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대충 주변의 방해되는 인물을 치운 미다스가 다시 이동을 시작한다. 누가 봐도 그의 목표는 경매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경매장이 아니라 경매장 안으로 들어간 지크였다.
지크는 테라스에서 경매장 건물을 천천히 둘러봤다.
‘이제 곧 사라질 텐데, 마지막으로 눈에 잘 새겨둬야지.’
실력 있는 철거반을 불렀으니 아마 깔끔하게 이 세계에서 사라지리라.
‘음, 좋아! 이별 준비 완료!’
너무도 가벼운 준비가 끝나고 지크는 경매장에 들어서며 마법 상자에 넣어놓았던 금괴를 꺼냈다. 미다스가 준 그 금괴였다.
번뜩!
미다스가 갑자기 나타난 금괴를 감지했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테라스를 쳐다봤다. 눈동자에 지크의 모습이 뚜렷이 잡혔다.
지크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미다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콰아앙!
황금이 몸을 늘려 테라스를 직격했다.
석조 난간이 와르르 무너지고 창틀 위쪽이 크게 패였다. 하지만 황금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지크가 어느새 옆으로 옮겨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사를 과시하듯 그는 술병에서 입을 떼고 트림까지 했다.
콰드드득!
황금이 다시 움직인다. 이번엔 길쭉해진 몸으로 지크를 휘감으려 했다. 졸라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몸을 쥐어짤 태세였다.
그러나 지크의 몸이 마치 누군가 뒤에서 잡아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여 황금을 피했다.
지크는 일어섰다. 부서져 반쪽만 달랑거리는 테라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미다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콰아앙!
다시 황금이 덮쳐왔다. 그러나 어느새 지크의 모습은 테라스에서 사라져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쥐새끼 같은 자식!’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미다스는 본격적으로 지크를 쫓기 시작했다.
* * *
지크와 미다스의 쫓고 쫓기는 상황이 경매장 안에서 계속됐다.
미다스는 주변 모든 것들을 때려 부수며 지크를 쫓아 왔다. 그러나 지크를 잡지 못했다.
그들의 쫓고 쫓기가 계속될수록 경매장은 점점 처참해져 갔다.
‘역시 아직은 별거 아니네.’
자신을 찔러 오는 황금창을 피하며 지크가 생각했다.
역시 아직 지배력이 미치는 황금이 마차 한 대 정도 구현할 수 있는 양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저번 생의 그 압도적인 파괴력은 없었다.
윕스 미다스가 ‘골든 캐슬’이라고 불릴 당시에는, 성에서 뻗어 나온 황금 주먹을 몇 번 휘두르면 작은 촌락 정도는 흔적도 없이 파괴된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뭐, 경매장을 때려 부수는 데는 충분히 쓸 만하네.’
콰아앙!
비처럼 쏟아진 황금이 바닥에 자잘한 구멍을 냈다. 너덜너덜한 상태로 흔들거리던 바닥이 결국 무너졌다.
“어이구, 아까워라.”
맨들맨들한 대리석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걸 보고 지크가 말했다.
“아무리 황금을 만든다고 해도 너무 돈 아까운 줄 모르는 거 아냐?”
말을 하는 와중에도 미다스의 공격은 계속됐다.
벽과 천장이 파손되고 비싼 장식품들이 쓰레기더미가 됐다. 그러나 지크는 얄미울 정도로 그것들을 피했다.
‘어디 보자.’
지크가 주변을 둘러 자신이 들어온 공간을 살폈다. 상당히 넓은 공간으로 두꺼운 기둥이 곳곳에 서있었다.
‘일단 여기를 부숴볼까.’
지크는 후다닥 뛰었다. 촐랑거리는 몸놀림이 그 자체만으로도 분노를 유발한다. 그는 굵은 기둥 뒤에 숨어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그걸 경매에 올리는 건 너도 납득한 거 아니었어?”
콰앙!
황금이 날아들어 굵은 기둥을 박살낸다. 흩날리는 돌먼지를 뚫고 지크는 다른 기둥 뒤로 숨었다.
“애초에 뒷 경매장은커녕 중앙 경매장에 내지도 못할 물품을 억지로 올려준 건 너잖아.”
콰앙!
“속았다고 생각하지 마. 그건 정말로 ‘대지의 눈물’이 맞아.”
콰앙!
“정말이라니까? 내가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 내 동료가 그걸 만들 때 한 고생을 생각하면 네가 그렇게 흥분….”
콰앙!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고생은 안 했구나.”
콰앙!
하나하나 기둥이 부서진다.
경매장은 무척이나 커다란 건물이다. 그것도 온통 석재로 만들어진 건물. 당연히 그 중량은 어마어마하다.
한데, 그 중량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들이 부서지면 어떻게 될까.
콰아아아아아앙!
답은 ‘붕괴’였다.
고작해야 기둥 몇 개 부셔먹은 터라 건물 전체가 붕괴되진 않았다. 붕괴된 건 일부 정도.
하지만 툰겔의 상징인 경매장의 일각이 내려앉은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크도 고작 이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퍼엉!
건물이 무너져 흥건히 쌓인 돌 더미가 터져 나갔다. 윈두르를 든 지크가 어기적대며 걸어 나왔다.
콰아앙!
미다스도 잔해를 뚫고 나왔다. 그의 몸을 둘러싼 황금이 주변의 돌덩어리들을 밀어냈다.
지크와 미다스가 대치했다. 지크의 윈두르가 날카로운 기세를 뽐냈고 미다스의 황금이 흐느적거리며 빈틈을 노렸다.
그리고.
후다닥!
지크는 다시 등을 돌려 도망갔다.
마치 싸울 것처럼 검을 들었던 지크가 도망가자 미다스는 잠시 얼이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죽여 버리겠어!”
농락당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지크를 쫓았다.
콰아아아앙!
경매장의 붕괴는 계속됐다.
* * *
미다스와 상대하면서 그의 능력과 실력을 대강 파악한 지크는 계속 도망을 치면서 미다스가 경매장을 파괴하게 시켰다. 하지만 전적으로 미다스에게 맡긴 것도 아니었다.
“어이쿠!”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굼뜨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동작이다.
마력은 상당히 실렸지만 그 어이없는 공격을 미다스가 맞아줄 것 같진 않았다
휙!
예상대로 미다스는 지크의 공격을 무척이나 쉽게 피했다. 어색한, 그러나 위력만은 높은 지크의 어설픈 공격은 애꿎은 다른 물건을 강타했다.
기둥이었다.
콰아아아앙!
또 다시 붕괴가 시작됐다. 천장이 내려앉고 벽이 일시에 무너졌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지크는 훌쩍 뒤로 뛰어 경매장의 멀쩡한 부분으로 도망쳤다.
“아아, 무너져버렸네.”
지크가 한탄한다. 하지만 그 음성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이제 막 연기의 길에 발을 들인 배우 지망생이 하는 연기 같다.
하지만 지크의 연기는 당장 최고 극단에 입단할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나다.
즉, 지크의 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연극 톤의 한탄은 일부러 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후웅!
윈두르가 다시 한번 휘둘러졌다. 이번에도 어색한 공격은 미다스를 피해 근처 기둥을 공격했다.
“눈앞의 적이!”
후웅!
“너무 무섭네!”
서걱!
“우와아! 누군가 나를 살려줘어어!
어느 순간부터 경매장을 더 많이 부수는 건 오히려 지크가 됐다. 붕괴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그러나 눈이 벌게진 미다스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얄미운 지크에 대한 공격만을 시행했다.
콰아아앙!
지크는 붕괴된 돌덩이들을 짓밟으며 주위를 살폈다.
‘흐음, 대략 다 무너뜨린 것 같네.’
지크가 어찌나 유도를 잘했는지 경매장은 정말로 철저하게 붕괴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극히 일부분만이 원형을 유지하며 아슬아슬하게 폐허 속에서 서 있었다.
‘이 정도로 봐줄까. 너무 파괴해도 좀 그렇지?’
이 얼마나 비단결 같은 마음일까. 혹시 착한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도 그 선의에 감명을 받아 정말로 착한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인 것일까.
‘미친놈. 놀고 있네.’
지크는 자신을 욕하며 킬킬거렸다.
슈욱!
뒤에서 파공음이 들렸다. 지크는 바로 윈두르를 뒤쪽으로 휘둘렀다.
서걱!
무언가가 베였다. 지크에게 쏘아진 황금이었다. 떨어져 나간 황금이 폐허 속을 구르다 멈춘다.
지크가 등을 돌렸다. 길게 늘어진 황금이 일부를 잃고 근처에서 흐물거리고 있었다.
스르륵!
떨어져나간 황금이 마치 액체처럼 변화하더니 폐허를 헤집으며 미다스의 곁으로 돌아갔다. 곧 그것은 본체 황금과 다시 합쳐졌다.
“역시 쓸 만하네, 그 능력.”
지크의 말은 진심이었다. 황금을 만들고 그 중 일부를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
적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던 경매장의 경비원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할 정도로 그 능력은 분명 강력했다.
하지만 딱 그 뿐이었다. 지크가 한 말은 정확히 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었다.
쓸 만하다. 지크에게 있어 미다스의 능력은 그 이상이 아니었다.
“개자식!”
미다스가 황금을 전 방위로 쏘아 보내 압박했다. 하지만 이미 경매장도 원한 만큼 부쉈겠다, 지크도 더 이상 이상한 연극을 하며 도망 다닐 생각이 없었다.
‘‘호수의 눈물’도 회수해야 하니까.’
카앙! 카앙! 카앙!
황금 기둥들이 지크의 검격에 전부 튕겨나간다.
강도를 높였는지 방금처럼 황금이 썰려나가진 않았다. 그러나 황금들이 지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스륵!
황금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했다. 태세를 정비하려는지 황금은 미다스의 곁으로 물러났다.
‘슬슬 끝내야지.’
계획은 대강 끝났다. 원하는 만큼 경매장이 무너졌으니 더 이상 미다스와 놀아줄 필요도 없다.
‘꽤나 즐거웠어.’
그에 고마움을 표해 깔끔하게 죽여줄 생각으로 지크는 윈두르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네놈은 역시 그놈들과 한 패지.”
미다스가 중얼거렸다.
“개자식들! 내가 ‘호수의 눈물’을 빼돌리기라도 할 성 싶었더냐!”
‘뭔 소리야, 이 자식은.’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분노에 찬 미다스는 지크의 반응 따윈 아랑곳 않고 외쳤다.
“네놈들이 아니라면 내 능력을 그렇게 속속들이 알 리 없지! 그래! 어쩐지 이상했어! 이런 완벽한 능력을 타인에게 주다니! 그때 알았어야 하는 건데!”
완벽한 능력이란 건 아마도 미다스 자신의 연금술을 말하는 것일 터. 지크는 피식 웃었다.
‘완벽한 기술은 무슨.’
지금의 미숙한 미다스든, 미래의 마인 ‘골든 캐슬 윕스 미다스’든 지크는 단 한 번도 저 녀석의 아래였던 적이 없다.
한데 그런 놈이 완벽한 기술 운운을 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미다스는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 모양이다.
“역시 네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 로브를 입고 정체를 숨긴 놈들을 믿은 내가 멍청이지!”
‘저놈도 ‘로브 입은 놈’들이 만든 놈이었나?’
정말로 세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네놈들의 뜻대로 될 줄 알았느냐! 내가 어떻게든 네 놈을 죽인다! 그리고 날 속인 놈들도 찾아 죽이고! 네 놈들 세력 전부를 족쳐버리겠어!”
“아, 그건 불가능해.”
지크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놈들을 싹 쓸어버리는 건 내가 할 거고, 넌 여기서 죽을 거니까.’
지크가 윈두르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미다스는 그걸 자신을 낮춰보는 말로 들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크는 실제로 미다스를 낮춰보고 있었기에 그다지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이, 이…!”
그가 핏발 선 눈으로 지크를 쳐다본다.
“죽어어어어!”
퍼어어어엉!
미다스의 황금이 다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냉정하게 쳐다본 지크도 윈두르를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