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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31화 (131/628)

제131화

다음 날, 사람들은 호숫가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블린이 호수에 흥미를 잃어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던 것이다.

지크 일행도 그들을 따라 갔다. 그들도 몬스터가 나온 호수에서 더 머물기 싫다는 이유를 댔다.

이블린은 기뻐했다. 하녀들에게 조심스럽게 부축을 받고 걸으면서도 지크와 라일라와 계속 담소를 나눴다.

지크와 라일라도 그녀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특히 지크는 평소의 거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걸려 그들은 수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크와 라일라, 특히 라일라가 이블린의 마음에 무척 든 모양이었다.

“나중에 저택으로 초대할게요.”

이블린은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좋아. 아주 좋은 경과야.”

지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얼마 뒤 루즈 후작 저택에서 정말로 초대가 왔다.

지크와 라일라는 저택으로 가 이블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멋진 식사까지 대접 받은 후, 둘은 숙소로 돌아 왔다. 한스와 스녹은 이미 자고 있었다.

“굉장히 좋은 아이네.”

라일라는 다소 놀라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대도 약해 보이고 뭔가 대단한 강함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어떻게 저런 녀석이 네 측근이 된 거야?”

“그만큼 엄청난 일이 이블린에게 일어난다는 소리지. 사람이 확 바뀔 만큼 엄청난 일이.”

그리고 그건 무척 잔혹한 일일 가능성이 컸다.

“뭔가 알아낸 건 있어?”

“썩 대단한 건 없어. 뭐 대단한 이야기를 했다고.”

“그럼 곤란한 거 아냐?”

“그래도 실마리가 될 만한 건 찾았어.”

지크는 회귀 전을 떠올렸다.

“이블린 녀석은 국왕의 50번 째 탄생제 즈음 수도를 떠났다고 했어. 하지만 곱게 나간 것 같지는 않아. 그 말을 할 때, 녀석의 기분은 절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수도를 떠났다고 표현한 것도 걸렸다.

그녀는 후작가의 영애. 애초에 그녀가 주로 있는 곳은 후작가의 영지이지 수도가 아니다.

그녀가 호수에 가는 것도 수도에 올라올 때마다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도를 떠나는 건 이블린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흔히 있는 일이야. 그런데 녀석은 이 시기를 콕 찝어 수도를 떠났다고 표현했지. 뭔가 사건이 터져 수도에서 쫓겨났다. 난 그렇게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블린은 루즈 후작가의 영애잖아. 가문이 빵빵한데 그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그 후작가라는 배경조차 이블린을 보호해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 터졌거나, 아니면 그 사건이 이블린 혼자가 아닌 후작가 자체를 기울게 하는 사건이었단 거겠지.”

“그러고 보니 저택에 후작이 없었지.”

“거기에 후계자인 루즈 후작의 아들도 없었고.”

있는 건 저택을 지킬 기사들과 사용인들뿐이었다.

이블린이 지크와 라일라를 초대할 수 있었던 것도 저택에 후작과 후계자가 없기에 가능했던 감도 있었다.

“아직 국왕 탄생제까지 시일이 조금 남긴 했지만 너무 늦지. 보통 이렇게 주변 영주들이 모두 모일 만한 이벤트는 흔치 않으니까. 올라 와서 다른 영주들도 만나고 수도의 분위기도 살피며 이런저런 외교적인 일을 해야 해.”

“왜 올라오지 않았을까?”

“영지에 급한 일이 있었을 거야.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 그래서 일단 이블린부터 올려 보낸 거지.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탄생제가 시작할 때까지 후작은 올라오지 못 할지도 몰라.”

“그럼 수도에서 뭔가 음모가 벌어져도 루즈 후작가는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네?”

“바로 그거지.”

지크가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리고 이블린의 약혼자가 걸려.”

“알버스 윈플이라고 했던가?”

또 다른 후작가인 윈플 후작가. 이블린의 약혼자는 그 윈플 후작가의 공자였다.

루즈 영지와 윈플 영지는 서로 경계를 접하고 있었다. 협력도 하고 싸움도 했던 두 영지는, 이번 대에서는 두 가문의 결합을 통해 협력 쪽으로 관계가 대폭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블린의 얘기를 들어 보면 무척이나 사이가 좋은 것 같던데.”

이블린이 한 얘기 중 절반 가까이가 그의 자랑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적어도 이블린에겐 무척 사랑스러운 약혼자 같았다.

“이블린은 쾌락을 좋아하고 남자들을 다수 거느리고 다녔지만 절대로 남자를 이성으로 생각하진 않았어. 녀석은 ‘남성’을 뿌리 깊게 불신했어.”

“너와 네 다른 측근들은 전부 남자였잖아.”

“어디까지나 ‘동료’와 ‘리더’로서 대한 것뿐이야. ‘우정’은 있지만 ‘사랑’은 믿을 수 없다는, 그런 태도였지.”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네.”

“그래. 그렇다면 뭔가 원인이 있겠지. 그런데 이 시기에 이블린이 그렇게 좋아하는 남성이 있다? 당연히 의심이 가지.”

그는 당장이라도 알버스 윈플의 멱살을 잡고 진실을 토해내라 흔들어댈 것 같은 기세였다.

“조사할 건 두 가지야. 후작가를 기울게 할 만한 커다란 사건의 전조가 있는가 조사해보고, 알버스 윈풀과 윈풀 후작가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지.”

“루즈 영지의 사건은 조사 안 할 거야?”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 수도의 사건에 적절하게 대응치 못할 위험이 있어.”

“그도 그렇네. 그럼 어떤 것부터 할 거야?”

“일단 약혼자부터 털어 봐야지.”

지크가 사냥감을 포착한 포식자 같은 미소를 지었다.

* * *

“돈 좀 줘.”

얘기를 나눈 다음 날이었다. 라일라가 갑자기 지크의 방에 쳐들어오더니 대뜸 손을 내밀었다.

지크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 얼굴로 시선을 올리고, 다시 손으로 내렸다.

“당당하네. 마치 맡겨둔 네 돈을 찾아가는 것 같아.”

“줄 거야 말 거야?”

“물론 주지, 주고말고. 그렇게 막무가내식 뻔뻔한 당당함이 딱 내 취향이야.”

지크가 마법 상자를 꺼냈다.

“얼마면 돼?”

이유도 묻지 않고 액수부터 묻는다. 라일라는 여전히 쿨하게 액수를 말했다.

“…우와, 당당한 건 태도만이 아니라 금액도 그랬군.”

“…역시 너무 많나?”

라일라가 조금 겸연쩍게 말했다. 하지만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기죽지 마. 뻔뻔함은 계속 밀고 나가야 의미가 있는 거야. 도중에 숙이면 겁쟁이밖에 안 된다니까? 그런 땐 ‘잔말 말고 돈이나 내놔!’라고 하면서 정강이라도 한번 걷어차야 되는 거야.”

“…헛소리 말고 줄려면 빨리 줘.”

지크는 마법 상자에서 돈 자루를 꺼내 통째로 그녀의 손에 내려놨다.

“…이건 너무 많잖아.”

“당당함을 보여 준 상이야. 그 안에서 얼마든지 써도 돼. 그 자루는 우리 전 재산이고 그걸 다 쓴다면 앞으로는 빈약한 숙소에 음식도 야생 동물을 사냥해서 먹을 수밖에 없게 되지만 너는 전혀 그걸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라일라, 하고 싶은 거 다해.”

그녀가 지크를 노려본다. 하지만 지크는 실실 웃으며 계속 그녀를 놀려먹었다.

“하여간 못됐어!”

퍽!

라일라가 지크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씩씩대며 방을 나갔다. 지크는 한동안 낄낄 댔다.

* * *

지크는 며칠 동안 알버스 윈플과 윈플 후작가에 대해 조사해 봤다.

하지만 귀족의, 그것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영지를 갖고 있는 후작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올 리 없었다.

‘역시 후작가로 잠입을 한번 해 봐야겠군.’

그 수가 가장 나았다.

지크는 해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로브를 푹 눌러 쓰고 라일라에게 윈플 후작의 저택으로 간다고 통보했다.

“자.”

라일라가 뭔가를 내밀었다. 그건 파란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였다.

“청혼을 하기엔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아직은 조금 더 서로를 알아보고 일단 연인 관계부터 시작하는 게….”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받기나 해.”

지크는 라일라가 내민 반지를 받았다. 그렇게 고급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급품도 아니다.

지크가 반지를 살폈다.

“그리고 이거.”

작은 자루가 휙 던져진다. 지크는 재빠르게 자루를 낚아챘다.

라일라에게 줬던 돈 자루였다. 요구했던 금액을 사용한 듯 돈 자루는 상당히 가벼워져 있었다. 부풀었던 외형도 쭈그러들어 있었다.

“다 써도 좋다니까?”

“계속 헛소리만 해대면 그 반지에 대해 설명 안 해줄 거야.”

“아, 그럼 안 되지.”

지크는 자루를 마법 상자 안에 넣고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다.

“…낄 손가락 안 바꾸지?”

“이 봐, 라일라. 너 같은 미녀에게 받은 반지를 끼는 손가락은 왼손 약지라고 고대 제국부터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라일라가 진짜 분노할 기미를 보이자 지크는 순순히 반지를 중지로 바꿔 끼었다.

“아티팩트냐?”

“알겠어?”

“끼니까 바로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으니까. 네가 만든 거야?”

“그래.”

아마도 커다란 금액을 요구했던 이유가 이걸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지크는 감탄했다. 아티팩트는 절대 흔한 게 아니다.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귀했다.

‘정말로 이 녀석의 능력은 끝이 없군.’

“시간도 재료도 예산도 넉넉지 않아서 그렇게 좋은 건 아냐.”

지크가 알기로 라일라가 가지고 있던 저 세 가지는 아티팩트를 만들기에는 넉넉지 않다거나 부족하단 걸 넘어 아예 없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능력은 두 가지야.”

“…두 가지?”

거기에 아티팩트 하나에 두 가지 능력이라니. 천하의 지크도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잠입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도움이 될 만한 걸 만들어 봤어. 하나는 기척을 지우는 능력이야. 너도 꽤 능숙하게 기척을 숨길 수 있겠지만, 이건 그걸 더욱 강화해 줄 거야. 그리고 다른 하나는 투명화 능력. 아무리 기척을 지워도 사람 눈에 띄면 소용없으니까.”

“…….”

“능력은 각각 세 번 씩 사용 가능해. 지속시간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세 시간 정도고.”

“…….”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그렇게 강한 건 아니니까 꼭 네 능력과 병행해서 사용하도록 해. 투명화 능력도 가만히 있으면 괜찮지만, 움직이면 어색한 부위가 나올 거야. 그 점 명심해 두고.”

“…….”

“그렇게 대단한 아티팩트가 아니니 너무 아티팩트에만 의지하지 말…, 왜 그래?”

질문도 대답도 없이 묵묵히 자신을 쳐다보는 지크를 라일라가 이상하게 쳐다봤다.

“아니, 새삼 네가 엄청 대단한 인간이구나 해서 말이다.”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

하지만 입가가 조금 씰룩이는 것을 보니 기분은 좋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선물 고맙다. 유용하게 사용할게.”

“그래. 나도 좀 자야겠어. 그걸 만드느라 상당히 피곤했거든.”

그냥 한 말은 아닌 듯 라일라의 눈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눈도 충혈 되어 마치 토끼눈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한다면 내 방 써도 돼.”

“됐어. 내 방 있는데 무슨.”

라일라가 코웃음 쳤다.

“좋아, 그런 난 가볼게.”

지크가 마지막으로 침대 옆에 세워져 있는 윈두르를 들고 마법 상자를 꺼냈다.

“윈두르를 마법 상자에 넣게? 그런 유사시에 검을 빼기 힘들잖아.”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저걸 쓸 수 없잖아. 개성이 너무 강해. 그래서 이번엔 다른 검을 쓸 생각이야.”

“그건 그렇네.”

아무리 정체를 가린다 해도 윈두르 하나만으로 지크를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놈이 조금만 더 개성 없게 생겼어도 좋았을….”

지크가 말을 흐렸다. 라일라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지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윈두르의 넓게 펴진 가지 같은 검신들이 서서히 오므라들어 하나로 합쳐졌다.

얼마 안 있어, 나뭇가지 같던 윈두르 특유의 모습은 사라지고 누가 봐도 무척이나 특색 없고 몰개성한 검 한 자루가 지크의 손에 쥐여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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