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대지의 눈물’의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지크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상대인지는 모르지만 경쟁자는 계속해서 가격을 올렸고 그에 따라 미다스도 가격을 올렸다.
올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떤 놈이!’
걸리면 당장 사지를 쥐어짜고 싶지만 여기는 무력으로 싸우는 곳이 아니라 돈으로 싸우는 곳이다.
다행히 아직 미다스의 재산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호수의 눈물도 낙찰을 받아야 하거늘!’
대지의 눈물에 너무 많은 재산을 사용하면 호수의 눈물의 경매에서 뒤처질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일이지만, 대지의 눈물 낙찰 때 이런 엄청난 경쟁이 일어날 줄은 누가 알았는가.
‘게다가 그 녀석들이 참가할 수도 있어!’
이미 미다스는 대지의 눈물의 경쟁자가 지크라는 가능성을 완전히 접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호수의 눈물 때는 다를 수 있다. 대지의 눈물의 낙찰 금액이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갈 테니까.
‘놈들의 눈치를 보면 우선적으로 돈을 원하는 것 같았으니 그대로 낙찰 금액만 받고 만족할 수도 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금액을 얻게 된다면 또 생각을 달리할지도 몰라!’
녀석은 분명 호수의 눈물도 노리고 있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금액을 올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세계의 신으로서 군림할 그의 유일한 약점이 될지도 모르는 물품인 것이다.
경쟁자가 또다시 금액을 올렸다. 미다스도 한 층 더 값을 올렸다.
질겅질겅 씹어댄 그의 입술에 엷은 핏기가 보였다.
* * *
경매에 참가하는 지크는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 녀석의 면상을 눈앞에서 봐야 하는데!”
딱 그것만 아쉬웠다. 하지만 나머지 상황은 너무도 흡족하게 돌아갔다.
“언제까지 가격을 올릴 거야?”
라일라가 물었다. 옆에 있는 한스와 스녹은 상상도 못 해본 금액이 계속 호가되자 조금 정신이 나가 있었다.
레오나도 마찬가지. 그녀가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인 사과 갯수 세기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져 있었다.
“적어도 녀석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긁어낼 때까지.”
“알 수 있어?”
“대충은.”
미다스가 만드는 황금 중 미다스의 지배력이 미치는 금의 비율은 대략 1/10. 그리고 지배력이 미치는 황금은 지크에게 보낸 갑옷이나 도청을 위한 금괴 등 소량을 제외하곤 철저하게 미다스 자신의 근처에만 둔다. 마법 상자에 넣어 놓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황금성 같은 어처구니없는 걸 만든 거지.’
지크는 미다스가 타고 다니는 황금 마차가 지금 미다스가 지배력을 구사하는 황금의 전부라고 봤다.
‘그렇다면 녀석이 만들었던 황금은 황금 마차 열 대 분이 더 있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사치를 부리는데 상당히 많은 양의 금을 사용했을 테니 지금 쓸 수 있는 돈의 양은 더욱 줄어들 터.
이미 마차 한 대 분의 금의 양은 대략적으로 계산을 끝냈다.
‘적어도 여섯 대 분량은 쓰게 만들자고.’
초조함에 심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미다스와는 정반대로 지크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이 버튼을 눌러 또다시 금액을 올렸다.
* * *
툰겔의 많은 경매장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경매장인 뒷 경매장. 그곳에서는 지금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맨 처음 나온, 별 중요하지도 않은 물품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계속 불러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이 경매를 지켜봤다. 분명 특이한 현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던 상황도 아니다.
이곳 뒷 경매장뿐만 아니라 다른 경매장에서도 종종 나오는 현상인 것이다.
경쟁심. 사람들은 지금 알 수 없는 두 부자 사이에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경쟁하는 건 저 별것 아닌 것 같은 경매품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심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경쟁자 중 한 명인 미다스는 경쟁심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져 있었다.
‘그만 좀 불러라, 이 개자식아!’
얼굴도 모르는 상대의 면상을 후려쳐 짓이기고 싶다. 당장 경매장으로 뛰어들어 경매사의 멱살을 붙잡고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금을 생각하고 여유자금을 계산한다. 벌써 재산의 반 이상이 날아갔다.
포기할까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약점을 찔러오는 물건을 그냥 내버릴 순 없었다.
‘빌어먹을!’
결국 다시 한번 금액을 올렸다.
그는 초조하게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미다스가 금액을 올리자마자 한 번 더 가격을 올리던 상대방이, 이번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낙찰됐습니다!”
경매사가 큰 소리로 낙찰의 여부를 알린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이 엄청난 자존심 대결에 감탄했고 승자를 축하했다.
‘끄, 끝난 건가?’
미다스는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털썩 기댔다.
‘이겼다.’
하지만 이 승리가 전혀 기쁘지 않다.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일 뿐이다.
연금술사가 된 후로 돈 때문에 이 정도로 긴장된 적은 없었다.
똑! 똑!
누군가 객실을 두드린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미다스는 얼굴을 팍 찌푸렸다.
‘젠장! 좀 쉬고 싶었는데!’
하지만 지금 방문한 자가 누구인지 알기에 미다스는 어쩔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축하드립니다!”
그의 객실을 방문한 경매장 직원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경탄의 빛이 어려 있었다.
그로서는 몇십, 몇백의 인생을 살더라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돈을 털어 넣는 미다스에게 경악한 것이다.
평소라면 그런 경탄의 눈빛을 즐겼을 미다스지만 지금은 그저 짜증만 났다.
그의 심기가 불편함을 직원도 알아차렸다. 직원이 긴장했다. 그러나 의무는 다해야 했다.
“죄송합니다만, 결제를 부탁드립니다.”
뒷 경매장은 이렇게 바로바로 대금을 치러야 했다. 혹시나 난동을 부릴까 직원과 같이 온 경비병들이 미다스의 행동을 샅샅이 살폈다.
“쯧! 알았다.”
혀를 한 번 차서 기분이 안 좋다는 표현을 한 번 하고는, 그래도 그는 대금을 치렀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재산이 일순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이것 때문에.’
그는 대금을 받은 후 직원이 가져다준 ‘대지의 눈물’을 매만졌다.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붉은 광석.
“젠장!”
당장이라도 거칠게 대지의 눈물을 내던지고 싶다. 하지만 사용한 재산이 눈에 아른거려 내던질 수도 없었다.
한숨을 한 번 쉬고 대지의 눈물을 마법 상자에 넣었다.
‘대체 누구지.’
대지의 눈물의 가격을 다 올려놓은 경쟁자. 그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대지의 눈물 낙찰이라는 급한 불을 껐으니 이젠 호수의 눈물을 신경 써야 한다.
호수의 눈물을 노리던 지크 일행에게 돈이 넘어갈 테니, 이번 경쟁은 더욱 심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지의 눈물을 노리던 놈이 호수의 눈물을 또 노릴지도 몰라.’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호수의 눈물이 출품되기까지는 시간이 있다.
‘돈을 빌려야겠군.’
그는 일어섰다.
* * *
여러 경매 물품이 오고 갔다. 높은 금액을 받은 물품이 있고 생각보다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한 물건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물품들은 하나하나 주인을 찾아갔고, 드디어 호수의 눈물이 경매장에 올라왔다.
“저거야!”
레오나가 벌떡 일어섰다. 지크도 호수의 눈물을 내려다봤다.
호수의 눈물을 찾으려 많은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예쁘군.’
호수의 눈물을 처음 본 지크의 감상이었다.
그건 꼭 나뭇잎에서 떨어지기 바로 직전 물방울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크기는 손바닥 만하다.
푸른색의 몸체 안으로 마치 깨끗하고 평온한 바닷물이 나다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능력은 둘째 치고 예술품으로서도 상당히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경매사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여기저기서 금액을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지크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지막에 참가할 거야?”
“그래.”
지크는 마법 상자 하나를 손가락 위에서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건 이번에 받은 대지의 눈물의 대금이 들어 있는 마법 상자였다. 그걸 보고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설마 대금을 마법 상자째로 넘겨줄 줄은 몰랐어.”
마법 상자는 그들의 것이 아닌, 경매장에서 갖고 가기 편하라고 제공해 준 것이었다.
“경매장의 욕심 많은 인간들이 말이야.”
“그만큼 우리가 내놓은 상품이 대박을 쳤다는 뜻이야.”
“…그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나?”
“훌륭한 상품이지. 매출을 보라고.”
지크는 마법 상자를 흔들어 보이며 낄낄댔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수익을 바로바로 갖다줘?”
“경매에 참가하는 인간한테만. 그 사람이 받은 돈으로 또 다른 경매 물품의 가격을 올려줄 수도 있으니까.”
“참 장사 잘하네.”
라일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호수의 눈물의 가격은 꽤 많이 상승한 상태였다.
점점 금액을 높이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지고 곧 금액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지크가 경매에 끼어든 건 그때였다. 그리고 대지의 눈물때 그랬듯, 호수의 눈물의 가격도 엄청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만 두 번째 자존심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계속해서 불려진다. 경매사도 흥분하여 목청이 찢어져라 제시된 금액을 외쳤다.
그러나 흥분된 아래 상황과는 다르게, 지크는 엄청난 돈을 제시하는 사람답지 않게 무료한 듯 턱을 한쪽 손에 괴고 버튼만 눌러댔다.
하지만 금액이 일정 이상 올라가자 그의 눈빛이 변했다.
“왜 그래?”
라일라가 물었다.
“계획대로 됐어. 저 녀석, 갖고 있는 돈의 이상을 쓰기 시작했어.”
“빌린 돈을 쓰고 있단 거지?”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계획은 대부분 성공이다.
지크가 흘끔 레오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당신이 여기서 그저 호수의 눈물을 되찾는 걸로 끝내겠다면, 전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레오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새삼 생각하지만, 지크 너는 그다지 착한 사람은 아니지?”
“네. 오히려 무척 나쁜 사람에 속합니다.”
옆에 있던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와 스녹 그리고 노웸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나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괜찮아.”
레오나가 웃었다.
“어차피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그러니까 한 번, 끝까지 너를 믿어볼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내 선택의 결과니까,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레오나의 결단에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지금, 당신의 믿음은 배신당하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호수의 눈물을 찾아드리죠. 그걸 위해서 지금 당장은….”
지크는 무대 위에 있는 ‘호수의 눈물’을 쳐다봤다.
“호수의 눈물을 포기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