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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01화 (101/628)

제101화

밸리드 성기사의 검이 사방에서 짓쳐들어온다.

지크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감각은 좁힌 대신 최대한 상세하고 정밀하게 감지한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렸다.

심장을 노리는 것 하나. 목을 노리는 것 하나. 그리고 옆구리를 노리는 것 하나.

머리에 되뇌일 시간도 없다. 감지하고, 움직인다.

카앙!

심장을 노리는 검을 쳐냈다. 그리고 균형을 옮겨 몸을 비튼 다음 목을 꺾었다.

후웅! 후웅!

아슬아슬하게 검들이 목과 옆구리를 비켜갔다.

그 사이로 지크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하지만 막혔다. 공격 대상 뒤에 있던 다른 성기사가 검을 뻗어 막은 것이다.

그 틈을 노려 다시 2차 공격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검 네 개. 각각 다른 곳을 노려온다. 빌어먹게도 궤도가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협공에 능숙하다는 소리다.

지크는 마력을 돋았다. 검 끝까지 확장된 마력이 지크의 의도대로 흐른다.

과연 카르위먼이 제공해준 검. 마력이 다른 검들보다 수월하게 흘렀다.

감각을 날카롭게 돋우고 눈에 마력을 집어넣어 동체시력을 높였다.

그리고 검신이 터져나갈 것처럼 검 안에 응축시킨 마력을 방출했다.

단, 오로지 한쪽 검날의 한 지점에서만.

섬광검.

검에 깃든 방대한 마력이 오로지 한 지점으로만 빠져나갈 때, 검은 반동으로 엄청난 속도를 얻는다. 그건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빛과 같다.

지크는 더욱 집중했다.

빠르기만 해선 안 된다. 제어도 완벽해야 했다. 처리해야 할 게 하나가 아닌 것이다.

검이 폭주하는 말처럼 달려나간다.

지크는 검 손잡이를 꽉 잡고 검의 궤도를 틀었다.

가장 먼저 지크를 노리는 검 중 하나에 지크의 검이 맞부딪쳤다. 아니, 그건 충돌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카아아앙!

지크의 검과 부딪친 검이 크게 튕겨나갔다.

커다란 반동이 왔다. 손이 아렸다. 하지만 지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에 힘을 줬다.

스윽!

계속해서 전진하던 검이 지크의 의도에 따라 방향을 바꿨다.

카앙!

두 번째 충돌음. 또 하나의 검이 튕겨나갔다.

지크의 검도 반동에 궤도가 꺾였다. 하지만 그건 지크가 계산한 바다.

다음 검까지는 더욱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다.

카앙!

세 번째 충돌음.

카앙!

그리고 네 번째 충돌음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지크는 네 개의 검을 쳐냈다.

밸리드 성기사들의 경악한 표정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우쭐해 할 틈도 조롱할 틈도 없다. 지크가 가장 가까이 이에 있는 성기사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검이 성기사의 갑옷을 뚫고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지크는 검을 깊이 찔러넣지 않았다. 딱 폐를 손상시킬 정도만 찌르고 바로 검을 뺐다.

휘익!

지크가 검을 빼자마자 성기사의 손이 지크의 검이 있던 곳을 스쳤다.

성기사의 놀란 눈이 보인다. 지크가 뒤로 뛰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수압의 물기둥이 지크가 있던 곳을 강타했다.

가슴을 찔린 밸리드 성기사가 물기둥에 휩쓸려 말 그대로 터져나갔다. 엄청난 수압이 그를 말 그대로 찍어누른 것이다.

그러나 미리 몸을 피한 지크는 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개자식이!”

물기둥을 쏘아냈던 트리슬로와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신의 공격이 지크를 잡기는커녕 애꿎은 아군 한 명만 희생시킨 것이다.

‘역시 물불 안 가리는군.’

가슴에 칼을 꽂힌 성기사는 분명 지크의 공격을 막거나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크의 빠른 상황판단과 섬광검이라는 기술이 집약되어 가해진 공격 때문이다.

그러나 막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과 그럴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건 엄연히 다르다.

미동도 않는 성기사를 보고 지크는 딱 치명적인 상처 하나만 내고 바로 뒤로 빠졌다.

‘제 목숨을 바쳐서 날 잡아두려 했어.’

적어도 검이 몸에 꽂힌다면 검날을 잡아 빼지 못하려는 의도는 갖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지크의 몸도 구속하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트리슬로와의 공격에 지크와 그 성기사는 저승까지의 길동무가 되었을 것이다.

트리슬로와의 신호를 받고 흩어졌던 성기사들이 다시 지크에게 달라붙었다.

‘시간은 내 편이다. 아마 저놈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나한테 달려들 거야.’

트리슬로와가 원하고 본인들도 원한다.

‘그럼 내가 할 일은 하나지.’

최대한 상처가 날 상황을 줄이고 방어 위주의 아주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 물론 방금 같은 기회가 오면 공격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자기보신 하자고.’

지금까지 지크가 한 전투와는 조금 많이 색다른 전투가 펼쳐졌다.

* * *

밸리드 신전에 진입한 와이그는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갔다. 밸리드의 신도들이 보이는 족족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며 전진했다.

이미 결계의 가호마저 사라진 밸리드가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지크 님은 어디 있지?’

카르위먼이 진입한 건 소란으로 알려졌을 터. 하지만 지크는 아직 합류하지 않고 있었다.

‘죽었거나 아직 할 일이 남았거나 아니면 발목을 잡혔거나겠지.’

일단 죽었다는 끔찍한 생각은 지웠다.

‘지크 님의 목표는 트리슬로와였었지?’

그럼 트리슬로와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와이그는 앞을 가로막는 밸리드 신도들을 무참하게 베어 넘기며 기척을 더듬었다.

‘찾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크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의 기척도 함께 느껴졌다.

전투 중인 게 분명하다.

‘트리슬로와도 저기에 있을 확률이 높아.’

“루벨라 님!”

“네?”

막 반항하는 밸리드 신도 심장에 빛줄기를 꽂아 넣은 루벨라가 돌아봤다.

“지크 님을 맞으러 가죠.”

“어디 계신지 찾으셨나요?”

“네.”

루벨라가 지팡이를 끌어 안고 와이그의 뒤에 섰다.

“가죠.”

와이그가 기척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 멀리 있진 않았다.

조금 달리자 문이 부서져 있는 어떤 방 앞에 다다랐다.

와이그와 루벨라는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지크 님!”

루벨라가 지크를 불렀다. 와이그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의 상태를 살폈다.

피바다가 된 바닥에 끔찍한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약간 남은 옷으로 그게 밸리드 신도인 걸 확인하고 신경을 껐다.

시선을 위로 향하자 밸리드의 성기사인 듯한 자들이 사람 한 명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밸리드 신관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이 와이그를 직시했다. 그의 정체를 아는 듯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뒷걸음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와이그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포위 안에 있는 자를 쳐다봤다.

“여, 이제 오셨습니까?”

몸에 자잘한 부상을 입은 지크가 와이그와 루벨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와이그가 안부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깊은 상처는 없어요.”

온몸에 상당히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정말로 깊은 상처는 없었다.

“다행입니다. 그럼 일단….”

웃는 낯으로 지크와 얘기를 나누던 와이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쓰레기들부터 치우죠.”

후웅!

와이그가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몸에 깃든 성력이 화려하게 빛나며 밝은 빛으로 변해 뻗어나갔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울린다. 신이 심판을 내리는 것처럼 날카로운 빛줄기가 일정한 공간 자체를 도려내듯 휩쓸었다.

밝은 빛에 지크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꺼풀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굉음에 귀가 먹먹하고 충격파로 옷자락이 펄럭인다. 무릎 아래로는 작은 돌 파편이 톡톡 튀기는 느낌까지 들었다.

빛이 사라지자 지크가 눈을 떴다.

“와우!”

가볍게 감탄했다. 지크의 바로 옆 바닥에 거대한 검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밸리드 성기사들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밸리드 성기사들이 급히 물러났다. 그리고 트리슬로와의 곁으로가 와이그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와이그는 그들의 행동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지크 님.”

“괜찮습니다. 계속 동굴에만 있었더니 슬슬 빛이 그리워지고 있던 참이거든요. 동굴에 들어온 이후 본 불빛이라곤 횃불이 전부니까요.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것이 포근했습니다.”

지크의 너스레에 와이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루벨라가 지크에게 다가가 그에게 회복마법을 걸었다. 지크의 몸에 있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루벨라 님.”

“천만에요.”

그녀가 자애롭게 웃었다.

지크는 모여 있는 밸리드 신도들을 쳐다봤다. 트리슬로와와 눈이 마주쳤다.

지크가 과장되게 몸 이곳저곳을 쓸어내렸다. 상처 없이 매끈해진 피부를 보여주며 조롱한 것이다.

네가 한 일이 전부 쓸데없이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행동만으로는 아쉽기에 입도 열었다.

“내가 말했지? 도망쳐야 할 때라고. 그러니까 왜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어.”

그리고 놀랍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어라? 그런데 그렇게 겁먹은 듯 모여 있는 게 꼭 쥐새끼 같네? 이럴 수가! 쥐새끼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었어?”

와이그가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루벨라도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지만 밸리드의 신도들은 웃을 수 없었다.

“하긴, 그만큼 이게 중요했단 뜻이겠지.’

지크가 마법 상자에서 ‘사각뿔의 원혼’을 꺼냈다.

와이그와 루벨라가 호기심을 보였다.

루벨라가 물었다.

“그건 뭐죠?”

“밸리드의 성물입니다. ‘사각뿔의 원혼’이라고 하죠. 아무나 가져가도 된다고 방치해 놓았길래 냉큼 챙겼죠.”

트리슬로와가 이를 갈았다.

“꽤 중요한 물건 같습니다만.”

“이를 말입니까, 와이그 님. 이 녀석은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완성된다면 오거, 트롤, 오크 같은 어중이떠중이뿐만이 아니라 베히모스, 바실리스크, 타이탄 같은 녀석들도 조종 가능합니다.”

와이그와 루벨라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지크가 입에 담은 몬스터들은 등장한다면 군대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몬스터들인 까닭이었다.

“…위험한 걸 만들고 있었군.”

와이그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트리슬로와를 노려봤다.

“지크 님과 루벨라 님은 잠시 물러나 계시기 바랍니다.”

역시 밸리드 놈들은 살려 둘 가치가 없다.

와이그가 밸리드 무리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박력에 밸리드 무리가 움찔 한 걸음 물러났다. 트리슬로와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력 죽이네요.”

“괜히 와이그 님이겠어요?”

지크와 루벨라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콰아앙!

시작은 역시 와이그의 화끈한 일격이었다. 범위 안에 있던 밸리드 성기사들을 말 그대로 증발시킨 공격은, 놀랍게도 트리슬로와가 편 장벽에 막혔다.

“그래도 추기경이라는 건가!”

와이그는 바로 다음 공격을 가했고 밸리드가 반격했다.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우세한 것은 와이그였다.

그것도 압도적이었다. 밸리드 성기사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다.

그 모습을 지크와 루벨라가 뒤에서 한가롭게 지켜 봤다.

“정말로 와이그 님은 대단하세요.”

“그 점에 관해서는 동감입니다, 루벨라 님. 하지만 트리슬로와 저놈도 포기하진 않았네요. 저기 눈을 힐끔힐끔 굴리는 게 보이죠?”

“와이그 님을 이길 비책이라도 있는 걸까요?”

“설마요. 그저 이걸 포기하지 않은 겁니다.”

지크가 손에 쥔 ‘사각뿔의 원혼’을 흔들어보였다.

“이걸 갖고 후퇴하기만 해도 완전한 패배는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와이그 님을 피한 후 제 손에서 이걸 강탈한 후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뭐 하러 그걸 갖고 있나요?”

루벨라가 벌레를 보는 눈으로 ‘사각뿔의 원혼’을 내려봤다.

“부숴버려요.”

“그럴까요?”

지크와 루벨라의 대화를,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듣고 있었다. 애초에 지크와 루벨라는 대화 소리를 낮추고 있지도 않았다.

지크와 트리슬로와의 눈이 마주쳤다.

지크가 웃었다. 저 웃음을 보고 단 한 번도 좋은 꼴을 보지 못한 트리슬로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지크가 입을 열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말을 건다.

그러나 트리슬로와는 마치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그 말이 똑똑히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지크가 ‘사각뿔의 원혼’에 검을 찔러넣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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