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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67화 (167/628)

제167화

아침이 밝았다. 환한 태양빛이 어젯밤의 참상을 그대로 비춘다.

툰겔의 상징,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주변 건물을 깔아보던 티리울 경매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지면을 가득 메운 돌무더기들과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경매장 일부의 모습만이 과거의 영광을 흔적만으로도 보여주고 있었다.

‘경매장이었던 곳’에는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툰겔을 상징하는 곳이 하룻밤 만에 철저하게 무너진 것이다. 당연히 조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서 그들은 사건의 진상을 들을 수 있었다.

황금마차를 타고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미쳐서 사람들을 죽이고 경매장을 무너뜨렸다고.

용의자의 이름은 윕스 미다스였다.

“캬! 완벽하지 않냐?”

지크는 자신의 계획에 스스로 감탄하며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사람들은 철저하게 이 사건을 일으킨 게 윕스 미다스라고 생각할 거야. 아니, 사실 맞는 말이지. 내가 뭐 이번에 사람을 때리기를 했어 건물을 부수기를 했어.”

“나중에는 직접 경매장을 때려부쉈다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미다스 녀석이 나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는데 아무런 반항도 안 할 순 없잖아. 나도 나름 필사적으로 방어를 해야 했다고. 그런데 미다스 녀석이 얼마나 잽싼지 내 공격을 족족 피하지 뭐야. 나도 건물을 부수고 싶진 않았어.”

“퍽이나 그렇겠다!”

라일라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야. 전부 네 계획대로 됐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솔직히 그렇게 완벽한 계획도 아니었고.”

“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진행한 거야?”

“완벽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계획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 요소가 있었으니까.”

“그게 뭔데?”

“미다스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라일라는 미다스에 대해 떠올려 봤다.

직접적으로 말을 섞으며 부딪친 적은 없지만 무척이나 자신감이 넘치는 자인 건 알 수 있었다. 자신감을 넘어 오만에 이를 정도로.

“황금을 이용한 감시로 우리를 완벽하게 옭아맬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조금 이상한 것이 있어도 눈감고 그냥 넘어갔겠지.”

그리고 돌아온 건 처절한 굴욕과 패배였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한스와 스녹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땠어?”

지크가 물었다. 한스와 스녹은 바깥에서 사온 간식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도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어수선합니다. 경매장이 박살난 이유가 뭔지, 그게 혹 자신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게 아닌지 같은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걱정부터 티리울 경매장이 박살나 이후에 올 경제적인 피해 같은 간접적인 피해에 대한 걱정까지.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그런 말들뿐입니다.”

“그리고?”

“경매장에서 위험한 물건들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살아남은 경매장 직원들 중 그나마 멀쩡한 몇 명은 시에 체포당했답니다.”

고작해야 시장 바닥의 소문일 뿐이다. 신뢰성을 도저히 담보할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이 몇몇 정황증거와 겹친다면 그 소문은 적어도 지금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된다.

“역시 툰겔의 고위층 전부가 경매장에 협력한 건 아닌가보군.”

“시청에서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경매장이 박살나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경매가 열리지 않아야 할 야심한 시각에 경매가 열리고 거기서 거래한 물건이 심상치 않아 보이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지크는 뒷 경매장에서 아직 낙찰자에게 건네지지 않은 물품들을 전부 두고 왔다.

애초에 미다스의 공격을 유도하면서도 물품이 있는 곳은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움직였다.

조사대가 그것들을 발견한 후 시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알기 위함이었다.

“조금 더 확인을 해야겠지만 적어도 경매장을 운영하던 놈들이 한동안 고생하게 된다는 건 명확하겠군.”

“그걸로 끝내려고?”

라일라가 물었다.

“왜? 내가 시청에 쳐들어가서 관련 있는 나쁜 놈들 싹 다 쳐죽여버린다고 할까봐?”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스와 스녹이 목을 뻣뻣하게 세웠다.

“내가 무슨 ‘이 세상에 모든 불의를 처단하겠다!’ 같은 생각을 가진 놈도 아니고. 미다스 녀석 족치고 경매장 무너뜨렸으면 됐어. 그 와중에 뒷 경매장에 참가한 놈들도 휘말리게 했고. 도시 전체가 썩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니까.”

“그럼 툰겔에서 볼 일은 다 끝난 거야?”

“큰 건 다 끝났지. 왜. 유적을 보러 가자고?”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물을 찾았던 유적에 대해 호기심을 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지크는 쾌히 승낙했다.

“당장 할 것도 없으니까 상관없지. 하지만 아직 일이 다 끝난 건 아니니까 그 일이 끝난 후에.”

“아직 일이 남았어?”

“자잘한 거 두 개.”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지크는 방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한 개는 곧 끝날 것 같아.”

“찾았어!”

들어 온 이는 레오나였다. 얼마나 다급하게 왔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이 부스스해져 있다.

그러나 평소 조금은 얼빠지게까지 보이던 순수한 그녀의 눈이 분노를 잔뜩 머금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좋아요. 가죠.”

“누굴 찾았다는 거야?”

라일라가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한스와 스녹도 눈을 뒤룩뒤룩 굴려가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간단한 거야.”

윈두르를 챙기며 지크가 말했다.

“네가 웬 보물 하나를 얻었다고 하자. 아주 비싼 거야. 그걸 팔아달라고 어떤 가게에 맡겼지. 그리고 침대에 뒹굴며 대체 그게 얼마에 팔릴까, 자신에게 얼마만큼 큰 부를 안겨줄까 희망에 부풀어 상상의 나래에 빠져 있었어. 그런데 자신이 보물을 맡긴 가게가 망해버렸다는, 어마어마하게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진 거야.”

그제야 라일라는 지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될까?”

지크의 질문에 라일라는 간단하게 답했다.

“옷도 제대로 차려입지 못하고 정신줄도 반쯤 놓은 채 경매장에 뛰어왔겠지.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그녀가 레오나를 쳐다봤다. 레오나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면 확실했다.

“찾았구나? ‘호수의 눈물’을 훔쳐간 인간.”

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가 레오나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일행을 돌아봤다.

“같이 올 사람 있냐? 이건 순수하게 의견을 묻는 거야. 어차피 심해져봐야 도둑놈 하나 파묻는 걸로 끝나는 일이니까 고민할 필요 없어.”

“갈게.”

라일라가 바로 이번에 구입한 지팡이를 들었다.

“저희도 가겠습니다.”

한스가 말했고 스녹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지크는 레오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내해요. 그 인간 족치러 가야죠.”

* * *

사내는 절망했다. 경매장 아니, 경매장이었던 곳을 사람들이 빙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다.

병사들이 일정 구간 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만 경매장이었던 폐허를 확인하기에 무리는 없었다.

인파를 헤치고 그는 겨우겨우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선 바로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아!”

머릿속에서는 여러 상념이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경매장을 확인한 순간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딱 그 한마디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릴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내, 내 모든 것이…!’

직장, 인맥, 인연, 신뢰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박살낸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인생 때문이었다. 한몫 톡톡히 잡아 남은 인생을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오로지 그 목표를 위해서.

그래서 도박을 했다. 그리고 그 도박은 성공했다. 남은 건 그 도박의 결실을 돈으로 바꾸는 것.

자신도 있었다. 자그마치 엘프의 보물이 아니던가. 어쩌다 알게 된 이 경매장이라면 자신의 결실을 충분히 많은 돈으로 바꿔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폐허가 되어버린 경매장의 건물이다.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경매장이 쑥대밭이 된다는 건, 그가 생각한 실패 시나리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인생을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지난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둔 도박은 최악의 악수가 되어 그에게 돌아왔다.

혹시 자신이 내놓은 경매 물품이라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뒤에서 두런두런 오고가는 이야기는 그것마저 막아버렸다.

“지난밤에 경매가 열렸다면서? 아니, 밤중에 무슨 경매야?”

“이 경매장에서 뒤가 구린 물품들을 경매하고 있었대. 그래서 지금 경매장 직원들이 체포되고 난리가 났잖아.”

“그럼 경매장이 무너진 것도 그것 때문인가?”

“모르지. 하지만 관련이 있진 않겠어? 그렇지 않다면 멀쩡한 경매장이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무너져?”

“그럼 경매 물품 같은 건 어떻게 된 거야?”

“몇 개는 압수 됐고 몇 개는 없어졌나 봐. 저 폐허에 묻힌지도 모르고.”

“주인들이 못 찾겠지?”

“찾기는. 불법적인 일이기 때문에 물품을 출품한 인간들을 싹 다 조사하고 있다잖아.”

‘젠장!’

물품을 찾기는커녕 도시에 체포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등을 돌렸다. 자신의 인생 전부를 투자한 도박이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내던질 수도 없었다.

‘살아야지. 살아 있으면 기회는 또 오는 법이야.’

그는 그날로 툰겔을 떠났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도시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그 걱정은 사라졌다.

그가 어느 산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퍽!

“억!”

갑자기 무언가 그의 얼굴을 때렸다.

비명을 내지를 여유도 없이 눈앞이 핑 돌았다. 몸에 힘이 풀려 풀썩 쓰러졌다.

누군가 그의 곁에 다가왔다. 그는 사내를 어깨에 짊어지고 숲으로 내달렸다.

사내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어깨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사내의 몸과 얼굴을 나뭇가지들이 세차게 때렸다.

털썩!

숲속 어느 지점에 사내가 나동그라졌다.

아직 정신이 없는 듯 사내는 벌레처럼 기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눈에 초점이 맞고 정신을 차렸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었다.

“누, 누구야!”

정황상 자신을 납치한 것이 분명한 자들이다. 사내가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한껏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건 약자의 발악에 불과했다. 여기서 그에게 겁을 먹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야, 세상 좋아졌어. 사기꾼 놈들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세상이라니.”

누군가 사내의 앞에 나서며 말했다. 그는 지크였다. 들고 있는 윈두르를 험상궂게 휘두르며 그가 사내의 앞에 섰다.

“빅터 스콜. 맞지?”

‘날 알고 있어?’

그저 산적이 푼돈 뜯으려고 납치 한 게 아니다. 스콜은 더욱 공포심이 들었다.

“다, 당신은 누굽니까?”

“아, 알 것 없고. 댁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지크는 한 걸음 물러났다. 스콜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오랜만이야, 스콜.”

“…너는!”

스콜은 경악했다. 그의 앞에 선 사람, 아니 엘프는 그가 무척 잘 아는 자였다.

“그래, 나 레오나야. 벌써 잊은 건 아니지?”

“레, 레오나….”

스콜이 두려운 눈길로 그녀를 본다. 하지만 곧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만들었다.

“뭐, 뭐야. 네 친구들이었어? 그럼 장난이었던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런 장난은 좀 지양해 줘. 정말로 납치당한 것 같아서 놀라 오줌까지 쌀 뻔했다고.”

“아니, 이건 장난이 아니야.”

레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스콜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내게 ‘호수의 눈물’을 훔쳐오는 장난을 치자고 했던 게 진짜 장난이 아니었던 것처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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