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대단해….”
한스와 스녹의 전투를 보면서 레오나는 감탄했다.
골렘, 그것도 미스릴로 이루어진 골렘은 그 자체만으로 막강한 병기다.
단단한 몸체는 수준 낮은 공격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고 강력한 마법 방어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스와 스녹은,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완벽하게 골렘을 파괴했다.
“읏차!”
스녹에게 부탁해 미스릴 무더기를 뒤지던 라일라가 사람 머리만 한 붉은색의 금속을 꺼냈다.
골렘의 핵이었다.
라일라는 다른 핵까지 깔끔하게 꺼낸 다음 지크를 쳐다봤다.
“이것 좀 챙겨줘. 다음에 가서 분석해 보게.”
지크는 마법 상자 하나를 품속에서 꺼내 라일라에게 던졌다.
“거기다 넣어.”
“원래 갖고 있는 거랑 다른 거네?”
“경매장에서 샀다. 그건 네가 들고 다니도록 해.”
지크가 들은 대로라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보물은 지크의 마법 상자 하나로는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들고 있는 돈도 많고 들어올 돈은 더 많은 상황이니 지크는 고민 없이 마법 상자를 몇 개 더 구입했다.
“좀 어떠냐?”
지크가 스녹에게 다가가 물었다. 해체된 미스릴을 이리저리 조종하던 스녹이 답했다.
“어렵네요. 소모되는 마력이 확실히 많아요. 제어도 힘들고요.”
스녹의 팔을 둘러싼 미스릴이 덜그럭거리며 소리를 낸다.
그가 자주 휘감았던 암석 갑옷처럼 미스릴로 팔 형태를 만들어 움직이고 있었지만 확실히 흙이나 암석들을 휘감았을 때보다 움직임이 어색했다.
“당분간은 흙이나 바위에 섞어 움직여 봐라. 암석 갑옷 바깥을 둘러싸는 정도만 해도 능력은 훨씬 올라갈 테니까.”
지금처럼 주변의 대지를 제대로 다루기 어려울 때, 미스릴 덩어리들은 스녹의 훌륭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아니, 굳이 주변의 대지를 다루기 어려울 때가 아니어도 그렇다.
지크는 스녹에게도 마법 상자를 하나 던져줬다.
“네가 갖고 있어라. 미스릴은 거기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빼다 써.”
“네!”
스녹은 미스릴을 마법 상자에 넣기 시작했다.
“다 넣었습니다!”
스녹은 딱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만큼의 미스릴을 챙겼다. 하지만 지크는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뭐 하냐?”
“네?”
“다른 건 안 넣어?”
스녹이 집어넣은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미스릴이 아직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것들을 한번 본 스녹이 지크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양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지크의 찌푸려진 눈살은 펴지지 않았고, 스녹은 계속해서 미스릴을 집어넣었다. 그의 행동은 바닥에 모든 미스릴이 사라지자 끝났다.
“그래, 인마. 연습을 해서 양을 늘릴 생각을 해야지, 당장 다룰 수 있는 것만 챙겨서 어쩌자는 거냐.”
“그건 그런데….”
스녹도 할 말은 있었다.
“이건 미스릴이잖습니까.”
아무리 광산에 처박혀있던 스녹이라도 미스릴이란 금속을 못 들어봤을 리가 없다.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몇 십, 몇 백배 더 귀중한 금속이 아니던가. 그걸 연습용으로 쓴다고 모두 챙기기에 스녹의 배짱은 너무 작았다.
아니, 그건 배짱 운운할 경우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지크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거 생각할 필요 없으니까 모두 챙겨. 그리고 나중에 그것들을 모두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말하고.”
지크가 통로 저편을 쳐다봤다. 어느 순간부터 커다란 발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더 줄 테니까.”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빛난다. 다른 골렘의 등장이었다.
* * *
쾅!
또 한 무더기의 미스릴이 쏟아져 내리며 골렘이 쓰러졌다.
한스는 에스텔레이드를 거뒀다. 스녹도 갑옷을 벗었다.
스녹이 미스릴을 헤집자 나오는 핵을 라일라가 챙긴다.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온 라일라의 눈에 레오나가 보였다.
그녀는 풀이 죽어있었다.
“네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니까 너무 기죽지 마.”
라일라가 그녀를 위로했다. 하지만 레오나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라일라는 한숨을 쉬었다.
레오나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레오나가 골렘을 이기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미 골렘의 핵의 위치는 파악된 상황. 마력을 가득담은 그녀의 화살은 딱 한 발로 단단한 미스릴을 뚫고 핵을 손상시킬 수 있었다.
당연히 골렘은 화살을 방어하려 했지만 엘프답게 날랜 몸놀림으로 뒤를 잡을 수 있는 레오나는 너무도 쉽게 골렘의 핵을 파괴했다.
하지만 실험 물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골렘의 핵을 원하는 라일라가 핵을 파괴하는 방법을 달가워할 리 없다.
결국 골렘의 처리는 모두 한스와 스녹이 하게 됐다. 그리고 레오나는 뒤에서 우울한 눈으로 골렘의 처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전투를 시킬 수도 없어 지크 일행은 그녀를 반 쯤 방치했다.
골렘들은 많이 나온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골렘의 크기도 크기지만 몸 자체가 모두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어, 그들이 얻은 미스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물이네.”
라일라가 떨어진 미스릴을 마법 상자에 넣으며 감탄했다.
그녀가 주변을 돌아봤다.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커다란 통로를 기준으로 주변에 작은 통로들이 뻗어있다.
하지만 세월이란 강대한 적을 이기지 못했는지 많은 통로가 무너져 있었다.
‘어떤 유적일까?’
라일라는 가장 뒤에서 일행을 쫓으며 유적을 하나하나 살폈다.
호기심이 든 탓도 있다. 그러나 기억 아래쪽에서 뭔가 간질간질 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이 사건이 끝나고 조사를 한번 해보자고 할까.’
의외로 부탁을 - 훈련거부는 제외하고 - 잘 들어주는 지크였던지라 그녀가 부탁을 하면 쾌히 승낙할 게 분명했다.
‘좋아. 말해 보자.’
라일라는 그렇게 정했다.
지크는 망설이지 않고 유적을 똑바로 가로질렀다.
유적의 규모가 상당히 넓었지만 그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라일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예전에 한번 와봤다고 했었지?’
이블린이 귀한 보석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성화에 못 이겨 한번 찾아와봤다고 했었다. 당연히 남은 건 없었다고.
다만 그때 보물을 찾았었던 사람 중 한 명을 길잡이 삼아 안내하게 했기에 구조는 대충 안다고 했었다.
얼마 쯤 골렘들을 처리하며 유적을 뒤졌을까.
그들의 눈앞에 다시 커다란 석문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중요한 공간임을 알리는 문. 유적에 들어올 적에 봤던 석문처럼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진 않았다.
그저 크고 튼튼한 것이 무언가를 가두거나 아니면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문 같았다.
이번에도 지크가 앞장섰다. 석문에 손을 대고 힘을 한껏 줬다.
그그그긍!
얼마나 오랫동안 닫혀있었는지 모를 석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문 사이로 방 안의 모습이 비췄다.
“우와아아아!”
그리고 지크를 제외한 일행은, 저도 모르게 커다란 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 * *
미다스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툰겔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중앙 경매장에 있는 한 테라스였다. 경매장에 참가한 손님들이 즐기기 위한 편의시설 중 하나인 술집 안에 있는 이 테라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곳은 툰겔의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으니까.
중앙 경매장은 툰겔에서도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었기에 툰겔의 전경을 보려면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여기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마치 자기가 신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곧 신과 다를 바 없어지겠지.’
인간은 욕망의 동물. 그 어떤 고결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결국 욕망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의 욕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은 바로 돈.
‘그 돈을 벌 황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난 사람의 욕망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다.’
그리고 그건 곧 사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황금을 만들면 만들수록, 세상은 자신에게 점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미다스는 자신의 미래를 확신했다.
그렇게 신과 다름없어진 자신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야기. 아직 세상에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그러고 보니 그놈들도 그랬지.’
얼마 전에 놓친, 보물을 찾으러 간다며 엘프를 낚은 사기꾼을 생각하고 그는 인상을 썼다.
‘그 엘프가 가진, ‘호수의 눈물’과 비슷한 보물을 빼앗았어야 했는데.’
레오나가 그런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역시 갑옷만 보내서는 안 됐나. 돈으로 다른 인간들을 더 고용을 했어야 했어.’
하지만 고작해야 사기꾼 자식들이 그렇게 강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방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그는 거칠게 와인을 들이켰다.
‘어서 금들을 더 만들어야겠어.’
그리고 자신을 위한 ‘특수한 금’도 만들어야 한다. 그가 테라스를 나가려 몸을 돌렸을 때였다.
“찾았다.”
“응?”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감히 자신의 앞을 막아서다니.
미다스의 눈썹이 한껏 치솟아 올랐고 그와 반대로 기분은 사정없이 추락해 내렸다.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못 하고 자신의 앞을 막아선 자를 쳐다 본 미다스가 놀랐다.
“넌…!”
“오랜만이지?”
태연스럽게 손을 흔드는 남자. 그 사기꾼이었다.
* * *
“이야, 역시 황금 마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라.”
지크는 자신의 앞에 차려진 엄청난 음식들을 보고 감탄했다.
하지만 어조가 묘해, 감탄이 아닌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무슨 용건이냐.”
비싼 시가를 입에 물고 귀한 와인을 잔에 채우며 미다스가 물었다.
눈앞에 있는, 실력은 좀 있어 보이나 건방지기 짝이 없는 사기꾼이 미다스는 무척이나 불쾌했다.
그들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테라스로 나서기 전까지 미다스 혼자 즐기던 테이블이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부 먹을 수도 없건만 미다스는 항상 이렇게 가게를 전세낸 후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고작해야 한 입 씩 먹고는 나머지는 전부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아, 그게 말이야.”
지크는 허락도 받지 않고 파이 하나를 집어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미다스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자신의 공격을 유유히 빠져나간 놈이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나타났기에 일단 얘기는 들어보잔 생각으로 녀석을 앉혔지만,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괜히 참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지크의 말은,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네 제안에 흥미가 생겨서 말이야”
“제안?”
“그 엘프가 갖고 있는 보물. ‘호수의 눈물’과 관련된 보물 말이다.”
미다스의 얼굴에 흥미가 어렸다. 그리고 그 흥미는, 지크의 다음 말이 끝났을 때 더욱 커졌다.
“그걸 빼앗을 건데. 관심 좀 있어?”
관심이 없을 리가. 당장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하지만 미다스도 만만한 자는 아니다. 여기서 대뜸 흥미를 보인다면 주도권을 잃을 우려가 있어서 일부러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냐. 그런 건 없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미다스는 눈앞의 사기꾼이 왜 생각을 바꿨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일이 잘 안 풀린 거겠지.’
그렇지 않다면 다 잡은 물고기를 자신과 나누겠다고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