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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12화 (112/628)

제112화

한스와 스녹에게 있어 지크에게 받은 닷새간의 휴식은 말 그대로 꿈과 같은 나날이었다.

첫날에 둘이 술을 먹다 시비가 붙은 번거로운 일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지크가 싹 처리를 해줬고, 다음 날부터는 별다른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으며 머물고 있는 곳은 세계적인 관광도시. 한스와 스녹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랬기에 지크가 따라오라는 소리에도 이번엔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고 따라갈 수 있었다.

지크가 그들을 이끌고 들어간 곳은 어느 한 관광지였다.

비올루윈의 아래에 있는 고대 유적. 현재의 ‘관광도시 비올루윈’ 성립의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우연히 발견된 이 고대 유적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서비스업들이 들어섰으며 그 서비스업 때문에 사람들이 더 몰려드는 선순환이 지금의 비올루윈을 만들어냈다.

“너희들도 관광은 해봤지?”

한스와 스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 기간 닷새 중 이틀을 썼을 정도로 고대 유적은 신비로웠다.

셋은 일반적인 관광객들과 섞여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석재로 가지런히 쌓은 통로가 나타났다.

“이건 대체 언제, 누가, 뭐 때문에 만들었을까요?”

“글쎄. 이틀 동안 봤지만 잘 모르겠어. 그런데 세 번째로 봐도 뭔가 또 다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뒤에서 스녹과 한스가 수군거린다.

지크도 통로를 살폈다. 이 관광도시 비올루윈에서 유일하게 회귀 전에 직접 봤었던 관광지가 이 곳이다.

바로 이곳에 토르니움이 있었다.

‘어디 보자. 분명 길이….’

캄캄한 기억 속을 헤쳐나가며 지크는 원하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 기억은 흐릿했다.

‘하긴, 정보를 얻긴 했었어도 활용하진 않았으니까.’

분명 토르니움의 정체도, 그곳까지 가는 길도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지크는 그냥 막히는 것은 때려부수며 움직였었다.

‘일단 생각나는 곳까지 가볼까.’

통로는 어두웠다. 빛이라곤 벽에 걸려 있는 횃불뿐. 하지만 관광객들은 그 어두움조차 즐기며 통로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유적은 미로처럼 되어 있었고 자칫 잘못 들어갔다가는 더 이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 유적에서는 매년 실종 사건이 잇따르고 있기도 했다.

지크는 기억을 거슬러 통로를 누비고 다녔다.

곧 그들 앞에 통로를 막고 있는 줄 하나가 나타났다. 줄에는 나무 팻말이 걸려 있었다.

<들어가지 마시오.>

지크는 그 팻말을 상큼하게 씹었다. 줄을 들쳐 올리고 그 아래로 지나갔다.

한스와 스녹은 더 이상 지크의 행동에 의문을 표하지도 않았다. 그들도 지크를 따라 줄 너머로 들어갔다.

비올루윈 관리 밖이라는 걸 증명하듯 줄 너머의 통로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양 벽에 홰를 걸어두는 곳이 있었지만 이미 오랜 시간 관리가 안 된 걸 증명하듯 잔뜩 녹슬고 먼지가 끼어 있었다.

지크 일행은 눈에 마력을 담은 채 통로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통로의 형태는 바깥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먼지가 잔뜩 끼어 있을 뿐이었다.

지크가 앞장서서 얼마 정도 걸었을까. 그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길 잃었네.’

역시 회귀 전처럼 그냥 힘으로 때려 부수면서 나아가야 할까. 방향은 어렴풋이 기억나긴 했다.

‘됐어. 그냥 천천히 찾지, 뭐.’

지크는 여유를 가졌다.

숨겨진 통로까지 가는 길은 모르지만 통로가 있는 장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난다. 그곳에 도착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이 미궁 같은 유적에서 그곳을 찾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그러나 지크 일행에게는 지하라는 공간에 천부적으로 뛰어난 존재가 한 명 있었다.

“걸어온 길은 잘 기억하고 있지, 스녹?”

“네! 바로 지도로 그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 노웸?”

쿠!

노웸이 앞발을 마치 손처럼 들어 자신감 있게 소리쳤다. 스녹과 노웸 덕분에 지크는 길을 잃어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크, 데려오길 잘했어.’

자동 지도 기능이 딸린 종이라니. 이 얼마나 편한가. 스울에서 샘을 설득해 스녹을 데려온 자신을 지크는 칭찬하고 싶었다.

‘그래도 하루이틀 정도 찾아서 될 일은 아니겠지?’

고대 유적의 규모가 그렇게 만만했다면 이미 비올루윈에서 유적의 모든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천천히 찾다가 약속 시간이 되면 나가자고.’

그리고 라일라와 데이트를 끝낸 후, 다시 찾기 시작하면 된다.

드륵!

“응?”

이상한 소리에 지크가 걸음을 멈췄다. 한스와 스녹도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챙!

한스가 검을 뽑고 주변을 경계한다. 스녹도 노웸을 어깨에 올린 후 두 손을 자유롭게 한 상태였다.

지크의 훈련과 지금까지 쌓은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

훌륭하게 성장한 두 종에게 만족하면서 지크는 소리가 들린 곳을 찾았다.

드드드드득!

굳이 찾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마치 문처럼 뒤로 밀려들어가는 벽과 함께.

“…누가 뭐 건드렸냐?”

한스와 스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크는 벽 사이로 생긴 문 안을 흘끔 쳐다봤다. 그곳에도 어두컴컴한 통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는 내가 아는 곳이 아닌데.’

그래도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낯선 문 안이 궁금했다.

‘한번 슬쩍 들러볼까.’

“가보자.”

호기심에 따라 지크는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한스와 스녹이 떨떠름해 했지만 그들도 지크를 따라 들어갔다.

통로로 얼마 쯤 들어갔을 때였다.

드드드드득!

소음이 다시 울리고 문이 닫혔다.

셋은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막다른 길이 된 통로가 그들을 떡하니 막아서고 있었다.

“…저거 안 열리는 거 아니겠죠?”

“안 열리면 부수면 되겠지.”

“그래도 유적인데 부수면 마음이 좀 아파서 그래요.”

이미 막히면 부술 생각부터 하는 걸 보면 이미 지크의 사상은 둘에게 짙게 파고 든 게 틀림없었다.

지크 일행은 다시 문으로 향해봤다.

드드드드득!

걱정이 무색하게도 문은 다시 열렸다.

“사람이 오면 자동으로 반응하나 봐요.”

스녹이 기뻐했지만 지크는 의문을 품었다.

토르니움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곳도 이런 식의 숨겨진 통로였다.

하지만 그곳은 이곳처럼 사람들이 접근한다고 자동적으로 열리는 곳이 아니었다.

“잠깐만 물러서 봐라.”

세 명은 몇 걸음 뒤로 걸었다.

드드드드득!

문이 다시 닫혔다.

‘사람에게 반응하는 것 같긴 한데.’

“한스. 앞으로 나가봐.”

지크의 명령에 한스가 몇 걸음 앞으로 갔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라?”

한스가 닫힌 문에 접근했다. 문 여기저기를 만져보기도 하고 두드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문은 끄떡도 하지 않고 여전히 벽의 모습으로 의태하고 있었다.

“물러나 봐.”

“네.”

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러났다.

지크는 이번엔 스녹을 보내봤다. 이번에도 문은 꿈쩍 하지 않았다.

스녹을 물리고 이번엔 지크가 접근했다.

드드드드드득!

소음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지크는 몇 걸음 물러났다. 문이 닫혔다.

지크는 몇 번이나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를 반복했고 그에 맞춰 문도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지크 님에게 반응하네.”

“뭐 때문일까요?”

뒤에서 종들의 대화가 들린다. 지크도 그들과 같은 의문을 가졌다.

‘이게 왜 나한테 반응하지?’

알 수가 없었다. 회귀 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 때와 달라진 점이 있나?’

하지만 생각나는 건 없다. 지크는 뒤를 돌아봤다. 어두운 통로가 마치 자신 속으로 들어 와 진실을 찾아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가 보자고.’

지크는 한스, 스녹을 끌고 통로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이곳도 확실히 고대 유적의 일부가 맞긴 맞는지 길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관광지로 개방된 곳보다 조금은 나았다.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기감을 넓혔지만 잘 알 수가 없었다. 기감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스녹과 노웸도 주변 상황을 탐지하지 못했다. 다행히 지나간 길은 기억할 수 있다고 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지크는 아예 방향을 기감이 가장 흐트러지는 곳으로 잡았다.

길이 꼬여 있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막다른 골목에 막히고 똑같은 곳을 빙빙 돌기를 몇 번. 그들은 한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장은 낮지만 공간은 제법 크다. 기둥이 곳곳에 박혀 있어 천장을 지탱하고 사방으로 많은 길이 뚫려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시선을 잡는 건 방 중앙에 있는 것이었다. 세 칸짜리 낮은 단 위에 그것은 고고히 존재했다.

검 하나가 꽂혀 있었다.

“봐, 노웸. 웬 검이 하나 있어.”

스녹이 노웸과 속삭인다. 한스는 지크를 쳐다봤다.

‘저걸 가지러 오신 건가?’

하지만 지크의 반응을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지크는 평소의 뻔뻔함은 어디론가 집어 던지고 심각한 얼굴로 그 검을 보고 있었다. 한스는 검을 조금 더 자세히 보려 고개를 쭉 뺐다.

‘분명 대단한 검 같긴 한데.’

이런 고대 유적의,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발견된 검이라니 뭔가 대단해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겉모습도 신비로웠다.

검신은 은빛을 띠는 다른 검들과는 달리 시리도록 새하얬고 검 장식은 성스러워 보였다.

‘꼭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성검 같아.’

“저게 뭔지 아십니까?”

한스의 물음에 지크는 조용히 대답했다.

“성검이다.”

“…네?”

“…예?”

설마 진짜 성검이라는 대답이 돌아올지는 몰랐기에 한스와 스녹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검에 다가갔다.

‘성검 에스텔레이드. 이게 왜 여기 있지?’

마검 토르니움이 ‘힘의 마왕 지크 모어’를 상징하는 무기였다면, 성검 에스텔레이드는 ‘태양의 용사 그렌 제너드’를 상징하는 검이었다.

지크는 단에 올라 에스텔레이드의 바로 옆에서 멈췄다. 하얀 검날은 회귀 전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크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바로 그 검.

지크는 홀린 듯 에스텔레이드의 손잡이를 잡았다.

뽑을 순 없을 것이다. 에스텔레이드는 토르니움과는 다르다. 주인을 가려서 자격이 없는 자는 들지조차 못한다.

때문에 지크는 에스텔레이드가 뽑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끼, 끼긱!

검신과 단이 마찰하며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엄청난 저항감이 느껴지며 꿈쩍도 하지 않아야 할 검이, 너무도 시원스럽게 딸려 올라온다.

지크의 눈이 커졌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스와 스녹도 놀라 쳐다봤다.

챙!

맑은 소리가 나며 에스텔레이드가 완전히 뽑혀 나왔다.

아무런 광원도 없는데 은은한 빛을 뿜어대는 에스텔레이드를 지크는 어처구니 없이 쳐다봤다.

“…네가 왜 뽑히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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