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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48화 (148/628)

제148화

지크 일행이 왕궁을 떠나는 날이 왔다. 아침부터 밝은 태양빛이 내리쬐는, 여행을 떠나기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지크 일행은 자신들의 짐을 둘러메고 왕궁을 나섰다. 이미 국왕, 왕세자와는 인사를 모두 마친 상황이다.

척!

지크 일행을 배웅하는 문지기들이 예를 갖춘다.

탄생제 때 벌어진 그 사건은 궁에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대놓고 왕궁을 무대로 대판 붙었으니 숨길 수도 없었다.

지크는 그 사건에서 음모를 파헤치고 적들을 제압한 것으로 궁 내 사람들의 존경을 한껏 받고 있었다.

‘역시 익숙해지지가 않네.’

타인에게 받는 존경의 눈초리라니. 소름이 잔뜩 솟는 느낌이다.

왕궁을 나선 후 수도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왕궁에서 그 난리가 난 것을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꽤 수월하게 뒷수습을 한 모양이었다.

따각! 따각!

근처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다 지크의 앞에서 멈췄다. 화려한 마차 한 대가 그들 앞에 보였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이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세요. 수도 바깥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지크 일행을 기다린 모양이다. 그들은 사양하지 않고 이블린의 마차에 몸을 실었다.

“루벨라 님도 있으셨군요.”

“공녀께서 여러분을 배웅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죠.”

이블린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루벨라가 이블린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맞은편으로 지크와 라일라가 앉았다. 한스와 스녹은 스스로 마부석에 가 앉았다.

저 네 명 사이에 껴 마음 편하게 있을 자신이 아직 둘에겐 없었다.

마차 문이 닫히고 천천히 마차가 출발했다.

“많이 친해지신 모양입니다.”

지크가 이블린과 루벨라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밸르의 기운을 몰아내면서 친분을 좀 맺었어요.”

루벨라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어려서부터 성녀 후보로서의 의무와 교육에 바빠 또래의 친구를 사귀지 못한 그녀에게 이블린이 좋은 친구가 된 모양이었다.

‘하긴, 이블린 정도면 성녀의 친구로서 충분하지.’

서큐버스가 아닌 이블린 루즈는 순진하고 착하기 이를 데 없다.

아마 루벨라의 보호자인 와이그도 그녀를 인정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루벨라의 곁에서 바로 떼어냈을 테니까.

‘그것 참, 성녀님의 보호자도 고생이로군.’

지크가 탄 마차 뒤로 조그만 마차 한 대가 뒤따라오고 있는 걸 지크는 눈치 챘다.

루벨라가 친구와 즐겁게 어울릴 수 있도록 와이그가 뒤로 빠져 호위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벌써 가신다니 아쉽네요. 지금 아버님과 오라버니가 올라오고 계시다고 하는데 말이죠.”

이블린이 말했다.

작게는 딸을, 크게는 가문 전체를 구해준 지크에게 그들이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도 지크를 만나면 엄청난 칭송과 함께 막대한 포상을 하사할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그 어느 것도 필요 없었다.

“여행자가 한 곳에 계속 머무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죠. 게다가 저는 착한 일을 해야 해서 말입니다.”

“착한 일은 이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요?”

이블린이 순진하게 물었다. 하지만 라일라와 루벨라는 지크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대강 짐작이 갔다.

“제가 하고 싶은 착한 일은 악당을 짓밟는 일이거든요. 그것도 좀 많이 괴롭히면서 말입니다.”

“그, 그런가요.”

이블린이 애써 웃으며 지크의 말에 반응했다. 옆의 라일라와 루벨라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아, 윈플 후작가의 일 말인데요.”

이블린이 애써 화제를 변경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알버스의 독단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럴 겁니다. 예전에 알버스 그 놈이 윈플 후작님을 비하하는 말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윈플 후작가가 이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윈플 후작님이 상당히 위중하신데 그것에도 알버스가 계획했던 건가 봐요. 정확히 말해서 알버스의 공범이 그랬다는군요.”

후작은 와병중이고 후계자는 반역죄로 감옥에 갇힌 상태. 특히 후계자는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윈플 후작가의 상태는 여러모로 심각했다.

“이 사태를 하루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후계자를 찾고 있는 모양이지만 없는 모양이에요.”

“형제가 없습니까?”

“요 근래 전부 죽었어요.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까지 전부요.”

“알버스 짓이군요.”

“본인이 그렇다고 실토했다 하더군요. 정확히는 그의 공범들이 했다고 하네요.”

‘그것 참, ‘로브 입은 놈’들은 왜 그렇게 이블린을 고집했는지 모르겠군. 알버스 윈플이라는 훌륭한 마인 인재가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마인은 성질이 더러운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에 맞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법.

‘하긴, 그놈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으론 보이지 않았지.’

만약 알버스 놈이 마인들과 똑같은 길을 걷는다면 와이그 같은 능력자가 동원될 필요도 없다.

그저 왕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기사의 칼에 목이 날아간 후, 마인도 아닌 그냥 성격이 더러운 놈으로만 기록될 가능성이 컸다.

지크는 조곤조곤 설명하는 이블린을 쳐다봤다.

“왜 그러시나요?”

어떤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기에 이블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제 알버스 윈플에게서 잘 벗어나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그거 말이군요.”

이블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여러분들 덕분이죠.”

이블린이 세 명을 번갈아 쳐다봤다.

“지크 님은 찾아갈 때마다 언제나 제 가치를 설명해주셨죠.”

“거기에 관해선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녀님은 알버스 윈플 같은 놈에게 아깝습니다. 훨씬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요. 알버스 녀석을 후려쳤을 때의 공녀님은 멋있었으니까요.”

지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라일라 님은 계속해서 저를 위로해주셨고요.”

라일라가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루벨라 님은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죠.”

“카르나 님의 은총을 나누는 건 카르위먼의 신도로서 당연한 일인 걸요.”

루벨라가 방긋 웃었다.

“아직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가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끙끙 앓고 있기도 싫어요. 내가 왜 그 작자 때문에요? 날 이용하고 끔찍한 누명을 씌우려고 했는데요.”

세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그 작자에게 얽매이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환한 미소는 더 이상 그녀에게 미혹이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 * *

마차는 수도 외곽에 도착했다. 이블린이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

바로 떠나려던 지크 일행이었지만 세 여자가 상당히 친해진 모습을 보였기에 잠시 도시 바깥에서 머물렀다 가기로 했다.

피크닉이었다.

이런 경험이 거의 없는 루벨라와 이블린 그리고 기억 자체가 없는 라일라는 제법 흥미진진하게 이 일을 반겼다.

라일라야 야숙은 많이 해본 경험이 있지만 그건 절대 피크닉이 아니었다.

한스가 마부로 따라 온 하인과 함께 주변을 정리하며 자리를 만들고, 지크는 스녹과 함께 가벼운 사냥감을 찾으러 갔다.

그 사이 여성들은 마차에 앉아 그녀들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라일라 씨는 지크 씨와의 사이는 여전한가요?”

“네?”

이블린의 질문에 라일라가 눈을 깜박였다. 옆에서 루벨라가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그런 사이인가요?”

“지크 씨가 라일라 씨를 대하는 게 예사롭지 않거든요.”

‘아!’

라일라는 그제야 이블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지크가 라일라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깔아놓은 걸 그녀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조금 걱정됐어요. 저와 알버스 그 작자의 일 때문에 라일라가 사랑이란 것에 관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말이에요.”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지금 라일라가 관심 갖는 것은 맛있는 걸 먹고 아름다운 걸 보는 것 정도다.

하지만 라일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오해를 풀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침묵을 멋대로 상상한 것일까. 이블린이 잔잔한 목소리로 라일라에게 말했다.

“사랑을 하세요, 라일라 씨.”

이블린의 선명한 눈이 라일라의 모습을 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미숙한 동생을 챙겨주는 언니 같았다.

“제 사랑은 비록 끝이 안 좋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 ‘모든 사랑은 믿을 수 없다’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아요.”

라일라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미래의 ‘서큐버스 이블린 루즈’. 적어도 이블린이 그 저주 받은 존재가 될 가능성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분간은 무리겠죠.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다른 사랑을 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알버스 그 인간 때문에 행복 하나를 포기할 순 없잖아요?”

이블린이 라일라를 똑바로 바라본다.

“라일라 씨는 감정이 서툴죠. 제 경우를 보고 사랑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친구로서 말할게요, 라일라 씨. 굳이 지크 씨가 아니어도 좋아요. 사랑을 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이블린은 예쁘게 웃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할 필요도 없어요. 그게 내일이 될지 먼 훗날이 될지 모르지만 당신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

* * *

수도 외곽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크 일행은 루벨라, 이블린과 헤어졌다.

지크 일행은 언제나와 같이 가도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스와 스녹은 이제는 익숙해진 듯 안색의 변화 하나 없었다. 그저 일행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라일라만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이제 넌 어떻게 할 거냐?”

지크가 라일라에게 물었다.

애초에 라일라는 이블린과 좀 더 쉽게 관계를 맺기 위해 지크의 요청에 따라 잠시 합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 라일라의 대답은 빨랐다.

“잠시 너희랑 같이 다닐 생각이야.”

아직 상식 같은 것이 부족하기도 하고 지크와 공동의 적을 두고 있기도 하다.

지크 일행의 실력도 뛰어나니 라일라도 지크 일행과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그러냐.”

지크의 반응은 무척이나 담백했다. 지크로서도 그녀 같은 강력한 마법사와 동행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잃어버린 기억을 혹여라도 떠올린다면 ‘로브를 입은 자’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라일라의 일행 합류는 무척이나 간단하고 허탈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스와 스녹은 이제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툭! 투툭!

가도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속으로 들어가자 울창한 나무들이 펼쳐졌다.

지크의 등 뒤에 매달린 윈두르가 가지들에 툭툭 치인다.

그렇게까지 방해를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크는 윈두르를 빼 들었다.

한창 알버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은밀히 움직였을 때처럼 들고 다니기 편한 상태로 변화시킬 셈이었다.

“…응?”

지크가 고개를 갸웃하고 윈두르를 쳐다본다.

“이거 왜 이래?”

지크가 윈두르를 흔들어봤다.

“왜 그래?”

라일라가 물었다.

“아니, 이 녀석. 변하지가 않아.”

평소라면 지크가 원하는 즉시 스스로의 형태를 변화시키던 윈두르가 지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장 났나?”

옆에 있는 나무에 윈두르를 툭툭 두들겨보고 손가락으로 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윈두르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혹시….”

인상을 찌푸리고 윈두르를 노려보는 지크에게 라일라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알려줬다.

“네가 알버스의 음모를 파헤칠 때는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형태를 변형시켜줬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있는 거 아냐?”

“설마….”

아무리 신기한 검이라고 해도 스스로 그런 판단까지 할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윈두르가 모습은 변형시키지 않는 이유가 설명된다.

“…진짜냐, 너?”

지크의 물음에도 윈두르는 당연히 대답이 없었다.

한동안 윈두르를 쳐다보던 지크. 결국 한 마디를 입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검이 다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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