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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18화 (118/628)

제118화

솔직히 그 세 가지로 대단한 질문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저 녀석을 파악하기에 질문 세 가지는 너무 적지.’

게다가 그녀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지만 이미 그렌 제너드조차 회귀했든 안 했든 상관없다고 선을 그은 지크였다.

처음 만났을 때야 자기 외의 회귀자라고 생각된 자를 만났다는 것이 당황스러워 상당한 위협을 느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지크가 그녀의 정체를 파고드는 건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자치하고 있었다.

물론 방금 전에 갑자기 손에서 튀어 나온 ‘운명을 비트는 열쇠’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그녀를 압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지크도 상당히 침착함을 되찾고 있었다.

‘기억도 온전치 않으니 대단한 정보를 얻을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지크가 가장 관심을 가진 ‘운명을 비트는 열쇠’에 대해서도 적어도 지금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질문 세 가지로 어떻게든 정보를 더 캐내려고 하느니 차라리 그녀의 개인적 정보를 얻어 그녀와의 거리를 줄이고 친분을 더욱 쌓는 요소로 하자는 생각이었다.

‘당장 강압이나 고문을 하는 것보다 나중에 기억을 찾았을 때 스스로 내뱉게 하는 걸로 가는 게 나을 테니까.’

그런데 첫 질문부터 그녀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원래의 이름을 거부한다. 아니면 이름이 없었다. 뭐 그런 것 같지?’

어느 쪽이든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온 건 아니라고 봐야 했다.

‘흠, 민감한 부분을 건든 김에 두 번째 질문은 조금 더 나가볼까.’

지크는 살짝 계획을 바꿨다.

“뭔가 이런 저런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던데. 그건 어떻게 알았지?”

그녀도 회귀자라는 걸 추측을 넘어 확신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진실로 바꿔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만약을 대비해 에둘러 말했다.

그리고 지크의 그 판단은 정확했다.

“…꿈을 꿔.”

“꿈?”

“그래. 꿈.”

지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다.

“어떤 꿈인데?”

“어떤 두 사람의 미래. 한 명은 성검을 들고 세상을 지키는 ‘태양의 용사’. 한 명은 마검을 휘두르고 세상을 오연하는 ‘힘의 마왕’.”

지크는 묵묵히, 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보고 느낀 걸 꿈으로 체험했어.”

“…그 끝은 어떻게 끝나지?”

“여러 가지야.”

지크의 눈썹이 솟아올랐다.

“어떤 때는 마왕이 이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용사가 이기기도 해. 물론 둘 다 죽을 때도 있고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져서 둘이 당황하기도 해. 하지만 대다수의 미래는 결국 ‘태양의 용사’와 ‘힘의 마왕’이 대립하는 결과로 끝나.”

“그 미래들의 구체적인 정보를 말해달라는 요구는 남은 질문으로 턱없이 모자라겠지?”

“모자랄 뿐더러 나도 자세히는 몰라. 기억이 완전치 않거든.”

“기억이 왜 완전치 않지?”

“방금 질문을 세 번째 질문으로 인식해도 되지? 서비스는 충분히 해줬어.”

“아니, 잠깐 기다려.”

지크는 일단 질문을 멈췄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지크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인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왜 그래? 너도 나와 비슷한 상황 아니었어? 너도 네 미래를 보고 정보를 얻은 거잖아. 그리고 지크 모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상황이고.”

‘그런 인식이었던 건가.’

지크는 깨달았다. 지크와 라일라는 서로가 서로를 서로의 입장에서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크는 라일라가 회귀를 했다고 생각했고 라일라는 지크가 꿈에서 미래를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철저하게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군.’

웃긴 이야기였다.

‘꿈으로 미래를 본다라.’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신도 엄연히 회귀를 하지 않았던가.

미래를 꿈으로 본다는 행위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도 웃긴 이야기였다.

‘설마 나도 라일라처럼 꿈을 꾼 건 아니겠지?’

그 꿈이 너무 선명해 자신이 회귀를 했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그러나 지크는 부정했다.

‘아무리 꿈이 선명해서 자기가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자기 전의 기억까지 잊어버리게 하진 않지.’

백작가에서 일어났을 때 지크는 백작가에서의 일을 한참을 생각을 가다듬고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회귀가 꿈이라면 바로 어제까지의 기억을 그렇게 낡은 찬장에서 먼지와 거미줄을 치우고 퀘퀘한 물건들 속에서 오래 전 물건을 꺼내듯 꺼내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튀어나온 ‘운명을 비트는 열쇠’가 강력한 증거였다.

‘많은 미래가 있었다고 했지.’

라일라의 말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녀는 많은 미래를 봤다고 했다. 말을 들어보면 아마도 자신과 그렌 제너드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녀가 본 게 정말로 미래라면, 미래로의 많은 가능성이 있고 회귀전의 나는 그 많은 미래 중 하나에 도달했다는 건가.’

지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내가 지는 미래에 도달하다니.’

입맛이 썼다.

라일라가 지크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지크는 표정을 고쳤다.

“그럼 질문 하나 남은 거지?”

“그래.”

지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친분을 쌓는 걸 우선해 후일을 기약할 것이냐, 아니면 방금처럼 정보를 끌어내는 질문을 할 것이냐.

“정했어.”

“뭔데?”

지크가 라일라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 중요한 질문인 것일까. 라일라도 긴장했다.

“좋아하는 색은 뭐야?”

“…뭐?”

“좋아하는 색.”

결국 지크는 그녀와의 친분을 더욱 강하게 만들 정보를 얻는 걸 택했다.

“…정말로 그게 질문이야?”

“그래.”

“후회 안 하지? 물려달라고 애원해도 안 물려 줄 거야.”

“안 물려.”

“…하얀색.”

대답을 하면서도 정말로 이걸로 된 걸까 하는 그녀의 생각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이름을 라일라로 지었군.”

분명 라일라의 꽃잎은 새하얀 색이었다.

“좋아. 질문은 끝이야.”

“…정말 이래도 돼? 그렇게 내 정보를 못 캐서 안달이던 네가?”

“상황에 따라 대응도 달라지는 법이지.”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하지만 지크는 얼굴에 철판을 착 깔았다.

“아무리 내 얼굴이 잘 생겼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보지 마. 부담된다.”

“퍽이나.”

라일라는 코웃음 치며 본래의 태도로 돌아갔다.

“아, 질문할 게 하나 있는데.”

“…아무리 양심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말을 뒤집어버리기에 너무 짧은 시간 아니야?”

“그런 질문 아니야, 멍청아. 뭐, 내가 양심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맞지만.”

그러고 마치 자랑스러운 말을 한 마냥 코를 세우는 지크를 라일라는 어처구니없이 바라봤다.

“넌 많은 미래를 봤다고 했지?”

“그래. 자세한 건 대부분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정보를 묻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지크는 라일라의 눈을 쳐다보고 말했다.

“지금의 내가 마왕 지크 모어가 될 것 같냐?”

“…….”

라일라는 침묵했다.

지크를 한 번 보고 고민에 빠진다. 그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니. 하지만 그래도 몰라.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많은 미래가 있었어. 네가 그중에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본 꿈과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미래를 걸어가고 있는 건지 지금은 파악할 수 없어. 하지만 적어도 네가 에스텔레이드를 들었던 미래는 없었던 것 같아.”

“한마디로 내가 에스텔레이드를 드는 것만으로도 나는 네가 본 적 없는 미래로 향한다는 거지?”

“맞아. 그러니까 나가자마자 에스텔레이드를 찾아서 갖도록 해. 토르니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그래도 난 토르니움이 좋다.”

“…부모님께 말 더럽게 안 들어 처먹는다고 많이 혼나지 않았니?”

지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라일라가 가슴을 쳤다.

마치 말 안 듣는 자식을 보고 한탄하는 어머니처럼도 보였다.

“내가 에스텔레이드를 들든 토르니움을 들든 아니면 길에서 주운 낡은 낫을 들든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고.”

지크가 빼들고 있던 검을 고쳐 쥐었다.

“여기서부터는 뭔가 다른 것 같으니까.”

그들의 앞에 새로 등장한 통로에는 바닥, 벽, 천장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적인 석재가 보이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아닌, 자연동굴이 분명했다.

‘운명을 비트는 열쇠’는 조용히 그 통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비올루윈은 도시 안에만 관광자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올루윈 성벽 밖으로 높은 산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거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들의 꼭대기는 종종 구름으로 자신을 꾸며 무척이나 신비한 광경을 비올루윈의 사람들에게 선사해주곤 했다.

하지만 평소 비올루윈 사람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는 산이, 이번만큼은 치명적인 독을 안으로 숨기고 있었다.

벌거벗은 암벽을 내보이고 있는 정상과는 달리 산의 깊은 계곡은 울창한 나무와 수풀들로 덮여 가려져 있었다.

부스럭!

누군가 수풀을 들추고 나타났다.

그는 만약 지크가 봤다면 일단 눈부터 반짝일 만한, 로브를 푹 뒤집어쓴 행색을 하고 있었다.

길게 뒤집어쓴 로브가 수풀을 쓸어 온다. 그 뒤로 몇 사람이 더 나타났다.

그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숲을 능숙하게 헤치고 나갔다. 하늘을 가리는 나뭇가지도, 발을 잡아당기는 덩굴줄기도, 얼굴을 후려치는 관목의 가지도 그들의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왔나.”

목소리가 들린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다.

마치 거리에서 가장 평범한 이를 잡아 말을 건다면 이런 목소리로 대답하지 않을까 싶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평범한 건 목소리뿐이다. 수풀을 뚫고 온 자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넷!”

대표로 크게 대답하는 로브의 남자 목소리에는 짙은 공포가 달라붙어 있었다.

“너희들만 올라온 걸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았나 보군.”

“탐색대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평범한 목소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를 하는 자는 더욱 바짝 얼어붙었다. 상대가 자기 기분 나쁘다고 부하들의 목숨을 마구잡이로 도륙하는 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당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코어한테 당한 건가? 그렇지 않다면 제3자가 끼어들은 건가?”

“그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보고를 하는 자는 얼른 이 가시방석 같은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로브 안으로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지도 못하고 돌조각처럼 서 있었다.

평범한 목소리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1단계를 실패라고 간주, 2단계로 진입한다. 준비시키도록.”

“넷!”

보고를 하던 자는 급히 물러났다.

평범한 목소리의 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두 번째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떠났다.

평범한 목소리는 비올루윈을 떠올렸다. 그 곳의 사람들은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안 된 일이야.’

그들의 미래를 예상하며 평범한 목소리는 혀를 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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