮고 있는 고깃덩이들에 마력을 공급하는 주체가 저것이었다.
“…저게 뭐야?”
레오나가 질색하며 말한다. 하지만 일행의 대부분은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크가 물었다.
“네가 들은 고대 제국의 이야기에 저런 건 없었어?”
“없어. 물론 어른들이 한 모든 말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런 괴물 같은 것에 관한 건 없었어.”
저런 개성 있는 녀석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라일라가 머리를 짚었다. 복잡한 눈초리로 그것을 쳐다봤다.
“네가 느끼던 게 저게 맞냐?”
지크의 질문에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정체는 짐작이 가?”
“전혀.”
‘그렇겠지.’
회귀 전 온갖 괴상한 것 듣고 보아온 지크도 저런 녀석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스가 지크의 뒤에서 물어 온다. 그러면서도 에스텔레이드는 꼿꼿이 쥐고 시선은 그것에서 떼지 않았다.
지크의 철저한 훈련으로 몸에 주입된 움직임이었다.
“글쎄.”
일단 선공을 날릴까. 아니면 상황을 살필까. 지크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그 때였다.
꿈틀!
그것이 움직였다. 일행이 일제히 긴장했다.
고기로 된 꽃봉오리. 그것을 보고 일행이 일제히 떠올렸던 표현이었지만 그것의 움직임을 보자 별로 틀린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으윽.
꽃봉오리가 개화하듯, 그것의 외피가 하나하나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장 또 한 장, 징그러운 고기의 꽃잎이 흐느적대며 땅바닥에 몸을 누인다.
열세 장의 고깃덩이가 몸을 뉘인 후, 안쪽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으!”
스녹이 몸을 떤다. 노웸은 이미 스녹의 등으로 내려가 어깨에 매달리듯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둘이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정도만 다를 뿐, 충분히 혐오스럽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괴물.
꽃봉오리 같은 고깃덩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그 존재를 나타내는 표현은 그 두 글자만으로 충분했다.
전체적인 형태는 길쭉한 고깃덩이였다. 피부 아래 검붉은 근육들을 뽑아다 덕지덕지 뭉쳐놓은 것 같은 형태.
그것만으로도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데 그 고깃덩이 사이사이로 박혀 있는 인간 신체의 일부는 그것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치 밤송이의 가시처럼 튀어나온 팔과 다리들.
힘없이 축 늘어져있지만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더욱 소름끼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 사이사이로 눈과 코, 귀들이 보이고 머리카락 같은 긴 털들도 산발적으로 늘어져 있다.
“…저게 뭐야?”
레오나가 아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혐오감은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번뜩!
그것의 눈이 뜨였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그러다 일행 쪽으로 시선이 고정됐다.
주춤!
지크를 제외한 일행이 한 걸음 물러섰다. 수십 개의 징그러운 눈이 한 번에 자신에게 쏠리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축 늘어져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던 팔과 다리도 흐느적대며 움직인다. 입도 마치 물속에서 붕어가 뻐끔거리듯 소리 없이 입술만 오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이 소리를 질렀다. 수십 개의 입이 서로 다른 성량으로 내지르는 목소리가 화음을 그린다.
하지만 아름다운 화음은 절대 아니었다. 선명하고 끔찍한 소리였다.
지크가 윈두르를 곧추세웠다.
“준비해라. 같이 놀자고 비명 지르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같이 놀자는 뜻이어도 곤란해.”
레오나가 괴물에게 활을 겨누며 말했다.
한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지크의 옆에 나란히 서 에스텔레이드를 들었다.
이번엔 후위인 라일라와 레오나를 지키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망설임 없이 적을 위해 에스텔레이드를 휘두를 것이었다.
스녹은 미스릴을 꺼내 주변에 둘렀다.
아직 유적의 기능이 남은 건지 아니면 유적을 뒤덮고 있는 고깃덩이가 막는 건지 주변의 대지를 움직이는 게 힘든 걸 넘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스릴을 챙기길 잘했다고 스녹은 안도했다.
그렇게 일행이 전투 준비를 하는 동안, 라일라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 인상을 찡그렸다.
지크가 그녀를 돌아 봤다.
“상태가 안 좋냐?”
“…좀 그래.”
누가 봐도 괴물이 움직인 것에 대한 영향으로 보였다.
“너는 물러나 있어.”
“괜찮아. 그저 정말로 기분이 나쁜 것뿐이니까. 마법을 구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그러냐.”
지크는 그 이상 그녀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녀의 전투력에 관해서는 상당히 신뢰를 하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스펙이 높은 그녀였는데, 지크의 지옥 훈련을 받은 후로 그녀의 실력은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다.
‘적어도 방해는 안 하겠지.’
“좋아, 그럼 일단 네가 큰 거 한 방 날린 후….”
지크의 말이 끊겼다. 유적을 뒤덮고 있던 고깃덩이들이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설마, 이 녀석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쿠우우!
스녹이 불길하게 언급하자 노웸이 그런 스녹의 뺨을 찰싹 때렸다. 마치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같은 행동이다.
그러나 노웸의 노력이 아쉽게도 보통 그런 소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현실이 되는 법이다.
꿈틀! 꿈틀!
곳곳에 박혀 있는 ‘팔’, ‘다리’들이 미친 듯이 움직인다.
무언가 걸리기만 하면 갈가리 찢고 짓밟으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소름 돋는 움직임이었다.
살 속에 파묻혀 있는 ‘눈’이 떠졌고 ‘입’과, ‘코’, ‘귀’가 멋대로 씰룩였다.
“으으으…!”
레오나가 급히 자리를 떴다. 그녀 곁에 돋아나 있던 ‘팔’ 하나가 그녀의 다리를 잡아채려 했던 것이다.
이동한 곳에는 ‘입’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레오나의 다리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즉시 물어뜯을 요량인지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콰직!
곁에서 킁킁대는 ‘코’에 지크가 윈두르를 박아 넣었다.
[아아아아아악!]
‘코’ 근처에 있던 ‘입’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코’ 근처에 있던 ‘눈’들은 지크를 쏘아봤다.
‘심약한 인간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꼼짝도 못 하겠군.’
그 정도로 괴물의 모습은 기괴했다.
지크는 괴물 본체의 모습을 봤다. 그것은 여전히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충혈되어 노려보는 눈도 여전했다.
‘응? 잠깐만.’
지크가 라일라의 소매를 잡고 옆으로 움직였다.
“…뭐야?”
의문을 표하면서도 라일라는 지크를 따라 움직였다.
일행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을 때, 지크는 라일라를 두고 조금 더 옆으로 이동했다.
“어?”
“저거…!”
한스와 스녹이 놀랐다. 레오나도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라일라도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괴물의 눈에 조금 당황했다.
“역시 인기인이네. 괴물도 보는 눈은 있나 보지?”
“정말로 소름끼치니까 입 다물어.”
라일라는 놀리는 지크에게 쏘아붙이고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의 지팡이에 강대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단 한 방 날린다!”
“그래, 시원하게 날려 버려!”
지크가 그녀를 부추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긴 영창이 끝났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는 강대한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고기를 태우는 데는 이게 최고지!”
퍼어어어엉!
압축된 불꽃이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발사됐다. 긴 붉은색 꼬리를 자랑하며 불덩이는 괴물의 본체에 적중했다.
콰아아앙!
불꽃이 터졌다. 그 강대한 위력에 땅 속 유적이 흔들릴 정도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유적의 모든 ‘입’들이 비명을 지른다. ‘팔’과 ‘다리’도 더욱 미친 듯이 움직였다. 누가 봐도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이것들을 다 제거해야 죽는 건 아니겠지?’
천하의 지크도 그런 중노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폭염이 거치고 괴물의 본체가 드러났다. 끔찍하게 탄 고깃덩이가 그대로 보인다.
탄화된 ‘팔’, ‘다리’가 떨어지고 ‘눈’도 진물을 질질 흘린 채 감겨 있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러나 라일라도 이미 두 번째 마법을 완성시킨 상황.
“끈질기네.”
자신의 마법에 맞고도 살아 있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라일라는 두 번째 마법을 쏘아 보냈다.
계통은 아까와 같은 화염. 그러나 이번엔 기둥 모양으로 뻗어가는 화염이었다.
누가 봐도 새까맣게 타 있는 괴물의 본체가 이번 공격으로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콰앙!
“어?”
라일라가 놀랐다. 그녀의 마법이 막힌 것이다.
살벌하게 쏘아진 불기둥은 갑자기 나타난 반투명한 벽에 의해서 괴물의 본체 근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소멸했다.
“…마법?”
레오나가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라일라의 마법을 막아낸 것은 똑같은 마법이었다.
괴물의 본체가 몸을 옆으로 튼다. 라일라의 마법에 새까맣게 타버린 앞면과 달리 뒷면에는 아직 형상이 남아 있는 신체부위들이 있었다.
그중 두 개의 ‘팔’이 허공을 휘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두 개의 ‘입’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저거 영창 아니냐?”
“맞아.”
라일라가 지크의 질문에 대답한 즉시 두 개의 ‘팔’에서 화염과 바람이 휘몰아쳤다.
“조심해라!”
지크가 라일라를 옆구리에 끼고는 일행에 합류했다. 그리고 윈두르를 앞을 향해 겨냥했다.
그의 옆으로 한스도 에스텔레이드를 고쳐 잡고 섰다.
퍼어어엉!
두 개의 마법이 쏟아졌다. 불과 바람의 마법의 조합. 강대한 불꽃의 폭풍이 일행을 폭격했다.
[끄아아아아아!]
화염에 휩싸인 ‘입’들이 비명을 지른다. ‘팔’과 ‘다리’가 허우적댄다.
‘눈’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본체는 자신의 일부를 태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지 화염은 정말로 자비 없이 쏟아졌다.
후욱!
불꽃이 사라졌다. 다행히 지크 일행은 지크가 전면에서 대부분의 마법을 상쇄해 별다른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괜찮냐?”
지크의 질문에 모두 괜찮다고 답했다. 그가 직접 살펴봐도 부상 같은 걸 입은 사람은 없었다.
지크는 괴물의 본체를 쳐다봤다.
“한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알았더니, 깜찍한 기술을 숨기고 있었잖아?”
설마 저런, 마법 같은 인텔리한 것과는 단 1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몰골로 마법을 사용할 줄은 지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꽃봉오리 같은 고깃덩이에서 나온 괴물의 본체는 어디까지나 본체일 뿐, 유적을 뒤덮고 있는 고깃덩이들도 괴물의 일부다.
그리고 괴물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유적 전체의 ‘팔’이 손을 들어올리고 ‘입’이 영창을 외우기 시작한다.
“…이거 끝내주는 놈들이네.”
지크조차 괴물에게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 정신 나갈 것 같은 와중에도, 모든 ‘눈’들이 라일라를 쳐다보고 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영창 사이로 몇몇 ‘입’들이 어떤 말들을 내뱉고 있다는 것 또한.
<<죽어!>>
<<개년!>>
<<너 때문이야!>>
<<증오해!>>
<<부서져 버려!>>
[너도 우리처럼 똑같아 져라!]
그건 저주의 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