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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47화 (147/628)

제147화

자유를 얻게 된 지크 일행이지만 바로 왕궁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왕궁에서 정식으로 지크 일행을 손님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것도 궁 외곽의 작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내줬으니 굉장히 호화로운 대접이었다. 그 안에서 지크 일행은 잠시 휴식을 가졌다.

지크는 자신의 방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걸로 적어도 이 왕국과 카르위먼에서는 ‘로브 입은 놈’들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하겠지.’

회귀 전 마인이었던 자들을 찾아다니며 ‘로브를 입은 자’들의 흔적을 찾으려 하는 지크다.

마침 이렇게 권력의 중추와 맞닿았는데 그걸 그냥두기에는 아쉽지 않은가.

왕국은 음모에 왕세자가 말려들었으니 눈에 불을 켤 거고 카르위먼은 원래 밸리드 놈들에게 이를 가는 자들이다.

‘아마 앞으로 계획을 짜는데 더 힘이 들 거다.’

지크는 앞으로 고생하게 될 ‘로브를 입은 자’들을 생각하고 낄낄댔다.

‘그런데 이번 왕궁에 침입한 놈들은 좀 이상했단 말이야.’

그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그들이 왕궁에 침입한 목적도 불분명하다.

‘고작해야 알버스 윈플 그놈을 구하기 위해서 그 정도 실력을 가진 놈들이 왕궁에 침입한 것 같진 않아.’

알버스는 고작해야 한 번 사용하고 버릴 말에 불과한 놈이지 왕궁까지 잠입해 구해야할 놈은 아니다.

‘만약 그놈들이 알버스 같은 놈도 구하려 할 정도로 정이 넘치는 놈이라면 상대하기가 굉장히 편하겠지만.’

그러나 지크가 지금껏 겪어 본 ‘로브를 입은 놈’들은 그렇게 어설픈 마음 착한 놈들이 아니다.

‘마인을 직접 만들고 다니는 놈들은 녀석들 조직의 행동대겠지. 대부분 실력은 비슷비슷했고.’

그리고 그놈들과 다른 놈들을 둘 만났다. 하나는 비올루윈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이곳 왕궁에서.

‘비올루윈의 놈들은 라일라를 쫓고 있었어. 그놈들 실력은 뛰어났지. 여기 왕궁에서 만난 놈들도 그렇고. 즉, 놈들은 마인을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임무를 위한 조직원도 갖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번 왕궁의 놈들도 어떤 목적을 위해 잠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크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일단 다른 증거들이 나올 때까지는 두고 보자고. 아직 뭔가를 추측할 정도의 정보가 모인 게 아니니까.’

지크는 일어섰다. 오늘의 사색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었다. 게다가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도 느껴졌다.

지크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고급 마차를 한번 보고 테라스를 나갔다.

* * *

응접실. 왕궁의 하녀가 내려준 차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앉아있었다.

한 명은 당연히 지금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지크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는 손님은 한 쌍의 남녀였다.

“별일이군요. 당신들이 나를 다 찾아오다니.”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삐딱하게 고개를 틀어 말하는 지크.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과히 좋지 않다.

“집 밖으로 나가더니 예의는 완전히 담을 쌓은 모양이구나!”

“예의를 차려봐야 돌아오는 건 무시와 무례뿐이니 제가 예의를 차려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이제는 완전히 남남인데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백작님. 그리고 백작 부인.”

지크를 찾아온 건 스틸월 백작 내외였다.

그들이 이곳을 찾아온 건 지크도 의외였다. 남 아니,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된 그들이 뭣 하러 자신의 얼굴을 보러 찾아온단 말인가.

혹시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까. 그러나 지크는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지워버렸다.

‘그럴 리가 없지.’

저 똥고집 백작이 이제 와 지크를 살갑게 대할 리 없고 백작 부인은 그레이그의 경쟁자가 다시 등장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크는 그들의 용건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면 용건이 있는 녀석은 한스 녀석이겠군.’

백작 부인의 유모의 손자라더니 정말로 아끼는 모양이었다.

지크는 천연덕스럽게 그들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피차 얼굴보기 좋은 관계는 아니니 어서 용건 마치고 떠나주시지요.”

백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백작 부인의 입꼬리도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목소리를 높이진 못 했다.

예전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였지만 지금 지크는 엄연히 크로뇽 왕국의 손님, 그것도 음모를 뿌리 뽑아준 귀빈이다. 게다가 지금은 백작이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백작은 턱을 꼿꼿이 세우고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지크에게 그저 볼을 푸들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스를 만나게 해다오.”

지크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아마도 백작 부인이 졸라서 오게 되었을 터.

하지만 백작 내외에게는 불행하게도 지크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한스는 부인을 키우다시피 한 유모의 손자다. 그 아이도 부인을 보고 싶어 할 거다.”

“그렇군요. 그래서요?”

백작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지크는 더욱 삐딱하게 나갔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그놈은 결투 승리의 대가로 제가 종으로서 받아온 놈입니다.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놈이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게 아니냐!”

“그게 부탁하는 태도입니까?”

백작의 수염이 곤두섰다. 그가 굉장히 분노에 빠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화를 내진 못했다.

“…악감정이 있구나.”

“그럼 없겠습니까? 내가 그 곳에서 당한 게 있는데요.”

지크는 찻잔을 들어 조용히 마셨다. 자신은 아쉬운 게 없다는 그런 태도였다.

“…영지에 널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압니다. 어머니가 아주 대단한 일을 해놓고 가셨죠.”

그렇게 자신의 편을 싸그리 날려버리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넌 그때까지 실력도 없었어.”

“그것도 인정합니다. 백작님이 검술 선생 하나 붙여주지 않았지만, 빠르면 대여섯 살에는 느끼는 마력을 전 해방하지 못했었죠. 마력이 없거나 미약하다고 느낄 만한 일이란 거, 인정합니다.”

설마 지크가 드래곤 급의 마력량을 갖고 있다고 그 누가 생각한단 말인가.

“때문에 네게 백작위를 줄 순 없었다.”

“감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놓고 그 사이에 이유를 끼워 맞춘 행태긴 합니다만, 인정합니다. 왕국의 강철벽의 후계로 내세우기에 그때의 전 모자랐죠.”

달그락!

지크가 찻잔을 내려놨다. 짙은 침묵 속에 그 소리는 너무도 요란하게 들렸다.

“그래서요? 그러면 제가 이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너도 인정하지 않았느냐!”

“전 별로 백작위 자리에 연연한 게 아닙니다. 그런 것 따위 그레이그에게 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때의 전 굉장히 순진했죠. 바라는 건 부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의 관심과 사랑뿐이었으니까요.”

지크는 백작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 당신은 절대 줄 수 없는 거였죠.”

물론 그건 지크에게는 수십 년 전의 일.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지크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백작 내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부탁은 못 들어준다는 게냐?”

지크가 잠시 백작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그레이그는 어떻습니까? 제가 나올 때 꽤 공들여 부수고 나왔는데 말이죠.”

“뭣…!”

“파티장에서 봤을 때 괜찮아 보이긴 했습니다만, 절 보자마자 겁을 먹은 눈치더군요. 앞으로 변경백의 자리를 이을 후계자로서는 조금 아쉬워 보이긴 했습니다.”

그레이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백작 내외는 눈에 띄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빨리 정신을 차려야 백작가가 무사할 텐데 말이죠. 검술은 많이 늘었습니까?”

벌떡!

백작이 거칠게 일어섰다. 하지만 지크는 여전히 태연했다.

다시 테이블의 차를 들어 입가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늘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것 참, 백작가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백작 부인도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인사조차 하지 않고 방문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그들의 등 뒤로 분노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스 녀석은 백작가 저택으로 보내겠습니다. 아무렴, 귀하신 분들이 행차해주셨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요.”

쿵!

지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칠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응접실 벽면에 달린 창으로 정원의 푸르른 모습이 보였다.

그 정원을 보며 지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차 맛 좋네.”

* * *

왕궁에 얼마나 머물렀을까. 지크에게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루벨라나 와이그 같은 친분이 있는 사람, 국왕이나 왕세자 같은 안면이 있는 사람도 오고 갔고 생판 모르는 인간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보통 그런 자들은 지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온 자들이었다.

물론 지크는 관심 없었다.

“늦었네?”

식당에 마지막으로 라일라가 들어오면서 지크 일행 넷이 모두 모였다.

보통 귀족가라면 모든 사람이 모인 후에 식사를 시작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 없었다.

이미 셋은 식사를 시작한 후였다. 그리고 라일라도 개의치 않았다.

“선물 받은 것들을 정리하느라 늦었어.”

“어마어마하게 받았다며?”

라일라의 미모, 그리고 마법사라는 희귀 직종이 겹치며 그녀는 귀족들의 엄청난 구애를 받고 있었다.

“날 언제 봤다고 사랑 타령을 그렇게 해대는지.”

라일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정말 선물은 안 돌려줘도 되는 거지?”

“그렇지. 거기서 돌려달라고 하면 체면 문제니까. 마음에 드는 선물이라도 있었어?”

“옷 같은 건 관심 없는데 보석이 꽤 있더라고. 그 정도면 괜찮은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을 거야.”

라일라는 기분 좋게 말하고 식기를 들어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잠시 식당에는 음식을 먹는 소리만이 울렸다.

지크는 자기 몫의 음식을 먹으며 잠시 일행을 둘러봤다.

“너희들은 어떠냐? 귀족이 되고 싶거나 귀족가에서 일하고 싶어?”

갑자기 지크가 한 말에 한스와 스녹이 음식을 먹던 걸 멈췄다.

서로 눈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식기를 내려놓는다. 입안의 음식을 꿀꺽 삼켰다.

라일라도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면서 지크에게 시선을 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스가 물었다.

“너희들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갔잖냐. 특히 한스 너는 스틸월 백작가로 돌아가면 굉장히 환영 받을 터다만.”

그 어떤 영지보다 무력이 필요한 곳이거니와 백작 부인의 총애를 한 몸에 받기도 하는 녀석이니 다른 영지보다도 더 메리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스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백작님이나 백작 부인도 권유를 해주셨습니다만, 지금은 이 생활에 만족합니다. 동화 같은 꿈을 제가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옆에서 스녹도 고개를 끄덕였다.

스녹의 수프 접시에 코를 처박고 꿀꺽대고 있던 노웸도 그때만은 고개를 들어 동의했다. 물론 노웸은 바로 다시 수프에 코를 처박았다.

“애초에 나는 귀족 같은 거에 흥미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좋아. 난 도망자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고 라일라도 썰어놓은 스테이크를 부지런히 입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냐.”

지크는 피식 웃었다.

“좋아. 너희가 그렇게 원한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 줘야지. 앞으로도 너희의 목적을 위해 더욱 강한 훈련을 시켜주마. 기대해도 좋아.”

순간 한스, 스녹, 라일라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들고 있던 식기를 내려놨다.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아랑곳없이 지크는 앞으로의 훈련 계획을 머릿속으로 쫘르륵 세웠다.

그 모습을 보고 셋은 이젠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쿠우….

지크의 훈련 발언에 수프에 얼굴을 처박았던 노웸이 구슬프게 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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