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지크의 윈두르가 춤을 춘다. 기괴하게 생긴 검이 유려하게 흘러드는 모습은 기묘한 감성을 들게 한다.
그러나 정작 지크의 검을 받아넘겨야 하는 습격자들에게는 그런 감성 따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콰앙! 콰앙!
모양이 기묘하다고 해도 윈두르의 날은 날카롭게 서 있고 그 안에 담긴 마력은 강맹하다. 휘두르는 소리만으로도 몸이 동강날 것 같다.
하지만 암습자들은 상당히 잘 견뎌내고 있었다.
‘이 녀석들, 수준이 꽤 높아.’
숫자는 여섯.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강하다. 적어도 ‘로브를 입은 자’들의 우두머리 정도는 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한 명은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했다. 예전 관광도시 비올루윈에서 만났던, 사검을 사용하던 우두머리와 비교해 봐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수준이 높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지크는 그때와 달리 자신의 모든 마력을 쓸 수 없다.
콰아앙!
“칫!”
저릿한 손을 부여잡고 지크가 몇 걸음 물러났다.
‘나보다 확실히 윗줄이야.’
그 ‘특출나게 강한 놈’과 몇 번 검을 맞대자 확연히 차이가 났다. 거기에 지크는 그놈을 포함해 셋을 혼자서 감당하는 중. 나머지 셋은 한스와 스녹이 합심해서 막아서는 중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목숨을 걸고 사지 두 짝 정도는 내준다는 생각으로 덤벼들어야 할 상황이지만.’
지금은 그럴 것까진 없다. 습격자들의 목적은 지크의 목숨이 아닌, 이곳에서의 탈출이다. 게다가 든든한 응원군들도 저 파티장에 난 커다란 구멍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당연히 적들도 그쪽에 신경을 분산시켜 둘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지크의 일행은 한스, 스녹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은 어느 모로 보나 지크 일행에게 유리한 상황. 그리고 지크는 그런 상황을 마다할 이가 아니다.
‘아, 정말.’
지크가 씨익 웃었다.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상황이네.’
지크는 다시 습격자들에게 뛰어들었다.
* * *
“대단하군요.”
파티장에 뚫린 구멍으로 정원에서의 싸움을 지켜보던 와이그가 감탄했다.
“얼마 못 본 사이에 또다시 강해지셨습니다.”
“지크 님을 말하는 거죠?”
루벨라가 물었다.
“지크 님도 그렇고요. 한스 님과 스녹 님도 훨씬 강해졌어요. 저 습격자들의 정체는 모르겠습니다만, 습격자 중 가장 강한 자의 수준은 웬만한 강국에서도 수위를 다툴 만큼 높습니다. 다른 습격자들도 커다란 영지에서 최강이라 목소리를 높일 정도도 되고요. 그런데 그런 작자들을 상대로 저만큼 선전을 하다니.”
“지크 님과 한스 님의 무기가 못 보던 것이네요. 저 무기의 덕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굉장히 특별한 무기가 확실합니다. 특히 한스 님이 휘두르는 저 검.”
어두운 정원을 빛으로 수놓는 한스의 무기는 눈에 확 뜨였다.
“성검인 것 같죠?”
“그렇습니다.”
주변이 술렁였다. 그만큼 성검이란 존재는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크 님의 검도 만만치않게 좋아 보입니다. 물론 지크 님의 실력도 뛰어나고요. 저런 검들은 자칫하다가는 주인이 검에 먹힐 수도 있는데, 둘 다 주인을 잘 만났군요.”
“저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강해질 수가 있는 거죠?”
“한스 님과 스녹 님의 훈련은 전적으로 지크 님께서 시키고 계신 것 같으니, 지크 님의 교육 방식이 훌륭하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세 분 다 타고나셨다고 봐야죠.”
“하지만 지크 님은 가문에 있을 때는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루벨라는 힐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스틸월 백작 가족을 쳐다봤다.
그들은 딱딱한 안색으로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력 문제였을 겁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마력이 없다면 한계는 뚜렷하니까요. 당시 지크 님은 마력을 아예 다루시지 못했다고 하죠. 보통 어렸을 때부터 꾸준한 훈련을 쌓았지만 그 나이까지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개입니다. 발현하지 못할 정도로 보유마력이 극도로 적거나 아니면 발현시키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극도로 많거나 말이죠.”
와이그가 턱을 긁적였다.
“대부분은 전자입니다.”
“그리고 지크 님은 후자고요?”
“아마 지크 님의 마력량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 마력량이 계속해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죠. 게다가 마력만 많은 것도 아닙니다. 지크 님의 기술은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경악스러울 일이죠.”
“한마디로 타고난 마력량도 비상식적으로 많고 검술도 보기 드문 천재라는 뜻이죠?”
“거기에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릅니다.”
거기까지 말한 와이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크 님이 착한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라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솔직히 지크 님이 나쁜 쪽으로 물들었을 때 얼마만 한 피해가 나올지 상상조차 가지 않아요.”
“와이그 님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로 루벨라의 질문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카르위먼 최강의 성기사 벨리 와이그. 그의 명성은 이미 수십 년간 대륙을 진동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이그에게 이제 새파란 나이의 지크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와이그의 답변은 그들을 더욱 충격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은 제가 더 강합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그리 길진 않을 것 같군요.”
“그래요.”
담담한 와이그의 말을 루벨라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들었느냐?”
“네.”
왕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은 이어 질문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왕세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한스란 자와 스녹이란 자는 자작. 그리고 지크는 백작 자리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지크는 일단 신분이 확실하니 말입니다.”
“영지는?”
“어떻게든 왕실 직영지를 떼 봐야죠. 아니면 후계자가 없는 곳으로 가문을 잇게 만든 다음 작위를 높이고 직영지를 추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전부냐?”
“일단 당장은요. 아무리 대단한 자라도 백작위 이상의 고위 귀족 자리를 다 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더욱 가치가 있는 자라면 생각을 더 해봐야겠죠.”
“음, 그 정도까지 파악할 수 있으면 됐다.”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왕국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역시 그렇습니까.”
왕세자도 은연중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크라는 녀석은 권력에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 녀석일 게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백작가를 박차고 나가지도 않았겠지. 성격도 뭔가에 얽매이길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도 그렇군요. 그렇다면 다른 둘은 어떻습니까?”
“글쎄. 그들은 좀 더 알아보긴 해야겠다만 그들도 별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구나.”
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딘가를 힐끔 쳐다봤다. 그곳에는 스틸월 백작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자를 가문에서 나가게 하다니. 당분간 스틸월 백작가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겠군.’
하지만 숙련된 기사의 비상식적인 청력을 익히 아는 왕세자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도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계속 전투 장면을 보던 루벨라가 입을 열었다.
분명 수준 높은 공방전을 벌이며 습격자들을 잡아두고 있는 지크와 일행이었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수준이 습격자들이 높았다.
루벨라의 눈에도 지크 일행이 조금 밀리는 것이 보였다.
와이그는 시종이 갖고 온 검을 손가락으로 툭툭 내려쳤다.
“흠, 확실히 슬슬 도와야 할 타이밍인 것 같긴 하군요.”
아직 지크 일행에게는 버거운 수준의 적이었던 걸까. 왕국의 기사들도 슬슬 끼어들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그때 한 걸음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여지껏 전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라일라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지크 님의 새로운 동료로군요.”
와이그가 말했다.
라일라가 두 손을 내민다.
“엘. 틴. 오운. 라. 푸츠.”
콰르릉!
그녀의 두 손 사이로 막대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굉음과 섬광이 주변을 가득 울린다. 사람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마법사였어?”
그저 얼굴이 굉장히 예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거늘. 루벨라가 경악에 차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든 그녀는 주문을 완성했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습격자들의 몸놀림이 다급해졌다. 지크 일행에게 급히 달라붙었다. 지크 일행이 마법에 휘말리지 않도록 라일라가 제대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착각이었다.
콰아아아앙!
뇌전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습격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설마 지크 일행을 아랑곳않고 마법을 날릴 줄은 몰라 습격자들은 크게 놀랐다. 파티장의 다른 인원도 경악했다.
하지만 그만큼 효과는 굉장했다.
“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습격자 둘이 대비도 하지 못하고 번개에 휘말렸다. 나머지는 급히 마력을 검에 담아 마법에 맞섰다.
“크윽!”
“으으으윽!”
덕분에 번개에 직격하는 건 피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너무 커다란 빈틈이 드러났다.
지크 일행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서걱!
지크의 검이 한 습격자의 목을 날렸고.
푸욱!
한스의 빛이 한 습격자의 심장을 꿰뚫었으며.
콰직!
스녹의 대지가 한 습격자를 압살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습격자가 죽어 나자빠졌다. 남은 건 습격자의 우두머리 한 명뿐.
고작 마법 한 번에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그게 바로 마법이 무서운 점이었다.
“…설마 그 난전 속에서 정확하게 적들만 맞혔다고?”
마법사인 것도 놀라운 판국에 마법 실력 또한 범상치 않다. 그 와이그조차 경악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한 눈길로 자신의 전과를 내려다봤다.
루벨라와 와이그는 놀람이 가시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눴다.
“지크 님 일행은 정말 놀라운 분들뿐이네요.”
“저 정도 규모의 파티 중에서는 아마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겁니다.”
* * *
“이, 이게….”
홀로 남은 우두머리 습격자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부하들이 전부 숨이 끊어져 땅바닥에 나뒹군다.
“어때, 우리 동료 마법사. 끝내주지?”
지크가 우두머리를 조롱하며 라일라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라일라가 한쪽 입꼬리를 쭈욱 올린다. 그리고 마주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크, 이제는 반응도 잘해줘!”
지크는 라일라의 반응에 만족했다.
“그럼 슬슬 끝내자고. 그런데 그 전에 네 정체가 궁금한데 말이야.”
갑자기 파티장에 나타난 자들. 라일라가 없었으면 그대로 놓칠 뻔했다.
“‘로브를 입은 놈’들과 동료인 놈들인가? 그런데 알버스는 왜 구하려고 했어? 그다지 가치 있어 보이는 놈은 아닌데.”
당연히 습격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 너희들이 대답하는 건 기대도 안 했다.”
평소 같았으면 대화를 유도해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였을 것이다.
고문도 통하지 않을 게 뻔한 녀석들이니.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하필이면 왕궁에 침입을 했냐. 차라리 다른 곳에서 덤볐더라면 자비롭게 목숨만 빼앗았을 것을.”
왕궁은 분명 녀석의 생포를 원할 터. 아마 녀석에게서 정보를 빼기 위해 온갖 고문을 가할 것이다. 녀석은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고통 속에서 죽어갈 것이고.
‘하지만 어쩌겠어. 나도 이번에 사고 친 게 좀 크니 잘 보일 선물을 준비해 놔야지.’
세운 공이 있고 카르위먼이란 뒷배도 있으니 벌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챙길 건 챙겨 놓는 게 좋다.
“끝내자.”
지크가 습격자에게 덤벼들었다.
습격자는 마법의 영향 때문에 상처나고 마비된 몸으로도 지크를 상대했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몸으로 지크에게 이길 순 없었고, 결국 지크에게 얻어맞아 사로잡히는 것으로 전투는 막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