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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33화 (133/628)

제133화

“그게 끝인가?”

“다른 정보를 원하시오?”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네가 들려준 이야기를 보고할 뿐. 네가 끝이라고 판단하면 그렇게 이야기하면 된다. 다시 묻겠다. 그게 끝인가?”

‘이거 좀 심하게 도구로 만들어 놨군.’

이야기를 끝낼 판단조차 허락받지 못 하는 도구라니.

굳이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싶나 싶으면서도, 사람을 이 정도까지 만들어낸 조직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공포심이 솟아났다.

“하려면 확실히 하는 게 낫겠지.”

알버스는 방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드시겠소?”

“…….”

대답이 없다. 알버스는 컵에 남은 물을 다 마셔버리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계획은 이미 완성 단계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블린은 내게 완전히 빠졌소. 때문에 ‘조정’도 수월했지. 게다가 루즈 후작 저택에 있는 그녀의 방에 ‘증거’를 숨겨 놨소. 이젠 적절한 시기에 터뜨리기만 하면 되오.”

알버스가 히죽 웃었다. 그때를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그리고 우리 윈플 후작가가 공작가로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되겠지.”

“그런가.”

“그렇소.”

“그게 끝인가?”

“그렇다고 봐도 좋소. 내가 한 말을 그대로 그자에게 전한다면 알아서 하겠지.”

“계획에 방해가 될 자들은 없나?”

“지금으로선 없소. 가장 방해가 될 자들인 윈플 후작가 사람들을 그대들이 묶어 주고 있으니까.”

그러며 알버스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한 거요? 후작가에는 상당히 많은 산적들이 그들의 영지를 어지럽히고 있다 하던데.”

“모른다. 그 정보는 내게 허락된 정보가 아니다.”

“역시 그렇군.”

답변을 기대한 건 아닌 듯 알버스는 쉽게 넘어갔다.

“끝인가?”

“끝이오.”

“그렇군.”

침입자는 뚜벅뚜벅 걸어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은 저쪽이오만?”

알버스가 방문을 가리켰다.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면 변명해 줄 건가?”

“그거야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아, 혹시 잡히더라도 절대로 내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알고 있으리라 믿소.”

“걱정 마라.”

침입자는 창문을 살짝 열며 말했다.

“나를 잡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건 죽은 내 몸뚱아리뿐이다.”

“믿음직하군.”

알버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아, 한 가지 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버지를 적절하게 처리해준 점,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꼭 전하지.”

그 말을 끝으로 침입자는 알버스의 방에서 사라졌다.

알버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자신이 제법 강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침입자가 창문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 알버스는 그의 흔적을 완전히 놓쳤다.

‘만약 저자가 내 목숨을 노렸다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빼앗기지 않았을까.

‘예전의 그자도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였는데, 그 부하까지 저 정도인가.’

하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다.

‘저런 자들의 협력을 받고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다. 알버스는 곧 마음을 다잡고 곧 다가올 즐거운 나날을 상상했다.

* * *

윈플 저택에서 나온 침입자는 주변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러나 그 속도는 가공할 만했다.

탁!

순식간에 근처 신전의 종탑까지 도달한 침입자는 로브를 벗었다.

그는 지크였다.

칙칙한 로브를 마법 상자 안에 넣은 지크는 저 멀리 보이는 윈플 저택을 내려다 봤다.

‘상상 이상으로 성과가 컸어.’

윈플 저택을 뒤져도 제대로 된 성과를 얻지 못한 지크는 말 그대로 대담하다 못해 정신 나간 계획을 짰다.

그건 바로 ‘로브를 입은 자’를 흉내 내는 것이었다.

만약 알버스 윈플이 이블린을 타락시키는 일에 관여가 되어있다면 ‘로브를 입은 자’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 아래 지크는 이 계획을 실행했고, 성공했다.

일단 ‘로브를 입은 놈’들이 끼어들었다는 확신과 이블린을 타락시키는 음모의 주체가 알버스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음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놈이 음모와 관련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쯤 죽어라 도망치고 있었겠지.’

알버스가 ‘로브를 입은 자’들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지크는 그저 수상한 침입자에 불과했다.

‘역시 무뚝뚝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게 답이었어.’

능동적으로 말 많고 능글맞은 캐릭터로 원하는 정보를 쏙쏙 빼내기엔 정보가 너무 없었다.

실제로 알버스가 음모에 관련된 자인지조차 모르지 않았던가.

그럴 땐 차라리 반대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나았다.

의심을 받든 말든 우직하게 ‘난 할 일만 한다, 다른 정보는 모른다’ 같은 태도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상대가 자신을 신뢰하게 할 만한 최저한의 무언가는 있어야 한다.

방금처럼 ‘이블린 루즈’나 ‘변수’ 같은 공통적인 정보라든가.

‘하지만 역시 녀석의 음모가 뭔지는 알아내질 못 했으니.’

호수에서의 일, 윈플 후작의 일, 루즈 후작가의 일까지 전부 하나의 음모 안에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음모가 최종적으로 무엇으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서 더 파고들었다간 들킬 위험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

그러나 아쉬움은 그것으로 끝냈다.

‘뭐, 좋아. 다음으로 이어질 실마리는 찾았으니까.’

이블린의 방에 증거가 될 만한 걸 숨겨놨다고 했으니 그걸 찾아보면 된다.

‘‘조정’이란 말도 신경 쓰이고.’

처음에 알버스가 말한, 이블린이 자기에게 빠졌다는 말을 단순하게 깊게 사랑에 빠지게 했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얘기를 더 들어보면 그것과도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게다가 포르티에서 밸리드 놈들이 ‘시장’을 자기들이 쓰기 좋게 개조했던 것도 ‘조정’이었으니.’

하지만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조금 더 알아보자고. 일단 보험은 하나 준비됐으니까.’

지크는 윈플 저택, 정확히 말해서 그곳에 있을 알버스 윈플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녀석들의 계획을 알지 못 한다면, 저 놈을 죽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잠시 후, 종탑에서 지크의 신형은 완전히 사라졌다.

* * *

루즈 후작의 저택은 웅장했다.

국가에서도 몇 없는 고위 귀족. 게다가 영지도 커다랗고 그에 따른 세출도 많다. 당연히 그만큼 저택의 화려함도 커졌다.

그런 후작 저택에 마차 한 대가 들어섰다. 커다란 정원을 지나쳐 마차는 저택 현관 앞에 멈췄다.

마차가 열리고 지크와 라일라가 내려섰다.

그들의 앞에 늙은 하녀 한 명이 접근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녀는 둘을 저택 안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어서 와요!”

그곳에는 이블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크와 라일라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즈 공녀님.”

“감사해요.”

“천만에요. 저도 두 분이랑 얘기를 나누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이블린은 자리에 두 사람을 앉혔다.

“오늘은 지크 씨도 오셔서 무척 기뻐요.”

“두 아름다운 여성분의 담소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만, 오랜만에 루즈 공녀님의 아름다운 존안을 뵙고 싶어서 말이죠.”

“그런 분이 번번이 초대를 거절하신 건가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일이 있는지라.”

“알아요. 제가 남성을 어려워하는 걸 배려해주신 거겠지요.”

지크는 웃었다. 마치 이블린의 말을 긍정은 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할 순 없다는, 그런 의사표시 같았다.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스스로 오해를 해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지.’

셋은 담소를 나눴다. 정말로 지크를 환영하는 것 같긴 하지만, 특유의 남성 공포증 때문에 이블린이 대화를 조금 어려워했다.

그러나 요 근래 부쩍 친해진 라일라가 이블린을 받쳐줬고 지크는 무척이나 매너 좋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그래서 이블린도 곧 즐겁게 이야기에 낄 수 있었다.

물론 지크는 괴리감과 공포감에 씰룩이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크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녀의 안내를 받아 도달한 곳은 상당히 화려한 문 앞이었다. 서민 감성으로는 도저히 화장실 입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문이다.

“돌아오실 때는 오셨던 길을 따라오시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는 건데 다른 길은 모두 경비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혹, 사소한 실수가 시비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충고 같은 경고인지 경고 같은 충고인지를 한 후 하녀는 다시 응접실로 돌아갔다.

지크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웬만한 서민의 집 한 채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화장실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여 볼까.’

목적지는 안다. 라일라가 몇 번 가본 적이 있기에 설명을 들었다.

‘저택 안에 그다지 수준 높은 인간들도 없고.’

물론 그건 지크의 기준일 뿐. 하나 지크의 움직임을 막을 인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크는 조용히 화장실에서 나와 기척을 숨기고 움직였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이블린의 방이었다.

지크는 알버스 윈플이 말한, 이블린의 방에 숨겨뒀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어디 간단하게 둘러볼까.’

시간이 많진 않았다.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댄 이상 너무 오래 걸린다면 수상하게 여길 터. 하지만 다급해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당장 찾을 필요는 없어.’

오늘은 어디까지나 이블린의 초대장이 온 김에 사전 답사 차 왔을 뿐이다.

지금 찾지 못 한다고 해도 이블린이 집에 없을 때나 자고 있을 때 다시 찾아오면 된다.

‘그래도 일단 다른 때는 찾기 힘든 곳부터 찾아볼까.”

지크는 침대부터 뒤졌다. 이블린이 잠을 자고 있을 때는 뒤지기 힘든 곳이니만큼 여유가 있을 때 뒤져놔야 했다.

혹시나 침상이 흐트러져 침입을 들킬 새라 조심조심, 그러나 빠르게 침대를 훑었다.

‘증거를 숨겨놨다고 했으니, 대놓고 보이는 데 놓지는 않았겠지. 그렇다고 너무 깊이 숨겨 놓으면 증거를 드러내 놓으려 할 때 못 찾을 수도 있어.’

즉, 눈에 띄지는 않되 완전히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 두진 않았을 것이다.

침대 위와 아래에는 별 게 없었다.

‘가장 의심되는 건 이중 바닥이나 이중벽인데 말이야.’

지크는 침대 바닥에 손을 대고 마력을 가볍게 퉁겼다.

툭!

‘별거 없군.’

지크는 침대 아래에서 나왔다.

‘증거가 뭔지 모르니 확실히 골치가 아파.’

카펫을 이리저리 밟아보기도 하고 책상을 두드려보기도 한다.

‘슬슬 시간인가.’

큰 거 싸고 왔다고 핑계를 대면 딱 좋은 시간이 됐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얻는 건 의심뿐이다.

‘화장대 하나만 더 조사하고 나가자고.’

지크는 화장대의 가장 커다란 서랍을 열었다.

그녀의 화장품과 액세서리 같은 것이 잔뜩 들어 있었다. 수상해 보이는 것은 없다.

지크는 서랍 아래에 마력을 퉁겼다.

퉁!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지크의 눈이 반짝였다.

‘찾았다!’

* * *

지크가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방을 나간 후, 라일라와 이블린은 담소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화제는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화제는 라일라가 껄끄러워하는 화제였다.

“지크 씨와 관계는 여전한가요?”

남성인 지크가 사라져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관심분야로 화제가 옮겨 붙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아까보다 생기가 넘쳐 보이는 이블린이 라일라에게 물었다.

라일라는 이 화제가 나올 때마다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지크의 충고이기도 하고 자신의 진심이기도 한, 어려워하는 표정으로 화제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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