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폭포 뒤로 가기 위해서는 폭포의 옆 벼랑으로 미세하게 난 길을 건너야 했다.
아니, 그건 길이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발이 작은 사람조차 반밖에 걸치지 못할, 그냥 절벽에서 툭 튀어나온 길게 이어진 바윗덩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크 일행은 편하게 건넜다.
돌덩이들이 우르르 떠다니며 지크 일행의 앞 절벽에 달라붙어 길을 만든다.
지크 일행이 지나가면 돌덩이들은 원래 모양새로 흩어져 다시 지크 일행의 앞에 길을 만들었다.
그것이 폭포 뒤쪽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비록 폭포수가 튀겨 옷이 젖었지만 편하게 올 수 있어 지크는 만족했다.
“잘했다.”
“넵!”
쿠!
지크의 칭찬에 스녹과 노웸이 크게 대답했다.
이 정도는 이제 별 정신집중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녹의 권능을 다루는 방법은 늘어난 상태였다.
“대지의 환수라니. 처음 봤어.”
엘프인 레오나도 환수를 본 적은 없어 노웸을 무척 신기해했다.
그녀가 노웸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코를 내밀어 레오나의 손가락에 냄새를 맡던 노웸이 혀를 살짝 내밀었다.
레오나가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동안 스녹은 바짝 얼어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나 들었던 엘프를 스녹은 아직까지 조금 어색해 했다.
“여기다.”
지크가 말하자 사람들이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지크의 말대로 폭포 뒤쪽에 동굴 하나가 뻥 뚫려 있었다.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폭포 뒤의 동굴. 소설에서 나오는, 어떻게 보면 로망인 곳이다.
“들어가자.”
지크가 앞장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사람들도 하나, 둘 동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폭포 뒤에 있어서 그런지 동굴에 들어서자 몸을 꿉꿉하게 만드는 습기가 잔뜩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가도 습기는 여전했다.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꿉꿉함이 계속되진 않았다.
동굴 특유의 울퉁불퉁함이 있던 바닥이 바뀌었다. 석판이 촘촘히 박혀 걷기 편해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공기가 변했다.
“여기부터가 유적인 것 같군.”
그들의 앞으로 커다란 문 하나가 등장했다.
기묘한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문이다.
“우와~!”
레오나가 석문으로 다가갔다. 문에 손을 대고 이곳저곳을 살펴 본다.
“진짜 보물이 있을 것 같아.”
“의심하셨습니까?”
“아, 아니야!”
레오나가 급히 말을 부정했다가 우물쭈물댔다. 그리고 지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시, 실은 조금….”
“괜찮습니다. 충분히 수상한 얘기였으니까요.”
지크가 용서하자 레오나가 살짝 웃었다.
아무리 개호구 레오나라도 완전히 믿은 건 아닌 모양이다. 물론 이곳까지 대책없이 따라온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그건 아마 자신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도망칠 자신은 있었겠지.’
지크는 레오나의 옆으로 다가가 문에 손을 댔다.
서늘한 감각이 손바닥에 느껴진다. 지크가 팔에 힘을 줬다.
쿠르릉!
두꺼운 석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크기와 재질 때문에 무척 무거웠지만, 그 외의 장애는 없었다.
잠금쇠가 걸렸거나 마법적 처치가 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
쿵!
열린 석문 사이로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커다란 통로가 계속 이어진다. 통로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었다.
“비올루윈의 고대 유적과 좀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선배?”
스녹이 한스에게 물었다. 그는 조금 걱정스러워 보였다.
비올루윈의 고대 유적에서 그의 힘이 대부분 봉인되어 무척 답답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한스도 그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만 보고 비올루윈의 유적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뭣했다.
지크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며 등에서 윈두르를 빼들었다.
“긴장해. 적이 있을 테니까.”
쿵! 쿵!
지크가 말을 하자마자 앞쪽에서 뭔가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땅바닥이 울리는 게 절대로 인간은 아니었다.
“어떤 적인데?”
“직접 확인해 봐.”
지크는 라일라가 잘 볼 수 있도록 옆으로 물러섰다.
붉은색의 눈빛이 먼저 드러난다. 어둠 속에서 그것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생각도 없이 육중하게 걸어왔다.
“골렘이네.”
“저게 말입니까?”
한스가 물었다.
골렘이란 존재를 처음 본 터라 그의 목소리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골렘이라고 착각했던 움직이는 갑옷을 상대하고 온 터라 더욱 그러기도 했다.
“맞아. 핵을 원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자동 인형.”
라일라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아까 상대했던 갑옷을 생각하지는 마. 골렘은 그 핵과 몸체를 이루고 있는 금속에 따라 그 위력이 달라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은 만만한 녀석이 아닌 것 같으니까.”
“미스릴.”
레오나가 딱딱하게 말했다.
“저 금속은 미스릴이야.”
“역시 그렇지?”
마법사인 라일라도 그 금속을 짐작하고 있었다.
미스릴. 한스와 스녹은 침을 꿀꺽 삼켰다.
광산 일을 하던 스녹도, 백작가 시종이었던 한스도 미스릴이란 금속은 본 적이 없다.
“그거 엄청 귀한 것 아닙니까?”
“무슨 그런 걸 갖고 놀라.”
지크는 윈두르로 한스의 에스텔레이드를 툭툭 쳤다.
“저딴 금속보다 훨씬 더 좋은 걸 갖고 있으면서.”
에스텔레이드에 비하면 미스릴 따위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되새겼다.
“좋아, 경험이다. 일단 너희들이 상대해 봐.”
지크가 한스와 스녹을 앞으로 밀었다.
둘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 주춤주춤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차피 지크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골렘도 정확히 두 기였다. 성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키와 압도적인 덩치. 팔뚝이 무슨 굵은 통나무를 미스릴로 재질만 바꿔 달아놓은 것 같다.
한스는 에스텔레이드를 겨눴다.
스녹은 긴장감을 갖고 권능을 일으켰다.
쿠르릉!
“…역시야.”
스녹이 신음했다.
돌벽과 바닥의 석판이 움찔움찔할 뿐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나마 스녹의 권능이 커졌는지 움직일 수 있는 흙과 암석이 비올루윈 때보다는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약한 소리를 해봐야 지크가 납득해주지도 않는다.
우르르르!
스녹은 암석 갑옷을 걸쳤다. 곧 그의 모습도 골렘과 엇비슷해졌다.
쿵! 쿵! 쿵! 쿵!
두 기의 골렘이 한스와 스녹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한스와 스녹도 골렘 한 기 씩을 맡아 흩어졌다.
골렘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한스는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에스텔레이드를 휘둘렀다.
콱!
“큭!”
손이 욱신거린다. 에스텔레이드답지 않은 둔탁한 느낌.
검신이 골렘의 팔뚝에 파묻혀 있다.
후웅!
골렘이 팔을 움직이자 한스의 몸이 딸려 간다. 폭풍우에 휘날리는 이파리처럼 몸이 붕붕 날린다.
하지만 한스는 주변 풍경이 계속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절대 검을 놓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팔에 힘을 줘 몸을 끌어당긴다.
턱!
골렘의 팔에 간신히 발을 갖다 댔다. 힘을 줘 검을 뽑았다.
콰직!
골렘의 팔에서 에스텔레이드가 뽑혔다. 하지만 그나마 몸을 고정시키던 에스텔레이드가 빠지자 한스의 몸은 당연하게도 허공을 날았다.
쿵!
천장을 발로 밟고 한스는 다시 바닥에 내려 앉았다.
‘1/4쯤인가.’
에스텔레이드가 파고든 골렘의 팔의 깊이였다.
‘미스릴이라고 해서 마력을 꽤 많이 집어넣었는데도 저것밖에 자르지 못했어.’
그저 미스릴이 단단한 것뿐일까, 아니면 어떤 마법적 처치가 되어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스는 생각을 접었다
‘이유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골렘의 몸체가 그만큼 단단하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탓!
다시 한스가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어떤 특수능력 같은 건 없는 듯 골렘은 그저 주먹을 휘둘러올 뿐이었다.
그저 빠른 스피드와 육중한 무게, 그리고 단단한 금속이라는 요소가 그 단순한 움직임을 살벌한 공격으로 바꾸는 게 문제일 뿐.
한스는 물러서지 않고 에스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목표는 에스텔레이드가 잘라낸 팔뚝의 틈이었다.
콰드드득!
‘됐다!’
다시 한번 에스텔레이드가 골렘의 팔뚝을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에스텔레이드는 골렘의 팔을 절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틈을 파고들었기에 팔뚝의 절단부위는 아까보다 훨씬 더 깊었다.
이번엔 골렘이 팔을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 에스텔레이드를 빼들었다.
‘다시 한번!’
한스는 다시 골렘의 상처입은 팔을 노렸다.
그리고.
서걱!
쿵!
골렘의 팔이 잘려 나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후우!”
그 모습을 보고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다시 신경을 다잡았다. 팔 하나를 날렸을 뿐, 아직 골렘을 쓰러뜨린 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은 알겠어.’
일단 사지를 모두 해체하자. 그렇게 정하고 한스는 다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한스가 골렘의 공격을 피하며 연거푸 검을 날릴 때 스녹도 골렘과 맞붙고 있었다.
콰아앙!
스녹의 암석 갑옷의 주먹과 골렘의 주먹이 정면 충돌을 한다.
콰앙!
하지만 스녹의 갑옷 팔은 골렘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으아아아악!”
스녹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골렘은 빠르게 스녹을 따라잡아 허리를 껴안았다.
콰지지직!
갑옷이 뭉개지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스녹의 몸까지 짜부라질 것 같았다.
스녹은 급히 암석 갑옷에서 탈출했다.
퍼엉!
빈 암석 갑옷이 골렘의 손에 허리가 완전히 꺾여 부스러졌다.
골렘이 천천히 스녹을 향해 돌아선다. 스녹은 산산이 흩어진 암석들을 다시 끌어모아 갑옷으로 만들었다.
‘역시 갑옷만으로는 승산이 없어.’
완력과 강도에서 완전히 밀리고 있다. 그러나 스녹의 눈에 포기는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위험하면 뒤의 지크가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해볼 만한 계획도 하나 있고.’
쿵! 쿵!
스녹이 다시 골렘에게 달려갔다. 골렘도 스녹을 향해 돌진했다.
후웅!
다시 한번 골렘이 주먹을 휘두른다.
그 순간, 스녹이 권능을 발현했다.
멈칫!
순간 골렘의 움직임이 어색해졌다. 무언가 골렘을 방해라도 하듯 움직임이 툭, 툭 끊겼다.
‘된다!’
스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스녹의 암석 갑옷이 골렘의 품을 파고들어 주먹질을 했다.
콰앙! 콰앙!
골렘의 머리 부분을 스녹이 후려쳤다. 골렘이 비틀거렸다.
‘역시 미스릴에도 내 능력이 통하는구나!’
스녹의 권능은 대지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에 미친다. 당연히 금속의 일종인 미스릴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마법적 처치가 되어 있는 만큼 일반 대지처럼 마음대로 다룰 순 없지만 약간의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스녹은 갑옷의 손 부분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골렘의 손가락을 후려쳤다.
동시에 골렘의 손가락에 정신을 집중해 미스릴이 부러지는 이미지를 그렸다.
쾅!
잘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반 까지 파고드는 성과를 올렸다.
미스릴의 강도가 그의 권능에 의해 일시적으로 약해진 것이다. 스녹은 재빨리 다시 그 손가락을 후려쳤다.
콰득!
손가락이 잘렸다.
그 순간 골렘이 다른 손으로 스녹의 암석 갑옷을 때렸다.
콰앙!
암석 갑옷이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이미 스녹은 탈출한 뒤였다.
“좋았어!”
공격이 통한다.
스녹은 다시 갑옷을 둘렀다. 하지만 이번엔 방금의 갑옷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갑옷의 손가락 부위에 골렘의 손가락에서 잘려 나간 미스릴이 달라붙어 있었다.
‘이제 골렘과 강도가 동등한 무기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공략법도 알았다. 골렘이 부서지면 부서질수록 스녹은 급격히 강해질 것이다.
스녹은 골렘에게 돌진했다.
얼마 후.
서걱!
콰앙!
두 개의 골렘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