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그 말이 결정타였다. 미다스는 눈앞이 뿌예지는 것을 느꼈다.
현기증이 나며 주변의 모든 사물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그의 눈에 비치는 건 오로지 지크의 모습뿐이었다.
직원은 미다스의 이상한 행동에 꺼림칙함과 약간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일을 행하려 했다.
“…그, 그럼 이 마차는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온 다른 직원에게 눈짓했다. 직원들이 황금 마차에 다가가 말과 마차를 분리했다.
답답함에서 벗어난 것이 기분이 좋아 가벼운 투레질이라도 할 만하건만 말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것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바로 곁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존재 때문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어? 이 녀석, 왜 이래?”
그건 주변의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 움직이지 않는 말들 때문에 마부들이 당황했다.
부자들을 호위하고 있던 자들은 언젠가부터 미다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매장 직원들은 미다스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끼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상대의 무력에 주눅이 든다면 장사를 해먹지 못한다.
미다스에게 설명을 해주던 직원이 마법 상자를 꺼내들었다. 마차를 안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가 마차에 접근하는데도 미다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직원은 내심 안도했다.
미다스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척이나 기분 나빠할 뿐, 이렇다 할 무력행사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잔뜩 성이 난 사람 곁에 계속 머무는 것도 유쾌한 건 아니다.
‘빨리 끝내야지.’
그가 마법 상자를 마차에 들이밀 때였다.
덥석!
미다스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상당한 힘이 실려 있어 직원이 낮게 신음했다.
“무, 무슨 짓입니까!”
“기다려. 지금 마차가 필요하니까.”
정확히 말하면 힘이 필요하다. 저기서 얄미운 얼굴로 싱글대고 있는 지크를 짓이길 힘이.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직원은 그 말이 가당찮았다. 아니, 사정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건 미다스의 개인 사정이다.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불가능합니다. 마차를 되찾고 싶으시다면 빌려간 돈과 이자를 내십시오.”
직원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 게다가 그와 같이 온 경비원들과 경매장에 있는 다른 경비원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매장 뒤에 있는 도시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불운한 점은, 지금 미다스는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경비원들이 미다스를 제지하기 위해 다가온다. 하지만 미다스에게는 여전히 지크만이 보였다.
지크가 일어선다. 그리고 윙크 한번을 하고, 경매장 안으로 사라졌다.
휙!
미다스는 직원의 팔을 뿌리치듯 놨다. 직원이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미다스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차에 손을 댔다.
“갖고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직원이 소리를 쳤다. 대단한 직업 정신이었다.
하나, 미다스는 그 직업 정신에 대한 존중을 일절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직원도 생각을 굳혔다.
“제압해!”
이제 미다스는 돈을 빌려간 후 갚을 때까지 이자를 꼬박꼬박 바칠 손님이 아닌, 돈도 안 내고 담보를 강탈하려는 진상이자 강도에 불과했다.
경비원들이 창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상황이 거칠어졌지만,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진상의 난동 정도의 일.
그랬기에 주변에 있던 자들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뿐, 급하게 도망가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급 가속되었다.
푸욱!
달려들던 경비원 둘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어느새 미다스의 손에 쥐여진 금색 꼬챙이가 둘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커헉!”
“쿨럭!”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몇 번 굴린 경비병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죽었다.
“으,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냥 몇 대 치고 박은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죽은 것이다.
엉거주춤 일어서던, 미다스에게 내밀렸던 직원이 다시 엉덩방아를 찧었고 다른 직원들도 급하게 뒷걸음질을 쳤다.
삐익!
남은 경비원이 품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급히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급히 미다스에게 달려들었다.
퍼어엉!
경비원의 머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차에서 튀어나온 황금 기둥이 그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또 한 사람이 죽었다. 주변의 혼란이 더욱 깊어졌다.
마차들이 서로 먼저 가겠다며 달리다 충돌하고 말들이 폭주하며 사람들이 깔렸다.
자기 호위 대상을 먼저 지키려다 호위끼리 칼부림을 하는 자들까지 생겼다.
방금 전까지 남의 불행을 즐기던 사람들의 꼴불견적인 추태는 엄청난 피해로 변해갔다.
그러나 미다스의 신경은 오로지 경매장 안으로 들어간 지크에게만 쏠려 있었다.
저벅!
미다스가 발을 내딛는다.
스륵!
끄는 말도 없는 마차가 스스로 움직여 그의 뒤를 따랐다.
* * *
‘시작됐네.’
로비의 의자에 앉아서 바깥의 상황을 감지하던 지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계획이라고 해봤자 뭔가 거창한 목표를 정한 건 아니다. 그는 그저 한 가지만을 원했다.
윕스 미다스 대 티리울 중앙 경매장. 바로 그것이었다.
마인화된 미다스는 물론이고 뒷 경매장에서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경매장에도 지크는 나름의 ‘착한 일’을 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싹 밀어버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지크와 도시의 전면 전쟁이 되어버린다.
도시의 어느 선까지 이 일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이 뒷 경매장에 시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는 건 분명하지 않겠는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로서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럼 일이 더 복잡해진다.
그 때부터는 지크와 경매장의 진실 공방으로 번질 테니까. 그리고 아마도 뒷 경매장을 이용하는 돈 많은 놈들도 어떻게든 지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이다.
그래도 그냥 검 하나 들고 들이박을까 생각하던 지크의 머릿속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어차피 둘 다 치워버려야 할 놈들이라면, 두 놈이 싸우게 만들면 되는 거 아냐?’
그래서 계획을 짰다.
계획은 간단했다. 미다스를 유혹해 엄청난 돈을 쓰게 해서 경매장에 빚을 지게 한다. 그럼 경매장은 미다스의 황금 마차를 담보로 잡을 터.
그 때 미다스가 힘을 쓸 아니, 눈이 뒤집혀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준다면….
‘미다스 녀석의 개인 무력은 황금 마차가 전부니 당연히 황금 마차를 쓰려고 할 테고. 경매장은 당연히 담보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겠지.’
그럼 남은 건 충돌뿐이다.
높은 금액의 물품들과 많은 돈이 거래되는 경매장인 만큼 자체적인 무력은 상당하다. 거기에 소란이 일어나면 툰겔에서 지원까지 올 터.
‘그런데 상대해야할 인간이 윕스 미다스잖아.’
골든 캐슬 윕스 미다스. 지금은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약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마인이라 불릴 작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지?’
이때를 위해 준비했다. 지크는 마법 상자에서 술병 하나를 꺼냈다. 그건 싸구려 럼주였다.
마개를 딴 후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독한 술이 식도를 지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난 후, 싸구려 특유의 알코올 향이 확 퍼졌다.
동시에.
콰아아앙!
경매장 바깥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렸다.
‘싸움 구경엔 역시 거친 싸구려 술이지!’
지크는 바깥에서 난 폭음에 정신이 팔린, 아직 로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뚫고 경매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매장의 직원들이 헐레벌떡 움직인다. 지크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몇몇 직원들이 지크에게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그런 자들은 지크가 손수 재워줬다.
그렇게 해서 지크가 도달한 곳은 예전 미다스가 술을 마시던 술집이었다.
술집의 테라스에 나가니 바깥의 풍경이 훤히 보였다.
“밀지 마!”
“아악!”
“비키지 못해!”
마차를 타고 돌아가려던 경매 참가자들이 서로 전투 반경에서 벗어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서로 밀고 깔리고 엎어진데다가 그 혼란 통에 호위들의 싸움까지 나 부상자는 물론이고 사망자까지 얼핏 보였다.
하지만 지크는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저 새끼들도 나쁜 놈들이었는데, 뭐.’
뒷 경매장은 불법적이고 위험한데다 더럽기까지 한 물품들을 올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보다 더 더러운 꼴을 아는 지크야 담담히 봤지만 다른 일행들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도 보였다.
‘다행히 ‘물품’과 달리 ‘생명’은 나중에 배달해주는 터라 저기에 끼지 않아서 다행이지.’
단순하게 저 작자들이 자신들의 고급 마차에 ‘생명이 있는 경매품’을 같이 태우기 싫어서 그런 전통 아닌 전통이 이어진 것뿐이지만.
그러나 그 전통이 피해를 줄이게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자기들끼리 진흙탕에서 악을 써대는 참가자들에게 눈을 뗀 지크는 이번엔 전투가 일어난 지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막아!”
“보통 놈이 아니다! 따로따로 움직이지 마!”
“아무나 시의 경비대에 알려!”
경매장의 경비원들이 미다스를 포위하고 있다. 커다란 경매장인 만큼 경비원의 숫자가 제법이어서 계속해서 충원도 되고 있었다.
그러나 미다스를 막기에는 부족했다.
“커억!”
“크악!”
미다스의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마차가 형태를 변형해 표면에서 커다란 황금 송곳을 쏘아냈다. 가까이 있던 경비원 둘이 목숨을 잃었다.
“이 자식이이이이!”
경비원 한 명이 창을 내질렀다. 창에는 상당한 마력이 둘러져 있었다.
카앙!
그러나 그 창은 액체처럼 솟구쳐 미다스를 둘러싼 황금에 막혀 튕겨 나갔다.
퍼억!
“아악!”
황금이 휘둘러져 경비원을 쳐 날렸다.
주르륵!
미다스를 천천히 뒤따르던 황금 마차가 마치 높은 온도에 녹아내리는 황금마냥 서서히 제 형체를 잃어갔다. 바퀴조차 흐물흐물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황금은 움직였다.
마치 벌레처럼 꾸물거리는 황금 덩어리는 무척이나 징그럽게 보였다.
촤악!
황금이 길게 늘어져 미다스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건 무척이나 놀라운 모습이었다.
“으…!”
“대체 저게 뭐야!”
경비원들이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친다. 뒷 경매장의 경비원으로서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가진 그들이라도 이런 건 처음이었다.
숫자는 많지만 감히 미다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미다스가 움직였다.
촤아아악!
길쭉한 황금 덩어리가 금색의 촉수를 뿜어냈다.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무거우며 강하다.
콰직!
퍼억!
우지직!
주변의 경비원들이 학살당했다.
죽는 방법도 다양했다. 꼬챙이처럼 꿰거나 위에서 짓누르거나 단순하게 후려치기도 했다. 공통점은 하나.
어떤 공격도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으, 으아아아아!”
“도망쳐!”
뒷 경매장의 경비를 책임지는 자들이라곤 하나 그래봤자 경비병. 미다스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에 등을 돌리는 자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미다스는 자신을 적대한 이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콰득! 콰직!
미다스가 경비원 하나하나를 으깨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지크는 별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저놈들도 뒷 경매장의 끔찍한 모습을 다 알고도 저 짓하던 놈들인데, 뭐.’
지크의 입장에선 그들도 ‘착한 일’의 대상일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