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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69화 (169/628)

제169화

지크 일행은 유적 곳곳을 뒤졌다. 유적이 넓긴 했지만 곳곳이 토사로 막히고 붕괴되어 모든 곳을 뒤지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별다른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복도 옆으로 텅 빈 방이 있을 뿐, 귀중한 물건은커녕 흔한 가구 하나 없었다.

그나마 보물이 쌓여있던 곳이 널찍한 곳이어서 특색이 있을 뿐이었다.

흩어져서 뭔가 특이한 게 있는지 살피던 일행이, 모이기로 약속했던 장소인 보물이 쌓여 있던 방으로 모였다.

“뭔가 발견한 사람?”

지크의 말에 일행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라일라가 지크의 눈치를 봤다. 그녀의 의견 때문에 유적에 온 것이라 아무것도 발견된 것이 없자 눈치가 보인 것이다.

게다가 바로 탐색을 끝낸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크는 당장 탐색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무너진 곳을 파고 들어가 보자고.”

라일라의 안색이 밝아졌다.

“스녹.”

“네!”

“할 수 있지?”

무너진 곳을 뚫는 데 스녹만큼 적임자는 없다. 다만 유적의 보호 기능 때문에 힘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 걸릴 뿐이었다.

“유적의 바닥이나 벽을 뜯는 게 힘들 뿐이지 붕괴된 토사를 치우는 건 가능합니다.”

“좋아. 그리고 아마 무너진 곳은 유적의 보호 기능이 기능하지 않는 곳일 테니까 네 능력이 통하기도 할 거다. 보호 기능이 계속 가동하고 있다면 무너져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아, 그건 그렇네요!”

스녹이 밝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내일을 위해 일찍 쉬어라.”

지크의 말이 떨어지자 일행은 바로 취침 준비에 들어갔다.

* * *

라일라는 유적을 벗어나 동굴 입구에 나와 있었다.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 사이로 어두운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이 보인다.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답답해?”

라일라가 고개를 돌렸다. 지크가 동굴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면 생각할 거라도 있는 거냐?”

“조금”

라일라가 다시 폭포수 사이로 보이는 하늘로 시선을 뒀다.

지크는 조용히 그녀의 곁에 섰다.

“맥주? 와인? 럼주?”

지크가 마법 상자에서 종류별로 술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예 의자와 테이블까지 꺼내서 본격적인 술자리를 만들었다.

“럼주.”

“독한 걸 찾는군. 확실히 마음이 싱숭생숭한가 봐?”

지크는 커다란 잔을 꺼내 럼주를 가득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기는 럼주 병의 주둥이를 쥐었다.

둘은 각자의 의자에 앉았다. 병과 잔이 부딪친다. 지크와 라일라는 그대로 술을 목 너머로 넘겼다.

“이 유적에 뭔가 있어?”

“…몰라.”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진저리를 치며 라일라가 간신히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기묘한 느낌이 들어.”

“어떤 느낌인데?”

“모르겠어.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어.”

“긍정적, 부정적. 둘로 나누자면 어느 쪽이야?”

“…부정적인 쪽이야.”

“그거 안 좋은 소리로군.’

“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건 아냐.”

라일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너와 재회했을 때, 넌 고대 유적을 은신처로 쓰고 있었지.”

지크가 기억을 떠올렸다. 윈두르와 에스텔레이드를 얻은 그 유적을 말함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어때?”

“거긴 불길한 느낌이 나지 않았어. 기억에도 있는 곳이었고.”

적어도 라일라에게는 그 유적보다 이 유적이 더 특별한 모양이었다.

“흐음. 부정적인 느낌이라. 여기에도 혹시 에스텔레이드나 토르니움 같은 게 박혀있는 거 아냐? 부정적인 쪽이라면 사람을 타락시키는, 토르니움보다 한층 더 마검 같은 마검이라든가.”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유적을 한 번 뒤집어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진 않을 거야.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은 특별해. 윈두르 같은 게 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거 다행이군. 그런 것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돌아다닌다면 멋이 없거든.”

회귀 전 지크는 토르니움을 그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즐겨 써왔다.

그와 버금가는 건 그렌 제너드의 에스텔레이드뿐. 한데, 그것들이 흔하게 나돈다면 둘의 모양새가 우스워진다.

지크는 고개를 돌려 어두운 동굴 안을 쳐다봤다.

‘고대 유적이라. 흥미가 생기긴 해.’

라일라의 흥미가 전염된 것도 같다. 여행 일정에 고대 유적 탐색을 넣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알고 있는 고대 유적이 더 있어?”

“몇 개 있어.”

“이런 유적 몇 개 더 찾아내면 기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라일라가 지크를 쳐다본다. 그러나 지크는 태연하게 병 주둥이에 입을 대고 럼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지크는 그녀가 유적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기묘한 느낌이 드는 유적이니까. 잊어버린 기억을 자극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그렇군.”

그리고 다시 이어진 침묵. 그러나 할 말이 없는 어색한 침묵은 아니었다. 폭포의 굉음이 그들을 때린다.

“고마워.”

라일라가 침묵을 깼다.

“이 유적을 보고 싶다는 내 부탁을 들어줘서.”

“할 일도 없었어. 듣자니 네 기억을 돌려놓을 가능성도 있는 것도 같고. 그래도 고마우면 기억이 돌아왔을 때 나한테 유리한 기억이나 넘겨.”

변함없는 지크의 태도에 라일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네가 나쁜 곳에 쓸 만한 건 제외하고 알려줄게.”

“이런 때는 쓸데없는 조건을 다는 게 아니야.”

지크가 투덜거렸다.

그 이후로도 둘은 잠시 더 대화를 나눴다. 폭포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달빛이 그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 * *

다음 날,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됐다.

우르릉!

스녹이 손을 뻗자 통로를 막고 있던 토사들이 스르르 움직인다.

그것들은 스스로 뭉쳐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 데굴데굴 굴렀다. 한스가 그것들을 텅 빈 방에 처넣었다.

곧 통로 하나의 토사가 전부 치워졌다.

“조심해라. 작동하는 골렘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크의 경고대로 얼마 안 가 골렘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하지만 이제 와 골렘 한 마리에 당할 일행이 아니다.

골렘은 이번에도 철저하게 해체되어 미스릴과 핵을 토해냈다.

토사 너머 통로에도 별 다를 건 없었다. 여기도 쭉 뻗은 복도와 몇 개의 빈 방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일행은 다른 통로의 토사를 퍼냈다. 그렇게 몇 번의 통로를 원상 복귀 시켰을 때였다.

“계단이네.”

그들은 아래층으로 향하는 게 분명한 계단을 발견했다.

지크를 선두로 해서 일행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층도 위층과 구조는 똑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적어도 토사가 막고 있는 곳은 없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그 층을 수색했다.

“대체 이 유적은 뭘까?”

스녹이 노웸의 코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물론 답이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해박한 지크나 라일라도 모르는 눈치였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답이 돌아왔다.

“제국의 유적 아니야?”

모두의 시선이 말을 한 레오나에게 쏠렸다.

“으, 응? 왜 그래?”

갑자기 주목을 받자 레오나가 당황했다.

“제국의 유적? 이 유적에 대해 아는 게 있어?”

라일라가 물었다.

“응. 예전에는 ‘호수의 눈물’에 신경이 팔려서 떠오르지 않았는데, 두 번째로 오니까 떠오른 게 있어. 그렇다고 자세한 건 아니고, 옛날 인간들의 제국에서 중요한 건물을 만들 때 평범한 방법으로는 훼손할 수 없는 벽과 천장을 만들었다고 들었어.”

레오나도 직접적으로 뭔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떤 제국을 말하는 거야?”

주변에 제국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국가는 적지만, 그렇다고 역사상으로 한두 개 정도만 존재한 것도 아니다. 제국이라는 단어만으로 나라를 특정할 순 없었다.

“응? 제국이 여러 개 있는 거야? 그때 인간들의 나라는 한 곳밖에 없다고 들었었는데?”

“…한 곳이라고?”

지크의 기억 속에 인류의 나라가 단 한 곳만 존재한 적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최고로 오래된 역사에서도 인류는 서로 나라를 만들고 계속해서 다퉜다.

“언제 적 이야기야?”

“나도 몰라. 오래 전에 그랬다고 들었어. 우리에게 대대로 내려온 이야기니까.”

‘일이천 년 전 이야기가 아니군.’

엘프의 수명은 대략 천 년. 때문에 그들은 인간보다 성장도 느리고 아이를 처음 낳는 나이도 몇 백 살이 훌쩍 넘는다.

그런 엘프에게 대대로 내려온 이야기라면 최하 몇 천 년 전의 이야기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때의 역사는 지크도 모른다.

‘그 정도로 오래된 유적이란 말이지.’

지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유적을 둘러 봤다.

라일라는 계속 레오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제국에 대해서 뭔가 더 들은 게 있어?”

“으음.”

레오나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기억을 더듬었다.

“굉장히 강한 국가였다고 해. 그 때는 우리 엘프들도 감히 인간들과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특히 황제들이 엄청나게 유능했대. 보통 대물림이 되면 몇몇은 능력이 떨어지는 황제가 나오는 게 정상이잖아? 그런데 제국의 황제들은 성격이 어떻든 간에 능력만큼은 최고였다고 하더라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교육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런 방법이 정말로 있다면 왕족이나 귀족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들겠는걸.’

가문을 유지할 후계자가 대대로 유능하다면 그 가문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할 테니, 가문을 중시하는 왕족과 귀족에게는 무엇보다 탐나는 능력일 터다.

“그럼 그 제국은 왜 망했어?”

“마지막 황제가 성격이 더러운 걸 넘어서 완전히 미친놈이었대. 그래서 반란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제국 자체가 몰락해버렸다고 들었어.”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인간이 남긴 기록보다 아득히 먼 옛날에 존재한 제국의 이야기라니.

“다른 건?”

“그게 끝이야.”

레오나도 그 이상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지크와 라일라는 그 정보를 머릿속에 새겼다.

일행은 유적을 계속 탐험했다. 종종 골렘이 그들에게 덤벼들었지만 그들은 여유롭게 골렘을 해치웠다. 거기까지는 1층과 똑같았다.

그러나 차츰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쓰러뜨린 게 아닌 골렘의 잔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가 있었나 봅니다.”

한스가 골렘에서 떨어져 나온 미스릴을 에스텔레이드로 건드리며 말했다.

지크는 쓰러진 골렘을 살폈다.

‘물리적으로 뜯겼군.’

그 단단한 미스릴을 뜯어낼 수 있다니.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완력이다.

그 옆으로 쓰러져 있는 골렘은 표면이 매끈한 것이 고열에 녹아내린 듯 보였다. 마법에 당한 것 같았다.

전투의 흔적은 계속됐다. 박살난 골렘들의 잔해가 계속 보였고 기동하는 골렘 중에서도 손상을 입은 것들이 있었다.

사람이 사용한 것 같은 무구들도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썩은 것인지 아니면 전투 후에 수습을 한 것인지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지크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검을 들어 봤다.

‘인간들과 골렘이 싸운 건 아닌 듯 해.’

아마도 둘은 같은 편이 아니었을까 추측됐다.

‘그렇다면 침입자가 있었다는 뜻인가?’

일행은 긴장을 한 채 한 층을 더 내려갔다.

그 층에서도 내려가는 곳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이 내려온 위의 계단과는 달랐다. 그곳은 문으로 막혀 있었다.

거기까지는 그저 위층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끝이지만 문제는 문이 쇠사슬과 온갖 물품으로 뒤덮여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아래쪽에서 열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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