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한스와 스녹이, 지크와 라일라가 안다면 당장 몇 시간 정도는 고통에 끙끙거리게 만들 발칙한 상상을 하는 동안에도 둘의 연기는 계속됐다.
“어떻게 하려고?”
라일라가 묻는다. 하지만 그녀는 지크를 보지도 않았다.
새로운 골렘의 핵을 꺼내 먼저 살펴보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살폈다.
지크도 대답했다. 미스릴 덩어리 두 개를 더 꺼내 아예 저글링을 하면서 말이다.
“‘대지의 눈물’을 엘프 녀석을 통해 경매장에 낼 거야. 그리고 윕스 미다스 녀석이 그걸 사게 하는 거지.”
“그럼 놈에게 이득이 없잖아.”
“물론 정체는 숨겨서 내야지. 그래야 녀석이 충분히 싸게 ‘대지의 눈물’을 살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의 가치를 생각하면 거저나 다름없어.”
“가짜를 내는 건 어때?”
“내가 들은 바로 윕스 미다스는 보물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더군. 가짜는 들킬 게 뻔해. 녀석을 속이려면 위험부담을 지더라도 진짜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어.”
“그럼 경매에 그걸 내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는 얘기지?”
“그래. 돈은 원 없이 많은 놈인 것 같으니까. ‘대지의 눈물’의 정체를 숨기고 내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돈을 줄 수 있을 거다.”
“만약 주지 않는다면?”
“물러야지. 그 돈으로 ‘호수의 눈물’을 사야 하니까 최대한 긁어내야 돼.”
“될까?”
“그게 최소한의 조건이야. 그래야 ‘호수의 눈물’ 구입에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어.”
“윕스 미다스도 노리고 있다면서.”
“그래서 돈을 이 정도 끌어내려는 거야. 우리의 자금을 채워 놓으면서 녀석의 자금도 깎아낼 수 있으니까.”
“그 걸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그래서 ‘대지의 눈물’을 던지는 거기도 해. 녀석이 우리에게 자금을 댄 상태로 ‘대지의 눈물’과 ‘호수의 눈물’, 두 개 전부를 구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빌면서 말이야.”
지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윕스 미다스가 제안을 걷어찬다면?”
“어쩔 수 없지. 그냥 ‘대지의 눈물’을 다른 곳에 속여 팔아넘길 수밖에. 아무리 ‘호수의 눈물’이 없어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엘프의 보물’이니 만큼 기본적인 돈은 받아낼 수 있을 거야. 수집품으로서는 인상적일 테니까.”
그러며 지크는 투덜거렸다.
“뭐가 ‘엘프의 보물’이야.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고철 덩어리가.”
“아무 능력도 없는 건 아니잖아.”
“오히려 그게 더 짜증 나.”
지크는 금괴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법 상자 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금을 돌로 만드는 능력이라니. 그딴 능력을 누가 사용한다고.”
주머니가 마법 상자 안으로 사라졌다.
대화가 뚝 끊겼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짝!
지크가 박수 한 번을 쳤다.
“끝!”
“우와아~!”
방 소파에 앉아 두근거리는 얼굴로 상황을 보고 있던 레오나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지크는 과장되게 그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무대를 끝낸 배우 같은 행동이다. 레오나가 박수를 쳤다.
“대단해! 어떻게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거야?”
“취미 생활이라서요.”
“연극이 취미야?”
“다른 겁니다.”
정확히는 사람 속이기, 엿 먹이기, 울화통 터지게 하기 등등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물론 레오나도 슬슬 지크가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것은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기에 그녀는 여전히 지크를 믿고 있었다.
역시 그녀는 개호구였다.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이는 레오나를 뒤로 하고 지크는 이번에 멋진 활약을 보여준 공범에게 다가갔다.
“잘했어. 재능 좀 있는데?”
지크가 손바닥을 펴 보이자 라일라가 손을 마주쳐 왔다. 하지만 눈은 핵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연구를 하는 마법사를 함부로 건드리면 좋지 않다. 그때의 마법사란 인종들은 무척이나 민감한 법이다.
지크는 조용히 그 곳을 벗어나려 했다.
“후우~!”
하지만 그 전에 라일라가 핵에서 눈을 뗐다. 근육이 뭉쳤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팔을 돌린다.
폼이 더 이상 연구에 매진할 것 같진 않아 지크는 다시 그녀의 곁에 섰다.
“성과는 있어?”
“응. 그다지 특이한 골렘은 아니야. 보물이 가득한 고대 유적에서 아직도 기동하는 골렘이라 뭔가 다를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한 점은 없어.”
강력한 마법 금속인 미스릴 뭉텅이로 그렇게 강력하고 재빠른 움직임을 취하게 하던 골렘의 핵을, 그녀는 마치 어린애가 갖고 노는 장난감과 비슷한 취급을 하고 있었다.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지크도 그녀의 천재성에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로 그 ‘마도의 마왕’보다도 마법에 대한 재능이 높은 게 아닐까?’
거기에 다른 재능도 뛰어나 뭐든 정말로 빨리 배웠다. 오늘의 연기도 고작해야 지크에게 며칠 배운 게 다라면 누가 믿겠는가.
물론 아직 어색한 부분은 있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지. 저 녀석도 금괴를 한 번 경유해서 들을 테니까.’
그 정도면 속이기는 충분할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거.”
라일라가 핵을 자신의 마법 상자에 넣으면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붉은색의 주먹만 한 광석이었다.
“네 말대로 ‘뭔가 있어보이게끔’ 만들어 놨어.”
흐릿한 마력이 광석에 깃들어 있다. 게다가 광석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신비로운 무지갯빛이 사이사이 새어나왔다.
지크는 그것을 들어 보였다. 앞뒤, 좌우, 위아래를 꼼꼼히 확인했다.
“음, 마음에 드네! 잘 만들었어!”
지크는 라일라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다시 그 붉은 광석에 시선을 뒀다.
“그건 뭐야?”
레오나가 지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이 지크가 들고 있는 붉은 광석을 바라봤다.
지크는 씨익 웃었다. 마치 장난을 치기 전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
그러나 그 미소가 불러올 파괴력을 아는 한스와 스녹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대지의 눈물’입니다.”
“…이게?”
대지의 눈물. 지크가 ‘호수의 눈물’을 되찾으려 세운 계획의 한 축. 레오나는 신기한 눈으로 ‘대지의 눈물’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게 가짜라는 거지?”
대답은 라일라가 했다.
“그래. 대부분은 구리고 안에 미스릴을 섞었어. 환영 마법과 특이한 마력의 흐름을 뿜어내게 만들었지.”
일종의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이 아티팩트에 가치라곤 전혀 없었다.
판다고 해도 고작해야 구리값과 미스릴값만 쳐줄 뿐, 아티팩트로써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충분히 만족했다.
“그거면 충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아티팩트가 아니라 조금 신비하게 보이는 물건일 뿐이니까. 이걸로 윕스 미다스가 속아주면 그만이야.”
“속을까?”
직접 ‘대지의 눈물’을 만든 라일라지만 정말로 저 허접한 광석에 미다스가 속을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지크는 제법 자신이 있었다. 그는 미다스가 준 황금이 들어있는 마법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보통 그런 놈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법이지. 그리고 그 대단한 능력으로 얻은 성과를 의심해보려고 하지 않아.”
지크는 다시 마법 상자를 품에 넣었다.
“지금 녀석의 머릿속에는 이런 정보가 떠다닐 거야. 우리가 ‘대지의 눈물’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 ‘대지의 눈물’을 이용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리고….”
지크는 ‘대지의 눈물’을 한 번 던졌다가 받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대지의 눈물’의 기본 능력이 자신의 능력의 극상성이다’라고 말이야.”
끙끙대고 있을 미다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긴지 지크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녀석이 보물 같은 거에 조예가 깊다는 건?”
“아, 그거 말이야? 나도 몰라. 그건 그저 내가 녀석에게 ‘왜 ‘진짜 대지의 눈물’을 주는지’에 대한 이유를 붙였을 뿐이야. 미다스 녀석은 내가 녀석이 보물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짜 대지의 눈물’을 주는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다시 큭큭거렸다.
“솔직히 녀석이 보물에 대한 조예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없어. 녀석이 조예가 깊다고 해도 의심하지 못 할 거야. 자신의 대단한 능력으로 알아낸 정보거든.”
그렇다면 자신의 조예 쪽을 의심할 가능성이 극히 높다.
지크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한스와 스녹,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레오나만 동그란 눈으로 지크를 쳐다볼 뿐이었다.
* * *
지크의 예측은 정확했다.
느긋하게 욕조에 몸을 담그고 지크 일행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미다스. 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해져 있었다.
‘금을 돌로 바꾸는 능력이라고?’
얘기를 들어 보면 ‘대지의 눈물’이라는 건 ‘호수의 눈물’과 같이 있어야 본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금을 돌로 바꾸는 능력’은 어디까지나 부연 능력일 뿐. 솔직히 지크의 말처럼 반기는 사람은 없을 그런 능력이었다.
그러나 미다스에게는 반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무척이나 심각한 능력이었다.
‘그럼 내가 만든 황금도 모두 돌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건가?’
그 능력의 강함이나 빈도, 범위 같은 건 모르지만 일단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미다스에게는 심각한 위험이다.
만약 그 능력이 상당히 강하고, 그걸 갖고 있는 자가 자신의 적으로 서게 된다면….
‘안 돼!’
무한히 황금을 만들 수 있는 미다스지만 그 속도에는 아쉽게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갖고 있는 특수한 황금조차 돌로 바꾸어 버린다면 그는 일신의 안전마저 보장할 수 없게 된다.
황금을 계속 만들어 말 그대로 세계를 산다는 그의 원대한 야망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그런 능력이 있는 보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었다.
‘강제로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예전 그가 보낸 갑옷을 부순 걸 보면 그들의 실력도 제법이었다.
자신이 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혹 ‘대지의 눈물’을 갖고 도망갈 수도 있다.
미다스는 지크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대지의 눈물’을 경매장에 올리기 위해 날 찾아올 거라고 했지.’
어쩔 수 없이 그 사기꾼의 계획에 당분간 어울려줘야 할 것 같았다.
‘놈이 찾아오면 ‘대지의 눈물’을 뒷 경매장에 올리고, 그 대가로 돈을 줘야 해.’
돈이야 주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지크가 얼마나 돈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것에 있었다.
그의 재산은 무한히 증식할 테지만 적어도 지금 무한한 돈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돈을 빌려야 할 수도 있겠어.’
다행히 이곳에서 그의 신용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지크가 꼭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르리란 법도 없다.
‘젠장! 결국은 만나봐야 알겠군!’
‘호수의 눈물’도 구입을 해야 하건만.
미다스는 욕조에서 거칠게 일어섰다. 욕조에 들어오기 전의 좋았던 기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다음 날, 미다스는 사람을 보내 지크를 불렀다. 이런 일은 최대한 빠를수록 좋았다.
일단 미다스는 지크에게 계약을 할 의향이 있다고 하고 원하는 액수를 물었다.
“…뭐?”
미다스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크가 부른 액수에 턱이 빠졌다.
하지만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지크는 여유만만하게 턱을 들고 미다스를 쳐다봤다.
“지금, 요구하는, 금액이, 얼마라고?”
얼마나 열이 뻗쳤는지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의미 없는 욕을 간신히 간신히 의미 있는 언어로 뒤바꾼다.
하지만 분에 차 말이 띄엄띄엄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미다스를 향해 지크는 아예 손가락까지 세워 알려줬다.
세워진 손가락은 하나. 그리고 지크는 미다스가 다시 한 번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했다.
“금화 1억 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