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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62화 (162/628)

제162화

경매가 시작됐다. 지크와 라일라, 레오나는 난간 바로 앞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경매사가 동그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가 자기소개를 하고 허리를 숙인다.

어떤 마법 장치가 되어 있는지, 효율적인 건물 설계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경매사의 목소리가 커다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매사의 인사말은 그곳까지 똑똑히 들렸다.

첫 번째 경매 물품이 올라오고 경매사가 경매 물품을 소개한다.

“희귀한 보석이라네.”

라일라가 방 안에 미리 마련되어 있던 카탈로그를 가져왔다.

카탈로그 가장 앞에는 지금 경매사가 소개하고 있는 보석이 설명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과일을 하나씩 들고 다가온 한스와 스녹도 카탈로그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겨갔다.

이미 로비의 나무판에서 한 번쯤 봤던 것들이지만, 직접 경매를 참관하면서 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를 제외하면 나무판에 있던 물품 설명서를 자세히 본 사람도 없었다.

“사고 싶은 거라도 있냐? 있으면 말해라. 몇 개 정도는 사주마.”

벼락부자라도 된 듯 지크가 거만하게 말했다.

“돈 생겼다고 너무 막 쓰는 거 아냐?”

“막 써도 될 만한 돈이잖아?”

“그렇긴 하지.”

이번에 지크가 얻은 재산을 알고 있는 라일라는 곱게 수긍했다.

“게다가 앞으로 더 긁어낼 생각이거든. 푼돈이긴 하지만.”

정말로 잔돈 몇 푼 번다는 투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푼돈은 아닐 거라는 걸, 라일라를 비롯한 일행은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이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한스와 스녹이 음식에 달라붙어 배를 채운다. 노웸은 파이 하나에 얼굴을 완전히 들이박았다.

“…아!”

음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카탈로그를 넘기던 라일라의 손이 멈췄다.

“뭐야, 관심 가는 거라도 있어?”

접시 하나에 음식을 가득 담고 돌아온 지크가 라일라의 옆에 붙어 카탈로그를 들여다봤다.

“오, 꽤 괜찮아 보이네.”

그건 지팡이였다. 직선으로 멋들어지게 뻗은 긴 손잡이 끝이 마치 왕관처럼 갈라져 있고, 그 끝으로 각기 색이 다른 보석이 총 다섯 개가 달려 있다.

길이는 대충 키 작은 남성의 어깨까지 올 정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마력 증폭기나 마법 보조구 같은 것도 없이 고위 마법을 줄줄이 써댔지.’

다시 한번 라일라의 괴물 같음이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갖고 싶냐?”

“응, 뭐….”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크는 간단하게 말했다.

“그럼 사지, 뭐.”

라일라에게 상당히 도움을 받아온 만큼 지크도 라일라에게 쪼잔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지크가 그녀 쓰라고 보물도 상당히 많이 나눠준 상태라 그녀도 돈이 없는 건 아닐 터지만, 어차피 지크는 돈이 많다.

지크는 지팡이가 실려 있는 카탈로그의 페이지 숫자를 들여다봤다.

상당히 뒤쪽에 있는 걸 보면 오늘 출품되는 것 중에서도 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경매 시작가도 높았다.

지크는 경매를 기다렸다. 여러 신기하고 귀한 것들이 지나가고 그들이 눈독 들이던 지팡이가 올라왔다.

경매사가 지팡이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끝마친 후, 경매를 시작했다.

아래에서 무대 앞에 앉은 일반석의 사람들이 연신 금액을 높였다. 원하는 사람이 많은지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참가하는 거 아니었어?”

라일라가 조용히 물었다.

지크가 지팡이를 사준다고 했을 때는 조용히 있었지만, 은근히 원하고 있던 모양이다.

지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하러 일일이 금액을 높이고 있어. 금액이 다 올라갔을 때 참여하면 그만인데.”

지크는 느긋했다.

지크의 말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어졌고 금액이 올라가는 속도도 느려졌다.

그리고 누군가 제시한 금액을 끝으로 더 이상 금액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때 지크가 참여했다. 그는 테이블 한쪽에 있는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간단한 아티팩트인 그것은 테라스 아래쪽의 팻말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경매사가 지크가 있는 테라스 쪽을 확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가격을 크게 외쳤다.

라일라가 지크를 쳐다봤다.

“두 배 불렀어?”

“응.”

안 그래도 일반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이었다. 그런데 그 두 배를 부르다니.

그러나 지크는 태연하게 말했다.

“괜히 힘 뺄 필요가 뭐 있어.”

어차피 돈은 많다.

* * *

경매가 모두 끝났다. 원하는 물건을 구입해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었고 구입하지 못해 기분이 나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기분과 상념을 가졌든 끝은 끝이었다.

무대 근처에 있는 일반석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지크 일행은 아직 객석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지크가 묻는다. 새로 얻은 지팡이를 쓸어보던 라일라가 활짝 웃었다.

“응!”

순간 한스와 스녹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넋이 나갔다.

티끌 한 점 없이 웃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미모가 익숙해진 둘의 시선조차 사정없이 빼앗아버렸다. 동성인 레오나조차 놀란 모습이다.

다만 지크는 담담했다.

“그러냐. 다행이네. 그렇게 좋으면 하나 구하지 그랬냐.”

“돈 없었어.”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리고 그다지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으니까.”

지팡이 없으면 간단한 공격 마법 하나조차 쩔쩔매는 다른 마법사들이 목을 조르려 달려들 말을 태연히 내뱉으며 그녀는 다시 지팡이를 매만졌다.

그때, 객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경매장의 직원 한 명이 들어 왔다. 그는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지크 일행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경매가 끝났으니, 객실을 비워주셔야 합니다.”

지크는 의자에서 일어나는 대신 그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직원은 공손히 서류를 확인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확인했습니다. 즐거운 경매 되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객실을 나갔다.

지크가 내민 서류는 뒷경매장에 참석할 수 있는 참가증이었다. 이것 또한 미다스에게서 뜯어낸 것이었다.

‘여러모로 편리한 녀석이야.’

지크는 미다스에 대해 호의를 조금 느꼈다. 그가 없었어도 뒷경매장에 참석할 순 있었겠지만 생각보다 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건 이거, 그건 그거지.’

앞으로 미다스를 재미있는 고난에 빠뜨리기 위해, 지크는 눈물을 머금고 앞으로의 계획을 가다듬었다.

“웃는 게 섬뜩해, 너.”

라일라는 지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 * *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지크 일행은 VIP 객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슬슬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떠오르는 시간이 됐다.

경매장 안으로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낮에 모여든 사람들과는 뭔가 달랐다.

가지각색의 가면을 쓰고 고급스럽긴 하지만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나둘 사람들이 의자에 착석한다. 그 모습을 미다스는 VIP 객실 테라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레 같은 놈들.’

이 뒷경매장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분이 어떻든 간에 전부 한 재력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미다스에게 그들은 다른 인간들과 같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벌레와 다를 바 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전부 내 발밑에 무릎 꿇게 될 테지.’

기분 좋은 상상도 잠시.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경매장 직원이 새로 주고 간 카탈로그를 펼쳤다.

낮에 열렸던 경매장의 카탈로그보다는 얇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귀하고 값진, 그리고 위험한 물건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미다스의 시선은 오로지 두 가지 물건에만 집중됐다.

카탈로그 가장 앞쪽에 실려 있는 ‘대지의 눈물’과 중반부에 자리 잡은 ‘호수의 눈물’.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낙찰을 받아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야.’

재산만큼은 자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물건 두 개를 낙찰 못 받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그가 만들어 놓은 금을 전부 가져온 상태이기도 했다.

‘자, 어서 시작해라.’

그의 기대대로 얼마 안 있어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사는 낮의 경매사와 같았다. 그러나 그도 주변 상황과 어울리게 눈가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첫 번째 경매 물품이 올라왔다. ‘대지의 눈물’이었다.

그는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경매장을 내려다봤다. 시야에 ‘대지의 눈물’이 비치자 그의 눈가가 씰룩였다.

‘저걸 올리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대지의 눈물’을 경매장, 그것도 이 뒷경매장에 올리는 데는 그가 힘을 썼다.

반드시 ‘대지의 눈물’을 사야 하는 만큼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싸게 사기 위해 딱 뒷경매장에 아슬아슬하게 올릴 핑계를 만드느라 더욱 힘이 들었다.

‘하지만 성공했다.’

이젠 낙찰만 받으면 된다. 경매사가 금액을 부르자 그는 바로 참가했다.

그저 신비하고 비싼 보석으로 소개됐기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몇 명과 경쟁이 붙었지만 곧 대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건 그와 다른 한 사람이었다.

미다스는 그 사람을 익히 짐작했다.

‘그래, 네가 참가하겠지.’

미다스가 생각하는 사람은 지크였다.

‘분명 ‘호수의 눈물’을 노리고 있었지.’

하지만 그가 가진 재산은 고작해야 미다스가 준 금화 10만 개뿐. ‘호수의 눈물’을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거기다 내가 ‘호수의 눈물’을 노리고 있는 걸 아니까.’

그러니 ‘대지의 눈물’의 대금을 더해서 ‘호수의 눈물’을 노릴 것이다.

미다스가 ‘대지의 눈물’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해도 엄연히 ‘대지의 눈물’을 출품한 건 그 엘프였으니 대금은 모두 그 엘프에게 간다.

‘그리고 엘프는 그놈에게 속고 있고 말이야.’

금괴로 얻어낸 녀석들의 정보, 그리고 그를 토대로 그가 추측해낸 상황을 보면 확실했다.

그러나 놈은 모르는 게 있었다.

‘뭐, 좋을 대로 올려보도록 해라.’

미다스와 경쟁자 때문에 ‘대지의 눈물’의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미다스는 물론이고 경쟁자 또한 멈출 줄 몰랐다.

고작해야 첫 번째 물품, 그것도 별로 귀중해 보이지도 않는 물건이 엄청난 금액을 호가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물품의 금액은 금화 100만 개를 돌파했다.

그때, 경매사가 잠시 경매를 멈췄다. 그리고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어딘가로 손짓을 했다.

‘시작했군.’

뒷경매장은 일정 액수가 넘으면 정말로 그 돈을 낼 수 있는지 확인을 한다.

뒷거래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나쁜 마음을 먹는 인간들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객실로 직원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가진 금화들을 보여줬다. 그것을 확인한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객실을 나갔다.

‘끝났군.’

상대에게 있는 금화는 10만 개가 전부일 것이다.

뒷경매장의 규칙을 모르고 무조건 경매 가격을 올려서 자신의 재산을 긁어내려 했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두 분 모두 지불 능력을 확인한 결과, 경매를 속행하겠습니다.”

“…뭐?”

미다스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비집어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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