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레오나는 오늘도 경매장에 나왔다.
보물을 찾으러 가는 날이 내일이었지만, 혹시나 경매장에 ‘호수의 눈물’이 나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날마다 경매장에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오늘도 없네.’
추가된 물품 설명서가 있긴 했지만 ‘호수의 눈물’에 대한 설명서는 없었다. 하지만 레오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외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응, 분명 여기 있어.’
여기 올 때마다 몇 번이고 감지를 해왔다. 정확한 장소는 모르지만 이 건물 어딘가에 ‘호수의 눈물’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지크의 말에 맞는 것 같아. 분명 뒷 경매장이란 곳에서 ‘호수의 눈물’을 파는 걸 거야.’
마지막 남은 미련을 그녀는 깔끔히 털어냈다.
‘보물을 발견하고 나중에 뒷 경매장이란 곳에서 사자.’
더 이상 ‘호수의 눈물’의 물품 설명서를 찾는다는 쓸데없는 고생을 집어치우고 그녀는 순수하게 나무판들을 둘러 봤다.
‘신기한 게 많아.’
물품 설명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과연 최고의 경매장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낮은 수준의 물품에 대한 설명서도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멋진 구절로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중앙 경매장에 출품될 물풀 설명서의 자세한 설명과 상세한 삽화는 처음 보는 물건이라도 당장 머릿속에 그 물건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녀는 고향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물건들을 쭉 훑어보며 다녔다.
“마음에 드는 거라도 있나?”
갑자기 앞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레오나가 앞을 쳐다봤다.
뒤로 넘긴 금발에 단정한 콧수염을 기른 다부진 남성 한 명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짓궂게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이 좋아보이진 않는다. 말투도 대놓고 반말이지 않은가.
“뭐야?”
당연히 까칠한 레오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남성은 개의치 않았다.
“이거 실례했군. 내 이름은 윕스 미다스라고 한다네.”
작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행동에 존대의 의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건 지독한 경멸과 조롱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최근의 네 얘기에 흥미가 있어서 말이지.”
“난 흥미 없어.”
레오나가 등을 돌렸다. 하지만 미다스의 다음 말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호수의 눈물’의 얘기라고 해도?”
* * *
경매장 로비 옆으로는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경매장에 찾아 온 손님들을 위한 식당이나 카페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티리울 경매장 내에 있는 가게인 만큼 무척이나 비쌌다.
레오나는 과즙을 물에 타 만든 주스를 홀짝였다. 그리고 가게를 살폈다.
어설프게 금전감각을 익힌 후로 가게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은 레오나였기에 가게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선이 메뉴판을 스쳤을 때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대체 왜 저렇게 비싼 거야?’
지크가 자신을 데리고 다른 가게로 간 이유가 레오나는 무척 이해됐다. 물론 지크는 그저 독실을 원했기에 다른 가게로 옮긴 것뿐이었지만.
“마음에 드나?”
“그럭저럭.”
레오나는 그, 윕스 미다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를 쳐다봤다.
“‘호수의 눈물’에 관해서 알고 있다고 했지? 빨리 말해.”
그녀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여전했다. 하지만 미다스는 웃는 낯을 지우지 않았다.
“그전에 조금 얘기를 나눠 보자고. 너는 꽤 유명하니까.”
“유명해?”
“그 전에 이름을 물어도 되겠지?”
레오나가 눈을 깜박인다. 의심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경험이 너무 없어 지크에게 개호구 평가를 받은 그녀가 능글맞은 미다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레오나야.”
이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 레오나가 말했다.
“레오나라. 예쁜 이름이군.”
“내가 유명하다는 말은 뭐야?”
“말 그대로다. 자네는 이 경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소문이 나 있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입에 담는 것조차 웃긴 듯 미다스는 웃음을 한번 집어삼키고 말을 이었다.
“호구라고.”
“…그게 뭔데?”
“큭큭큭! 설마 호구라는 단어까지 모를 줄이야.”
이 얼마나 광대 같은 인간이란 말인가. 레오나가 영문 모를 말에 얼굴마저 찌푸리자 그의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주변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양이다.
“뭐, 좋아. 호구의 뜻도 모르는 불쌍한 호구씨에게 내가 제안 하나 하지.”
뭔지 몰라도 자신을 비웃는 게 확실했기에 레오나의 기분은 한층 더 나빠졌다. 헛소리를 한다면 바로 일어날 생각이었다.
“‘호수의 눈물’을 찾는 것, 내가 도와주지.”
“필요 없어.”
처음으로 미다스의 웃는 낯에 금이 갔다. 레오나는 괜히 속이 싱그러워지는 것 같았다.
“…소중한 것 아니었나?”
“소중해.”
“그런데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귀를 못 알아듣네. 도움이 필요 없는 게 아냐. ‘네’ 도움이 필요 없는 것뿐이지.”
“지금 너를 돕고 있는 자들을 믿고 있는 모양이군.”
다시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흐른 것일까. 그의 태도가 거만해졌다.
“물론이지.”
“내가 충고해 주는데 말이야. 타인에게 그런 친절을 베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것도 너 같은 이종족은 더더욱 말이지.”
“무슨 뜻이야?”
“그 작자가 사기꾼이란 뜻이다.”
쿵!
레오나가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에 내려쳤다.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컵은 멀쩡했고 반 쯤 남아 있는 주스도 튀지 않았다.
그 묘기 같은 상황에 미다스의 표정이 굳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
레오나가 낮게 말한다.
미다스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던 구경꾼들의 표정도 변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이 드러난다. 그곳에 있는 건 이제 막 인간 세계에 내려와 세상물정 모르는, 속기 쉬운 촌뜨기가 아닌 강하고 노련하기까지 한 사냥꾼이었다.
“…그래. 평범한 뜨내기 엘프는 아니었군.”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그 놈이 사기꾼이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레오나가 눈을 부라린다. 미다스는 그 기세를 덤덤히 마주했다.
“…여기에 내 활이 있었고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면 넌 죽었어.”
“아쉽군. 네 녀석이 덤벼들었다면 그게 헛된 꿈이었다는 걸 가르쳐줬을 텐데.”
레오나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더 이상 그와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짜증났다. 그녀가 일어서려 할 때였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이야기는 안 끝났으니까.”
“끝났어.”
“‘호수의 눈물’은 경매장에 나오지 않아.”
레오나의 시선이 사내를 향했다. 미다스는 보란 듯 웃었다.
“정확히는 ‘겉’의 경매장엔 나오지 않지.”
레오나가 주변을 훑었다.
“그걸 말해도 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뒷 경매장은 알고 있는가보군.”
미다스가 조금 놀랍다는 듯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 마라. 전부 내 친구들이지. 당연히 뒷 경매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손을 흔드는 사람도 보였다. 물론 전부 조롱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지만.
“참가 방법은?”
“알고 있댔어.”
“뭐, 그곳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하지만 뒷 경매장의 존재를 알고 있어도, 그 곳에 출입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걸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지.”
텅!
미다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던졌다.
혹시 공격이 아닐까 움찔한 레오나. 공격은 아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것이 주변의 빛을 반사해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그건 손바닥만 한 금괴였다.
“돈.”
그가 말했다.
“‘호수의 눈물’은 무척이나 비쌀 거다. 그런데 그런 돈을 너희들이 마련할 수 있나?”
“있어.”
레오나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미다스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뭔가 믿는 게 있나 본데. 그게 뭐지?”
“보물.”
“…뭐?”
“보물을 찾으러 갈 거야.”
미다스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우는 듯, 웃는 듯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다는 듯 어지럽게 변해가던 얼굴이 겨우 적절한 표현을 찾았다.
폭소. 그것도 대폭소였다.
“우하, 우하하하하하하하!”
미다스가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주변에 있던 자들도 크게 웃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가게 안을 슬쩍 들여다볼 정도였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군! 설마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믿었단 말인가!”
“그만 웃어!”
레오나가 새빨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레오나의 말을 무시하고 한참을 더 웃었다.
“이야, 오랜만에 정말로 크게 웃었어! 기분이다! 이건 네가 가져라!”
미다스는 금괴를 레오나의 앞쪽으로 밀었다. 밀린 금괴에 레오나의 컵이 살짝 부딪쳤다. 내용물이 찰랑였다.
“필요 없어.”
“그러지 말고 챙겨라. 이렇게 기분 좋을 때도 별로 없으니까.”
아직 웃음의 여운이 남았는지 미다스의 입에서는 연신 큭큭대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순진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멍청하기까지 할 줄은 몰랐군. 너는 정말로 그 보물 이야기를 믿나?”
“당연히 믿지!”
미다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에겐 안된 일이지만 그놈은 분명 사기꾼….”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안 되지, 친구.”
둘 사이로 누군가 끼어들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 험담을 하면 쓰나.”
미다스가 고개를 들어 끼어든 자를 쳐다봤다. 자신감 있는 말투와 약간 비뚜름하게 솟은 입꼬리. 미다스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지크!”
레오나가 그를 반겼다. 지크는 살짝 웃으며 레오나에게 말했다.
“이 친구가 나한테 용건이 있는 것 같은데, 저 녀석이랑 잠시 경매장 밖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지크는 엄지로 뒤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지크를 따라 온 라일라가 있었다.
“알았어.”
레오나는 미다스를 한번 흘겨보고 자리를 떴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지크가 앉았다.
같이 와 있던 한스와 스녹이 그의 뒤에 섰다. 어떻게 보면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미다스는 둘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지크가 말했다.
“그래, 불만 많고 돈 많아 보이는 친구.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엘프에 이어 저런 미인까지 대동하고 다니다니. 역시 흔한 사기꾼은 아니로군.”
“사기꾼이라니. 그 무슨 험한 말을 하는 거야. 세상에 나 같은 선량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한스와 스녹이 자신의 허벅지를 꽉 꼬집으며 무표정을 유지했다. 스녹의 품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던 노웸은 아예 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고 해두지.”
그런 사소한 것으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은지 미다스는 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 엘프의 길을 상당히 잘 들여놨더군.”
“무슨 동물을 다루는 것처럼 말을 하는 거야? 그저 너무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해서 충고를 해줬을 뿐이야.”
지크가 컵을 손가락으로 쳤다. 나무컵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 이외의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이야.”
“자기를 철저하게 믿게 만든 후, 남의 말은 믿지 않도록 만든다. 사기꾼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법이지.”
“하지만 나는 사기꾼이 아니야.”
“뻔뻔한 녀석.”
미다스가 야유했다.
“이 바닥에서 자네는 꽤나 유명해. 저 엘프를 등쳐먹으려는 사기꾼으로 말이야.”
“누누이 말하지만 난 사기꾼이 아냐. 하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건 인정을 하지. 그런데 말이야. 너도 그다지 착실한 놈은 아닌 것 같아 보이거든. 아니, 오히려 썩은 고기에도 침을 질질 흘리며 다른 동물들을 쫓아낼 그런 놈이지.”
지크의 눈이 번뜩였다.
“뭔 개수작이냐?”
“개수작이라….”
미다스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가 저 엘프에게 노리고 있는 것 말이다. 나도 좀 탐이 나서 말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