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뭘 막는다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거야.”
지크가 문 위에 떡하니 올려진 사람만 한 바윗덩이를 툭툭 두들겼다.
바윗덩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산처럼 쌓인 바윗덩이는 그 육중한 무게로 문이 열리지 않도록 강하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문을 막고 있는 건 바윗덩이만이 아니었다. 활동을 멈춘 골렘들도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아마도 문을 막기 위해 골렘들을 문 위에 올려두고 정지시킨 모양이었다.
라일라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바위와 골렘들 사이로 드러난 일부의 문을 손바닥으로 쓸어봤다.
“마법적 조치도 되어 있어.”
“어떤 조친데?”
“문의 강도를 강화하고 봉인하는 조치야. 무척이나 강력해. 남아 있는 마력도 그렇고 여러 마법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도 그렇고. 고작 문을 봉인하는데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야.”
“흐음.”
지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문을 내려다봤다. 문을 틀어막고 있는 사슬과 커다랗고 두꺼운 빗장을 발로 건드려봤다.
‘사슬과 빗장도 미스릴로 만들었군.’
마법적으로도 그렇고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정말로 꽁꽁 싸맸다.
‘대체 이 아래 뭐가 있는 걸까.’
흥미가 동한다. 정황을 보면 많은 수의 골렘을 다뤘던, 척 봐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자랑했던 이 유적의 주인들이 감당을 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이 아래에 봉인한 것 같지 않은가.
‘열어볼까?’
하지만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것이 걸린다.
지크는 라일라를 쳐다봤다. 그녀는 심각한 눈으로 문을 도려낼 듯 보고 있었다.
“내려가실 겁니까?”
한스가 물어 왔다.
지크에게 시선이 쏠린다. 모두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크는 결정했다.
“치워봐. 내려가보자.”
* * *
문을 누르고 있던 바윗덩이들과 골렘의 잔해들을 치운다. 사슬과 빗장도 해제했다.
어렵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것도 없이, 바위와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스녹만으로 충분했다.
깔끔해진 문 위로 라일라가 올라갔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문에 손을 대고 뭐라 주문을 외운다.
그녀의 손을 통해 흘러간 마력이 문을 굳건히 막고 있는 봉인을 하나하나 해제했다.
두웅!
마력의 파장이 한 번 크게 퍼진 후, 라일라가 일어섰다.
“다 풀었어.”
“수고했어.”
지크는 문에서 내려오는 라일라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문을 막는 모든 물건이 치워진 지금 일행은 문의 형태를 완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문양 같은 건 없는, 그저 밋밋하기만 한 문. 하지만 그 문은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놈들은 툭 하면 미스릴이냐.’
하도 흔해서 적어도 이 유적 안에서 미스릴이란 금속은 원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았다.
미스릴 특유의 은색 빛을 반짝이는 문은 지하를 향해 내려가는 문들이 으레 그렇듯 양쪽으로 여닫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가운데에 움푹 들어가 있는 두 개의 구멍이 손잡이인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손잡이를 잡고 열 필요는 없었다.
“열어.”
“네.”
스녹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그긍!
문을 막고 있던 바위와 골렘의 잔해를 치웠을 때처럼 스녹은 이번에도 간단히 문을 열었다.
미스릴이 다른 금속보다 다루기 힘든 금속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문을 여는 일이 아닌가. 문을 향해 손을 뻗을 필요도 없이 스녹은 문을 열어젖혔다.
그렇게, 어쩌면 수천 년간 닫혀 있었을지도 모르는 문이 열렸다.
쿠웅!
미스릴 문이 바닥과 부딪쳐 소리를 낸다. 그들의 앞으로 뻥 뚫린 입구와 계단이 드러났다.
지크가 먼저 발을 내디뎠다. 일행도 그들을 따랐다.
그들의 모습이 천천히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 * *
삼엄한 봉인을 뚫고 들어온 터라 일행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라일라는 이번에 산 지팡이를 힘주어 잡았고 한스는 에스텔레이드를 고쳐잡았으며 스녹은 이제 제법 다루는 데 익숙해진 미스릴들을 몸 근처에 대기시켰다. 레오나도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저 지크만이 윈두르를 어깨에 걸친 채 건들거렸다.
“이상한 점은 없네.”
문을 열자마자 당장이라도 이상한 괴물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눈에 들어온 풍경은 위층과 별다를 게 없다.
일행의 긴장이 살짝 풀어졌다.
그러나 유적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들은 다시 긴장을 끌어올려야 했다.
골렘의 잔해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널브러진 무기의 숫자들도 그랬다.
그러나 그들을 확연히 긴장시킨 것은 마치 찌르는 것 같이 변한 공기였다.
“조심해라. 여기에 확실히 뭔가 있다.”
지크도 어느새 어깨에 걸쳤던 윈두르를 고쳐잡고 있었다. 그 상태로 지크 일행은 한 층을 더 내려갔다.
풍경이 바뀌었다.
“…이건 대체 뭐야.”
레오나가 인상을 팍 찌푸리고 말했다. 다른 일행의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내려온 층을 무언가가 잔뜩 뒤덮고 있었다. 악취를 풍기며 천장, 벽, 바닥을 가리지 않고 흉물스럽게 뒤덮여 있는 그것은 마치 썩은 고깃덩이 같았다.
지크가 한 발을 내디뎠다. 질척거리는 느낌이 발끝으로 짜르르하게 느껴졌다.
지크는 그 썩은 고깃덩이를 윈두르로 헤집어봤다. 윈두르의 움직임에 그것들이 힘없이 떨어져 나왔다.
“으…!”
지크의 뒤를 따라 발을 내디딘 라일라가 진저리를 쳤다.
“부패한 시체를 밟는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 것 같아.”
“좋은 경험 해서 좋겠네.”
“좋은 경험?”
라일라가 도끼눈을 한다. 지크는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밟고 있는 그것을 신발 밑창으로 문댔다.
라일라의 뒤를 이어 한스가 썩은 고깃덩이 위로 올라왔다. 라일라만큼 대놓고는 아니지만 그도 그다지 좋은 얼굴을 하진 않았다.
“지크 님, 이거 뭡니까?”
“나도 몰라. 반쯤 썩은 고기 같긴 한데. 이게 왜 여기 이렇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레오나 씨의 이야기가 맞다면 여기가 방치된 지는 수천 년이 족히 지났을 것 같은데, 왜 이것밖에 안 썩었을까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레오나가 움찔했다.
“이것에 정신을 집중해봐.”
지크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한스지만 이번 명령에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그 썩어가는 고깃덩이 같은 것에 정신을 집중했다. 물론 손을 대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한스는 거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고, 지크도 별말 하지 않았다.
잠시 정신을 집중하던 한스가 눈을 뜨고 자신이 밟고 있는 것들을 내려다봤다.
“마력이 흐르고 있군요. 굉장히 미약하긴 하지만.”
“맞아. 그 때문에 썩는 기간이 극도로 느려졌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마력이 흐르고 있다 해도 시간이란 압도적인 존재를 이기지는 못한다. 그 증거가 지금의 썩어가는 형태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한스가 무언가를 깨닫고 급히 고개를 들었다.
“지크 님! 이거 예전에는 살아있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한스는 침을 삼켰다. 누가 봐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형태의 고깃덩이다.
그런데 이게 ‘생명체’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이 아닐 수도 있어. 미약하긴 하지만 계속 마력이 흐르고 있는 녀석이니까.”
한스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통로를 뒤덮고 있는 썩어가는 고깃덩이를 쳐다봤다.
그러나 지크는 오히려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통로 저편을 쳐다봤다.
“가자고. 아마도 유적의 주인들은 이 녀석을 막기 위해 문을 봉인해둔 모양인데, 어떤 녀석인지 낯짝은 한번 봐야지.”
* * *
그들은 썩은 고깃덩이를 밟으며 전진했다.
정말로 유적 아래층을 전부 뒤덮은 듯 썩은 고깃덩이는 계속해서 그들의 앞에 등장했다.
그에 비례해 사람들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었다.
“…이건 손 아냐?”
스녹이 벽에서 툭 튀어나온 무언가를 발견했다.
썩은 고깃덩이의 일부로, 당연히 그것도 반쯤 썩어 있었다.
한데, 그것의 모양이 꼭 사람의 손 같았다.
쿠우….
노웸이 그걸 한번 훑어보더니 스녹의 품 안으로 숨어버렸다.
“…이건 다리 같은데?”
한스도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닥에 반대로 박혀 있는 것 같은 다리 모양의 고깃덩이였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신체의 일부 같은 것이 발견됐다.
썩어가는 안구나 말라붙은 두개골 같은 것도 있었다.
앞서가던 지크가 잠시 멈췄다. 윈두르로 다시 한번 바닥에 있는 썩어가는 고깃덩이를 헤집었다.
“덜 썩었군.”
지크의 중얼거림에 일행은 바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고깃덩이를 살폈다. 지크의 말대로 그것들은 처음 봤던 것들보다 덜 부패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악취도 줄어들었어.”
레오나가 말했다.
라일라가 지팡이 끝으로 고깃덩이를 푹 찔렀다.
“…마력의 흐름도 아까보다 확연히 늘었어.”
“아무래도 내 말이 맞는 것 같군.”
지크가 통로 너머를 쳐다봤다.
“이 녀석,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야.”
누군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 * *
일행은 계속해서 이동했다. 한 층을 더 내려갔다.
주변의 썩은 고깃덩이는 이제 ‘썩은’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뭣할 정도로 멀쩡해졌다.
박혀 있는 인간들의 신체 같은 것들도 뚜렷하게 그 형태를 드러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밟고 있는 고깃덩이로부터 어떤 진동을 느꼈다.
두근! 두근!
그건 분명 맥박이었다. 지크가 고깃덩이를 윈두르로 베었지만 피는 나오지 않았다.
“피가 아니라 마력을 흘리는 거야.”
라일라가 설명했다.
베인 고깃덩이가 조금 꿈틀거린다. 이제는 제법 움직임조차 보이는 그것에 사람들이 혐오감을 표했다.
일행은 더 깊이 들어갔다. 언젠가부터 지크의 시선이 라일라에게 꽂혀 있었다.
“괜찮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대답과는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느낌이 강해지고 있어.”
“어떤 느낌인데?”
“마치 내 머릿속을 헤집는 느낌이랄까. 무척 불쾌하고 더러워.”
“흐음.”
아무래도 정황상 이 아래에 있는 건 이 고깃덩이의 본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라일라와 이 고깃덩이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 텐데.’
라일라를 쳐다본다. 미간을 찡그리고 있음에도 그녀의 빛나는 외모는 당최 가려질 기미가 보이진 않는다.
이번엔 고깃덩이를 쳐다봤다. 온갖 못 볼 꼴을 봐왔던 지크가 보기에도 징그럽기 그지없는 놈이다.
‘어떤 관련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굳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 실마리가 이 고깃덩이들의 끝에 있을 테니까.
라일라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그 관련성에 가장 궁금증을 안을 사람이 라일라였다. 그녀는 묵묵히 통로를 나아갔다.
가면 갈수록 고깃덩이는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덩치도 더 커졌으며 이제는 스스로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덜 징그러워진 것도 아니었다.
지크 일행은 두 층을 더 내려가, 아마도 마지막 층일 거라고 예상되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어떤 존재를 발견했다.
“저게 본체군.”
다른 층들과는 다르게 벽 하나 없이 오로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곳 중앙에, 고깃덩이를 꽃봉오리처럼 빚어놓은 듯한 거대한 존재 하나가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