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관광도시 비올루윈.
얼마 전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습격으로 위기에 빠졌던 도시였다.
하지만 혜성처럼 나타난 영웅들에 의해 구해졌고, 지금은 빠르게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피해를 완벽하게 복구할 순 없어 과거 비올루윈을 관광도시로서 있게 한 명소들이 몇몇 사라졌지만 그 손해는 도시에서 전략적으로 팔기 시작한 이야기들에 의해 메워졌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사라진 명소들보다 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비올루윈의 미래는 밝았다.
맑은 물이 뿜어지는 분수대가 인상적인 커다란 광장. 그곳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시를 구한 네 명의 영웅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만드는 공사였다.
동상은 완성되는 즉시 이 광장으로 옮겨져, 사람들에게 영웅의 모습과 업적을 널리 알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 지금은 공사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상당했다.
광장 한구석에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신분이 높거나 적어도 돈이 많은 자가 타고 있을 거라 여겨지는 그러 마차였다.
마차의 창에는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스륵!
창백한 손가락이 천을 살짝 들춘다. 천 뒤에서 날카로운 눈이 공사 현장을 훑어 봤다.
“쯧!”
명백히 기분 나빠 보이는 혀차는 소리가 들린다. 창백한 손이 천을 놓았다. 천이 다시 흘러내리며 마차의 내부를 감췄다.
마차 안에는 두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로브를 푹 뒤집어 쓴 모습이다. 지크가 봤다면 바로 반가워 윈두르를 꺼내 들 그런 모습.
물론 로브를 입은 자들 전부가 지크가 적대하는 조직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이는 조직에 속한 자가 맞았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사내는 ‘로브를 입은 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네가 온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니겠군.”
“크로뇽 왕국과 그 주변의 마인을 만드는 일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들 아니냐. 어차피 몇 건이 실패해도 다른 곳에서 만드는 마인들이 그 수를 채워줄 것을. 굳이 보고까지 한단 말이냐?”
“요 근래에 진행하던 것들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작전을 수행하던 팀과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연락이 끊겨? 설마 실패한 일을 진행하던 팀들이 모두?”
“전멸했다고 판단 내렸습니다.”
사내가 한숨을 쉬었다.
“…크로뇽 왕국이라면 분명 이블린 루즈가 있는 곳이 아니더냐.”
“그 계획이 실패했습니다.”
“하필이면….”
이블린 루즈는 그의 조직에서도 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자였다.
한데 그것이 실패하다니. 얼마 전에는 요하임 드라큘의 일도 엉클어졌지 않은가.
‘다시 작업을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이미 길이 완전히 틀어진 이상,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부정확한 미래를 위해 인력을 더 투입하느니, 차라리 내버려 두는 게 낫다.’
다만, ‘그’에게 잔소리를 듣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는가?”
사내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뚝뚝 떨어졌다. ‘로브를 입은 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보고는 해야 했다.
“크로뇽 왕국의 총괄자가 죽었습니다.”
사내의 얼굴이 무섭도록 굳었다. 지금의 말은 팀 몇 개가 실패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어째서?”
“크로뇽 왕국의 국왕 탄생제 때 부하들과 잠입을 했었는데, 그때 들켰다고 합니다.”
“벨리 와이그 같은 괴물들도 참석한 곳에 뭐가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들어갔단 말이냐!”
사내가 발을 굴렀다. 마차가 진동하고 바닥이 삐그덕 댔다. 씩씩대는 소리가 ‘로브를 입은 자’의 귀로 계속 파고들었다.
“이블린 루즈를 맡고 있던 팀의 연락이 끊기자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기 위해 잠입을 한 모양입니다. 당시 협력자인 알버스 윈플은 잘 지내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이블린 루즈가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그 정도까지 위험을 무릅썼단 말이냐?”
“보고 드린 대로 크로뇽 왕국을 포함해 그 주변에서 계획들이 많이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그냥 실패가 아닌, 팀들의 연락이 끊기면서까지 말입니다. 그 일련의 실패들의 원인이 우연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알버스 윈플의 동향을 보기 위해 탄생제 때 왕궁에 잠입했고, 걸려서 싹 쓸려나갔단 거군.”
사내가 고개를 젖혔다. 태양 볕을 좀 받고 싶었지만, 보이는 거라곤 컴컴한 마차의 지붕뿐이었다.
“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간의 실패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팀까지 몰살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 마인들을 만드는 일에 차질이 생겨. ‘그’가 좋아하지 않을 거다.”
“하면 우리 쪽 인원을 사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안 된다. 비올루윈을 공격할 때 잃은 놈들이 많다. 게다가 남은 놈들은 코어를 쫓아야 하고. 무엇보다 녀석들은 ‘그’조차 모르는 패야. 들켰다가는 무슨 꼴이 될지 몰라.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하는 법이다.”
사내가 ‘로브를 입은 자’에게 엄히 말했다.
“명심해라. ‘그’는 시간을 다룬다. 단 한 번이라도 정체를 들키는 즉시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사라질 수 있어.”
“네!”
‘로브를 입은 자’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조사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사내도 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문제는 그의 조직이 정보 조사에 대해서는 정말로 약하단 것이었다.
조직은 거대하다. 그리고 강하다. 게다가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어떤 조직, 단체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미래의 정보’조차도.
하지만 그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은 무척이나 특수하기에 따로 정보 조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방대한 정보를 이용해 계획을 짜고 실행을 하는 것만큼은 최고지만 이처럼 변수가 나타난다면 그를 자세히 조사할 방도가 없다.
‘조금의 정보 조직은 남겨두자고 내 그리 말했건만….’
이미 정보는 충분히 모였으니 전부 마인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 하던 ‘그’의 명령에 새삼 이가 갈렸다.
그 때문에 실패에 대한 조사는 물론이고 갑자기 터진 일들에도 대응을 못 하고 있었다.
‘역시 조금은 정보 조직을 빼돌려놨어야 했나.’
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리석지만 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다.
사내가 가지고 있는, ‘그’조차 모르는 조직도 정말 아슬아슬하게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 조직까지 빼돌려놨었다면 ‘그’가 눈치 챘을 확률이 컸다.
‘코어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사내는 새삼 라일라가 아쉬웠다.
“코어는?”
“여전히 수색중입니다. 한데, 이번 크로뇽 왕국 사건 때 코어가 거기 있었을 확률이 있습니다.”
사내의 눈꼬리가 솟았다.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이번 계획을 망친 자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한 명이 눈이 돌아가도록 예쁜 여자라고 합니다. 귀족 사회에서 상당히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것뿐이냐?”
“그들의 숫자는 넷. 한 명은 코어로 짐작되는 여자, 한 명은 빛의 검을 쓰는 남자, 한 명은 어떤 동물을 데리고 있는 남자, 한 명은 나뭇가지 같은 검을 사용하는 남자랍니다.”
사내가 다시 창을 가리고 있는 천을 들췄다. 네 명의 영웅의 동상 받침대를 만드는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 게 보였다.
그는 천을 내렸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로브를 입은 자’에게 말했다.
“설마 코어가 기억을 갖고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초조하게 무릎을 두드렸다.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기억은 코어가 갖고 있긴 하지만 그걸 꺼내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이상 코어가 기억을 자유자재로 꺼낼 수 있을 리 없어.’
하지만 불안감이 감도는 것도 사실이다. 코어가 갖고 있는 정보는 ‘그’와 버금간다.
“…역시 하루라도 빨리 코어를 회수해야겠어.’
그래야 사내도 ‘그’와 같은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게다가 만약 ‘그’가 코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사내와 ‘그’의 협력도 깨질 게 분명하다.
‘코어의 정체는 절대로 ‘그’가 알면 안돼.’
“코어는 아직 크로뇽 왕국에 있나?”
“아뇨. 떠났다고 합니다.”
“추적은?”
“불가능했습니다. 도시 외곽까지는 성녀와 벨리 와이그가 동행해 힘들었고, 그 이후로는 가도를 따르지 않고 산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되는 일이 없군.”
사내의 고뇌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무리에 에스텔레이드도 있겠지?”
“빛의 검을 사용했다는 사내가 에스텔레이드를 가지고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그것도 빨리 찾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웅병 걸린 ‘그’가 지랄을 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사내의 시름은 깊어갔다.
* * *
아침식사를 끝마친 지크 일행은 가도를 따라 걸었다.
그의 일행은 여전했다. 거한은 앞장서서 묵묵히 걷기만 한다.
괴팍한 마법사 노인과 까칠한 엘프 소녀는 여전히 입씨름이 한창이었고 아이네는 지크와 한 발자국 뒤에서 그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둘의 사이가 좋아지는 날이 올까요?”
아이네가 물었다. 지크는 하늘을 쳐다봤다.
“나는 희망을 절대로 놓지 말자는 주의지만, 간혹 헛된 희망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
“절대로 없다는 소리군요.”
아이네가 한숨 쉬었다.
“도대체 너 같은 철부지가 어쩌다 나와 같은 파티에 있게 됐는지 모르겠구나.”
마법사 노인이 투덜거렸다. 당연히 밀릴 엘프가 아니었다.
“너는 나보다 파티에 늦게 들어 왔잖아. 그렇게 말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지크 자네는 도대체 어쩌다 이 불량 엘프를 파티에 받았단 말인가. 예전에 그렇게 힘들었나?”
조용히 있는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 같다. 지크는 말없이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흥! 내가 들어 와서 이 파티가 얼마나 성장했는데. 내가 들어가겠다고 하면 넙죽 절을 하고 ‘고맙습니다!’를 외칠 파티가 줄을 섰어!”
“차라리 그런 곳에 가지 그러냐.”
엘프 소녀는 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지크에게는 빚이 있으니까. 그 은혜를 갚을 때까지는 떠나지 않을 거야.”
“네가 떠나는 것만큼 지크에게 보답을 하는 일이 있을 것 같으냐!”
“그건 네 얘기겠지!”
이제는 누가 더 이 파티에 공헌이 되는지로 다툼이 시작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네가 살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도 상당한 소란이 있었죠.”
“그렇지. 일족의 보물을 되찾아 갈 거라고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과거의 일이 스쳐지나가 지크도 웃었다.
“그래도 좋은 만남이었죠?”
“당연하지 우리 파티의 최강 궁수가 합류하는 시발점이었으니까 말이야.”
지크는 엘프, 레오나 펄 인 드라우드를 쳐다보며 긍정했다.
* * *
벌떡!
지크는 몸을 일으켰다. 덮고있던 모포가 스르르 흘러내린다. 고개를 슥슥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한스, 스녹, 라일라가 보인다. 수줍음 많은 거한도 괴팍한 마법사 노인도 성녀 아이네 프리멜 루벨라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까칠한 엘프 소녀, 레오나 펄 인 드라우드도 보이지 않았다.
‘아, 빌어먹을 개꿈 같으니.’
지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레오나 펄 인 드라우드. 아는 자다. 자그마치 태양의 용사 그렌 제너드의 동료 중 한 명이었으니까.
최후의 전투 때 그녀가 쏘는 화살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살상력을 자랑했다.
‘왜 그 녀석이 꿈에서 내 동료로 나오는 거야.’
루벨라까진 회귀 후에 인연도 많아졌으니 이해가 가지만 그 엘프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숨을 한번 쉰다. 그리고 꿈에서 언급된 물건 하나를 떠올렸다.
‘엘프 일족의 보물인가.’
들어본 적 있다. 그렌 제너드가 레오나 펄 인 드라우드를 동료로 맞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게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분명, 그게 이 시기 쯤 거래되고 있었나?’
그렌 제너드가 레오나 펄 인 드라우드에게 보물을 되찾게 해준 건 한참 이후지만, 그 엘프 일족의 보물이 이 시기 즈음에 거래되었다 했던 걸 지크는 떠올렸다.
지크는 하늘을 쳐다봤다.
‘…한번 들러볼까?’
그렇게 지크 일행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