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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24화 (124/628)

제124화

“네? 아, 이거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둘 다 청력이 굉장히 좋았기에 대화를 나누는 데 문제는 없었다.

위기 상황에 빠진 종을 보고 처음에 할 소린 아닌 것 같지만 한스는 당황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을 했다.

원래 이런 사람인 것이다.

“뽑으니까 뽑히던데요?”

“호오!”

지크가 감탄성을 내며 한스와 에스텔레이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말도 안 돼.”

같이 온 라일라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저거 주인을 가리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이 단시일 내에 뽑을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되는 거야?”

여전히 기운이 없는 그녀였지만 한마디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저거 완전히 맛이 갔어.”

지크가 그녀의 의견을 두둔했다.

하지만 곧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한스 저 멍청한 놈 정도 되면 에스텔레이드가 아슬아슬하게 주인으로 인정할 수준 정도는 될 거야.”

“그 전에 네가 들었잖아.”

“그건 정말 미스터리지.”

자신이 성검에게 선택이 될 만한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고 지크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한스와 스녹이 지크에게 달려왔다.

“축하한다. 성검을 들었으니 영웅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것 아니겠냐. 어쩌면 용사 칭호를 받을지도 모르고. 써보니까 성능도 좋던데. 뭐,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을 고르는 기능은 고장난 것 같다만.”

지크가 한스를 축하해줬다.

“아, 가, 감사합니다. 지크 님과 라일라 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너희들이 날 걱정하기엔 100만 년은 일러.”

저 광오한 말에 안심이 된다.

너무 지크에게 익숙해진 건 아닐까.

한스는 자신이 조금 걱정됐다.

“지, 지크 님! 방금 공격은 지크 님이 하신 겁니까?”

스녹이 허둥지둥 물어 온다.

한스도 귀를 기울였다. 그도 묻고 싶었지만, 지크가 먼저 에스텔레이드에 관심을 나타낸 터라 물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크는 자신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 같은 검’을 보였다.

“날아간 곳에서 끝내주는 걸 주웠거든. 아쉽게도 계속 이 힘을 사용할 순 없지만 뭐, 어때. 지금 쳐들어온 놈들을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해.”

지크는 전장을 둘러봤다.

전투는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라일라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이몰르를 발견했다.

“저놈에게 고전하고 있던 것 같은데. 저놈이 우두머리냐?”

“그런 것 같습니다. 이몰르라고 하더군요.”

한스가 대답했다.

“아, 그래? 척 봐도 사람 타락시키는 놈들 동료 같은데, 이름을 알려준 놈은 또 처음이네.”

입이 싼 녀석일까. 지크의 희망이 부풀었다.

“어이! 넌 무슨 목적으로…!”

지크의 말은 이몰르가 들어 올린 손에 막혔다.

그는 뚜렷하게 지크 일행, 정확히는 라일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잡아라!”

마력에 의해 커진 이몰르의 목소리가 명령했다. 멈춰 있던 적들이 다시 움직였다.

상당히 놀라운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무엇인지도 모를 공격에 터져 나갔음에도 적들은 이몰르의 명령에 바로 반응했다.

그만큼 몬스터의 제어가 완벽하고 로브를 입은 자들도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건 지크가 알 바 아니었다.

‘아, 말 씹혔어. 아, 기분 나빠.’

처음으로 이름을 가르쳐 준 터라 스울에서 만난 떠버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화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기대가 싹 날아갔다.

적들이 지크가 있는 곳, 정확히는 라일라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는 비올루윈 측 병력에게 달려드는 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라일라를 확보할 때 방해를 할 수 없게 만들 요량인 모양이었다.

‘굳이 참을 필요 없지?’

지크는 ‘나뭇가지 같은 검’을 들어 올렸다.

이몰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아마도 조금 전의 공격을 한 자가 지크임을 알고 나름 견제라는 걸 하는 모양이었다.

‘해보든가.’

앞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지크가 검을 휘둘렀다.

지크가 공격을 할 낌새를 보이자 적들은 검을 들어 올린다든가 마주 기술을 사용하려 한다든가 나름의 반응을 했다.

헛수고였다.

서걱!

단 한 번의 절삭음.

적들이 자신의 검이 박살나고 공격이 무효화된 것에 놀라고, 신체에 이는 통증과 함께 떨어져나가는 신체 부위에 절망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이나 옆에 있는 몬스터들이 똑같은 꼴로 변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털썩! 털썩!

몬스터, 로브를 입은 자를 가리지 않고 몸이 두 동강 나서 땅바닥에 처박힌다.

마치 거대한 손이 그곳에 있는 존재들만 딱 긁어낸 듯, 지크의 앞에 커다란 빈 공간이 나타났다.

오로지 시체만이 존재하는, 생명이 비어버린 공간이었다.

“계속 밀어붙여!”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무력. 혼자서 눈앞의 몬스터 대군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일 신위를 보고도 이몰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병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죽음으로의 돌진이 시작됐다.

커다란 움직임도 아니다. 지크가 가볍게 칼을 휘두르면 그 방향의 적들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갔다.

하지만 적들은 계속 숫자로 빈 공간을 채웠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지크의 공격이 너무나 무지막지했기에 월등한 숫자가 전혀 이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크아아아아!

한 몬스터 무리가 또 분쇄됐다. 피와 살점의 비가 내린다. 하지만 용케 한 마리의 몬스터가 살아남았다.

단단한 외골격을 가진, 곤충을 닮은 몬스터. 다른 몬스터들을 방패로 삼은 그 녀석은 지금까지의 놈들보다 조금 더 지크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다지 유의미해 보이진 않았다. 다시 한번 휘둘러진 ‘나뭇가지 같은 검’에 몬스터의 몸체가 두 동강 났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이몰르에게는.

‘지금!’

그가 눈을 빛냈다.

퍼엉!

두 동강 난 몬스터의 시체가 공중에서 터진다. 그 속에서 사검이 몬스터의 피와 체액을 머금은 채 뛰쳐나갔다.

처음부터 몬스터의 뒤에 사검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사검은 지크에게 상당히 가까이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다.

지크가 검을 회수한다. 하지만 사검이 그보다 빨랐다.

사검이 ‘나뭇가지 같은 검’을 휘감았다.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검신은 사검이 옭아매기 딱 좋은 형태였다.

이몰르는 사검을 온 힘을 다해 당겼다.

지크의 손에서 ‘나뭇가지 같은 검’이 떨어졌다. 그것은 사검에 감싸인 채 높이 떠 성벽 위로 날아갔다.

이몰르는 희열을 느꼈고 라일라와 한스, 스녹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지크가 저런 엄청난 강함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저 ‘나뭇가지 같은 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앗!

지크의 몸을 사검이 휘감았다. 옷의 일부분이 조각나 떨어졌다.

피부에 사검이 닿았다. 당장이라도 지크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것 같았다.

‘좋았어!’

아까 지크와 스녹이 나누는 대화를 이몰르는 놓치지 않았다.

지크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거대한 힘이 검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힘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 등은 대화와 몸짓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검을 빼앗으려 했다.

보는 게 현실성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압도적인 힘이었기에 솔직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지만 그도 이 임무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한데, 너무나 쉽게 상대의 검을 빼앗을 수 있었다.

‘방심했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너무 커다란 힘에 도취된 자의 어리석음을 손수 심판해주기 위해 이몰르는 손가락을 당겼다.

‘끝이다!’

카드득!

사검이 지크의 전신을 조각낼 듯 조였다.

인간의 연약한 육체가 조각나고 곧 피와 뼈와 내장이 드러난 후, 그것들마저 잘려나갈 게 빤히 보였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뭐…! 이, 이게…!”

이몰르는 계속 사검을 잡아당겼다. 근육에 마력을 잔뜩 집어넣고 아예 체중까지 실어서 당겼다.

그러나 사검은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상태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크의 몸도 조각나지 않았다.

“이겼다고 생각했냐?”

비뚤어진 조소가 나직하게 울렸다. 눈을 크게 뜨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지크를 쳐다보던 한스와 스녹의 몸에 힘이 풀렸다. 지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것이다.

“하아, 정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쿠우우….

한스와 스녹, 노웸이 차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 어?”

오직 라일라만이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지크님의 고약한 취미랄까요. 직접 보시는 게 나아요.”

한스가 대답했다. 라일라는 그의 말대로 상황을 지켜봤다.

이몰르는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사검에 이렇게 완벽하게 포박한 상태에서 난도질당하지 않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질기고 날카로우며 무엇보다 강한 것이 그의 사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사검은 전혀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칫!”

이몰르가 사검을 회수하기 위해 포박을 풀었다.

덥석!

하지만 회수하기 전에 사검은 지크의 억센 손아귀에 붙들렸다.

“크윽!”

이몰르가 사검을 당긴다. 그러나 사검은 지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저 비명을 지르듯 이몰르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다였다.

“공격해라!”

이몰르는 지크가 자신의 사검에 잡힌 후 공격을 잠시 멈췄던 부하들과 몬스터들에게 다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지크는 쥐고 있던 사검 중 한 가닥을 다른 손으로 잡아 쥐었다.

뚜둑!

질긴 사검이 너무나 쉽게 끊어졌다. 이몰르가 앓는 소리를 냈다.

끊어진 사검은 대략 성인 평균 남성의 키만 한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지크의 손에서 사검이 땅으로 축 늘어졌다. 지크는 앞으로 걸으며 그걸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굉음이 터졌다. 말 그대로 땅이 뒤집어졌다.

충격에 휘말린 자들이 온몸이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검은 얇고 날카로운 칼날로 베고 찢는 무기지, 이렇게 대대적인 파워를 분출하는데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크는 그런 상식을 가볍게 무시했다.

지크는 몇 번 더 짧은 사검을 휘둘렀다.

팔랑거리는, 부채 바람조차도 일으키지 못할 것 같은 사검의 흐느적거림이 만들어낸 위용에 사람들은 질렸다.

비올루윈 측의 병력조차 멀찍이 떨어졌다. 조금만 다가갔다간 저 무지막지한 공격에 같이 휘말릴 것 같았다.

툭!

지크의 걸음이 멈췄다. 어느새 그는 이몰르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몰르는 얼어 있었다. 압도적이기까지 한 지크의 기세에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멍청하게 지크를 쳐다봤다.

“내가 저 검의 힘으로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지?”

지크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검을 놓쳤을 때,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지?”

덥썩!

“커억!”

지크가 이몰르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들어 올렸다. 땅에서 떨어진 이몰르의 발이 버둥거렸다.

“네가 아주 틀린 건 아냐. 지금 내가 이런 힘을 얻게 된 건 분명 저 검 덕이지. 그런데 저 녀석의 능력을 잘못 짚었어.”

지크는 그 ‘나뭇가지 같은 검’이 떨어진 성벽을 올려다봤다.

자신의 손에서 떨어졌지만 저걸 누군가에 도둑맞는다거나 빼앗긴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다시 이몰르를 쳐다봤다.

“솔직히 저 녀석의 성능을 정확히는 몰라. 저 녀석이 지금 해준 처치도 일시적인 거고. 하지만 나에겐 무척 만족스러운 처치지. 아주 간단해. 그저 내 마력을 전부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뿐이야.”

그리고 그건, 회귀 전 군림했던 ‘힘의 마왕 지크 모어’의 재림을 의미했다.

물론 완전히 같진 않다. 그의 육체는 마왕 시절보다 한참 떨어졌으니까.

육체와 마력의 괴리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런 우스운 병력 따위를 일소하는 건 너무나 손쉬웠다.

“당연히 검이 없어도 힘은 사라지지 않아. 네가 검을 빼앗은 게 아냐. 내가 놔 버린 거지. 없어도 너희들을 상대하기엔 아무 어려움이 없으니까.”

그리고 상대의 희망이 어린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어때. 잠깐의 희망은 달콤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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