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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38화 (138/628)

제138화

그곳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다.

몬스터도 맹수도 없는 곳이라 주변 주민들이 땔감이나 과실을 얻기 위해서 혹은 사냥을 위해 간간이 드나들지만, 주거지가 상당히 멀어 그렇게 인적이 많진 않은 곳이었다.

야산 중턱에는 산을 찾는 자들이 종종 쉬다 가는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야심한 시각이라 달과 별이 흩뿌리는 엷은 빛만이 오두막을 비춘다.

주변 나무들이 서로를 비벼대는 소리가 마치 원한 깊은 유령의 소리처럼 들려, 안 그래도 허름한 오두막은 더욱 스산하게 보였다.

턱!

오두막 앞에 낯선 자가 나타났다.

온몸을 검은 로브로 뒤집어쓰고 있는 게 영 수상하기 그지없다. 나무들이 그를 보며 서로 수군거리는 듯, 소리가 한층 커졌다.

‘저긴가.’

낯선 자는 오두막을 쳐다봤다.

그는 알버스였다.

비장한 걸음걸이로 오두막으로 다가간다. 꽉 쥐어진 주먹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끼익!

알버스는 오두막 문을 열었다. 안에서 확 풍겨 오는 냄새에 인상을 썼다.

천천히 오두막 안을 걷는다. 오두막이 작아서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었다.

유일한 방문을 열었다.

역시나 작고 더러운 공간이다. 하지만 그의 눈은 한 곳에 꽂혔다.

더러운 침대 위. 그가 그토록 찾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이블린.”

그가 입을 연다. 침대 위에서 조금 겁을 먹은 듯 앉아 있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블린이 그의 목소리를 모를 리 없었다.

“알버스? 알버스, 당신이에요?”

알버스는 두건을 벗었다. 하지만 알버스와는 달리 이블린은 어둠 속에서 사람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그래, 나야.”

알버스가 한 걸음 앞으로 걸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달빛과 별빛들이 그를 비췄다.

“정말로…!”

이블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알버스는 그녀를 안았다. 그야말로 꼭. 마치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블린? 왜 여기 있어.”

“저도 모르겠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이블린은 더듬더듬 말했다.

“눈을 떠 보니 이 산이었어요. 온 몸은 아프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그리고…그리고… 내가 당신을…!”

“눈 떠보니 이 산이었다고?”

“네.”

“정말이야?”

“네, 네….”

조금은 위협적으로 묻는 알버스에게 이블린이 겁을 먹은 낌새를 보였다. 하지만 알버스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하나를 펴 이블린의 앞에 갖다 댔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요사스럽게 반짝였다.

“저, 저기… 알버스…?”

이블린이 조심스럽게 알버스를 불렀다.

그 음성에는 명백하게 공포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알버스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눈길은 싸늘했고 꿀 같은 사랑을 속삭이던 입술은 꾹 닫혀 있었다.

“쯧! 역시 암시가 풀려 있잖아.”

“…무슨 뜻이죠?”

“뭐, 그런 소리야, 이블린.”

알버스가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 이블린의 어깨를 꽉 잡았다.

이블린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아주 아프게.

“전부 내가 꾸민 짓이야.”

이블린의 눈이 커진다. 하지만 알버스는 무척이나 냉정했다.

오직 그에게 찾아왔었던 ‘로브를 입은 자’가 했던 말만이 되새겨졌다.

- 그녀에게 네가 했던 일을 전부 말해라. 그래서 그녀에게 절망을 줘라.

‘대체 이 녀석에게 무슨 이용가치가 있기에 집착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걸로 나는 산다.’

물론 그 와중에 상처받을 이블린의 마음 따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신이… 꾸몄다고요?”

“그래.”

알버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그건 평소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아니었다.

욕망에 찌든 괴물의 미소였다.

“꽤 오래 전부터 암시와 도구를 통해 너를 ‘조정’해 왔어. 네가 나한테 푹 빠져 있었기에 많이 어렵진 않았지. 뭐,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내 네 환심을 사고 나한테 완전히 빠지게 하는 일이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그것도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어.”

“아, 알버스…지금 무슨 소리를….”

“닥치고 더 들어봐. 내가 네게 건 암시는 간단해. 내가 신호를 주면 앞에 있는 자를 습격하고,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면….”

알버스는 이블린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공포에 질린 이블린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알버스는 이블린의 어깨에 턱을 걸쳤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를 찌르도록.”

“윽!”

이블린이 알버스의 가슴을 밀쳤다. 알버스는 순순히 물러났다.

“물론 치명적인 상처는 입히지 않도록 했지. 그리고 바로 도주하도록 했어. 네 그 연약해빠진 육체가 어떻게든 힘을 내기 위해 조종하는 게 빌어먹게 힘들었지만 넌 충분히 네 역할을 다해줬어. 그래.”

알버스가 이블린을 노려봤다.

“네가 그 빌어먹을 호수로 잘 가기만 했다면 모두 완벽했을 텐데.”

“다, 당신은 날 사랑한 게 아닌가요?”

“사랑? 이봐, 이블린. 정신 차려. 우리는 귀족이야. 그것도 고위 귀족. 귀족이란 항상 향상심이 필요해. 그게 바로 저 아랫것들과 우리 귀족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마치 스스로의 사상에 취한 듯, 알버스는 그렇게 말했다.

“너와의 약혼도 마찬가지야. 넌 약혼녀로 나쁘지 않았어. 가문의 지위나 격으로 말이야. 하지만 너보다 더 좋은 약혼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걸 잡지 않는 게 바보 아니야?”

“다, 당신은 날 보지도 않았군요!”

“곧 나보다 아랫것이 될 가문의 딸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어. 네 아버지도, 네 오빠도, 그리고 내 아버지도 전부 향상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었어.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했지. 우리 둘의 결혼이 두 영지 사이에 평화를 불러올 거라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귀족이라면 밟고 올라서야지! 스스로 아랫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걸 택한 패배자들! 그렇다면 전부 내가 가져주지! 그래서 나는 귀족 본연의 삶을 살아가겠어!”

마지막엔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친다. 그의 오만한 성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외침이었다.

이블린은 절망했다. 그곳에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귀족 사회에서 종종 봤었던, 권력에 영혼을 팔아먹은 괴물 한 마리가 서 있을 뿐이었다.

털썩!

그녀는 뒤로 물러나 침대에 주저앉았다.

알버스는 그녀가 좌절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야 편하지.’

계약도 지킬 수 있고, 다루기도 편해진다. 알버스가 그녀에게 다가가기위해 걸음을 떼려 할 때였다.

“그것 참 자신감 넘치는 연설이네.”

뒤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알버스가 급히 몸을 돌렸다.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누구냐!”

“네 사상은 잘 들었어. 그런데 그런 걸 외치기엔 이런 허름한 오두막은 좀 아니지 않아? 누가 보면 쥐새낀 줄 알겠네.”

“누구냐고 물었다!”

어느새 알버스는 검을 빼들고 있었다.

“너희의 계획을 방해한 인간. 중간에 이블린을 빼돌린 인간이라고 말하면 알려나?”

“뭐?”

예상치 못 한 정체에 알버스가 잠시 얼빠진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네 녀석이냐아아!”

자신을 이런 허름한 오두막까지 직접 오게 한 범인이라는 사실에 알버스의 눈에 뒤집혔다.

앞뒤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챙!

그러나 그의 검은 눈앞의 범인, 지크에게 아주 간단히 막혔다.

“얼빠진 놈.”

콰아앙!

거센 힘의 격류가 알버스를 밀어냈다. 오두막 벽면이 터지며 알버스가 바깥으로 나뒹굴었다.

“크윽!”

부서진 나무 파편들이 쓰러진 그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저벅! 저벅!

지크가 구멍난 벽을 통해 걸어 나왔다.

“그렇게 위대한 사상을 가지신 분의 힘 치고는 너무 약하지 않아?”

“으아아아앗!”

알버스가 다시 달려들었다. 지크가 윈두르를 마주 휘둘렀다.

몇 번의 검격이 오갔다. 하지만 우열은 뚜렷했다.

얼굴이 벌게진 채 검을 휘두르는 알버스에 비해 지크는 여유가 넘쳤다. 어찌 보면 무료하게까지 보였다.

퍼억!

“커억!”

지크의 발끝이 알버스의 복부에 꽂혔다. 알버스가 뒤로 나뒹굴었다.

“이봐, 일어나. 위대한 귀족님께서 그 정도로 쓰러지지 말라고.”

퍼억!

“크악!”

지크가 걷어차자 알버스가 데굴데굴 굴렀다. 여태 잡고 있던 검도 놓쳤다.

지크의 검이 쓰러진 알버스의 목 바로 앞에 겨눠졌다.

알버스가 흠칫 놀랐다.

지크는 그대로 알버스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크으윽!”

고통과 굴욕이 온몸을 자극한다. 하지만 날카로운 검날이 그의 앞에 서성거려 알버스는 함부로 반항할 수도 없었다.

알버스를 제압한 지크는 고개를 돌려 오두막을 향해 말했다.

“이제 증명됐지, 이블린? 이놈은 너한텐 관심도 없었어. 있는 거라곤 제 욕망뿐이지.”

이블린이 천천히 오두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어느새 왔는지 그녀의 옆에는 라일라가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알버스는 지크와 라일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낯선 남녀 둘.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설마, 이블린이 자주 만난다던 천한 것들이 너희…!”

퍽!

지크가 알버스를 걷어찼다.

“누가 ‘천한 것’이냐? 아주 입이 걸레보다 더 더럽네.”

지크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여기 그 누구도 그 말에 반박할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할 거야?”

라일라가 물었다. 그녀의 음성은 지독하리만치 싸늘했다.

“그러게. 어떻게 할까? 죽일까?”

알버스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죽음. 자신과는 당분간 상관없을 거라는 그 단어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자, 잠깐…!”

그가 손을 들었다.

“나, 나를 죽이면 너희도 살아남…!”

“아, 시끄러!”

퍽!

“커억!”

지크가 그의 얼굴을 짓밟았다.

그가 몸을 바둥거렸다. 하지만 윈두르의 칼끝이 목에 생채기를 내자 얼어붙은 듯 멈췄다.

방금 전까지 귀족의 기준 어쩌고 할 때의 기세는 전혀 없다. 지크와 라일라는 코웃음을 쳤다.

“잠시…, 잠시 그와 얘기를 할게요.”

“얼마든지.”

이블린의 말에 지크는 알버스의 얼굴에서 발을 치웠다. 검도 치우고 몇 걸음 물러났다.

“일어서.”

알버스가 지크를 경계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이블린이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라일라가 짧은 영창을 했다.

촤르륵!

“큭! 이건…!”

마법의 빛줄기가 라일라의 손에서 튀어나오더니 알버스를 포박했다. 어찌나 질긴지 마력을 사용해 발버둥 쳐봐도 포박은 풀리지 않았다.

“헛수고하지 말고 힘 빼라.”

그리고 발버둥조차 지크의 협박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크는 알버스가 말귀를 알아듣자 뒤로 더 물러서 라일라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블린이 알버스의 앞에 섰다.

“…그렇게 권력이란 게 중요했나요?”

“…….”

“대답해. 솔직하게”

주저하는 알버스에게 지크가 강요했다.

“…그래.”

알버스는 동의했다.

“그렇게 권력이란 게 중요했냐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네가 순진하단 증거다. 권력은 귀족이 지향해야 할 유일한 가치다. 어떤 부조리도 불공정함도 강력한 권력 앞에서는 모두 용납되는 법이야.”

알버스는 이블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쁜 말은 하지 않으마. 이대로 나를 놔두고 도망쳐라. 어차피 너는 이 왕국에서 끝났어.”

“이대로 누명을 인정하란 건가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거지? 나를 끌고 가서 억울하다고 항변이라도 할 생각인가? 늦었어. 네가 습격한 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다.”

“내가 한 게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거냐. 네 편을 들어줄 사람은 지금 네 옆의 둘뿐. 그리고 네 아버지와 오빠가 올라온다고 해도 널 구할 순 없어.”

“당신이 암시를 건 거잖아!”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거냐.”

알버스는 차갑게 말했다.

“인정해라. 이 나라에서 너는 끝났다.”

순간 이블린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다리부터 허리 어깨, 그 모든 걸 깔끔하게 회전시켜 날아간 주먹이 알버스의 턱을 그대로 후려쳤다.

“크악!”

포박되어 움직일 수 없는 알버스는 피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지크가 손뼉을 짝 쳤다.

“그렇지! 잘하네! 가르친 보람이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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